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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104화 (104/110)

#104화 빵 대신 밥? 밥 대신 빵? (1)

요즘 김명장은 하루하루가 즐겁다.

몇 달 전 선우와 얘기를 나눈 이후로 절치부심하여 마음을 고쳐먹었고, 요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빵들을 내놓았다.

크로핀, 뺑오쇼콜라, 별이 빛나는 밤식빵, 마카롱, 립 파이 등등.

내놓는 제품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 어머…… 마카롱 이거 통통한 거 봐. 진짜 맛있겠다.

- 아저씨. 별이 빛나는 밤식빵 주세요!

- 크로핀 다 나갔어요?

- 엄마, 나 저거 사 줘. 나뭇잎 모양 과자!

떠나갔던 단골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다시 김명장 베이커리의 빵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소문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정신 없이 바쁜 와중에 몇 번 눈을 깜박이다 보니 어느새 김명장 베이커리는 인터넷상에서 꽤 유명세를 떨치는 빵집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반전 중의 반전이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폐업을 고려하던 김명장이 다시 이렇게 일어선 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흐뭇했고, 흐뭇한 가운데에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운 짐을 느꼈다.

그 짐은 바로…… 선우에 대한 거였다.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했네.’

사실 김명장 베이커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선우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해 주세요.

그 한마디가 잠자고 있던 김명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신의 빵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사라지게 했다.

빵이 잘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을 손님들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초심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 내가 만든 빵을 먹는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을 피우겠다.

이게 김명장이 빵을 만드는 이유였다.

어느 순간 잊고 있었던…… 그가 빵을 처음 만들게 된 시작점이었다.

더 늦기 전에…… 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한다.

김명장은 선우를 위해 만든 빵을 가득 손에 들고 가게 문을 나섰다.

* * *

“이모, 또 밥 안 먹고 빵 드세요?”

“응. 나는 빵이 그렇게 좋더라.”

“재동 엄마는 백반집에서 일하면서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하면 어떻게 해?”

어머니가 농담조로 한마디 던졌다.

“그러게 말이야. 난 진짜 밥보다 빵이야. 빵이랑 김치도 같이 먹을 수 있어.”

“오오…… 그건 좀…….”

진민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민호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정석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빵에 김치라니…… 그가 결코 좋아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조합이다.

“에이…… 그래도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지. 재동 엄마. 그렇게 빵 좋아하다가 나중에 당뇨병 걸려요.”

듣고 있던 아버지의 말에 순미 이모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밥이 빵보다 낫다는 건 편견입니다.”

“오, 아저씨!”

김명장 베이커리의 김명장 아저씨였다.

가게 문 앞에서 햇살을 받고 선 아저씨는 촉촉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몇 년 만에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제대 군인처럼.

“내가 너무 늦게 왔지? 미안하다.”

음…….

감정선이 나와는 왜 이렇게 다르지?

아저씨의 고양된 감정을 느끼며 나는 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쨌든…… 요새 바빠서 통 얼굴을 못 봤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나도 반갑기는 했다.

아저씨의 양손에 들려 있는 두툼한 빵 봉지도 반갑고.

* * *

“아…… 그래서 선우를 그런 표정으로 바라본 거구나?”

고종숙 여사가 ‘별이 빛나는 밤식빵’을 길게 씹으며 말했다.

“네…… 가게가 잘되는 동안 늘 마음의 짐이었거든요. 선우한테 제대로 된 인사 한 번 못 했다는 게…….”

“에이…… 같은 시장 사람끼리 서로 돕고 돕는 거지. 하하하. 명장이 네 마음은 선우가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말 안 해도. 그럼, 그럼. 우리 선우가 어떤 사람인데.”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신지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계셨다.

요리 솜씨로 늘 놀라움을 주는 것도 모자라 빵을 만드는 데까지 내가 도움을 줬다고 하니 아버지의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에 자식이 능력 있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물론,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누구를 더 닮았느냐’하는 해묵은 논쟁은 오늘도 계속되었지만.

