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어린이날엔 짜장면이지 (2)
오늘의 첫 손님은 어린이가 아니라…… 황씨 아저씨였다.
“오늘 메뉴는 어린이만 먹을 수 있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요. 누구나 드실 수 있습니다. 대신…… 금액은 지불하셔야 되고요.”
“아, 물론이지! 내가 무슨 어린이도 아니고, 무슨 염치로 무료 짜장면을 얻어먹어. 참, 인사해. 광주 사는 내 제부도 같이 왔어.”
“안녕하세요.”
제부라는 사람은 거무스름한 얼굴에 제법 건강하게 생긴 중년 남성이었다.
“안녕하시지라? 나는 장진호라고 혀요. 나가 광주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중국집을 하고 있어 부리는디…… 어찌 오늘 맛 좀 보까 싶어 가꼬 와부러쓰요. 마침 형님 단골 식당에서 짜장면을 한다길래.”
“아, 그러셨군요. 사장님 가게의 맛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맛있게 드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음식 내오겠습니다.”
선우가 주방으로 사라진 후 장진호가 황종훈을 보며 말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여 부리는구마요, 형님. 나가 짜장면만 삼십 년을 혔는디. 허허허.”
“자네 짜장면도 맛없는 건 아닌데…… 이 집 무시하면 안 될걸. 저기 이 샤프가 못 하는 음식이 없거든.”
“누구요잉? 샤프? 그거이 뭐인디요?”
“아, 샤프 몰라, 샤프! 아이고, 그것도 모른당가잉? 요새는 요리사를 샤프라고 부르잖여어. 이를테면 존칭 같은 것이지. 아이고, 흥분해서 사투리가 나와 부렀구마잉. 하하하.”
“아, 그라요? 근디 우리 동네에서는 나를 샤프라고 부르는 놈들이 없어분디. 나에 대한 공경심 같은 게 없나 보구마잉.”
“그런가 보지. 그니께 잘 좀 혀랑께. 저 이 샤프처럼. 그래야 샤프라는 칭호도 받고 그라제.”
“아이고, 내가 을매나 잘혀는디요. 참, 근데 형님은 사투리가 허벌나게 잘 어울려버리는구마요잉.”
“아, 그란가? 서울 와서 하두 놀림을 받아가꼬 내가 이 말투 고치느라 을매나 힘들었는디…… 자네 만나니까 바로 사투리가 나와불구마잉.”
“쪼까 발음이 어색하긴 헌디 아주 잘해 부리는구마요잉. 계속 그렇게 허시오. 진짜 고향 사람 같고 좋구마잉.”
“그르까잉? 하여간에 음식 맛은 기대하랑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니께.”
“뭐 알거써요. 그래 봐야 백반집 짜장이제…… 삼십 년 짜장만 볶은 사람이랑 맛이 같으면 그게 말이 안 되지라잉. 그냥 묵을 만하면 그런갑다 하고 넘어갈 테니께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니까요잉.”
“하이고, 그게 아니라니께…….”
“에이, 맞지 뭐 또 그게 아니라 허요잉. 아무리 샤프니 뭐니 혀도 그 경력은 못 따라잡지요잉. 세월이 얼만디.”
“허허. 그게 아니라니께 진짜 이 사람이…….”
두 사람이 언쟁 아닌 언쟁을 하는 사이 테이블 위로 음식이 배달됐다.
짜장면 두 그릇, 탕수육 한 접시, 군만두 네 개.
“맛있게 드세요.”
유혜승이 그릇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장진호가 코를 벌름거린다.
“흠흠. 흠흠. 음…… 냄새는 뭐 제법 됐구마잉. 딱 중국집에서 파는 그 음식 냄새가 나긴 혀요잉. 허허허.”
“거 냄새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일단 잡솨 봐. 난 먹어 보지 않아도 맛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께.”
“허이고, 그 자부심이 참 대단허시네요잉. 알겄소. 내 한번 묵어 볼 테니께. 나가 가감없이 솔직허게 평가를 한번 해 볼랑께.”
말을 마친 장진호의 젓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짜장을 잘 비빈 그는 면을 한 움큼 집어 올렸다.
후루룩.
양이 꽤 되어 보이는 면발이 한입에 장진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물오물.
한입 가득 면을 씹는 그의 입이 빠르게 움직였다.
턱을 움직여 가는 그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강한 의문에서 놀람으로.
놀람에서 만족으로.
고개를 한 번 좌우로 저은 그가 다시 면발을 한 움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룩.
이번에도 순식간에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간 면.
오물오물.
입안에 있는 면을 깨끗이 넘겨 낸 그가 황종훈을 향해 말했다.
