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다시, 먹태는 영원해야 한다 (4)
“지금 나한테…… 사업을 하자고 한 거니?”
매우 의외일 거다.
이때의 나는 잘해야 부모님 가게의 일을 잘 돕는 착한 동생의 이미지가 강했으니까.
뭐, 요즘 들어서는 요리도 잘한다고 소문이 났지만…… 그렇다고 전생에서처럼 나를 사업가로 생각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설마…… 나 위로하려고 그런 얘기 하는 거야?”
“아니. 내가 무슨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으로 보여?”
“음…… 아니지. 그래, 네가 쓸데없는 말로 사람 뒤흔들 그런 사람은 아니지. 그럼 더 이해가 안 가는데?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거잖아.”
“응. 진심이지.”
“허허허…….”
나의 단호한 표정을 본 창성이 형이 헛웃음을 짓는다.
“좋아…… 그렇다고 치자. 네 말이 진심이라고 쳐. 그럼 한번 들어나 보자. 네가 말하는 사업이 어떤 사업인지.”
“다 좋은데…… 우리 여기서는 그만 나가는 게 어때? 얘기할 맛이 안 나는데.”
“그럴까? 그럼 어디로 갈까?”
“내가 생각한 데가 있어. 가까우니까 걸어서 금방 갈 거야.”
잠시 후.
우리는 먹자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맥주집에 앉아 있었다.
내가 이리로 형을 데려온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형의 먹태가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사장님, 여기 맥주 오백 두 잔 하고 먹태 하나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얼마 후에 테이블 위에 올려진 먹태.
창성이 형은 구워진 모양만으로도 그 먹태가 썩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어라. 이건 먹태가 아닌데?”
“먹태 맞을걸.”
“먹태는 맞지. 근데 먹태는 이렇게 구우면 안 돼. 이렇게 구우면 절대 먹태의 맛이 안 나거든.”
형은 살짝 우쭐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쳐다봤다.
저 우쭐함이 마음에 든다.
먹태에 있어서는 형은 마음껏 우쭐해도 된다.
내가 아는 최고의 먹태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형이 갑자기 손을 쫙 펼쳐 보인다.
“내 손. 이게 왜 이런 줄 아니?”
형의 손바닥은 매우 붉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약간 부어 있는 듯했다.
뭐랄까?
약간 익은 느낌이랄까?
“이게 먹태를 십 년 구운 사람의 손바닥이다. 너도 식당 장사하니까 알지? 무침 요리할 때 다른 도구보다도 손을 이용하는 이유.”
“알지. 이 다섯 손가락이 재료와 양념들을 휘저어 가면서 섞어 주는 거랑 그저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대충 섞어 주는 거랑은 맛이 완전히 다르니까.”
“그럼, 그럼. 게다가 손으로 만지다 보면 재료의 상태에 대해서도 잘 느낄 수가 있거든. 이게 제대로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바삭한지 눅눅한지.”
“음…… 혹시 그럼 지금까지 내가 먹은 먹태는 형이 다 손으로 구운 거였어?”
“응. 직접 두 손으로 구웠지.”
“아…….”
먹태를 굽는 형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팬 위에서 바삭한 먹태를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형의 모습을.
“먹태라는 게 또 살짝 구우면 네가 좋아하는 그 바삭함이 나오지를 않거든. 강불에서 오랫동안 타지 않게 구워야 바삭함이 살아 있는 먹태가 되는 거야.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어?”
“쉼 없이 손을 놀려야겠지.”
“바로 그거야. 먹태 하나 만들려면 손가락 몇 군데쯤 데는 건 각오해야 해. 물론, 나야 이미 굳은살이 잔뜩 배겨서 웬만한 불에는 데이지도 않지만.”
기름기 없는 그 바삭함이 오랫동안 구웠기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먹태의 상태를 느껴 가며 굽기 위해 직접 맨손으로 그걸 굽고 있었는지는 몰랐다.
새삼 형의 노력이 대단하게 보인다.
이러니…… 형의 먹태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거다.
