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86화 (86/110)

#86화 삼색이를 위한 닭죽

고양이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 고양이 음식에 관한 주의사항들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건 소금 간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외에도 고양이가 먹지 말아야 할 음식들은 제외하고, 고양이 닭죽의 재료를 선별했다.

<‘삼색이만을 위한’ 오늘의 메뉴>

- 닭 다리살 현미 닭죽

보통 사람들은 고양이가 닭고기 부위 중 닭 가슴살을 가장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치킨을 앞에 둔 인간이 딱 두 개 있는 닭 다리에 먼저 눈이 가듯이 고양이도 풍미가 진한 닭 다리살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역시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게 없는 거다.

맛있는 건 누구에게나 맛있는 거지.

만드는 법이야 실로 간단했다.

양념을 하지 않고, 간도 안 맞춰도 되니 정말 어려울 건 없었다.

전기밥솥으로 만든 현미밥과 익힌 닭고기살, 약간의 당근을 한 냄비에 넣고 중불에 살살 끓여 준다.

그렇게 끓이다가 밥이 형태를 잃고 죽이 되면 손쉽게 오늘의 메뉴가 완성된다.

간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맛은 본다.

“으음…….”

아무 맛도 안 느껴진다.

조금 고소하긴 하지만…… 그것도 평소의 그 고소함은 아니다.

뭐랄까?

음식의 향은 그대로인데, 맛은 어디론가 빠져 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

“그게 야옹이 닭죽이에요?”

그때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유혜승이 등장했다.

“응. 근데 진짜 아무 맛도 안 나. 간을 안 했더니.”

“그래요? 저도 한번 먹어 봐도 돼요?”

“으응?”

벼룩의 간을 내먹어라.

이제 하다못해 새끼 고양이 간식을 빼먹겠다고?

“맛만 봐라.”

하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봐서 그냥 한 숟갈 떠 줬다.

“으음…….”

그걸 받아먹은 유혜승.

그런데 어째 내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

얼굴 표정을 보니…… 맛있어 하는 것 같다.

“이거 좋은데요. 심심하면서도 고소하고, 왠지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느낌.”

먹으면 먹을수록?

이 말에서 나는 저 가녀린 몸에서 지금 생성되고 있는 엄청난 식욕을 느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걸 먹고 싶다는 거지?

아기 고양이 주려고 만든 닭죽을?

에라이…… 빌어…….

“제가 설마…… 이걸 뺏어 먹겠어요? 요즘 들어서 저를 자꾸 무슨 괴물 보듯이 보시더라.”

응.

맞아.

너를 괴물 보듯이 보는 게 아니라, 나는 그냥 괴물을 보는 거니까.

괴물을 괴물 보듯이 보는 게 당연하지 않겠니?

유괴물의 탐욕스러운 눈빛을 피해 닭죽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삼색이는 어디론가 가 버린 듯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늦었나?”

하긴…… 벌써 한 시간은 넘게 지났으니 그사이에 어디론가 가 버리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릇에 살짝 남아 있는 온기와 함께 아쉬움이 밀려 왔다.

“혹시 모르니까…… 옥상에다 둬 볼까?”

삼색이는 집 주위를 영역으로 삼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언젠가는 이 근처로 돌아올 거고, 옥상에 있는 닭죽의 냄새를 맡고 올라갈 수도 있다.

고양이에게 3층 건물을 오르내리는 것쯤은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

정성스레 만든 닭죽을 옥상 한편에 두고 내려왔다.

* * *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장사를 마친 선우네 백반 식구들은 오늘 유난히 지쳐 보였다.

사실 음식 장사라는 게 여름이면 당연히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가정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력을 내뿜는 화구 앞에서 일하는 사람도, 쉴 새 없이 주방과 홀을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나르는 사람도 모두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을 소진하게 되니까.

나도 한껏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올라왔다.

이럴 때는 가게와 같은 건물에 집이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된다.

씻기도 귀찮을 정도로 지친 몸이었지만, 집보다 먼저 옥상으로 향한다.

과연 삼색이가 닭죽을 먹었을까?

기대감을 품고 옥상에 도착했는데…….

“오…….”

