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대파 제육볶음 (1)
빅터의 말은 계속됐다.
“갑자기…… 1년 동안 스웨덴 음식을 한 번도 못 먹었다는 게 생각났어. 명절이면 먹기 싫어도, 지겨워도 먹을 수밖에 없던 그라브락스가 갑자기 너무 그리워지는 거야. 먹을 게 없을 때 가끔씩 사 먹던 미트볼도 그렇고.”
“…….”
“사람들은 서양 음식은 다 똑같은 줄 알아. 그래서 내가 스웨덴 음식 먹고 싶다고 하면, 파스타나 스테이크, 피자 먹으면 되지 않냐고 말해. 어차피 다 같은 거 아니냐고…… 근데…… 일본 음식이 한국 음식이랑 다른 것처럼…… 스웨덴 음식도 다른 서양 음식이랑 다르거든.”
그래, 맞다.
우동만 해도 일본 우동과 한국 우동은 다르다.
서양인들은 몰라도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은 그 차이를 바로 구분해 낸다.
빅터도 마찬가지일 거다.
같은 북유럽 나라인 덴마크나 노르웨이의 음식조차도 스웨덴의 음식과는 다를 테니 말이다.
“오늘 이 음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스웨덴 음식이었어. 선우…… 정말 고마워…… 아, 초희, 혜승도 고마워. 옆에서 같이 맛있게 먹어 줘서. 입맛에 안 맞았을 텐데…….”
이초희와 유혜승이 의아한 얼굴로 빅터를 쳐다봤다.
그 표정의 의미는…… 입맛에 안 맞는 게 우리한테 있을 것 같아?
이런 의미이겠지.
내 생각인데…… 빅터가 너무 잘 먹는 걸 보고, 두 사람이 좀 실망했을 수도 있다.
본인들이 많이 못 먹어서.
그래도 빅터를 위한 음식인데 빅터에게 양보하는 게 맞는 거니까.
“잘 먹었으면 된 거지. 오늘 이 음식을 준비한 건 다른 이유는 없었어. 그저 빅터 네가 향수병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고, 예전처럼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던 거니까.”
빅터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손에 쥐고 있던 티슈로 눈가를 훔친 빅터가 말했다.
“아마도 그 마음이…… 전달……됐나 봐. 정말 고마워, 선우…….”
“그래, 알겠으니까 그만 울어. 네가 그 커다란 덩치로 눈물 흘리니까 왠지 좀 무섭거든?”
“그래? 헤헤헤. 알았어. 근데, 선우…….”
“응?”
“갓김치는 안 갖고 왔어?”
“뭐?”
“아니…… 미트볼 먹으니까 좀 느끼해서. 이거 갓김치랑 같이 먹으면 딱인데…….”
빅터의 너스레에 다들 한바탕 크게 웃었다.
느끼한 거 먹을 때 김치를 찾는 걸 보니…… 향수병 치료는 다 된 것 같다.
앞으로는 다시 빅터의 먹방을 기대할 수 있겠지.
커다란 덩치로 순박하게 웃는 모습도.
* * *
축제 이후 가게에 갑자기 늘어난 손님층이 있다.
바로 영훈대학교의 남학생들.
햄버거를 먹는 혜승이의 영상이 어떤 학생들에 의해 영훈대학교 카페에 업로드되었고, 그 영상을 본 다른 학생이 혜승이가 선우네 백반에서 일한다는 걸 댓글로 남겼다.
혜승이는 순식간에 근방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날부터 괜히 하루에 세 끼씩 가게에서 해결하는 남학생들이 늘어났다.
밥을 먹으면서도 혜승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남학생들이 많아졌고.
뭐, 어찌 됐건 가게에는 좋은 일이겠지?
다행인 건 혜승이가 그런 시선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거다.
하긴, 그게 더 이상하지.
나중에 유명 영화제에서 상도 받는 여배우 혜승이에게 이 정도 관심쯤이야.
우리와 있을 때와는 다르게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웃어 주는 혜승이에게 남학생들은 맥을 못 췄다.
의외의 손님도 갑자기 단골이 되었다.
바로, 켄터키 할아버지를 닮은 김대준 총장님.
축제 주점을 계기로 켄터키 할아버지와 김흥범은 몰라보게 친해졌고, 어느 날 점심을 먹자는 총장님의 제안에 김흥범이 그를 우리 가게로 모시고 왔다.
그때부터 총장님은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게에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오늘도 역시 허. 허. 허. 웃으며 김흥범과 함께 가게를 찾아온 김대준.
