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향수병에는 미트볼
선우네 백반의 단골손님 빅터 요한손은 요새 통 의욕이 없다.
어쩌다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됐고,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싶어 고향을 떠나 멀리 오게 됐다.
즐겁고 행복했다.
동경하던 나라의 문화를 알아간다는 것이.
한국 친구를 사귀고, 한국의 곳곳을 돌아다니고, 한국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가끔씩 고향이 그리워질 때도 잘 버틸 수 있었다.
한국 생활이 너무나 즐거웠으니까.
게다가…… 한국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고향을 그리워할 틈이 없었다.
주변에도 음식 때문에 고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지만, 빅터에게는 예외였다.
그는 어쩌면 한국 사람들보다도 더 한국 음식을 사랑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빅터의 한국 생활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니, 그게 꼭 한국에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순히 지쳐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황금 같은 날씨에도 밖에 나가기 싫고,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왠지 재미없어졌다.
무엇보다…… 그 맛있었던 김치가, 된장찌개가, 삼겹살이…… 맛이 없어졌다.
이건 꽤 심각한 문제였다.
“향수병이네.”
“향수? 나 향수 안 뿌렸어, 선우.”
왠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빅터.
그의 앞에는 공기밥이 처음 나간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밥을 입에도 대지 않은 것이다.
“향수가 아니라…… 아…… 노스탤지어(Nostalgia) 알지?”
“아…… 노스탤지어…… 그걸 향수병이라고 하는구나. 근데…… 난 한국이 진짜 좋아. 선우가 해 준 음식도 너무 너무 맛있어. 근데 나 같은 사람이 노스탤지어? 이해 안 돼.”
커다란 덩치를 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니, 왠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해 안 되겠지만, 그럴 수 있다.
향수병이라는 게 그렇다.
빅터는 알게 모르게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왔을 거다.
물론, 동경하는 나라에 와서 꿈꿔 왔던 생활을 하는 게 행복했겠지.
하지만, 빅터는 스웨덴에서 스무 해 넘게 살았던 사람이다.
사람의 몸이라는 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다른 환경에 완벽히 적응할 수는 없다.
아마도…… 알게 모르게 그의 몸과 마음에 피로 같은 게 쌓여 왔을 거다.
그는 잘 느끼지 못했겠지만.
영진대학교 학생들, 그리고 시장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 가게의 단골손님들은 모두 빅터를 사랑한다.
우선, 한국 사람보다 한국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이 어른들로부터 사랑받는 포인트.
외국인이지만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학생들이 좋아하는 포인트.
마지막으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빅터를 아끼는 게…… 음…… 이건 아닐 수도 있겠다.
축구 실력이 없다는 게 들통난 이후로는 조기 축구회의 관심도 싹 사라졌으니까.
어쨌든…… 빅터가 이렇게 힘없이 밥도 못 먹는 모습을 계속 지켜만 볼 수는 없다.
“빅터. 이번 주 일요일에 뭐 해?”
“일요일? 아무것도…… 그냥 요새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집에 있어.”
“좋아. 그럼 그날 우리 나 좀 너희 집으로 초대해 줄래? 다른 사람들도 더 불러도 되고.”
“선우? 우리집에? 음…….”
평소라면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빅터가 망설일 문제가 아닌데…… 아니, 애초에 약속이 없는 날도 없었을 거다.
의외로 빅터의 향수병이 꽤 깊은 듯싶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줘야지.
“빅터! 서운하다? 이 형이 처음으로 빅터 집에 놀러 가겠다는데 지금 망설이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오케이. 그날 저녁에 보자.”
“알았어! 저녁은 먹지 말고 기다려. 내가 준비할 테니까.”
“그래, 고마워. 형.”
* * *
향수병을 달래 주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이 최고다.
고향이 그리워 시름시름 앓던 사람도 고향에서 먹던 음식 한 번 제대로 먹으면 싹 낫는다.
그런 게 바로 음식이 가진 힘이다.
음식에는 추억이 있고,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 있으니까.
빅터에게 해 줄 수 있는 스웨덴 요리는 뭐가 있을까?
전생에 스웨덴에 놀러갔을 때 먹었던 스웨덴의 전통 음식들을 떠올려 본다.
