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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77화 (77/110)

#77화 다시, 먹태는 영원해야 한다 (1)

학교 선생님이 되고도 불행해진 희선이의 미래를 봤었다.

그리고, 희선이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경찰이 되기를 바랐다.

적어도 경찰이 되기 위한 도전이라도 할 수 있길 바랬다.

오래된 친구로서…… 그것만이 희선이가 행복해지는 길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경찰이 되기 위한 희선이의 시작에 작은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한 시간 일찍 출근했다.

희선이를 위한, 평범하지만 특별한 도시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아무리 밥 먹을 시간이 없어도 대충 먹고 다니면 안 된다.

팍팍한 수험 생활에서 그나마 맛있는 밥 한 끼가 큰 위로가 되어 줄 텐데…….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 줄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희선이에게 그런 위로가 되어 줄 도시락을 싸 주고 싶었다.

다행히 가게에는 도시락 반찬을 할 만한 게 가득했다.

매일매일 신선하게 담근 각종 김치부터 기본 반찬으로 나가는 것들까지.

사실 이대로 밥에 반찬만 싸 줘도 아주 훌륭한 도시락이 될 것이지만.

오늘은 거기에 최고의 도시락 반찬 하나를 추가할 생각이다.

바로 소고기 장조림.

이 장조림 하나면, 사실 다른 밥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짭쪼름한 국물을 밥에 끼얹고, 투박하게 찢은 고기를 얹어 와앙, 한입 먹으면……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니까.

생각만으로도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소고기 장조림을 만들 때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 고민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고민보다 더 실존적인 고민이다.

바로…… 계란이냐, 메추리알이냐.

이것이 진짜 문제로다.

둘 사이를 고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둘 다 각각의 이유로 소고기를 보좌해 주는 최고의 부재료이기 때문이다.

계란은 그 풍성한 크기가 좋다.

계란 하나에 장조림 국물이면 거의 밥 한 공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이다.

짭쪼름하게 간이 밴 흰자를 먹다가, 흰자 안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노른자를 먹는다.

노른자를 먹을 때는 장조림 국물을 약간 끼얹어서 비벼 먹는다.

마치 떡볶이를 먹을 때 국물과 비벼 먹는 것처럼.

메추리알은 한입에 쏙 들어가는 그 느낌이 좋다.

하나씩 집어먹다 보면 수십 개도 그냥 들어간다.

밥 한 숟갈에 메추리알 하나를 올려 한입에 넣어 먹는 재미도 아주 좋다.

무엇보다 먹기가 간편한 것이 메추리알의 큰 장점 중 하나이다.

한입에 쏙 넣어 버리면 뭘 으깨고 비비고 할 것도 없이 한 알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까.

오늘 간택받은 부재료는 바로…… 메추리알이다.

희선이의 상황을 고려했다.

밥 먹을 시간도 아끼고 싶은 녀석에게는 한 알씩 한 알씩 편하게 집어먹을 수 있는 메추리알이 알맞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고기의 핏물을 빼는 것부터 소고기 장조림을 시작한다.

질 좋은 소고기 양지에 물과 사이다를 붓고 30분 정도 기다린다.

여기서의 비법은 바로 사이다.

전생에서 반찬 가게로 대박을 쳐서 건물주가 된 한 사장님으로부터 배운 비법이다.

- 핏물 제거할 때 사이다를 좀 넣어 봐. 피도 훨씬 빨리 빠지고, 고기도 연해질 거야.

이유 같은 건 몰랐다.

그냥 그 집의 장조림이 너무 맛있어서 사장님에게 물어본 것뿐이니까.

나중에 찾아보니, 사이다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나 설탕의 성분이 빠르게 핏물을 제거하고 고기를 연하게 해 주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핏물이 잘 빠진 고기를 물에 넣고 한 차례 삶는다.

삶는다기보다는 데친다는 기분으로 초벌로 끓이는 것이다.

데친 고기를 흐르는 물에 잘 헹궈서 압력밥솥에 넣는다.

고기와 함께 대파 뿌리, 건다시마, 양파, 대추, 통후추, 생강, 월계수잎, 소주, 물을 넣고 함께 찐다.