두 분의 영양가 없는 논쟁은 알아서 하시도록 두고…… 난 명장 아저씨가 가져온 빵에 몸과 마음을 집중했다.

“치아바타도 시작하신 거예요?”

“응, 맞아. 치아바타 좋아하니?”

아저씨는 만들어 온 치아바타를 내 앞으로 쓱 밀어주셨다.

“음…… 저도 좋아하지만…… 순미 이모에게 딱 맞을 것 같아서.”

나는 아저씨가 밀어준 치아바타를 순미 이모에게 다시 밀어주었다.

“어머, 어머. 이거 나 주는 거야? 근데…… 이 빵 이름이 뭐라고? 난생 처음 보는 빵이라서…….”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 이모지만, 치아바타는 아마 처음 접했을 거다.

하긴, 이 빵이 아직까지 그렇게 흔한 빵은 아니다.

치아바타는 이탈리아어로 ‘납작한 슬리퍼’라는 뜻의 빵.

그 이름처럼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밀가루, 올리브유, 소금, 물만으로 만드는 빵인데, 팔이 빠질 정도로 오랜 시간의 손 반죽이 필요한 빵이다.

그야말로 제빵사의 팔근육을 갈아 넣어 만드는 빵.

갈아 넣은 제빵사의 근력은 쫄깃쫄깃한 빵의 식감으로 재현된다.

들어가는 재료에서 보듯이 치아바타는 식사 대용으로 먹어도 충분히 좋은 빵이다.

당분이나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건강에도 나쁘지 않고.

치아바타 반죽에 올리브를 넣어 중간중간 씹히는 맛을 살려도 좋고, 반을 갈라 채소, 치즈, 햄 등을 넣어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음…… 이거 진짜 쫄깃쫄깃하네?”

치아바타를 한입 베어 먹은 이모가 눈을 빛냈다.

“식감 괜찮죠?”

“응. 뭐랄까. 맛은 식빵 맛인데 마치 식빵이랑 껌이랑 같이 씹는 기분이랄까?”

껌이라…… 식빵과 껌이 뭔가 어울리지는 않아 보이지만, 꽤 참신한 표현이었다.

실제로 치아바타는 쫄깃쫄깃하고 질긴 듯한 식감이 특징인 빵이니까.

“그 빵은 밥 대신 드셔도 충분합니다. 어떤 첨가제도 들어가 있지 않거든요. 천연 효모종과 제 팔근육만으로 만든 빵이니까요.”

“밥 대신? 에이…… 빵은 밥 대신 먹는 거 아니라니까.”

“에이…… 그건 편견이라니까요, 형님? 한번 드셔 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속도 든든하고.”

“음…… 그래. 한번 먹어나 보자.”

아버지는 컷팅이 되어 있는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음…… 일단 촉감부터가 다르네?’

이철민은 지금껏 그가 보아 온 빵에서는 느낄 수 없는 촉감을 치아바타에서 느꼈다.

뭐랄까?

바게트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는 더 매끈한 느낌.

그러면서도 뭔가 찰진 빵의 질감이 전해져 왔다.

입으로 집어넣기 전에 먼저 샌드위치의 단면도 쓱 훑어보았다.

토마토, 양상추, 그리고 하얗고 커다란 모짜렐라 치즈까지.

붉고, 푸르고, 하얀 색깔이 그저 보기에도 ‘건강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

건강한 건 인정한다.

이런저런 첨가물도 안 들어간 빵에 채소가 많이 들어간 샌드위치는 당연히 건강하겠지.

하지만, 밥 대신 빵이 불가능한 이유는 건강에만 있지 않다.

바로 고소하고 달달한 흰밥과 짭짜름하고 칼칼한 반찬들의 조화에서 오는 그 맛.

그 맛을 감히 치아바타인가 치타인가 뭔가 따위가 어떻게 따라온다는 말인가.

의구심을 가득 안은 채 이철민은 입을 벌렸다.

그래도 이왕 먹는 거 한입 크게 베어 먹어야지.

와앙.

