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다시, 먹태는 영원해야 한다 (3)
도쿄포차 강남점은 강남역에서 한 블록 떨어진 먹자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오늘은 금요일, 지금 시간은 열 시.
장사가 잘되는 가게라면 북적북적하게 손님이 차 있을 그런 시간이다.
“캬아. 간판 멋지다.”
에휴.
아무리 봐도 촌스러운 간판을 보고 멋지단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낀 거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손님을 반겨 주는 힘찬 점원의 목소리…… 같은 건 없었다.
휑- 하니 비어 있는 가게에서는 들어온 지 꽤 시간이 지나도 마주 나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사장님, 하고 크게 부르자 그제야 주방에서 웬 젊은 남자가 천천히 나왔다.
“두 분이세요?”
목소리에는 힘이 없고, 눈빛에는 열정이 없다.
아주 흔한 풍경이다.
장사가 안 되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볼 수 있는.
일단, 장사가 안 되면 주인 표정부터 저렇게 변한다.
당연하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가 시작한 장사가 잘 안 되는데 웃을 수 있는 사장이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도 웃을 수 있는 사장이라면, 필시 건물주일 거다.
그것도 이 강남 먹자골목에 몇 층짜리 건물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형.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손님이 없을까?”
“흐음…… 그러게. 담당자님 말로는 금요일 같은 경우 하루 매출 300은 우습게 찍는다고 했는데…….”
“허어.”
매출 300만 원이요?
지금 상황을 보니 매출 30만 원 찍으면 다행인 것 같은데?
“아…… 오늘 날씨가 좀 찌뿌둥하잖아.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일찍 집에 갔나보다. 시간도 뭐 늦었기도 하고.”
“…….”
저기요.
금요일 밤 열 시면 웨이팅도 있을 시간이거든요.
여기가 무슨 영진시장도 아니고.
무슨 열 시가 늦어요.
이제부터 시작인 시간인데…….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한다.
아니, 이 정도로 보여 줘도 모른단 말인가?
강남역 먹자골목에서 여름밤 금요일 열 시에 이렇게 파리 한 마리 끓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줘도?
“휴우. 그냥 가게만 보여 줘도 될 줄 알았는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음식 먹어 보자. 진짜 기대된다. 메뉴판 봐 봐.”
“휴…… 그래. 형 먹어 보고 싶은 거 다 시켜.”
창성이 형이 콧노래를 부르며 메뉴판을 뒤적인다.
왠지 나는 먹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이 도쿄포차라는 곳의 콘셉트는 식사가 되는 안주를 파는 선술집이다.
근데, 그런 콘셉트의 술집이 망한다는 건…… 당연히 음식이 맛이 없다는 거다.
분위기도 이 정도면 무난하고, 가격대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술맛은 변하는 게 아니다.
술맛은 뭘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소주가 뭐 유통기한 하루 이틀 차이로 맛이 변하는 그런 음식도 아니고.
형이 시킨 메뉴는 모듬꼬치, 치킨 가라아게, 문어 숙회.
거 많이도 시켰네.
잠시 후 술과 함께 안주들이 테이블로 배달됐다.
예의 힘없는 그 사장은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안주를 툭 내려놓고는 가 버렸다.
아…… 우리 프랜차이지 점주였으면…… 바로 주방으로 데려가서…….
갑자기 옛날 성격이 나오려고 한다.
내가 지금은 착하게 살지만, 전생에서는…… 정말 내가 제일 싫어했던 게 바로 사장의 저런 태도였다.
음식은 맛없을 수 있다.
요리 실력은 좋은 레시피를 갖고 노력하면 발전하니까.
실수도 할 수 있다.
다음부터는 똑같은 실수를 안 하면 되니까.
하지만, 태도는 본인이 깨우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장사하는 사람은 두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
장사가 잘될 때는 손님들을 깔보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장사가 잘되지 않을 때는 적은 손님이라도 그 손님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두 가지 다 노력하지 않으면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다.
