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어린이날엔 짜장면이지 (3)
아이는 짜장면뿐만 아니라, 탕수육과 군만두까지 허겁지겁 먹어 댔다.
저게 어떻게 속이 안 좋은 사람의 먹는 속도라는 말인가.
아이는 속이 안 좋았던 게 아니라, 돈이 없었던 거다.
열세 살은 돈을 내야 하는 줄 알고 짜장면을 안 시켰던 거다.
자신은 못 먹지만,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가게로 들어왔던 거다.
“맛있게 먹었어요?”
“네! 정말 맛있었어요!”
아이가 힘차게 대답한다.
이제야 아이가 아이답다.
옆에 있던 두 동생도 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이에게 봉지 하나를 내민다.
“어, 이게 뭐예요?”
“음…… 선물이라고 해야 하나? 별건 아닌데…… 탕수육이랑 군만두 좀 담았어.”
“와…… 탕수육 진짜 맛있었는데…….”
“언니, 나는 군만두 맛있었어!”
“누나, 나는 탕수육!”
“충분히 담았으니까 집에 가서 이따가 먹어.”
“감사합니다.”
아이 셋이 나란히 고개를 숙인다.
배꼽에 손을 대고 인사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씨익.
아빠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아빠 미소가 절로 나온다.
오늘 하루만큼은 배불리 먹어라.
어떤 사연을 가진 어떤 아이들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오늘 하루만큼은 배불리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너희들이 주인공인…… 어린이날이니까.
아이들을 내보내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가게 문이 열리고 차미란 원장이 들어왔다.
“어, 원장님?”
“그릇 돌려 드리러 왔습니다.”
“이런 건 천천히 돌려 주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그렇게 좋은 대접을 받고 한 보따리 싸 주시기까지 했는데…… 시골 농장에서 직접 캐온 채소들 좀 같이 챙겨 왔어요.”
차미란이 들고 온 봉지에는 호박, 오이, 양파 등의 채소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좋은 것만 골라온 듯 딱 보기에도 상태가 좋아 보였다.
“뭘 이런 것까지…….”
“에이. 제가 가진 건 없어도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성미라…… 호호호. 참! 들어오다 보니까…… 정은이가 애들 데리고 가게에 왔었나 보네요.”
“정은……이요?”
“네, 정은이. 왜 꼬마 둘 데리고 다니는 여자애요.”
“아…… 방금 가게에서 짜장면 먹고 간 애들 말씀이시군요.”
그 아이의 이름이 정은이였나 보다.
잠깐만…… 그런데, 차미란 원장이 그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내 의문을 눈치챈 차미란이 입을 열었다.
“아…… 저희 보육원에서 근처의 취약 계층 아동을 돕는 일도 하거든요. 정은이 아버지가 기초수급자여서…….”
“아…….”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정은이에게 왜 짜장면값이 없었는지.
열세 살이라 어린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정은이가 왜 한 젓가락도 짜장면을 입에 댈 수 없었는지.
“정은이…… 진짜 대견한 아이예요. 어쩌면 우리 보육원 아이들보다 더 힘들게 사는 애고요.”
“보육원 아이들보다 더요?”
“네…… 정은이 아버지란 사람…… 기초수급자에…… 알코올중독자에…… 아주 개차반이거든요. 아이들을 때린다는 소문도 있고.”
“예?!”
“어디까지나 소문이지만…… 하여간, 없으니만 못해요. 나라에서 받은 돈도 다 자기 술값으로 써 버리는 사람이니까.”
처음 마주쳤을 때, 두 동생들을 챙기는 엄마 같았던 정은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엄마 같은 모습은……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거였나 보다.
그래 봐야 본인도 애인데…… 어린이인데…….
괜히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들의 아버지란 사람에게 반감이 든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그런 정은이에게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원장님. 다음에 정은이 만나면 이렇게 좀 전해 주실래요?”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배고프면 언제든지 저희 가게로 찾아오라고요. 동생들 데리고 언제든지. 돈이 없어도 된다고요.”
“아이고, 정말이요? 제가 다 감사하네요.”
“아닙니다. 별것도 아닌데요 뭘. 그냥 밥 한 끼 주겠다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될 겁니다. 제가 만나면 꼭 그렇게 전할게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차미란 원장이 다녀간 후에도 많은 어린이가 가게에 왔다 갔다.