언제나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전통 방식 그대로인 음식을 먹으려 노력한다.
그런 음식일수록 처음부터 맛있게 먹긴 힘들지만, 그래도 그것이 가장 그 나라의 식문화를 잘 알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리는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
한국어로는 마땅한 발음기호조차 찾기 힘든 이 요리는, 스웨덴의 전통 요리이자 동시에 세계 최악의 악취 음식이라고 알려진 요리이다.
수르(Sur)는 시큼하다는 뜻이고, 스트뢰밍(Strömming)은 어류 중 청어를 뜻한다.
시큼한 청어요리라는 말인데, 쉽게 말해 삭힌 청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음식으로 치면 홍어와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냄새는…… 홍어를 멀찍이 능가한다는 게 나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다.
괜히 세계 최악의 악취 음식이라고 하는 게 아니지.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홍어에 호불호가 있듯이, 스웨덴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 음식은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다.
이 음식을 맛보는 순간 빅터는 바로 스웨덴을 느낄 수 있을 테지만…… 이걸 당장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다 주고 싶지는 않다.
음식의 종류도 중요하지만, 빅터에게 나의 정성도 함께 느끼게 해 주고 싶으니까.
삭힌 청어를 후보군에서 탈락시킨 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음식들을 생각해 보니, 두 가지가 남았다.
연어 요리 하나와 미트볼 요리 하나.
이 두 가지면…… 빅터의 향수병을 어느 정도 달래 줄 수 있을 듯싶었다.
* * *
빅터의 집에는 주인 빅터와 함께 나와 이초희, 그리고 유혜승이 모였다.
이초희와 유혜승의 역할은 다름 아닌, 바람잡이 역할.
뭐, 별건 아니고…… 그냥 빅터의 앞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어 줄 역할이다.
입맛이 없을 때는 누가 옆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만으로도 식욕이 생길 때가 있으니까.
이초희와 유혜승.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은 매우 훌륭한 바람잡이가 되어 줄 거다.
조금 걱정되는 게 있다면, 바람잡이인 두 사람이 빅터를 위한 음식을 다 먹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건데…… 그래서 미리 식당에서 밥을 먹이고 왔다.
그래도 몰라서 열 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의 음식을 준비해 왔고.
이 정도면…… 되겠지?
빅터를 위한 두 가지 요리.
그 첫 번째는 바로 그라브락스(Gravlax)라는 연어 요리이다.
미리 사 둔 연어는 소금과 설탕에 저며 며칠간 보관해 두었다.
이 절인 연어에 머스터드, 설탕, 소금, 허브의 일종인 딜을 섞은 소스를 만들어 곁들여 먹는 간단한 음식.
스웨덴 생선 요리는 대부분 불을 가해 요리를 해 먹는데, 이 그라브락스는 차게 먹는다는 게 조금 독특한 점이다.
그라브락스는 스웨덴에서는 매우 대중적이며 대부분 만들어 먹지 않고, 마트에서 사다 먹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요리를 살 수 있는 마트는 없을 테니까.
가락시장의 노유림 사장에게 수산물 업자를 추천받아 최상급 연어를 공급받고, 미리 만들어 두었다.
크리스마스 만찬에 자주 올라오는 그라브락스는 빅터로 하여금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려 줄 거다.
우리가 차례를 지낸다고 하면 기름에 지진 전 냄새가 떠오르는 것처럼 서양의 명절인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바로 이거니까.
빅터를 위한 두 번째 음식은 바로 링곤베리 잼을 곁들인 미트볼이다.
미트볼이라고 하면 북유럽보다는 왠지 미국 같은 나라가 떠오르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스웨덴의 대표 음식이 바로 이 링곤베리 잼을 곁들인 미트볼이다.
링곤베리는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나는 빨간색의 베리이다.
신맛이 강해서 주로 설탕과 함께 끓여 잼을 만들어 먹는다.
그 잼을 으깬 감자, 미트볼과 함께 먹는 건데, 언뜻 조화롭지 않아 보이지만 직접 맛을 보면 단짠단짠의 조화가 꽤 흥미로운 음식이다.