잘 찐 고기는 따로 건져 두고, 나머지 부재료들은 건져서 버린다.

단, 육수는 버리지 않고 남겨 둔다.

상온에서 식은 고기를 결대로 찢어 준다.

칼로 썰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장조림의 고기는 결대로 찢겨 있을 때 제대로 된 식감을 낸다고 생각한다.

손으로 고기를 찢으면서도 느껴진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소고기 양지의 식감이.

아까 남겨 둔 육수를 큰 냄비에 옮겨 붓고, 깐 메추리알, 진간장, 흑설탕, 국간장, 매실 엑기스, 맛술, 물엿, 통마늘, 찢어 둔 소고기 양지를 넣은 후 끓인다.

충분히 국물이 졸아들면 오늘의 마지막 한 수, 꽈리고추를 넣어 준 후 조금 더 졸인다.

꽈리고추는 처음에 같이 넣을 경우 시커멓게 쪼그라들어 특유의 식감이 사라져 버린다.

다 끓을 때쯤 편으로 썬 홍고추를 넣어 붉은 색감을 살린다.

푸른 꽈리고추와 붉은 홍고추가 곁들여져 보기에도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메추리알 소고기 장조림 완성.

“우와…….”

“냄새 죽인다.”

“이거 하나 먹어 봐도 돼요?”

어느새 출근한 가게 식구들이 하이에나처럼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나는 단호하게 그들의 손길을 거부했다.

일단, 혜승이 입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오늘 새벽부터 나와서 고생한 보람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거다.

도시락 싸고 남은 거 있으면 좀 줘야지, 뭐.

* * *

“자, 오늘의 도시락.”

“오…… 너 이거 싸 주려고 나 오라고 한 거였어? 너 왜 그러냐, 진짜. 민망하게.”

말로는 민망하다면서 희선이의 손은 이미 도시락을 받고 있다.

“민망하다면서 왜 받아…….”

“야, 내가 아무리 민망해도 친구의 정성을 어떻게 거절하냐?”

“그래. 새벽부터 나와서 반찬 만든 내 정성 생각해서라도 잘 먹어. 힘내서 열심히 공부하고.”

“그래…… 고맙다. 진심으로.”

“됐고…… 꼭 합격해라. 파이팅이다.”

“그래! 이거 잘 먹을게! 고마워!”

손을 흔들며 희선이가 멀어져 간다.

몸은 피곤해 보이지만, 마음만은 가벼운 게 느껴진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도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경찰이 된 희선이는 어떤 모습일까?

아빠를 닮는다면 분명 훌륭한 경찰이 될 것이다.

불의를 보고 참지 않으며,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우리가 꿈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경찰이 되어 줄 것이다.

희선이의 앞날을 응원하고 또 기대한다.

* * *

날씨가 더워질수록 견딜 수 없어지는 게 있다.

땀에 절은 옷, 에어컨이 고장난 차 안, 모기들의 습격 등등.

그런 것들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진다.

반면에 미치도록 당기는 게 있다.

지친 몸을 확 깨어나게 해 주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냉장고에 잘 넣어 두어 시원해진 수박,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난 후 마시는 생맥주 한 잔.

이곳은 영진호프.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영진동, 아니 국내 최고의 먹태를 파는 나의 단골 맥주집이다.

“형, 안녕하세요. 오백 한 잔하고 먹태 하나요.”

언제나처럼 맥주 한 잔에 먹태 안주를 시켰는데, 영진호프의 주인인 양창성의 대답이 없다.

뭘 만들고 있나…… 하고, 주방 쪽으로 가보니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창성이 형이 보였다.

본의 아니게 창성이 형의 말소리를 듣게 되었다.

“컨설턴트 님. 창업 비용이 만만치 않네요? 아이템은 좋은 것 같은데…….”

“아…… 하긴…… 그만큼 장사가 잘되니까 그렇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제가 하루만 더 고민을 해 보겠습니다. 네네. 네, 감사합니다. 앗, 깜짝이야!”

통화를 마치고 나온 창성이 형이 나를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란다.

“뭘 그렇게 놀라요?”