누구나 다 어린이날에는 특별하게 보낼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어린이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 특별한 마음으로 만든 짜장면을 아이들은 맛있게 먹어 주었다.
메뉴는 특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저 흔한 짜장면과 탕수육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만들어 대접하는 우리의 마음은 특별했으니까.
아이들도 그 마음을 느끼며 맛있게 먹었을 거다.
푸르른 어린이날도 그렇게 지나갔다.
뭔가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한가득 느낀 채로.
* * *
- 초희 씨, 자전거 탈 줄 알아요?
- 네. 저 자전거 타는 거 좋아해요.
- 오…… 자전거도 있어요?
- 그럼요. 요새 날씨 좋아서 시간 날 때마다 자전거 타러 나가거든요.
- 좋아요. 그럼 내일은…… 자전거 타고 맛집 투어 갈까요?
- 좋죠! 자전거 타고 나서 먹으면 진짜 좋아요. 더 많이 먹을 수 있거든요.
- 더…… 많이요? 지금 먹는 것보다 더? 더 많이?
- 헤헤헤. 암튼 내일 봬요! 학교 앞 영진천 자전거길에서 보면 되겠네요!
- 네, 그래요. 내일 봐요.
이렇게 해서 이초희와의 자전거 맛집 투어가 성사됐다.
5월의 날씨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는 제격이었다.
적당히 따뜻한 햇살과 파란 하늘 아래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페달 위에 놓은 발을 저절로 구르게 만들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얼굴에는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그렇게 힘든 줄도 모르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오늘의 맛집에 도착했다.
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간판을 올려다봤다.
[칼국수]
역시 간판을 보던 이초희가 물었다.
“칼국수? 여긴 가게 이름이 따로 없나 봐요?”
“네, 맞아요. 그냥 칼국수집이에요.”
“와…… 신기하다. 이런 데도 있었구나.”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를 이렇게 불러요. ‘무명 칼국수’라고.”
“아, 이름이 없으니까 무명이군요.”
“그렇죠. 그렇다고 그냥 칼국수집이라고 하면 다른 가게랑 구분이 안 되니까…… 무명 칼국수로 부르게 된 거예요.”
“아…….”
“들어갈까요?”
가게 안에 들어서자,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있는 사장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무명’ 칼국수를 운영하는 사장답게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가게의 이름처럼 왠지 눈에 띄지 않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늘 저 자리에 서서 반죽을 만들거나 국수를 썰고 있었다.
대신 부부 중 다른 한 사람인 여사장 님이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온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시죠? 저쪽으로 앉으세요.”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은 후, 이초희가 가장 먼저 살펴본 건 바로 메뉴판이었다.
- 해물칼국수
- 닭칼국수
- 왕만두
이게 이 집 메뉴의 전부였다.
“음…… 하나씩 다 시켜도 부족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네, 당연히요. 일단…… 두 개씩 시키죠. 전 메뉴.”
“그렇게 하죠.”
잠시 후, 폴폴 김을 풍기며 칼국수와 만두가 배달됐다.
“저희 집 양이 좀 많죠? 이거 다 드실 수 있으려나…… 많이 드신다고 해서 그냥 드리긴 드리는데…….”
“네,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저희가 워낙 잘 먹어서요.”
“잘 먹는다는 사람은 많이 왔었는데…… 다들 남기고 가더라고요…… 칼국수가 또 은근히 배부르거든요…… 근데, 뭐 많으면 남기세요. 배 아픈 것보다 남겨서 버리는 게 낫지 뭐. 그럼 맛있게 드세요.”
말을 기분 좋게 해 주시는 사장님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이초희의 배가 아플 일도, 칼국수를 남겨서 버릴 일도 없을 거다.
그러니, 사장님은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는 거고.
“자, 시작할까요?”
“네, 사진 다 찍었어요. 가시죠.”
먼저 해물칼국수부터 시작해 보자.
시원한 바지락을 잔뜩 넣고, 감자와 호박으로 식감과 재미를 더했다.
직접 뽑아 칼로 썬 투박한 면발이 가득 들어 있고, 그 위에는 파란 부추가 또 한가득 올려져 있다.
먼저 국물 맛부터.
후릅.
캬아.
바지락 특유의 시원한 감칠맛이 식욕을 자극한다.
국물만 몇 번 더 떠먹은 후 바지락을 까기 시작한다.
