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81화 (81/110)

#81화 부추무침처럼

이모는 부추를 이용한 요리를 푸짐하게 준비해 두었다.

부추겉절이, 부추 나물, 부추장아찌 등등.

이모가 직접 기른 부추로 만들어서 그런지 모든 요리가 맛이 좋았다.

여섯 사람이 한데 모여 있는 상에서는 아삭아삭 부추 씹는 소리가 가득했다.

문제는…… 부추 씹는 소리만 가득했다는 거다.

깊은 산골에 사람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각사각 우적우적 씹는 소리만 들리니…… 뭔가 좀 기괴하달까?

부모님 두 분이 저렇게 냉랭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밥상의 분위기도 차가워진 거다.

오죽했으면 푸드파이터 혜승이까지 기가 죽어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했다.

이러실 거면 왜 따라오셨는지…… 내가 이럴 걸 알고 그냥 계시라고 했거늘…….

어떻게든 두 분을 서울에 떼어 두고 왔어야 했는데…….

어쨌든 분위기 환기가 필요했다.

이렇게 냉랭하고 축 처진 분위기에서 밥 먹다가는 단체로 체할지도 모른다.

“이모. 혹시 돼지고기 있어요?”

“돼지고기? 앞다리살 사다 놓은 거 있긴 한데…….”

“오, 그거면 됐어요. 부추는 많이 있죠?”

“그럼, 그럼. 앞으로 일 년 내내 먹어도 남을 만큼 많지.”

“좋아요. 혜승아, 잠깐 나 좀 도와줄래?”

혜승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도망 왔다.

굳이 따지자면 나나 혜승이는 저 네 분 사이에 끼어 있을 필요가 없다.

특히 혜승이는 무슨 죄인가.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 따라왔는데, 가족의 비정함만 느끼고 있는 얘는…….

마침 부추를 보니까 만들고 싶은 요리가 있기도 했고.

바로, 돼지고기 부추무침.

고기를 사용하는 요리지만, 뜨겁지 않아서 이런 눅눅한 장마철에 딱 맞는다.

이렇게 좋은 향을 갖고 있는 부추라면 돼지고기와 함께했을 때 얼마나 맛이 좋을지 상상도 안 된다.

“답답했지?”

방금 밭에서 뽑아온 부추를 씻으며 혜승이에게 물었다.

“음…… 아무래도…… 저 네 분 뭔가 풀어야 할 일들이 있으신 거죠?”

“아무래도 그렇겠지?”

“네, 그런 것 같더라고요. 사장님 두 분이 저렇게 심각한 얼굴은 진짜 처음 봐요.”

“나도 오랜만이야. 아무리 일이 힘들고 고되도 웃음 한 번으로 날리는 분들인데.”

“그만큼…… 감정이 안 좋으신 거겠죠. 저 덩치 큰 이모부라는 분에게.”

“후후. 맞아. 사실 좋을 리는 없지. 이모가 이렇게 산에서 홀로 살아가게 된 것도 결국 저 이모부 탓이라고…… 어른들은 생각하니까. 나야 뭐 조금 생각이 다르지만.”

“그렇구나……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나? 그냥…… 그렇게 될 일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뭐, 이 정도? 모든 게 이모부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아…… 근데…… 시어머니라는 분이 굉장히 모질게 굴었다면서요. 이모님한테.”

“맞아. 그 사이에서 이모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못 한 것도 맞고. 그래도 난 이렇게 생각해. 결국 모든 문제는 두 당사자 간의 문제였다고.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다시 만나서 어쨌든 같이 살고 있잖아.”

“하긴 그렇네요. 두 분이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요. 모든 걸 버리고, 이런 깊은 산골에서. 낭만적이에요.”

낭만적이라…… 아직은 깊은 사랑의 경험이 없을 혜승이에게 이모와 이모부의 사랑은 퍽 낭만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하긴…… 나도 이모부가 이모를 찾아 다시 왔다는 얘기를 듣고, 이건 참 드라마와 같다고 생각했었다.

현실에서는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낭만적인 두 분의 사랑에 대한 저 어른들의 생각은 어떨까.

바라건대 얘기가 잘돼서 서로의 묵은 감정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 * *

“크흠.”

이철민은 아까부터 헛기침만 계속하고 있다.

괜히 스스로도 민망하기 때문인 듯하다.

고종숙이 그런 이철민의 허벅지를 툭 친다.

이철민더러 먼저 얘기를 꺼내라는 것일 터.

그런 고종숙에게 이철민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아니, 내가 왜? 왜 나더라 먼저 하라고 그래?

거기에 더 이상 참지 못한 고종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조원중 씨.”