“아무튼 이 먹태는 굽다가 만 거야. 잘 구워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수분도 제대로 안 빠진 수준이야. 그리고 이 소스…… 이것도 완전히 빵점이야.”
“간장 마요네즈 소스? 이건 뭐 그냥 다 비슷한 거 아닌가?”
“아니. 내가 시행착오를 겪어본 결과 마요네즈 6, 청양고추 3, 간장 1. 이 비율이 최고야. 그래야지만 마요네즈의 고소한 맛과 청양고추의 매콤한 맛, 간을 잡아 주는 간장의 짠맛이 조화를 이뤄. 미세한 맛의 차이가 먹태의 맛을 좌지우지하는 거거든.”
“오…….”
아까의 도쿄포차에 휘둘리던 형은 어디 가고, 먹태 전문가가 내 앞에 와 있었다.
형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이 다 이렇다.
자기가 잘하는 걸 하고, 좋아하는 걸 할 때 이렇게 자신감도 생기는 거다.
이제 형을 여기 데려온 두 번째 이유에 대해 얘기할 차례이다.
“형. 이 맥주집. 작고 귀엽지 않아?”
“그러게. 우리 가게보다도 작은 게…… 딱 2차로 오면 좋을 그런 술집이네.”
“맞아. 바로 그거야.”
얼마 후에는 ‘스몰 비어’ 열풍이 분다.
스몰 비어라는 게 별 거 아니다.
그냥 이 가게처럼 작은 공간에서 싼 가격으로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즐기는 그런 콘셉트의 가게를 말하는 거다.
스몰 비어 붐을 타고 몇 군데 브랜드가 확 떴다가 사라져 간다.
그 브랜드들이 사라져 간 이유는 있다.
바로, 딱히 대표할 만한 안주가 없었기에 모방이 쉽고, 그만큼 쉽게 대체가 가능했었던 거지.
“내가 형한테 말한 사업도 이런 거야. 이런 느낌으로 ‘작은 맥주집’을 브랜드화하는 거지.”
“음…… 그렇구나. 근데…… 이런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면…… 금방 대체가 될 텐데…….”
“오…… 제법인데?”
“뭐라고, 인마? 자식이…… 내가 그래도 술장사만 십 년을 했거든?”
“오케이. 하여간! 형은 대체할 수 없는 형만의 메뉴가 있잖아. 그 노하우만 잘 정리하고, 발전시켜 나가면 먹태 하나만으로도 사업은 성공시킬 수 있어.”
“흐음…… 고작 이 먹태 하나로?”
“고작이라니…… 형 먹태는 진짜 최고라니까? 그리고, 뭐 사업이란 게 이것저것 다 잘한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야. 미국의 파인(PINE)도 휴대폰 하나 잘 만들어서 지금 세계를 호령하고 있잖아. 먹태 하나만 잘하면 다른 것도 줄줄이 따라오게 된다니까.”
“음…… 진짜 그럴까?”
“당연하지. 난 확신해.”
난 고개를 격렬하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믿음의 문제 같은 게 아니다.
이건 진짜 미래를 보고 온 사람의 확신이다.
곧 유행할 스몰 비어라는 트렌드와 최고의 맥주 안주 먹태의 만남.
이게 성공 못 할 리가 없으니까.
“정 못 미더우면…… 당장 영진호프부터 이런 콘셉트로 바꿔 보자.”
“우리 가게부터?”
“그래. 그 맛없는 안주들…… 흐흠. 그러니까 암튼 그 특색 없는 안주들 다 없애고. 먹태랑 마른 안주 위주로 메뉴 구성해 보자고. 의자랑 테이블도 좀 요즘 느낌의 젊은 분위기로 바꾸고.”
“흐음…… 인테리어도 다시 해야 하나?”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아. 그건 진짜 브랜드를 만들 때 다시 고민해서 하면 되니까. 처음에는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지. 천천히 천천히 스텝을 밟아 나가는 거야.”
“음…… 오케이. 한번 고민해 볼게.”
맘 같아서는 고민은 무슨 고민이냐고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내 입장이랑 형 입장이랑은 다를 테니까.
