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반계탕과 합석 (1)
삼색이에게 보양식을 먹였으니, 이제 손님들에게도 보양식을 대접할 차례이다.
마침 삼복 더위의 그 첫 번째 관문인 초복이 찾아왔다.
<오늘의 ‘초복’ 메뉴>
- 반계탕
- 각종 김치
삼계탕 대신 닭을 반만 넣고 끓이는 반계탕을 준비했다.
닭을 한 마리씩 넣고 삼계탕으로 하게 되면, 수지 타산이 도저히 맞지 않으니까.
아무리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행복한 장사를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장사는 장사이다.
남는 게 없으면 가게 운영을 할 수 없잖아.
대신, 닭의 크기는 조금 큰 걸 사용하기로 했다.
반계탕이지만, 최대한 충분한 양을 드실 수 있도록.
반계탕의 첫 과정이자 핵심은 바로 닭 손질이다.
나와 민호 삼촌, 그리고 혜승이의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생닭.
“이거 한 백 마리는 되겠는데요?”
“정확히 백오십 마리.”
“흐억…….”
“시간은 없고 닭은 많으니까…… 빨리 시작하자. 자, 손질 방법 알려 드릴게요.”
먼저 양 날개의 끝에 달린 뼈 부위를 제거한다.
이 부위는 특별히 먹을 게 없을뿐더러 괜히 뾰족하고 기름기만 많아서 별 쓸모가 없는 부위이다.
다음으로는 기름기가 뭉쳐 있는 꽁지 부분을 제거해 준다.
이 부위 역시 끓였을 때 너무 많은 기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제거하는 편이 좋다.
다음으로 닭을 반으로 가른다.
이때 민호 삼촌이 애정하는 중식도가 큰 힘을 쓰게 될 거다.
반으로 가른 닭 안쪽에는 내장에 붙은 찌꺼기들이 많이 붙어 있다.
이 찌꺼기들은 여러 번 물에 씻어 깔끔하게 제거해 준다.
이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잡냄새가 나고, 탁한 국물의 원인이 된다.
붉은 내장 찌꺼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닦아 주면 닭 손질은 끝난다.
“자, 잘 보셨죠. 이제 시작하시죠.”
두 사람에게 닭 손질을 맡겨 두고, 육수를 준비한다.
보양을 위한 육수이니만큼 황기, 감초, 인삼 등의 한약재는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한약재만 넣어서는 깊은 감칠맛을 낼 수 없다.
그래서 들어가는 것이 바로 다시마, 그리고 전복 껍데기이다.
큰 냄비에 전복 껍데기를 넣는 모습을 본 순미 이모가 묻는다
“반계탕 하는데 전복 껍데기도 넣는 거야?”
“네. 이게 들어가야 맛이 시원해지고, 잡냄새도 완전히 잡히거든요.”
“오…… 그래? 신기하다.”
나도 처음엔 신기했다.
부산에서 반계탕만 40년 넘게 하신 달인에게 처음 이 비법을 배웠을 때는.
그분은 초벌을 해도 미세하게 느껴지는 닭의 잡내를 잡기 위해 수많은 재료를 써 봤다고 했다.
오랜 실험과 연구 끝에 알게 된 재료가 바로 이 전복 껍데기였다.
그러고 보면 전복은 참 버릴 게 없다.
살은 회로도 먹고 삶아도 먹고 구워도 먹으며, 내장으로는 전복죽을 해 먹으면 기가 막히다.
아, 물론 내장을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다.
껍데기로는 이렇게 육수까지 해 먹으니…… 참 뽑아 먹을 만큼 다 뽑아 먹는 것 같다.
전복 입장에서는 좀…… 잔인한가?
하여간…….
다시마, 전복 껍데기, 한약재와 함께 양파, 마늘 등을 넣고 물을 부어 준다.
여기에 삼촌과 혜승이가 열심히 손질한 닭을 넣고 약 한 시간 정도 끓여 주면 반계탕 육수가 만들어진다.
육수가 준비되면 닭고기는 별도의 그릇에 따로 빼두고, 주문과 동시에 고기와 육수를 담아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나간다.
뚝배기가 끓어오를 때 송송 썬 대파를 푸짐하게 올리면 오늘의 메뉴 반계탕 완성이다.
그런데…… 뭔가 좀 아쉽다.
“혜승아. 뭔가 좀 아쉽지 않니?”