나의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성이 형은 여전히 실실 웃으며 안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요리의 비주얼만 보고도 차마 젓가락을 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치킨 가라아게는 기름을 잔뜩 머금어서 나오자마자 눅눅해져 있었고, 모듬꼬치의 꼬치들은 죄다 탄 듯하고, 문어 숙회는 거의 말린 문어처럼 생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음식을 번갈아 가며 먹어 보는 형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어두워진다.
아무리 먹태 외에는 특별히 잘하는 요리가 없는 형이라지만…… 잘 알 거다.
이게 정말 맛이 있는 요린지 아닌지는.
형이 몇 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한다.
“이상하다…… 사장님이 레시피를 지키지 않는 건가. 담당자 얘기로는 본사에서 공급한 재료를 가지고 레시피대로만 제대로 만들면 진짜 맛있는 요리가 될 거라고…….”
“형.”
낮은 목소리로 형을 불렀다.
이제 나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고 있었으니까.
형을 향한 내 목소리는 마치 그르렁거리는 맹수의 경고음처럼 들렸을 거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형도 눈치챘다.
“야, 너 무섭게 왜 그래?”
“내가 무서워? 정작 무서운 건 도쿄 포차의 그 담당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거야? 파리 날리는 이 강남점에서 길거리 포차에서도 그것보다는 맛있을 그런 음식들을 먹으면서도……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거야?”
“…….”
“형. 형의 마음은 이해해. 민우, 지아를 위해서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고생하는 형수님에게도 매달 천만 원씩 안겨 드리고 싶겠지. 다 이해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이상한 곳하고 덜렁 프랜차이즈 계약을 하면 안 되는 거지. 누가 봐도 엉망인 이런 곳이랑.”
“야, 아, 아닐 거야. 오늘은 손님이 유난히 없는 날이겠지. 음식 맛은…… 아, 주방장이 오늘따라 안 나왔을 수도 있고…… 음…… 그러니까 이건 그냥 오늘만 그런…….”
“그만해. 형도 오면서 봤지? 옆 가게 삼겹살집은 웨이팅이고, 치킨집은 바깥까지 놓은 테이블에 손님이 꽉 차 있었어. 근데 오늘이 손님이 없는 날이라고? 그리고…… 레시피대로만 하면 다 맛있는 요리가 나온다며. 근데 주방장이 없다고 이렇게 엉망인 요리가 나올까?”
“…….”
창성이 형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을 그대로 있었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나대로 찬물을 들이켜며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잠시 후.
창성이 형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선우야. 아무래도 내가…… 잠깐 눈이 돌았던 것 같다.”
“…….”
“솔직히 말하면…… 처음 가게에 딱 들어왔을 때 나도 느꼈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내가 이래 봬도 술장사를 좀 해봤잖아. 근데…… 금요일 여름밤 열 시면…… 영진호프도 붐비는 시간이거든. 그리고, 음식 맛…… 도저히 못 먹을 맛이었다. 이걸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형도 알고 있었네. 근데 왜 그랬어?”
“휴……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오랜만에 진짜 꿈에 부풀어 있었거든. 나도 큰돈을 좀 만져 보자는 꿈. 애 엄마랑 애들한테 큰소리 떵떵 쳐 보자는 꿈. 맛있는 것도 매일 먹이고, 좋은 데도 데려가고, 하고 싶다는 거 다 하게 해 주자는 꿈. 그런 기대로 며칠 동안 행복했었거든. 그 꿈이…… 깨지는 게 싫었던 것 같아.”
어느새 창성이 형의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형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형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하지만, 냉정할 때는 냉정해야 한다.
형의 꿈?
그 꿈은 프랜차이즈 계약을 했으면 더 무참하게, 더 바닥 끝에서 깨져 버렸을 거다.
어쩌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무너졌을 거다.
지금이라도 그게 꿈이었다는 걸 깨달은 게 천만다행이다.
나는 일부러라도 단호한 목소리로 형에게 말했다.
