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102화 (102/110)

#102화 켄터키 할아버지의 빠, 빨간 맛 (1)

켄터키 할아버지, 영진대학교 김대준 총장의 취임 후 행보는 가히 파격적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겠다며 단과대의 학생회장들과 직접 면담을 했다.

개인 수행비서를 없애고, 총장실도 학과 교수실 수준으로 크기를 줄였다.

교수 출신이었던 그는 자신은 여전히 교수라며, 직접 학과 강의를 맡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을 샀다.

어디서나 기득권은 자신들의 권한이 점차 확대되기를 원한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말에 굴복하기를 원하고, 교수실의 크기는 더 커지기를 원한다.

등록금을 올려서라도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김대준 총장의 행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총장도 손바닥만 한 집무실을 쓰는데 어떻게 자신의 교수실을 키우자고 주장하겠는가.

총장이 스스로 연봉을 동결한다는데 어떻게 연봉을 올리자고 말하겠는가.

총장이 학생들과 자신은 동등하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교수의 권위로 학생들을 제압하려고 하겠는가.

기득권인 교수들과는 달리 학생들은 이런 김대준 총장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켄터키 할아버지라는 애칭이 학생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고, 허. 허. 허. 하고 웃는 그의 웃음을 학생들이 따라하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 캠퍼스를 누비는 김대준 총장을 본 학생들은 친한 친구에게 인사를 하듯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허. 허. 허. 하는 웃음소리로 김대준 총장은 학생들의 인사에 화답했다.

“휴…… 회의는 언제나 힘들어.”

김대준 총장은 방금 교수회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요즘 들어 교수들이 자신에게 적대적인 게 느껴졌다.

방금 전에도 학생들을 위한 복지시설 확충 건에 대해 핏대를 세우며 몇몇 교수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교수들뿐만이 아니다.

각 행정부서의 장을 맡고 있는 직원들도 슬슬 김대준과는 척을 지려 하고 있다.

막말로 김대준이 ‘총장’이라는 계급장만 떼면 개떼처럼 물려고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서일까.

갑자기…… 확…… 매운 게 당긴다.

김대준은 전화기를 들었다.

내선번호를 누르자 신호가 가고, 이내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 네, 총장님.

“허. 허. 허. 학과장님, 식사하셨나요?”

- 아직입니다.

“허. 허. 허. 그럼 저랑 식사나 하러 가시죠.”

- 네, 알겠습니다. 선우네 백반으로 가실까요?

“음…….”

김대준은 순간 고민했다.

선우네는 검증이 완료된 맛집.

언제 어느 날 가도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이지 정신을 확 들게 할 매운 음식이 당긴다.

고민을 마친 김대준이 입을 열었다.

“선우네도 좋긴 한데…… 오늘은 매운 음식이 당기는군요. 허. 허. 허. 학교 근처에 매운 거 파는 데 없나요? 가령…… 낙지볶음이라든지…….”

- 어…… 마침 오늘 선우네 백반 메뉴가 낙지덮밥입니다.

“아, 그런가요? 허. 허. 허. 허. 허.”

웃음소리 다섯 번.

만족했을 때만 나오는 김대준의 시그니처 웃음이었다.

* * *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을 열로 다스린다는 뜻으로, 흔히 여름철에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더위를 날린다는 의미로 쓰인다.

덥다고 해서 시원한 음식, 차가운 음식만 먹다 보면 어느 순간 속이 허해지는 걸 느낀다.

그럴 때는 따뜻한 음식으로 몸의 균형을 찾아 주는 것이 좋다.

오늘은 단순히 따뜻한 음식이 아니라 몸이 뜨거워지고 열이 오를 만한 ‘핫(hot)’한 음식을 손님들에게 대접할 생각이다.

바로 매콤한 낙지덮밥.

머리에 열이 오를 정도로 매콤한 음식을 먹고 땀을 빼내면, 그건 또 나름대로 꽤 개운한 시간이 될 테니까.

맛있는 낙지덮밥을 만든다는 건 결국 맛있는 낙지볶음을 만든다는 말과 같다.

낙지볶음을 밥 위에 얹어 먹는 게 바로 낙지덮밥이니까.

낙지볶음은 깔끔하게 낙지를 손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밀가루를 낙지에 골고루 묻혀 주세요.”