나야 뭐 그게 성공할 걸 확실히 아는 입장이고, 형은 영진호프에 인생이 걸려 있는 데다가 그게 성공할지 확실히 알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근데 말이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응? 뭔데?”
“내가 만든 다른 안주가…… 그렇게 맛없었냐?”
형의 눈빛에 왠지 모를 차가운 살기 같은 게 느껴졌다.
흠. 흐흐흠.
“아니 뭐…… 그냥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하하.”
차마 맛있다곤 못 하겠고, 대충 얼버무렸다.
내가 거짓말은 잘 못 하는 성격이라서…….
어쨌든 형의 먹태가 이대로 사라지는 건 대충 막은 것 같다.
내 할 일은 다 했고…… 앞으로는 형이 결정을 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까지 조종할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최선의 방향을 형에게 제시했을 뿐.
그리고…… 형이 그 방향으로 따라와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장마철이다.
비 오는 날이 계속 되다 보니 눅눅하고, 후텁지근하다.
이런 날엔 대체로 의욕이 사라진다.
뭔가를 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고, 뭘 먹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런 계절에 적절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게 바로 묵사발이었다.
길게 썬 묵을 오이 등의 채소와 함께 차가운 국물에 말아먹는 묵사발.
거기에 밥까지 말면 바로 묵밥이 된다.
새콤하면서도 시원한 국물과 쌉싸름한 도토리묵이 만나 깔끔한 한 끼의 식사가 되는 요리.
도토리묵을 생각하니까 또 화천의 미숙 이모가 떠오른다.
거기엔 다람쥐들이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을 도토리들이 있다며, 나중에 좀 가져가라고 했었다.
시중의 도토리묵을 이용해 묵사발을 해도 좋지만, 아무래도 파는 묵에는 도토리 가루 함량이 부족하다.
도토리 가루가 적게 들어가면 도토리묵 특유의 쌉쌀한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쌉쌀한 도토리묵은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취향의 음식이 되겠지만……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된 도토리묵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해서 화천행이 성사됐다.
전 이모부의 존재를 비밀로 해달라는 이모의 말에 혼자서 화천으로 가려고 어머니한테 말씀드렸는데…… 웬걸.
- 그래. 나도 같이 가자. 어디 그 곰 같은 놈 면상이나 좀 보게.
나보고 비밀로 해 달라더니…… 역시 자매간에는 비밀이라는 건 없나 보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아버지도 덧붙였다.
- 나도 같이 가 보자. 내가 동생, 동생 하면서 얼마나 잘해 줬었는데…… 그놈 면상 좀 한 번 보자!
혼자 하려던 화천행에 그렇게 아버지까지 동참하게 되었고…….
-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가족끼리 여행 가고 그러는 거 저도 좀 꼭 해 보고 싶었는데…… 아! 저 많이 안 먹을게요…… 진짜로요…….
아…… 많이 안 먹는다는 말이 왜 이렇게 짠하냐.
저게 연기라면 진짜 유혜승은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하다.
이렇게 해서 가족의 정이 못내 그리운 혜승이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 네 식구…… 그냥 식구라고 하자.
암튼 네 사람은 오래된 SUV를 타고 강원도로 출발했다.
* * *
“이모!”
“선우야!”
평상에 앉아 있던 이모가 우리를 보고 뛰어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부모님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이모부가 머리를 긁적이며 따라붙었다.
“안녕……하셨습니까?”
“흥!”
“어허험!”
아마도 두 분은 미리 작당을 한 것 같다.
일종의 텃세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두 분은 여전히 곰을 닮은 이모부에게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괜히 분위기만 서먹서먹해지고…… 이럴 때는 뭘 좀 먹는 게 최고지.
“이모! 아침도 안 먹고 왔더니 너무 배고파요!”
“저, 저두요!”
혜승이가 옆에서 나를 따라 소리쳤다.
그런데…… 저 배고프다는 소리가 난 왜 이렇게 무섭냐.
이모는 알까.
저 가녀린 애의 위가 얼마나 거대한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