뜨거운 닭고기 반 마리를 통째로 들어 뜯고 있는 혜승이에게 물었다.
“아, 아쉬브…… 하 뜨뜨…… 아쉽…… 으아…… 맛있다.”
뜨겁다면서 맛있다는 말은 정확하게 발음하네.
그런 혜승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대신 내 질문에 대답을 해 주신다.
“좀 아쉽긴 하다, 선우야. 원래 삼계탕이라고 하면…… 닭고기 배 속에 가득 들어 있는 그 찹쌀밥을 먹는 그 맛이 또 있는데…… 반계탕은 그렇게 할 수가 없으니…….”
“맞네, 맞아. 고기도 크고, 국물도 맛있고, 다양한 김치도 좋은데 역시 찹쌀밥이 없다는 건 좀 아쉽네.”
옆에서 순미 이모도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도 닭 다리를 뜯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계셨고.
그때 무슨 계시처럼 부산 반계탕 달인의 목소리가 번뜩 떠올랐다.
- 반계탕이 맛은 있는데 자꾸 뭔가가 아쉽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일단 공깃밥을 무한 리필로 제공했지. 사람들이 반계탕 국물에 밥을 말아서 맛있게 먹더라고. 근데…… 그래도 뭔가가 아쉽다는 거야. 삼계탕 안에 들어 있는 그 찹쌀밥…… 그걸 못 먹으니 아쉬웠던 거지. 그래서 나는…… 이걸 준비했어.
수저를 내려놓고 주방으로 움직였다.
찹쌀밥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품.
그 맛까지는 아니겠지만 최대한 그 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그것.
찜통에 쌀을 가득 붓고, 아까의 닭 육수를 부어 준 후 쪄 준다.
그사이 양파와 당근은 거의 다지듯이 잘게 썰어 준다.
한 번 쪄낸 쌀에 채소를 넣고 휘휘 저어가며 끓여 준다.
닭고기를 잘게 찢어 풍성하게 넣어 다시 한번 휘리릭 끓여 준다.
찹쌀밥을 훌륭하게 대체해 줄…… 닭죽 완성.
“자, 이걸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겁니다.”
닭죽을 한 그릇씩 퍼서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자 그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오…… 닭죽!”
“와, 이거네. 이거. 닭죽! 이거면 찹쌀밥이 생각 안 나겠는걸?”
“맞네요, 맞아. 반계탕 맛있게 먹고 마무리로 닭죽까지 먹으면 아주 든든하겠어요.”
“오빠. 닭죽 또 어디 있어요?”
벌써 그릇을 싹싹 비운 유혜승이 뭐에 홀린 듯 주방으로 들어갔다.
야…… 그거 오늘 장사할 거라고…….
* * *
<오늘의 메뉴>
- 반계탕 + 닭죽
- 각종 김치
*닭죽과 공깃밥은 무한 리필입니다.
복날엔 삼계탕.
이 문화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문화의 힘은 강력했다.
반계탕이라는 메뉴 때문인지 평소보다도 손님이 두 배는 많이 몰려오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우와. 뭔 놈의 반 개짜리 달구 새끼가 이렇게 크당가? 아니 이 샤프. 이렇게 장사혀서 어디 남겄어? 허허허허허.”
황씨 아저씨가 닭고기를 통째로 들고 크게 웃는다.
“종훈이 형. 그거 샤프 아니라던데요?”
“야는 또 뭔 소리여? 선우가 샤프가 아니라고? 이러코롬 한 마리만 한 반 마리로 반계탕을 만들어 주는디? 그리고 이 국물…… 뭔 마술을 부렸는지 시원하고 깔끔하면서도 진하고 깊은 이런 국물을 만들어 주는디? 그런 느그 아들 선우가 샤프가 아니라고잉?”
“아니…… 선우가 그게 아닌 게 아니라…… 샤프가 아니래요. 샤프가 아니라, 셰프래요. 셰. 프. 이! 셰! 프! 글씨 쓸 때 쓰는 그 샤프가 아니라.”
“셰, 셰프? 뭔 놈의 발음이 그렇게 어렵당가? 아이구 몰러. 하여간, 샤프든 시프든 셰푸든 간에 아무튼 맛난 요리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는 건 똑같은 거 아니여? 거 말만 통하면 됐지 뭘 그리 따진당가.”
아버지는 이모부에게서 전해 들은 말을 황씨 아저씨에게 전했지만, 아저씨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했다.