“이렇게요?”

민호 삼촌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를 보며 묻는다.

“아니요. 완전히 구석구석 묻혀 주세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근데…… 낙지 손질할 때 밀가루는 왜 넣는 겁니까?”

“아…… 밀가루가 흡착력이 강해요. 그래서 이렇게 밀가루를 묻히고 5분 정도 놓아 두면 이물질이 밀가루에 달라붙습니다.”

“아…….”

5분 후.

밀가루를 묻혀 놓은 낙지의 대가리를 잡고, 빨판에 묻은 밀가루를 강하게 훑어 냈다.

“이렇게 강하게 훑어 내면, 낙지에 붙어 있던 밀가루와 이물질이 한꺼번에 빠집니다.”

“아…….”

이물질을 제거한 낙지는 깨끗하게 씻어 2차 손질 과정을 거친다.

내장을 제거하고, 눈과 입도 제거한 낙지를 다시 깨끗하게 헹궈 준다.

민호 삼촌이 낙지 손질 작업을 반복하는 사이 나는 채소를 준비한다.

깻잎, 당근, 대파, 청양고추 등의 채소를 씹는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썰어 준다.

손질한 낙지는 찜기에 넣어 살짝 쪄 준다.

물에 넣어 데치지 않고 찌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에 넣고 낙지를 찌는 순간 그 물 속에 낙지의 맛있는 진액이 다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

데치는 대신 쪄 줌으로써 낙지의 맛있는 진액을 보존하는 거다.

살짝 쪄 준 낙지는 한쪽에 잘 놓아두고.

이제 양념장을 준비할 시간이다.

양념장의 핵심 재료는 바로 고추기름이다.

일반 기름 대신 이 고추기름을 사용하면, 감칠맛과 깊은 맛이 한층 배가된다.

고추기름, 간장, 설탕,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등을 팬에 넣고 가열한다.

양념장이 끓기 시작하면 준비한 채소를 먼저 넣는다.

대파, 청양고추, 양파, 당근 등의 채소를 먼저 넣어 익혀 줘야 한다.

낙지는 한 번 찌기도 했지만, 워낙에 금방 익기 때문에 채소와 같이 넣어 볶아 주면 금방 질겨지기 쉽다.

여기서 매운맛을 추가하고 싶을 때는 청양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더 추가하면 된다.

채소가 어느 정도 익으면 낙지를 넣고 같이 볶아 주는데, 이때 감자전분을 한 스푼 정도 추가해 준다.

감자전분이 들어가면 볶는 과정에서 국물이 생기지 않아, 양념의 맛을 잘 지켜 낼 수 있다.

낙지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휘익- 한 번 더 볶아 주면 완성.

<오늘의 메뉴>

- 매콤 낙지덮밥(매운맛 선택 가능, 일반/매운맛/아주 매운맛/미치도록 매운맛)

- 콩나물 무침

- 계란말이

- 동치미 물김치

* * *

“어서 오세요.”

“허. 허. 허.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보는 켄터키 할아버지, 김대준 총장이다.

“그간 바쁘셨나 봐요?”

“허. 허. 허. 아들 녀석이랑 손주 녀석이랑 손잡고 여행 좀 다녀왔습니다. 방학을 맞이해서요. 허. 허. 허. 허. 허.”

오랜만에 듣는 켄터키 할아버지의 너털웃음.

그 웃음소리에서 따뜻하면서도 호탕한 그의 기질이 느껴진다.

그에게는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타고난 외모가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하지만, 중년이 넘어가면 그 사람의 인성이나 품성이 그 사람의 외모를 결정짓는다.

김대준 총장의 얼굴에서는 푸근하면서도 강인한 그의 품성이 느껴진다.

부드러움과 강함을 모두 내포한 인상.

그런 그의 인상이 기분이 좋은 이유는 그가 영진대학교의 학생들을 위한 좋은 정책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일 거다.

그런 그의 행동이 쌓여 이렇게 얼굴로 드러난 걸 테지.

잠시 후.

김대준과 김흥범이 앉은 테이블에 낙지덮밥이 배달됐다.

덮밥을 배달한 유혜승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거 진짜 미치도록 맵거든요. 혹시라도 못 드시겠으면 말씀하세요. 저희 사장님이 언제든지 안 맵게 새로 해 주신다고 하셨어요.”