“아, 아니 아니. 그냥 갑자기 네 얼굴이 보이니까 그랬지. 하하하. 먹태로 줘?”

“네, 먹태 주세요.”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마음속이 복잡했다.

‘이맘때였구나…….’

창성이 형이 도쿄포차인가 뭔가 이상한 선술집을 시작했던 때가.

게다가 아까 얘기를 들어 보니 오늘 하루까지만 고민을 한다고 했다.

큰일이다.

창성이 형의 먹태는…… 이대로 사라지면 안 되는데.

나도 프랜차이즈를 운영해 봐서 안다.

본사는 처음에는 점주들에게 엄청난 희망을 준다.

마치 그 브랜드의 간판만 달면, 월 천이고 월 억이고 쉽게 벌 수 있을 것처럼 말을 한다.

이론대로라면 안 될 게 없다.

그들은 늘 최고로 성공한 케이스만 예비 점주들에게 보여 주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브랜드만 달았다고 해서 다 성공하면 세상에 망하는 가게는 없을 거다.

더 문제는…… 그 도쿄포차라는 브랜드가 곧 쫄딱 망해 버린다는 데에 있다.

잘나가는 브랜드를 달고 창업을 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판국에 망해 가는 브랜드를 달고 창업을 한다?

그건 기름통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름 없다.

물론, 창성이 형은 모를 거다.

지금 형이 붙잡으려고 하는 동아줄이 썩어 문드러진 동아줄이라는 걸.

“형. 오늘 되게 바빠 보이네요?”

“아, 그게…… 음…… 좀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미안하다.”

“와…… 진짜 서운하네. 언제는 뭐 혼자 와도 심심하지 않은 맥주집이니 뭐니 해 가면서 술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더니. 형 많이 변했네요?”

“야, 아니, 그게 아니라…… 에이, 그래. 자, 한잔하자. 좀만 기다려.”

창성이 형이 맥주잔을 들고 자리에 합류했다.

가까이서 보니 형의 얼굴이 무척 상기되어 있었다.

대박 브랜드의 프랜차이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그게 폭삭 망하는 브랜드인 줄도 모르고?

에휴.

괜히 한숨이 나온다.

“야, 넌 왜 한숨이냐? 이렇게 좋은 날에.”

“에휴…… 좋은 날이요? 형은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고 계세요?”

“헤헤헤. 들켰냐? 사실…… 이게 단골손님들한테는 좀 미안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뭔데요? 말해 봐요. 내가 어디 다른 단골이랑 같아요. 우리는 같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운명 공동체잖아요. 말해 봐요.”

짐짓 모른 체를 하고, 창성이 형을 떠 봤다.

형은 여전히 실실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게…… 내가 있잖아. 진짜 좋은 브랜드를 하나 발견했거든. 장사도 잘되고, 전망도 좋고, 비용도 별로 안 들어가.”

“예? 그런 데가 어디 있어요? 무슨 브랜드인데?”

“도쿄포차라고…… 지금 부산에서는 아주 난리 난 브랜드거든. 그 브랜드가 서울로 확장하고 있는데, 서울에는 또 매장이 거의 없어요. 사람들 입소문은 엄청 나 있는 상태고.”

“그래서…… 이 영진호프를 때려치우고, 그 도쿄포차인가 뭔가 하는 브랜드로 바꾼다는 거예요?”

“야.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영진호프가 더 좋은 도쿄포차 영진시장점으로 거듭나는 거지. 헤헤헤.”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실실거리는 창성이 형이 못마땅해서 괜히 먹태만 씹어 댔다.

먹태를 씹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이 먹태는 이대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먹태는 결코 먹어 볼 수 없을 테니까.

실제로 전생에서 겪은 거다.

영진호프가 사라지고, 아무리 맛있다는 먹태집을 찾아다녀 봐도 이 맛이 안 났으니까.

다 떠나서 창성이 형의 마음은 이해된다.

형수님도 있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 창성이 형.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동네 사람들이 2차로 주로 찾는 영진호프의 수입만으로 제대로 된 가장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안타깝게도 창성이 형은 옳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인생을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길로.

형을 구제해야 한다.

그리고…… 먹태를 구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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