미트볼이 스웨덴의 전통음식이라 할 수 없지만, 링곤베리 잼을 곁들인 미트볼은 그 자체로 스웨덴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런 메뉴이다.
빅터에게는 매우 익숙한……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메뉴가 될 것이다.
그라브락스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고, 미트볼의 다른 재료들도 미리 만들어 왔다.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는 미트볼만 여기서 만들면 된다.
사실, 이 미트볼은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후에는 한국에서 꽤 유명해진다.
스웨덴에 근거지를 둔 유명한 가구회사가 매장을 들여오면서 이 미트볼 메뉴를 판매하기 시작하는 이후부터는.
몇 년 후에는 빅터도 미트볼이 생각날 때면 그 가구 매장의 카페테리아를 방문하면 된다는 뜻.
물론, 내가 지금 만들 미트볼보다 맛은 덜할 거다.
그곳의 미트볼은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맛이니까.
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고루 섞는다.
양파, 마늘, 빵가루, 달걀을 넣어 다시 한번 섞어 주고, 우유, 소금, 후추를 넣어 풍미와 간을 더해 준다.
반죽을 작은 공 모양으로 빚는다.
탁구공 정도 크기를 생각하면 딱 맞는다.
잘 빚은 반죽을 냉장고에 두 시간 이상 두어 숙성시킨다.
중불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를 두른다.
팬이 달궈지면 미트볼 반죽을 넣고 볼의 표면이 골고루 갈색이 될 때까지 익힌다.
다 익힌 미트볼은 미리 준비한 소스와 으깬 감자, 링곤베리 잼을 더해 접시에 담아 준다.
미리 만들어 온 그라브락스도 보기 좋게 썰어 접시에 담는다.
이로써 빅터를 위한 특별 스웨덴 요리가 완성됐다.
* * *
“자, 음식 나왔습니다.”
한쪽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세 사람을 불러 모았다.
힘없이 다가오던 빅터가 킁킁- 하고 코를 벌름거렸다.
“어, 이 냄새는…….”
“짜잔.”
“우오오오…….”
빅터의 눈이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커졌다.
“그라브락스! 미트볼! 링곤베리 잼! 와우……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만든 거야, 선우?”
어깨를 슬쩍 으쓱해 보였다.
뭐, 사실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 메뉴는 아니었다.
링곤베리 잼을 구하기 위해 이태원의 외국 식료품점을 이 잡듯이 뒤진 수고 정도만 빼면…….
그 수고로움도 빅터의 얼굴에 떠오른 환한 미소를 보자,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저 커다란 덩치로 섬세한 감정 표현을 하는 빅터를 보면 참 신기하달까?
의외로 섬세하고 예민한 친구이다.
보기와는 다르게.
바람잡이로 데려온 두 먹신이 쓸모없을 정도로 빅터는 잘 먹었다.
실로 오랜만에 빅터의 먹방을 구경한 듯싶다.
그런 빅터의 모습을 보자니, 전생에서 외국 생활을 할 때의 내 모습들이 떠올랐다.
며칠만 한국 음식을 못 먹어도 얼마나 몸과 마음이 허한지.
밤에 숙소로 돌아갈 때면 좀비가 사람의 목덜미를 찾듯 찾던 컵라면과 김치, 볶음고추장 그리고 햇반.
그러고 보면 빅터는 참 대단한 거다.
아예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 음식만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그가 한국과 한국 음식을 사랑한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아, 진짜 잘 먹었다…… 와…… 고향에 온 것 같았어.”
“맛은 괜찮았어?”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완전 스웨덴에서 먹은 것 같았다니까! 선우! 진짜 대단해. 최고야!”
빅터가 양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에이…… 그래도 스웨덴에서 먹는 것만큼은 아니겠지. 어쨌든…… 맛있게 먹어 줘서 고마워. 빅터.”
“아, 진짜 아니라니까…… 진짜로…… 진짜로…… 엄마가 어렸을 때 해 주던…… 그런…… 그런…….”
빅터의 말이 느려지더니, 그의 눈에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가 잽싸게 손을 들어 맺힌 눈물방울을 훔쳐 냈지만, 붉어진 눈시울까지 지워 버릴 수는 없었다.
옆에 있던 이초희가 조용히 티슈를 꺼내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