“허. 허. 허. 배려 감사해요. 궁금하군요. 과연 얼마나 매울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흥범이 걱정스러운 투로 물었다.

“총장님,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그럼요. 학과장님이야말로 괜찮겠습니까?”

“예?”

김흥범은 김대준의 질문의 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총장님이 아니라…… 나더러 괜찮냐고요?

“허. 허. 허. 매운 낙지볶음을 먹으러 와서 일반 낙지볶음을 드시니까 말입니다. 너무 안 매워서 괜찮겠냐는 겁니다. 허. 허. 허.”

“아…….”

이거 은근히 놀리시는 건가?

김흥범은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

그건 음식 칼럼니스트인 그에게는 때때로 약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매운 음식만 들어가면 머리부터 땀이 샘솟듯이 솟아나 온 얼굴로 흘러내리는걸.

어쨌든, 두 사람의 식사는 시작됐다.

서빙을 마치고 주방으로 들어온 혜승이가 말했다.

“오빠. 오늘도 허. 허. 허. 허. 허. 다섯 번의 웃음소리가 들려올까요?”

“으음…… 글쎄다.”

평소라면 모르겠지만, 오늘은 나도 김대준 총장을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미치도록 매운맛’은 사실 상징적인 의미에서 만들어 둔 맛이었다.

청양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거의 치사량만큼 넣었으니까.

반은 재미로 만든 맵기 단계였다는 말이다.

생각은 했다.

영진대학교의 매운 거 좋아하는 단골들이 한 번쯤 시도해 볼 수는 있겠다고.

그런데, 최초의 시도자가 켄터키 할아버지일 줄은 몰랐다.

김대준 총장은 외모로 보나, 나이로 보나 매운 것을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니까.

나이가 어릴수록, 그리고 성별이 여자일수록 매운맛을 좋아한다는 건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내 경험에서 체득한 결론이다.

“우리 내기할까요?”

“내기?”

“내기?!”

내기라는 말에 김치를 포장하던 어머니가 달려왔다.

나와의 내기에서 몇 번 진 이후로 어머니는 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나와의 내기에서 이기고 싶어 안달이 나 계셨다.

어디서 소리를 들었는지 아버지와 민호 삼촌, 순미 이모도 내기의 대열에 합류했다.

“오…… 좋아요. 역시 내기는 사람이 많아야 제맛이니까.”

“곧 손님들 몰려들 시간이니까 빨리 정하자. 일단, 내기의 종목은 뭐야?”

“저기 켄터키 할아버지가 오늘 ‘허. 허. 허. 허. 허.’ 하고 다섯 번 웃음을 터뜨릴지 아닐지 맞추는 거요”

“오…… 그러니까 저 미치도록 매운 낙지덮밥을 드시고 만족하실지 아닐지 맞추자는 거지?”

“정답입니다.”

“오케이. 그럼 뭘 걸고 할 건데?”

“음…… 이거 어때요? 캠핑 가서 진 쪽이 모든 음식을 도맡아서 하기.”

여름 휴가를 맞아 선우네 백반 식구들은 다같이 캠핑을 가기로 했다.

내기를 해서 그때 모든 음식을 도맡아할 사람을 정하자는 얘기.

“오, 좋은데? 자, 빨리 시작하자. 하나 둘 셋 해서 손바닥이 하늘을 보면 김대준 총장님이 만족하신 거에 거는 거고, 손등이 하늘을 보면 총장님이 불만족하시는 거에 거는 거야. 오케이?”

“좋아요.”

하나, 둘, 셋!

뒤집어라, 엎어라!

쫄려도 편 먹기!

순식간에 내기의 결과가 나왔다.

손바닥을 보인 쪽이 셋.

손등을 보인 쪽이 셋.

공교롭게도 김대준 총장의 ‘만족’에 건 쪽은 모두 여성, ‘불만족’에 건 쪽은 나를 포함해 모두 남성이었다.

저 세 여성분의 생각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음식을 만든 나는 저 정도의 매운맛은 김대준 총장님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어쨌든 재미있게 됐다.

과연 오늘 우리는 허. 허. 허. 허. 허.

켄터키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을 들을 수 있을까?

마침 덮밥을 다 비빈 켄터키 할아버지가 첫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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