그에게 오늘의 메뉴인 ‘대파 제육볶음’을 내어주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한다.
제육볶음만 해도 주재료가 무엇인지, 양념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수많은 갈래로 나뉜다.
오늘의 제육볶음은 주재료인 삼겹살에 주재료 같은 부재료인 대파를 넣어 볶는 요리이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시원한 대파의 존재감이 메인 재료인 삼겹살 못지않은 그런 요리.
대파 제육볶음의 특징이라면, 따로 양념장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먼저, 삼겹살을 팬에 예쁘게 깐다.
빈틈없이 삼겹살에 채워졌으면, 중약불 정도에 은근히 고기를 굽는다.
“고기는 센 불에 확 구워야 맛있는 거 아닌가요?”
옆에 있던 진민호가 묻는다.
이제 칼질은 꽤 능숙해진 진민호에게 슬슬 다른 요리도 가르치는 중이다.
“아…… 센 불에 확 구우면 고기가 지방을 가둬 버립니다. 은근한 불에 천천히 구워야 고기가 지방을 밖으로 내보내거든요. 그 기름으로 고기를 튀기듯 굽는 거예요.”
“아…….”
“추가적으로 지금처럼 냉장삼겹살을 쓸 때는 기름이 잘 나오지만, 냉동 고기를 쓸 때는 기름이 잘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식용유를 마중물처럼 부어 주면 기름과 만나 튀겨지면서 삼겹살의 지방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오호…….”
위, 아래 면을 골고루 익힌 후에는 먼저 숭덩숭덩 썬 마늘을 넣어 익힌다.
기름과 만나 튀기듯 익힌 마늘 맛은 가히 환상적이니까.
“고기는 노릇노릇하게 잘 익혀 줘야 해요. 지금 막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쌈장에 찍어 먹고 싶을 만큼요.”
진민호가 진지한 얼굴로 메모를 한다.
적당히 마늘이 구워지면, 자글자글한 기름을 조금 빼준다.
단, 완전히 기름을 빼면 맛이 없을 수 있으니 적당량의 기름은 남겨 두는 것이 필수.
그렇게 기름을 빼낸 구운 고기 위에 설탕을 넣는다.
설탕을 잘 녹인 후에는 진간장을 투입한다.
간장을 투하하는 순간 불이 살짝 오르는데, 이때 불맛을 내주는 거다.
불맛까지 입힌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질 때 새끼손가락 크기로 잘라 둔 대파를 가득 넣는다.
매운맛을 위해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도 넣는다.
이때 포인트.
팬 안에 수분이 없기 때문에 고춧가루 양념이 재료들과 잘 섞이지 않을 수 있다.
양념이 재료 안에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해 물을 부어 준다.
단, 대파에서도 수분이 나올 수 있으니 양념이 겉돌지 않을 만큼만 적당하게.
잘 볶아진 고기 위에 후춧가루를 톡톡 뿌리고, 참기름을 한술 두른 후, 마지막으로 깨소금까지 촤라락 뿌려 주면…… 대파 제육볶음 완성.
“대파 제육볶음 나왔습니다.”
“허. 허. 허. 이거 냄새가 아주 좋군요. 아주 좋아. 허. 허. 허.”
김대준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반겼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흥범은 생각했다.
‘이 사람…… 은근히 미식가란 말이야.’
김대준은 너털웃음과 복스러운 얼굴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상당한 미식가라는 게, 최근 같이 음식점을 다니면서 내린 김흥범의 결론이다.
갑자기 총장의 점심 파트너가 된 그는 학교 주변에 음식 맛이 좋다는 집은 전부 다 데려가 봤다.
초밥집, 돈까스집, 파스타집, 한정식집 등등.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음식점을 총동원했다.
안 그럴 수 있겠는가.
무려 총장이랑 같이 점심식사를 하는데.
그중 살아남은 집이 얼마 안 되었다.
이제는 김흥범도 총장의 반응을 보고 알 수 있었다.
허. 허.
너털웃음을 두 번 지으면 그 음식은 아무리 맛있다고 말해도 그건 예의상 하는 말이다.
허. 허. 허.
너털웃음을 세 번 지으면 그건 꽤 맛있다는 거다.
또한, 음식을 맛보기 전에 기대감에 가득 찰 때도 웃음을 세 번 짓는다.
허. 허. 허. 허. 허.
다섯 번 이상 너털웃음을 지으면 그건 진짜 대박이라는 거다.