“형님…… 맛있는디요.”
“거봐. 내 뭐라고 했능가?! 하하하.”
“형님…… 근디요. 이건 맛있는 정도가 아닌디요?”
“그럼 어떤 정도인디요?”
“거 뭐랄까 그…… 그러니께…… 이건 짜장 하루 이틀 볶아 가꼬 낼 수 있는 맛이 아닌디요? 적어도 주방에서 춘장 수백 번 태워 가면서 실패를 거듭해 가면서 볶아 봐야 겨우 낼 수 있는 그런 맛을 이 짜장이 내고 있어 부러요잉. 이게 말이 안 되는디…… 안 되겄어요. 다시 한번 묵어 봐야겄네잉.”
후루룩 후루룩.
오물오물.
계속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 그의 입으로 짜장면이 계속해서 빨려 들어갔다.
아닌디, 아닌디.
이럴 수가 없는디.
그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들.
그러면서 어느새…… 그의 그릇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짜장 소스 하나 남김 없이.
양배추 쪼가리 하나 떨어진 것 없이.
“제부. 누가 보면 무슨 스님이 와서 발우 공양 한 줄 알겠구먼? 이게 뭐여. 아주 그냥 설거지를 해 부렀네? 하하하. 내가 뭐라고 했어어! 저 이 샤프가 음식 하나는 진짜 최고라니께. 하하하.”
“하아…… 형님. 짜장면은 나가 인정해 부릴께요잉. 이거는 거의 나랑 대등허다고 볼 수가 있어부러요. 이건 인정해 불고. 다음으로는 탕수육 갑니다잉. 탕수육은 다를 거예요잉. 이거야말로 짜장면보다 훨씬 어려운 메뉴잉께. 사람들이 고기 튀기는 게 뭐시 어렵다고 허지만, 그게 아니라니께요. 탕수육은 진짜 수십 년 중국집 해도 잘못 튀기는 인간이 천지 빼까리여라.”
“알겠다니께. 그니께 어여 먹어 보기나 혀.”
황종훈은 탕수육을 집어 먹는 장진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만면에 흥미로운 미소를 띈 채로.
장진호는 소스도 찍지 않은 튀긴 고기를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원래 고기 맛은 소스를 묻히지 않고 먹어야 한다면서.
바스락.
바사삭.
장진호가 고기를 씹는 내내 바스락거리는 튀김의 맛깔난 소리가 계속됐다.
그만큼 튀김 옷 전체가 바삭하다는 소리.
고기를 씹는 장진호의 표정이 오묘하다.
흡사 믿을 수 없는 어떤 광경을 마주한 것 같은 그런 표정.
그는 심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렇게 한 조각, 두 조각, 세 조각…… 열 조각을 소스도 없이 입에 넣었을 때 비로소 장진호의 입이 열렸다.
“형님…… 이건 완전히 미쳐 부렀는디요? 이거는…… 하아…… 이거는…… 이거는 아니여라. 아니, 백반집 탕수육이 어떻게 이렇게 맛있어 부러요잉? 이거는 진짜 아니여라잉. 와…… 나 미쳐 부리겄네?”
“크하하하하. 아이고…… 맛있지? 거봐. 내가 얘기했잖아. 저 이 샤프는 완전히 다르다니까? 요리로는 이거야, 이거!”
황종훈이 오른손 엄지를 펼쳐 보이며 소리쳤다.
“아니…… 형님. 이게 탕수육이 진짜…… 이러면 안 되는 거라니께요잉. 이거는 진짜…… 그냥 고기 튀겨 갖고는 이 맛이 안 난다니까요잉. 우와…… 중국집 삼십 년 인생에 회의가 막 들어 부리네요잉.”
“뭘 또 회의까지 들어. 그냥 맛나게 먹으면 된당께. 맛나게. 하하하.”
광주에서 온 중국집 사장 장진호는 다시 집으로 이동하는 내내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집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가?
백반집 짜장면보다 맛없는 짜장면을 손님들한테 내는 게 맞는 건가?
자존심 다 버리고…… 이 샤프인가 뭔가 하는 그 친구에게 비법을 배우고 왔어야 하나?
복잡한 그의 마음과는 달리 그의 입 속은 풍요로웠다.
여전히 그가 맛본 인생 최고의 탕수육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음식이 더 맛있었던 건 어쩌면 그 백반집의 분위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들 밝은 얼굴로 요리를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음식을 먹는다면…… 설령 맛없는 음식이라도 천상의 요리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선우네 백반을 경험한 게 요리사 장진호의 인생에 꽤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오늘의 그의 경험과 그로 인한 고민은 그를 더욱더 성장시켜 줄 거라는 것.