고종숙은 매부나 매제 같은 호칭도 쓰지 않고 그냥 이름을 불렀다.

“아, 네. 처형.”

“처형이요? 누가 그쪽 처형이에요?”

“…아…….”

“언니. 너무 그러지 말아.”

듣고 있던 고미숙이 슬쩍 나섰다.

그녀도 대놓고 조원중의 편을 들지는 못했다.

자신은 조원중을 다시 받아들였지만, 다른 사람은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자신과 조원중의 문제로 친정 식구들의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받아들였으니 언니도 바로 식구로 받아들여 달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처음에는 조원중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댁의 그 잘난 엄마가 뭐라고 안 해요?”

고종숙의 말이 제법 날카로웠다.

조원중은 이미 어느 정도 각오가 되어 있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싫어하시겠지만, 이제 신경 안 쓰기로 했습니다.”

“흥. 지금 그 말을 우리더러 믿으라고요?”

“음…… 알고 있습니다. 말로는 믿음을 드릴 수 없다는 걸요.”

“하이고, 말은 잘하네. 그래서, 어떻게 보여 줄 건데요?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 당장 다시 내려가요. 괜히 우리 미숙이 헷갈리게 하지 말고.”

“…언니…….”

“야. 너는 무슨 자존심도 없냐? 그새 다 잊어버린 거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사람을…… 에휴…….”

“여보…… 좀 진정해.”

이철민이 흥분한 고종숙을 달랬다.

밥상 위에는 다시 침묵이 맴돌았다.

윤기가 흐르던 부추겉절이도 냉랭한 분위기처럼 바싹 메말라가고 있었다.

“자네…… 한 가지만 물어보겠네.”

“네, 형님. 말씀하십시오.”

“정말 모든 걸 버리고 온 건가?”

“…네, 형님. 제가 스스로 이뤄 낸 것 말고 부모님에게 받은 건 다 버리고 왔습니다.”

조원중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 단호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고종숙, 이철민은 그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이제 와서?

젊은 혈기에도 다 버리지 못했던 걸 중년이 되어 버린 이제 와서 다 버릴 수가 있었던 걸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속물이 되어 간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이가 들수록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기는 더 힘들어진다는 거다.

저기 있는 조원중이 그런 흐름을 거역했다고?

엄마 말이면 꿈벅 죽었던 그 조원중이?

“거듭 말씀드리지만, 믿지 못하실 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말씀드린다 한들 두 분의 의심은 변하지 않겠지요. 그러니…… 지켜봐 주십시오. 예전처럼 미숙이 불행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흐흠.

고종숙과 이철미은 약속이나 한 듯이 헛기침을 뱉었다.

조원중은 진지했고, 그의 말에서는 그의 덩치에서만큼이나 듬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말이 진실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애초에 곰 같은 인간인지라 거짓말 같은 건 못 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저 조원중이라는 사람은.

* * *

앞다리살은 덩어리째 끓는 물에 넣는다.

맛술과 후추를 넣어 주면 돼지고기의 잡내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렇게 이십 분 정도 익혀 준다.

고기가 익을 동안 채소와 양념장을 준비한다.

깨끗이 씻은 부추는 약 3센티미터 크기로 먹기 좋게 썬다.

약간의 매운 맛과 붉은 색감을 더하기 위한 홍고추도 부추의 크기로 채 썰어준다.

간장, 고춧가루, 설탕, 매실 엑기스, 생강 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 식초를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잘 삶아진 돼지고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볼에 담아 준다.

고기 위에 부추, 홍고추를 넣고, 만들어둔 양념장을 부어 잘 무쳐 준다.

이렇게 돼지고기 부추무침 완성.

고기 위에 부추를 푸짐하게 얹어 혜승이의 입에 넣어 준다.

아기 새처럼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혜승이가 날름 받아먹는다.

오물오물 아삭아삭.

씹는 소리만 들어도 맛있다는 걸 알 것 같다.

“음…… 이거 진짜 특별하네요?”

“그치? 고기가 들어갔지만, 엄청 담백하지?”

“네. 뭔가 굉장히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그런 요리 같아요. 계속 먹어도 몸에 좋을 것 같은 그런 맛.”

“그러지 마.”

“네?”

“계속 먹지 말라고.”

“아…….”

실망하는 혜승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요리는 어쨌든 저쪽의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구원투수 같은 거니까.

“걱정마. 네 건 저기 따로 만들어 놨으니까 분위기 좋아지면 우걱우걱 먹어. 지금은 어차피 저기 가 봐야 맘대로 먹지도 못할 거야.”

“네? 제 거는 따로요?”