깨끗하게 비워진 닭죽 그릇을 보니 지친 와중에도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오늘 하루의 피로가 그 빈 그릇을 보는 순간 다 풀려 버리는 기분이었다.

닭죽이 담겨 있던 그릇은 정말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마치 막 설거지를 마친 것처럼.

“에옹. 에옹.”

최대한 비슷하게…… 삼색이의 소리를 따라 해 봤다.

옥상 어딘가에 삼색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에옹. 에옹. 삼색이 여기 있니? 어디에 있는 거야?”

그때 저쪽 구석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 꿈틀거리는 존재는 앞발을 길게 뻗더니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바닥까지 내려 몸을 늘렸다.

삼색이가 ‘고양이 자세’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고양이니까 고양이 자세를 하는 거겠지.

기지개를 켜는데 그치지 않고 녀석은 그대로 몸을 땅에 털썩 몸을 누였다.

그러더니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몸을 뒹굴뒹굴 굴렸다.

몸에 있는 체취를 바닥에 묻히려는 것처럼.

작은 몸으로 뒹굴거리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절로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이구, 아이구 잘한다. 아이 귀여워라.”

아까 고양이를 위한 요리를 찾아보다가 ‘고양이와 친해지는 법’이라는 게시글을 봤다.

고양이와 친해지는 그 첫 번째 방법은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 주기’였다.

사람도 낯선 사람과는 바로 친해질 수 없듯이 고양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갑자기 다가서지 말고 고양이가 사람을 파악할 수 있도록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삼색아. 이제 한 달이니까 내 얼굴 기억하지? 우리 충분히 익숙해졌잖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삼색이가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본다.

고양이와 친해지는 그 두 번째 방법.

자세를 낮추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기.

사람은 고양이에 비해 훨씬 크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사람을 굉장히 거대하게 느끼고, 따라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천천히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눈높이를 삼색이와 맞추려고 노력했다.

“삼색아. 이제 나 하나도 안 커 보이지?”

다음은 큰 소리 내지 않기.

고양이는 큰 소리에 매우 예민하다고 한다.

그러니 목소리는 최대한 부드럽게 해야 한다.

목소리 톤은 의외로 높은 게 좋다.

고양이의 경우 저음일 때는 분노나 불만, 위협 등의 감정을 나타내고 고음일 때는 만족이나 애교와 같은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그르릉’거리는 톤이 낮은 위협음임을 떠올리면 쉽다.

사람이 저음으로 중얼거리듯 말하면, 고양이는 그걸 위협의 메시지로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고양이와 대화할 때는 톤을 높이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대화해야 한다.

“아아. 도레미파솔. 솔. 솔.”

목소리 톤을 솔 음으로 맞춘 나는 다시 한번 삼색이를 불렀다.

“삼색아. 닭죽 맛있게 먹었니? 네가 맛있게 먹은 것 같아서 이 아저씨는 기분이 아주아주 좋단다!”

다음 방법은 간식으로 다가가기.

이건 내가 닭죽으로 이미 삼색이에게 썼던 방법이다.

삼색이도 알았을 거다.

내가 자기를 위해 맛있는 닭죽을 만들어 줬다는 걸.

고양이와 친해지는 대망의 마지막 방법.

바로, 코 인사 시도하기.

코 인사라는 건 사람의 코와 고양이의 코가 맞닿는 게 아니다.

고양이의 코와 사람의 손가락이 맞닿는 거다.

나는 삼색이가 자연스럽게 내 손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천천히 삼색이의 코 높이로 손을 뻗은 채 기다렸다.

삼색이는 천천히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경계하듯 주변을 살피면서,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그런 삼색이를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자면…… 아마도 조금…… 아니 많이 웃길 거다.

자세는 한껏 낮춘 채 거의 바닥에 붙은 채로 엎드려 있고, 그 와중에 손가락은 길게 뻗고 있다.

솔 톤의 목소리는 또 어떤가.

“삼색아. 그래, 천천히 와. 천천히.”

엎드린 상태에서 높은 톤으로 얘기하려니 여간 힘이 든 게 아니었다.

