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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105화 (105/110)

#105화 빵 대신 밥? 밥 대신 빵? (2)

바닐라 뚱카롱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입을 한껏 벌려 두툼한 마카롱을 입에 집어넣는 순간, 쫀득한 빵의 겉면이 나를 맞이했다.

한입 베어 물자 햄버거 번 모양의 과자 겉면이 스르르 녹아내리면서 진한 바닐라 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와…… 한입에 그대로 살 1킬로그램이 더해질 것만 같은…… 진하고, 달달한 맛.

그래도 행복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이니 뭐니 하는 사기 같은 말은 신봉하지 않느다.

사람 몸은 먹는 대로 찌고, 움직인 대로 빠진다.

내 행복은 이 뚱카롱 하나로 운동 한 시간이 추가될 걸 알면서도 느끼는 행복이다.

먹기 위해 운동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내가 운동을 하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운동을 하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가 바로 운동과 먹기와 내가 혼연일체가 된 순간이다.

그때부터는 먹는 것도 행복하고, 먹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도 행복하다.

먹으면서 운동할 걸 생각하는 것도 행복하다.

운동을 하고 나면 또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먹순환’의 원리이다.

먹고 운동하고 먹고 운동하는 연결고리가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마카롱에 이어 내 시선을 잡아 끈 빵은 ‘소보로빵’이었다.

흔하디흔한 소보로빵.

어느 제과점에나 있는 그 소보로빵이지만, 김명장 베이커리에서 사실 내 최애 빵은 바로 이 녀석이다.

김명장 베이커리의 소보로빵은 그 명성이 드높다.

아저씨가 폐업을 고려하고, 깊은 늪에 빠져 있을 때도 이 소보로빵만은 사람들이 꾸준히 찾았다.

어쩌면 이 소보로빵이 있었기에 아저씨도 깊은 늪의 기간을 견뎌 낼 수 있었을 거다.

‘곰보빵’이라고도 불리는 소보로빵은 크림빵, 단팥빵처럼 어느 빵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비싸지도 않고, 취향도 크게 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누구나 다 소보로빵을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래.

제빵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보로빵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만들 줄 아는 것과 ‘맛있게’ 만들 줄 아는 것은 다르다.

같은 가방이지만, 어떤 가방은 수백만 원짜리 명품이 되고, 어떤 가방은 단돈 몇만 원짜리 시장 상품이 된다.

명장 아저씨의 소보로빵은 가히 명품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선우야. 웬일로 네가 소보로빵을 안 먹니? 너 주려고 방금 만들어 왔어. 어서 먹어 봐.”

“안 그래도 지금 맛보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저씨가 내민 소보로빵을 얼른 잡아챈다.

오오…….

아직 따끈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빵.

단지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온다.

조심스럽게 온기가 남아 있는 빵을 입으로 가져간다.

윗입술에 느껴지는 소보로의 까칠까칠한 느낌.

이 까칠함이 반갑다.

그 까칠함은 곧 입으로 들어가 달달하고 바삭한 크런치(Crunch)로 변할 걸 알기에.

아랫입술에서는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빵의 질감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게 바로 소보로빵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윗면에서는 까칠까칠한 소보로 가루가 느껴지고, 아랫면에서는 부드러운 빵이 느껴지는 이 부조화.

이 부조화는 입에서 한데 모이며 그 무엇보다도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부드럽지만 약간은 심심한 빵 맛을 까칠하지만 달콤하고 고소한 소보로가 채워 준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달달함과 심심함의 완벽한 하모니.

고작 천 원짜리 빵에서 느껴진다고 믿을 수 없는 완벽한 조화이다.

명장 아저씨의 소보로빵이 특히 맛있는 이유도 그 조화에서 비롯된다.

김명장 베이커리의 소보로빵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보로가 많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의 빵은 역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심심하다.

그 과하다 싶은 두 가지가 만나서 더 깊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언제나 끝과 끝이 만났을 때 그 맛과 풍미는 극대화되는 법이니까.