그릇을 전부 뒤적여 바지락 껍데기를 벗겨 내는 나를 본 이초희가 말한다.
“왜 드시지는 않고, 조개 껍데기만 벗겨 내고 계세요?”
“아…… 저는 개인적으로 먹을 수 없는 게 국물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싫어서. 하하. 신경 쓰지 말고 드세요.”
“아…… 저는 그냥 나오는 대로 하나씩 까먹는 타입인데…… 뭐, 저야 바지락 껍데기를 알아서 다 벗겨 주시면 좋죠. 히히. 그럼 신경 쓰지 않고 먹겠습니다.”
후루루루루룩.
이초희의 입에서 무슨 따발총 소리 비슷한 소리가 난다.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음식을 먹는 취향도 각자가 다르다.
누군가는 이초희처럼 조개 껍데기를 하나씩 까먹는 취향일 거고, 누군가는 나처럼 조개 껍데기를 미리 다 까 놓는 취향일 거다.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사소하게 취향이 갈리는 것 또한 음식을 먹는 재미 가운데 하나이겠지.
이 집이 ‘무명’ 칼국수인데도 유명해진 이유를, 나는 직접 만든 칼국수 면발에서 찾는다.
개인적으로 칼국수 면은 직접 반죽을 해서 투박하게 썰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굵기가 다른 면발이 입으로 들어가면서 만들어 내는 식감은 다른 어떤 면 요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니까.
칼국수를 칼국수로 만드는 건 바로 이 굵으면서도 투박한 면발이다.
여기 면은 두꺼우면서도 식감이 쫄깃쫄깃해서 맛이 좋다.
면이 불규칙하게 입술에 닿으면서 같이 빨려 들어오는 국물 맛.
그 맛도 참 좋고.
후루룩 후루룩.
계속 면을 집어 먹을 수밖에 없지.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선발투수가 9회까지 던져 완투승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훌륭한 구원투수 한두 명이 선발투수의 뒤를 받쳐 준다.
칼국수의 면발이 이 집의 선발투수라면, 그 선발투수를 받쳐 주는 두 명의 구원투수가 있다.
이 구원투수는 실로 완벽하게 칼국수를 받쳐 줘서 때로는 이 구원투수 맛을 보러 이 집을 찾게 만든다.
“초희 씨. 이 집 겉절이 진짜 맛있죠?”
“오…… 맞아요. 제가 사장님 자존심 상할까 봐 일부러 말은 안 했는데…… 여기 겉절이 진짜 최고네요. 그냥 겉절이로는 선우네 백반보다도 더…… 호호호.”
이초희가 민망한 듯 웃는다.
근데 진짜 이초희 말이 맞다.
나도 인정한다.
숙성을 시킨 김치 맛은 우리 가게가 앞설지 몰라도, 이 겉절이만큼은 이 집이 더 맛있는 것 같다.
한입 베어 물면 우선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양념 맛이 입을 맴돈다.
양념 맛을 느끼며 배추를 씹으면…… 달짝지근한 배추 물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맛있는 배추다, 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그런 재료의 맛.
칼국수와의 궁합이 훌륭한 건 두말하면 입 아픈 사실이고.
두 번째 구원투수는 바로 왕만두다.
아…… 오랜만에 만두의 영롱한 자태를 보고 있자니, 다시금 침이 줄줄 새어 나오는 것 같다.
이 집 만두의 특징은 바로 얇은 만두피에 있다.
칼국수 면발이 두툼하고 투박한 것과는 정반대로 이 집 만두피는 정말 얇아서 거의 피가 있는지 모를 정도이다.
그렇다고 밀가루에 소를 둥글려서 만드는 굴림만두는 아니다.
진짜 피를 얇게 만들어 싼 만두다.
만두의 속은 부추와 고기와 두부로 가득 차 있는데, 한입 베어 물면 짭쪼름한 양념과 함께 각종 재료가 훅- 입으로 들어온다.
칼국수로는 조금 부족한 단백질을 공급해 준다고나 할까?
꽉 차 있는 두부와 고기를 만나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끄억.
천하의 이초희도 면발과 국물의 공격 앞에서는 당해 내지 못했다.
당연히 다 못 먹었다는 건 아니다.
추가로 더 먹지 못했다는 거지.
그만큼 여기 칼국수 양이 많기도 하고.
우리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움직였다.
느릿느릿 가다 보니, 어느새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