선우네 백반에서는 심심치 않게 다섯 번의 너털웃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게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총장이 선우네 백반에 오는 이유이고.
“학과장님. 우리 오후에 교수 회의가 있었나요?”
“아, 회의는 내일로 미뤄진 걸로 압니다.”
“그런가요? 허. 허. 허. 그럼 마음껏 먹어도 되겠군요. 허. 허. 허.”
말을 마친 김대준은 쌈 위에 밥, 고기, 대파, 그리고 마늘을 가득 얹었다.
“제가 이 마늘을 참 좋아하거든요. 근데, 이게 양치를 해도 냄새가 남아서 문제예요. 근데, 회의가 없다면 상관없잖아요. 허. 허. 허.”
커다란 쌈이 김대준의 입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김대준의 손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상추를 들고 밥과 고기와 대파를 얹고, 쌈장을 듬뿍 찍은 마늘을 한 조각 올린다.
입을 크게 벌린 후 두 손으로 싼 상추쌈을 한입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오물오물 씹는다.
허. 허. 허. 허. 허.
다섯 번의 너털웃음과 함께 다음 쌈 시작.
‘너털웃음 다섯 번…… 진짜 맛있다는 거다.’
김흥범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요즘 그의 점심이 이렇다.
식사를 하는 내내 온통 그의 관심은 총장의 너털웃음에 집중되어 있다.
웃음이 두 번에 그치면 그날은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반면, 다섯 번의 너털웃음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김흥범의 마음도 확 풀린다.
김대준은 편하게 먹으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송은희 조교의 심정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아무리 편하게 해 준다고 한들…….’
윗사람과의 식사는 태생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거다.
아무리 상대방이 편하게 배려해 준다고 해도.
그래도 일단…… 오늘만큼은 맛있게 먹자.
김흥범의 손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제육볶음은 그냥 밥과 함께 먹는 걸 선호한다.
쌈에 싸 먹어도 맛은 있지만, 그렇게 되면 반찬으로서의 제육볶음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
어디까지나 제육볶음은 밥반찬이라고 생각하니까.
밥 위에 고기, 대파, 마늘을 얹고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뜬다.
흰쌀밥 위에 각종 재료들이 초밥처럼 얹어져 있다.
진한 색깔의 양념이 보기만 해도 밥반찬으로 딱이지 싶다.
행여 중간에 반찬이 떨어질까 젓가락을 향해 턱이 마중을 나간다.
와앙.
오물오물.
캬아.
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기도 맛있고, 달큰하면서도 칼칼한 양념도 맛있지만,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대파였다.
큼지막하게 씹히는 대파에서 채소 특유의 단맛이 뿜어져 나온다.
숨이 너무 살아 있지도 너무 죽어 있지도 않은 적절한 식감도 훌륭하다.
대파가 씹힐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식욕을 돋워 준다.
알겠다.
이게 왜 그냥 제육볶음이 아니라 ‘대파’ 제육볶음인지.
너털웃음 다섯 번이 나올 만한 맛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앞의 접시를 빠른 속도로 비워 갔다.
추가한 공기밥까지 깨끗이 비워 낸 김대준이 김흥범에게 말했다.
“정말 맛있군요. 대파도 좋고, 마늘도 좋아요. 허. 허. 허. 허. 허.”
“저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제육볶음이라고 다 같은 제육볶음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허. 허. 허. 근데요, 학과장님.”
“네?”
총장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확 사라졌다.
테이블 위에 괜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음식…… 어디선가 먹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음…… 혹시 여기 음식을 요새 자주 드셔서 그렇게 느끼시는 거 아닙니까?”
“음…… 아니에요. 이 맛은 분명 여기 아닌 어딘가에서 느껴본 맛이에요. 제가 유독 맛에 대한 기억에는 예민한 편이거든요.”
“아…….”
김흥범은 괜히 남아 있는 양념을 살짝 한술 떠먹었다.
맛있다.
선우네 백반이 언제나 그렇듯, 이건 맛있는 양념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기억을 더듬어 본다.
혀를 놀려 양념을 입 안에서 굴려본다.
칼칼한 양념에 남아 있는 고소한 지방의 맛…… 매콤한 맛을 방해하지 않는 적당히 달큰한 맛…… 이건…… 이건……!!
“추, 축제! 주점!”
“오! 저랑 생각이 같으시군요. 맞아요. 외식경영학과 축제에서 맛봤던 그 맛. 그 맛이랑 같아요. 허. 허. 허.”
뭔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두 사람은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