한 입 한 입 베어 무는 내내 행복감은 늘어만 간다.

한 입 한 입 사라지는 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이대로 소보로빵만 평생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 앞에는 웬 빵봉지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많이도 먹었구나…….

오늘 점심은 가히 빵의 향연이었다.

아름다웠다.

명장 아저씨가 준비해 준 빵 파티는.

그런데…… 이 빵의 향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 * *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 중요하듯 선우네 백반 식구들에게도 점심시간은 정말 소중했다.

밥집을 하니까 밥 냄새만 맡아도 질리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맛있는 밥과 반찬 냄새를 계속해서 맡고 있으니 그걸 먹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더 커져갔다.

그러니 두 시 반만 되면 그 배고픔과 허기짐은 극대화된다.

진민호는 내심 불만이 있었다.

이렇듯 소중한 점심시간에 다 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전부 빵만 먹고 있다.

진민호는 이철민보다도 더 극성 ‘밥파’.

그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도 입에 잘 대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밥 대신 빵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밥을 다 먹고 빵을 먹는 것도 이해를 못 하는 그였으니까.

게다가, 유일한 동맹군이라 믿어 왔던 이철민 사장 또한 치아바타인가 뭔가 하는 희멀건한 빵을 먹으며 웃고 있다.

하…… 이거 참 대략 난감하네.

나 혼자서라도 밥을 먹어야 되나?

그러기엔 또 사람들의 저 즐거운 분위기를 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

나는 어느 순간부터 민호 삼촌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빵의 향연을 거의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니지.

하여간, 사람이 아닌 아귀만 빼고 말이다.

반면, 평소에 식성 좋고 음식 가리지 않는 민호 삼촌은 빵 한 봉지를 들고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그제야 평소 민호 삼촌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났다.

-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입니다, 밥심! 삼시 세끼 이 쌀밥을 먹어야 힘이 나는 거거든요.

그랬구나.

순미 이모처럼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아버지나 민호 삼촌처럼 빵을 밥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나마 아버지는 치아바타로 시작해서 빵에 맛을 들인 것 같지만, 민호 삼촌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평소의 그 고지식하고, 우직한 성품이 식성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민호 삼촌은 결코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건 ‘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이야기.

빵을 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는 아무리 많은 빵을 먹어도 헛헛함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밥을 먹을 분위기는 아니고…….

가만히 생각을 하던 나에게 ‘크로켓’이 눈에 들어왔다.

일명 ‘고로케’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불리는 이 빵은 안에 이런저런 재료를 넣고, 튀겨서 만든 빵이다.

돈까스의 겉면 같은 빵과 그 안의 속 재료들이 어우러져서 중독성 있는 맛을 만들어 낸다.

벌써 나도 두 개의 크로켓을 해치우고 난 다음이다.

크로켓은 속 재료를 어떤 걸 넣느냐에 따라 그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오늘 민호 삼촌에게 밥맛이 나는 빵을 만들어 줄 참이다.

물론, 이건 아주아주 임시 방편이긴 하지만.

“아저씨. 저 크로켓 좀 제가 써도 돼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크로켓을 먹는 게 아니라, 쓴다고?”

“네. 좀 쓸 데가 있어서요.”

“그래, 뭐 나야 상관없지. 어차피 이 빵 전부 다 네게 주려고 만들어 온 거니까.”

“오케이. 감사합니다.”

혜승이에게서 크로켓을 뺏듯이 들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크로켓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혜승이까지 같이 달고 들어왔다.

어차피 이 녀석이 좀 해 줄 일이 있다.

“너 충분히 먹었지? 이제 일 좀 하자.”

“%$##$(*&(?!”

혜승이가 입에 빵을 가득 머금은 채로 흥분해서 소리친다.

“무슨 소리냐고? 아직 한참 더 먹어야 된다고? 알았어. 나랑 같이 이거 만들면, 새로운 크로켓 맛을 보게 해 줄게.”

“%#^%$*&!!!”

“신난다고, 알겠어. 그럼 어서 일하자.”