“그래서…… 프랜차이즈 계약은 어떻게 할 건데?”
“…계약? 음…… 아무래도 안 하는 게 맞겠지.”
뭔가 아직 미련이 남은 대답이다.
안 하는 게 맞겠지,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딴 거 절대로 안 해야지.
이 정도 대답은 나와 줘야 하는 거다.
그런 대답이 나오게 하려면, 이 망해 가는 도쿄포차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질 만한 다른 대안을 보여 줘야 한다.
아…… 웬만하면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삶의 기회를 다시 부여받으며 내가 생각한 게 뭐였던가.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거였다.
장사도 하고 사업도 해야겠지만,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을 챙겨 가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가며.
행복하고, 즐겁게.
물론, 그 안에는 선우네 백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영진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계획도 있었다.
영진호프는 영진시장에서만 십 년 이상을 장사한, 시장 사람들의 단골 술집이기도 하고.
‘그래. 조금 더 시간을 앞당긴 거라고 생각하자.’
저대로 창성이 형을 뒀다가는 앞으로도 무수한 유혹에 휘둘릴 거다.
꿈에 부푼 이들의 마음을 이용하려는 제이, 제삼의 도쿄포차는 어디에든 있을 테니까.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모호하게 줄 타며 서민의 등골을 빼먹는 그런 놈들 말이다.
그런 수법에 앞으로의 창성이 형은 속수무책일 거다.
형은 울적한 얼굴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형. 형이 언제부터 그렇게 누군가의 꼬리로 살고 싶어한 거야?”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누군가의 꼬리라니…….”
“그렇잖아. 큰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주. 그게 꼬리지 뭐야. 어쨌든 머리는 아니잖아.”
“후후. 그 말이었구나. 야. 너도 이 나이 되어 봐라. 어디 큰 데 꼬리라도 붙잡고 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지. 내 능력으로는 마땅히 길이 안 보이니까 그러는 거지. 현상 유지만 겨우 하는 것 말고는.”
이 나이라…… 겨우 서른인 주제에 무슨…… 내가 인마 이렇게 보여도 마흔 살…….
내면에서 튀어나오려는 꼰대를 간신히 억눌렀다.
“이거 참 실망이네. 형은 언제나 대장처럼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알던 그 형은 어디 간 거야? 영진동에서 알아주던 그 형은?”
“인마. 그런 거 다 없어진 지 오래라니까? 사람들 앞에 나서려 해도 뭐 내가 잘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어렸을 때야 아무것도 모르는 패기로 그랬다지만.”
“잘하는 거? 형 먹태 잘 굽잖아.”
“뭐? 푸하하. 그 먹태 하나 잘 굽는 게 뭐 자랑이냐? 뭐…… 사람들은 다 맛있다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는 아니지.”
“무슨 소리. 먹태 하나만 잘 구워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사업가가 될 수 있는데. 형 너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네?”
“사, 사업가? 푸하하하. 장난도 도가 지나치면 예의가 아닌 거다. 먹태로 무슨 사업을 해?”
“허어…… 진짜 뭘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마른 안주만으로 전국에 300개 이상의 지점을 냈던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아니지.
앞으로 있을 거다.
‘노가리 까는 사람들’이었나?
아마 대충 그런 이름이었을 거다.
그 집의 콘셉트는 이랬다.
마른 안주를 적은 양으로 값싸게 팔면서 1차가 아닌 2차 맥주집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가져가는 집.
1차에서 부담스럽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2차로 찾을 만한 그런 가벼운 맥주집.
마른 안주의 질이 꽤 좋았다는 것 또한 성공 요인이었고.
지점을 300개나 냈으니 대박이 났던 건 당연한 거다.
“형. 먹태로 나랑 같이 사업 하나 하자.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게 용의 꼬리나 되려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형답게 뱀의 머리로 살자고. 또 알아? 그 뱀이 승천해서 용이 될지. 그럼 뭐, 용의 머리가 되어 버리는 거고.”
“…….”
나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창성이 형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