* * *
침을 사방에 튀겨 가며 칭찬을 하던 광주의 중국집 사장님이 떠나고 드디어 첫 어린이 손님들이 찾아왔다.
바로 영진꿈마을의 어린이들.
“와…… 혜승이 누나!”
“혜승이 언니!”
오랜만에 혜승이를 만난 애들이 이산가족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반가워했다.
“준우야, 미선아!”
혜승이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차면 어쩔 수 없이 독립을 해야 하는 이들의 처지.
그런 고아들의 상황이 못내 씁쓸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뭐…… 그런 마음이야 일단 뒤로하고, 오늘은 어린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우선이다.
영진꿈마을의 아이들을 시작으로 어린이 손님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면을 삶고, 탕수육을 튀겼다.
오늘은 두 분 어머니도 김치 만드는 일을 접고 주방을 도왔다.
무료인 만큼 어린이에겐 음식도 무한리필로 제공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어린이를 받기 위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오후 두 시쯤 되자 손님이 슬슬 줄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빈 테이블이 생겨갈 때쯤 스윽 문이 열리고, 어린 여자애 한 명이 고개를 들이밀고 말했다.
“저기…… 지금 짜장면 먹을 수 있어요?”
“그럼, 그럼. 물론이지! 어서 들어와, 어서!”
어머니 고종숙 여사가 문을 활짝 열며 아이를 반겼다.
아이의 뒤에는 더 어려 보이는 꼬마 둘이 따라붙었다.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와 아직 학교를 안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
아마도 셋은 남매간인 듯했다.
“짜장면 세 그릇 주면 되지?”
고 여사의 말에 예의 고개를 들이밀었던 여자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니요. 두 그릇만 주세요. 저는 속이 좀 안 좋아서 안 먹을 거예요.”
“그래? 음…… 그래도 일단 줄게. 조금이라도 먹어 봐.”
“아, 아니요. 안 돼요. 안 먹을 거예요.”
아이가 이번에는 손을 내저으며 한사코 거부 의사를 표했다.
잠시 후, 짜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 군만두가 테이블로 배달됐다.
“얘들아, 맛있게 먹어.”
맏언니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동생들에게 식사를 권했다.
그 모습이 마치 엄마의 모습 같았다.
두 동생은 허겁지겁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온 얼굴에 짜장을 묻혀 가며 먹는 모습이 어쩐지 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만큼 급해 보였고, 허기져 보였다.
그런 두 아이들을 바라보는 언니의 표정.
난 그 표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두 동생들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에는 아까의 엄마 같은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얼굴에는 부러움 같은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물을 들이켜는 아이의 행동.
뭔가 이상했다.
“어머니. 저 아이가 속이 안 좋다고 했어요?”
“그렇다네. 어쩌나 안쓰러워서. 하필 이런 날 속이 안 좋아서 맛있는 것도 못 먹고.”
“흐음…….”
아니다.
속이 안 좋은 사람이 어떻게 저 음식들을 저렇게 빤히 바라볼 수 있을까.
아이의 몸은 빨려 들어갈 듯이 앞으로 굽어 있었다.
저건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강력한 표현이다.
난 머릿속으로 대강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 면 하나만 삶아 주세요.”
“응?”
잠시 후, 방금 만든 짜장면 그릇을 들고 테이블로 향했다.
“여기 짜장면 나왔습니다.”
아이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짜장면 냄새를 맡았는지 침을 꿀꺽 크게 삼켰다.
“아, 저희는 시킨 적이…….”
“음…… 아까 실수로 하나를 안 준 것 같아서…… 우리 친구 나이가 몇 살이야?”
“아…… 저…… 열세 살이에요. 그래서 짜장면 못 먹어요. 아, 맞다. 속도 안 좋고요.”
“열세 살? 만으로는 몇 살인데?”
“만이요? 그게 뭐예요?”
“음…… 친구 나이에서 한 살을 빼. 그럼 그게 만 나이야. 그럼 만으로는 열두 살인 거네. 짜장면도 먹을 수 있고.”
“아, 진짜요? 전 몰랐어요. 열세 살은 짜장면 못 먹는 줄 알았어요.”
“열세 살은 못 먹는데, 친구는 만 열두 살이니까 먹어도 돼. 속은 안 좋겠지만, 맛은 좀 봐 봐. 자, 여기 놓고 갈게.”
짜장면을 놓고 나온 후, 카운터에 있는 아버지를 주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다들 바쁜 것처럼 이런저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으로 향했던 눈이 사라지자 아이는 허겁지겁 면을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릇 안에 가득 찼던 면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