치아바타의 약간은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이에 힘을 주고 한입 베어 물자, 거친 겉면을 지나 부드러운 빵의 안쪽 면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내 들어오는 토마토의 새콤한 즙과 모짜렐라 치즈의 풍성하고도 고소한 맛, 양상추의 신선한 느낌까지.

그리고…… 이 독특한 향은 뭐지?

마치 한 번도 안 가 본 지중해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알 수 없는 향.

과히 나쁘지 않는 이 향을 내뿜는 소스가 은은하게 맛을 더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재료들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강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건 치아바타 빵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다.

아까 껌을 씹는 것 같다고 했나?

비슷하다.

비슷한데 또 다르다.

마치 씹어 삼킬 수 있는 부드러운 껌을 씹는다고 할까.

뭐야, 이거…….

마, 맛있잖아.

“형님, 어때요? 맛 괜찮죠?”

아버지의 표정을 확인한 명장 아저씨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어떤 순간에는 죽어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런 순간 중의 하나가 바로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우리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간다.

눈빛은 환해지고, 표정은 밝아진다.

딱 지금의 아버지처럼.

“맛있네 이거? 아니…… 뭐 별거 들어 있지도 않는 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그리고, 이 향긋한 소스는 뭐야?”

“아, 그건 바질 페스토입니다. 바질은 음…… 우리나라의 깻잎 같은 향 채소라고 보시면 되요.”

오- 하고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는 샌드위치 시식을 이어 나갔다.

치아바타 빵같이 뭔가 밍밍한 것 같지만, 은은한 맛이 있는 빵들이 아주 사람 미치게 하는 거다.

이런 빵들은 한번 맛을 들이면 도무지 헤어나기가 힘들다.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

어쩌면 아버지는 당분간 ‘밥 대신 빵’을 드실 수도 있겠다.

치아바타 다음으로 내 눈길을 사로잡은 빵은 바로 마카롱.

음…… 이걸 빵이라고 해야 하나, 과자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흔히 프랑스의 음식이라고 알고 있는 이 마카롱은 사실 이탈리아가 그 원조다.

저기 아버지가 열심히 뜯고 계신 치아바타처럼.

물론, 원조의 마카롱을 지금의 햄버거 모양 마카롱으로 만든 건 프랑스가 맞다.

그러니 사람들은 마카롱의 원조를 프랑스로 알고 있는 거고.

명장 아저씨의 마카롱을 보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라움의 포인트는 바로 마카롱의 굵기.

사실 일반적인 마카롱은 샌드 쿠키처럼 얇다.

마카롱 안에 들어가는 크림은 통상 햄버거 번 같은 마카롱 쿠키를 접착시켜주는 역할을 하도록 얇게 발라져 있으니까.

그리고, 이것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기본 마카롱의 모습이다.

하지만…… 명장 아저씨의 마카롱은 앞으로 수 년 후에나 유행을 탈, 마카롱의 원조인 유럽에서는 나타나지도 않을 바로 그 마카롱이었다.

내용물이 맥X날드의 빅X처럼 두툼한 그 마카롱.

이름하여 ‘뚱카롱’.

지난번 별이 빛나는 밤식빵에서도 느꼈지만, 이 명장 아저씨의 감각은 정말 놀랍다.

언제나 천재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처럼, 명장 아저씨는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빤히 마카롱을 쳐다보는 내게 명장 아저씨가 말했다.

“모양이 좀 독특하지? 마카롱을 만들다 보니까 내용물이 좀 부실한 것 같아서 크림을 한번 푸짐하게 넣어 봤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일 것 같아서.”

“네…… 정말 잘하셨어요.”

뭐, 잘했다는 칭찬밖에 할 게 없다.

미래에서 온 나지만, 정말 이 아저씨에게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을 것 같다.

몇 달 전 내가 한마디 던져 준 것만으로 아저씨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왔으니까.

뭐, 나로서는 방향만 살짝 바꿔 준 것뿐이고.

자꾸 전통만 고집하는 아저씨에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빵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밖에 없다.

그나저나, 더 이상 못 참겠다.

바닐라 크림이 잔뜩 들어가 있는 저 뚱카롱.

녀석이 요염한 향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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