“(&*)5$!!”

“자, 그럼 먼저 칼을 쥐고, 나 따라해.”

우선, 크로켓의 반을 갈랐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다 긁어 냈다.

혜승이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가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 했다.

이제 크로켓은 내용물을 제외하고 빵만 남은 상태가 되었다.

다음은 속이 비어 버린 크로켓을 채워 줄 속을 다시 만들 차례이다.

먼저 당면을 물에 살짝 불려 놓고.

양파를 꺼내 다진다.

다음은 슬라이스햄, 햄 역시 양파와 같은 크기로 다진다.

그리고, 대망의 메인 재료.

잘 숙성된 묵은 김치.

채소와 고기가 들어가는 일반 크로켓과는 다르게 지금 만들 크로켓의 메인 재료는 바로 김치이다.

이름하여 ‘김치 크로켓.’

삼시 세끼 밥과 김치를 먹어야 하는 민호 삼촌을 위한 특별한 빵이다.

물에 불려 자른 당면과 김치, 양파를 넣고 프라이팬에 볶아 준다.

이때 간장을 살짝 넣어 같이 볶아 준다.

양파의 숨이 죽기 시작하면, 다져 놓은 햄도 같이 볶아 준다.

그렇게 볶다 보면 당면이 슬슬 프라이팬에 눌어붙는 게 느껴진다.

바로 그것이 이 크로켓의 포인트이다.

삼겹살을 먹고 나면 한국 사람들은 꼭 볶음밥을 먹는다.

그리고, 그 볶음밥을 또 일부러 눌어붙게 만들어서 먹는다.

살짝 눌어붙은 당면의 맛은 바로 그 눌어붙은 볶음밥의 맛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잘 볶아진 속 재료를 다시 텅 비어 있는 크로켓에 채워 넣는다.

물론, 원래대로 했다면 다시 빵 반죽을 만들어서 속에 집어 넣고 기름에 튀겼어야 한다.

하지만, 점심시간은 끝나가고 민호 삼촌의 배는 말라 비틀어져 간다.

임시방편이나마 이렇게 해서 민호 삼촌에게 빵 맛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

일명 K-고로케, 김치 크로켓의 맛을.

* * *

“어머, 이게 뭐야?”

김치 크로켓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역시 빵순이 순미 이모였다.

“음…… 김치볶음 냄새가 나는데?”

고종숙 여사는 크로켓의 속 재료를 냄새만으로 간파해 냈다.

“와…… 완전 맛있게 생겼다…….”

오늘부터 빵과 1일 차가 된 아버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민호 삼촌의 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한식 중 그가 가장 사랑하는 반찬은 바로 김치.

잘 숙성된 묵은지로 볶아 낸 김치볶음 냄새에 반응을 안 할 리가 없다.

밥이 아니고 빵이라 망설이는 그에게 김치 크로켓을 슬쩍 내밀었다.

“삼촌. 한번 드셔 보세요. 삼촌을 위해 만든 빵이니까.”

“네? 저, 저를 위해서요?”

“네. 삼촌을 위해서요.”

민호 삼촌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크로켓을 받아들었다.

나는 어서 맛을 보라는 듯이 고갯짓을 했다.

민호 삼촌은 입보다 먼저 코를 내밀었다.

냄새를 맡는 그의 표정이 나쁘지 않다.

한참 코를 벌름거리던 그가 드디어 입으로 크로켓을 가져갔다.

바스락.

아직 바삭함을 유지하고 있던 크로켓의 겉면에서 맛있는 소리가 낫다.

그리고, 진민호의 입안으로 밀려 오는 익숙한 맛들.

선우네 백반의 김치에서 느껴지는 묵은지의 맛과 잘 볶아진 양파에서 느껴지는 달큰함.

그리고, 마치 만두소를 먹는 듯 재료들 사이사이에서 씹히는 당면의 맛.

이건 마치…….

‘김치만두 같다.’

어쩌면…….

‘김치볶음밥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건.

완전 맛있다.

진민호의 손과 입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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