누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달밤에 체조라도 하고 있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삼색이를 보니 그런 것쯤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어느새 손가락 바로 앞까지 다가온 삼색이는 조금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천천히 코를 내밀어 내 손 냄새를 맡았다.

촉촉한 삼색이의 코가 손가락에 닿을랑 말랑했다.

“어우, 간지러워. 삼색아.”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삼색이가 내 손가락에 스윽- 하고 얼굴을 비벼 오는 것이었다.

“오…… 오오오…….”

삼색이는 왼쪽 볼과 오른쪽 볼을 번갈아 가며 내 손가락에 비벼 댔다.

인터넷에서 본 어느 게시글의 문구가 떠올랐다.

- 길고양이가 얼굴로 당신을 비비는 이유? 자신의 체취를 묻혀서 ‘너는 내 거야’하고 찜을 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몸을 맡긴 그 녀석이 당신을 간택한 것이라는 말이다! 당신은 그 흔하지 않은 ‘묘연’을 얻게 된 것이다!

“와…… 감동이다. 삼색아! 완전 감동이야!”

“뭐가 그렇게 감동적이에요?”

화들짝.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삼색이가 놀라서 저쪽으로 도망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유혜승.

“야, 너 때문에 삼색이 도망갔잖아. 조심 좀 하지.”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이 순간이 어떤 순간이란 말인가.

한 달만에 삼색이가 내게 마음을 연 순간이다.

내게 하늘이 내려 준 묘연이 이어진 순간이라는 말이다.

“아…… 쟤가 그 닭죽의 주인공이었구나.”

삼색이는 구석에 숨어 빼꼼히 고개를 들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이것 봐. 얼마나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는지.”

“오…… 진짜네요? 맛있었나 보다.”

“흠흠……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이래 봬도 내가 요리 경력만 몇 년인데.”

“일 년 아니에요?”

“응? 아, 맞다. 그래, 일 년이지. 참…… 넌 왜 여기 있는 거야? 집에 안 갔어?”

“아…… 너무 더워서 옥상에서 한잔하려고요. 시원하게.”

“뭐? 아주 여기가 완전 네 집이구만, 집이야. 그리고…… 너 지금 몇 살인데, 벌써부터 술을 마시려고…….”

“네?”

고개를 갸웃거리며 혜승이가 꺼낸 건…… 1.5리터짜리 콜라 페트병이었다.

“콜라 한잔하려고 한 건데요?”

“아…… 얼음 갖다 줄까?”

더운 여름밤엔 시원한 맥주도 좋지만,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콜라 한 잔도 그에 못지않다.

“크으.”

마치 맥주를 마실 때처럼 폐부 깊은 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크으, 좋다!”

유혜승은 아저씨처럼 ‘좋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연거푸 콜라를 들이켰다.

“고양이랑은 좀 친해졌어요? 푸흣.”

“야, 너 왜 웃어?”

“아니…… 아까 오빠 모습이…… 푸흐흣.”

“이게…… 너 나 놀리냐?”

“푸흐하하핫. 아, 미안해요. 아까 오빠 모습이 자꾸…… 푸흐흐흣.”

“야. 그게 그렇게 재밌었냐?”

혜승이가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니까…… 왠지 화를 못 내겠다.

지금의 혜승이는 정말 티 없이 밝아 보였다.

결핍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애처럼.

평소에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구석이 있던 녀석의 모습과는 달랐다.

“아, 진짜 미안해요. 진짜…….”

웃느라 눈물 콧물까지 다 빼낸 녀석이 이제 좀 진정된 듯했다.

“진심으로…… 좋아 보였어요. 아니, 멋있었어요. 그 모습이.”

“뭐? 너 나 또 놀리는 거지?”

“아니, 아니. 진짜 진심이에요. 저 한없이 여리고 작은 고양이를 위해서 오빠는 몸을 낮추고, 목소리도 바꾸고, 저렇게 특별한 간식도 만들어 줬잖아요.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음…….”

혜승이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 좋은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다.

“근데 너…….”

“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냐?”

“네??”

혜승이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걸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자식…… 처음부터 날 보고 있었구나.

웃음 참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휴우…… 하여간, 좋은 일을 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