뭐, 아저씨 말도 맞다.
샤프든 셰프든 뭐든지 간에 뜻만 통하면 되는 거지.
초복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조금 멀리서 온 손님들도 눈에 띄었다.
“성진이 형! 오랜만이네요.”
성진비닐포장의 우성진 형이 오랜만에 가게에 놀러 왔다.
“근처에 납품할 게 있어서 들렀는데…… 와…… 손님 엄청 많네?”
“아, 오늘 초복이라서 그런가 봐요.”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거그 우성진 사장 아니여? 와따 반갑네잉. 여그 와 앉으쇼. 얼렁.”
황씨 아저씨의 목소리.
성진이 형은 애써 못 들은 척하면서 슬쩍 내게 눈짓을 보냈다.
이미 두 사람은 지난번에 한 번 합석을 한 사이였다.
과묵한 성진이 형은 말 많은 황씨 아저씨에게 적응하느라 꽤 힘들었을 테고.
다행히 철물점 장원국 아저씨가 성진이 형을 구해 줬다.
“이놈아. 거긴 내 자리잖어. 치사하게 혼자 와서 삼계탕 처묵고 있냐?”
“어허이. 뭐가 치사하다고 그러는겨, 시방. 배고프면 제깍제깍 와서 알아서 먹으면 되는 거제.”
두 분이 투덜대는 사이에 얼른 성진이 형을 빈자리로 안내했다.
뒤돌아서서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걸걸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 노유림 사장님…… 여긴 어쩐 일이에요?”
우리에게 신선한 배추와 채소를 제공해 주는 가락시장의 노유림 사장이다.
“사장님 가게 맛 점검하러 왔습니다. 후후. 농담이고요. 생각해 보니 한 번도 가게에 와 본 적이 없더라고요. 마침 근처에 일이 있던 차에…….”
“아…… 잘 오셨어요! 여기 앉으…….”
음. 빈자리가 없네?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성진이 형의 맞은편 자리가 눈에 띄었다.
지난번에도 황씨 아저씨와 합석을 시켜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형. 혹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형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났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가게에 올 때마다 합석을 하게 된 성진이 형이었다.
형, 미안.
닭고기 큰 걸로 줄게.
* * *
펄펄 끓는 반계탕 뚝배기 두 개가 테이블로 배달되었다.
왠지 어색한 마음에 서로 다른 곳만 쳐다보고 있던 우성진과 노유림의 시선이 동시에 뚝배기로 모였다.
“두 분, 맛있게 드세요. 젊은 사람끼리 얘기도 좀 나누시고요. 호호호.”
어머니가 넉살 좋은 웃음을 던지자, 두 사람의 얼굴에도 살짝 웃음기가 떠올랐다.
“맛있게 드세요.”
“네. 맛있게 드세요.”
우성진이나 노유림이나 이런 상황을 딱히 불편해할 사람들은 아니다.
두 사람 다 그 험한 시장에서 나름대로의 사업을 꾸려 가고 있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진상들도 대해 보고, 거친 시장 상인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나는 사이끼리 어색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지만…….
게다가 성진이 형은 워낙에 말이 없다.
특히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는
닭고기 뜯어먹는 소리와 후루룩 국물 먹는 소리만 들리던 테이블의 침묵을 깬 건 노유림이었다.
“다산시장에 계신다고요?”
“네.”
“아, 네…… 저는 채소 팔고 있어요. 가락시장에서. 다산시장에서 뭐 팔고 계세요?”
“비닐이요.”
“아…… 근데…… 혹시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저는 노유림이에요.”
“우성진입니다.”
단답형으로 이어지는 우성진의 대답에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몇 분여의 시간이 흐른 후, 이번에도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노유림이었다.
“반계탕인데, 닭 크기가 거의 한 마리 다 들어 있는 삼계탕 수준이네요.”
“그렇네요.”
다시 쩝쩝.
우성진의 입은 대화를 하는 데 쓰이기는 아깝다는 듯 닭고기를 찢고, 국물을 후루룩 먹는 본연의 임무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치…… 뭐야? 나만 자꾸 말 걸고…… 이럴 거면 합석을 하지 말자고 하던가.’
노유림은 괜히 민망해져서 살짝 기분이 상했다.
자신도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자꾸 말을 시켰던 건 아니다.
그냥 이 어색함을 좀 깨 버리고 싶었던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