혜승이 건, 혜승이 기준 한입 크기의 돼지고기로 따로 만들어 두었다.

그것도 한 접시 가득.

풍성한 접시를 본 혜승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와…… 진짜 오빠 최고다…… 짱!”

갑자기 들러붙어 팔짱까지 끼며 좋아하는 혜승이.

하여간…… 먹을 것만 준다고 하면 자진해서 유괴범한테 납치라도 될 녀석이다.

근데 이 녀석이 자꾸 왜…….

“너 왜 자꾸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냐? 엄연히 사장님한테.”

“네? 사장님은 저기 밖에 있는 두 분이잖아요.”

“야, 실질적인 사장은 사실…….”

“사업자등록증 봤어요. 두 분 이름으로 되어 있던데요?”

“뭐, 뭐?”

어렵게 살아서 그런지 이 녀석이…… 세상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

그래…… 사업자등록증에 있는 대표자가 사장이지.

참 똑똑하네.

참 많이 먹고.

아무튼……

요리도 완성됐으니…… 이제 저 바깥의 차가운 분위기 좀 녹이러 가 볼까?

* * *

“자, 요리 나왔습니다!”

네 사람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어머, 이게 뭐니?”

“오, 향 좋다.”

“돼지고기 부추무침입니다. 고기 요린데 뜨겁지 않아서 이런 여름철에는 딱이죠. 돼지고기와 부추의 궁합은 뭐 말씀드릴 필요도 없을 거고요. 어서 드셔 보세요.”

사람들의 젓가락이 일제히 큰 접시로 모였다.

그럼…… 나도 한번 맛을 볼까?

돼지고기 한 점에 부추를 풍성하게 얹고, 그 위에 홍고추까지.

와앙.

입을 크게 벌리고, 밀어 넣는다.

행여 한 점의 부추라도 흘릴까 봐 조심하면서.

오물오물.

쫄깃쫄깃하면서도 담백한 앞다리살과 함께 아삭한 부추가 씹힌다.

새콤달콤 칼칼한 양념이 입안에 맴돈다.

씹으면 씹을수록 부추에서는 단맛이 우러나오고, 뭔가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음…… 이거 별미다, 진짜. 이런 요리는 또 어떻게 알고 만들었대?”

“처제, 그거 몰랐지? 선우 완전히 요리 박사야, 박사.”

“선우가요?”

“그래. 우리 시장에서는 아주 난리라니까. 그 뭐라더라…… 아, 샤프. 선우를 이 샤프라고 부른다니까.”

“샤프요? 그게 뭔데요?”

“거 있잖아. 요리사를 영어로 하면 샤프라고 한다던데…….”

“요리사는 셰프입니다, 형님.”

“셰프? 샤프가 아니라, 셰프야?”

“네, 형님. C. H. E. F. 정확히는 영어가 아니고 불어입니다.”

“부, 불어? 크흐흠. 뭐, 암튼 그게 좋은 말인 거잖아. 안 그래?”

“그럼요. 셰프라는 건 주방장을 뜻하는 거고, 주방장은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사 중에 으뜸이니까요.”

“그래, 으뜸. 그게 중요한 거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진짜 변한 게 없네?”

“네?”

“그 고지식한 성격! 거, 형이 좀 샤프라고 하면 샤프인가 보다 하면 되지 참나. 황 씨는 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샤프, 샤프 하고 난리야 진짜.”

“아…….”

조원중이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이모가 술잔을 쥐어 주며 조원중에게 손짓을 한다.

아버지에게 한 잔 따라 주라는 표시.

조원중이 술잔을 들고 곰 같은 덩치를 일으킨다.

“형님, 죄송합니다. 한 잔 받으시죠.”

“어? 음, 뭐. 그래. 뭐 술 한 잔쯤은 받지 뭐.”

아버지가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단숨에 술잔을 들이켠 후, 다시 이모부에게 전을 내밀었다.

“자네도 한 잔 받아.”

“네, 형님.”

이모부 역시 아버지가 따른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렇게 술이 몇 순배 오가자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적당히 취기가 오른 네 분은 옛날얘기를 나눠 가며 간간이 웃음도 지었다.

그래.

아무리 안 좋게 헤어졌다지만 어찌 좋은 추억 하나 없겠는가.

아니, 돌이켜 보면 웃으며 얘기할 만한 좋은 추억이 꽤 많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네 분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나는 잠시 한쪽으로 나와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와…….

까만 하늘에는 밝게 빛나는 별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다.

서울 하늘에서는 꽁꽁 숨어 있던 별들이 여기에서는 다 보이는구나.

그야말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