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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67화 (67/110)

#67화 어린이날엔 짜장면이지 (1)

김흥범 교수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총장은 아니겠지만, 그라면 이 음식을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학생들의 수준에서는 내기 힘든 맛이라는 것도 단번에 알아챌 거고.

그래서…… 안대훈에게 당부했다.

그냥 학생들이 한 거로 해 달라고.

내가 했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이유는 있었다.

학생들만의 행사인 축제에, 애초에 나는 개입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니까.

나는 그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듯이 단골인 안대훈을 도와주러 왔을 뿐이었다.

내가 음식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학생들이 곤란해질 수도 있고.

학교 축제에 무슨 외부인을 데려다가 요리를 시키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은 맛있게 만들어 내주었다.

정체를 숨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저 후덕해 보이는 총장님이 맛있게 음식을 드시는 거니까.

저분이 만족한다면…… 김흥범도 만족할 거고.

그럼, 기분이 좋아질 거다.

기분이 좋아지면 무슨 일이든 잘 풀릴 가능성이 높아질 거고.

잠시 후.

켄터키 할아버지를 닮은 총장은 허허허 웃으며, 주점을 빠져나갔다.

만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가득 띤 채로.

맛있었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덕분에 뒤따라 가는 김흥범의 어깨도 쫙 펴져 있는 듯했다.

맛있게 드셨으면 된 거다.

언제나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바람은 특별할 게 없다.

그저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 주기를 바랄 뿐.

맛있게 드신 총장님이 웃고, 그러면 김흥범도 웃고, 김흥범이 웃으면 안대훈도 웃고, 그러면 주점의 모든 학생도 웃고.

모름지기 축제란 그런 맛 아니겠는가.

신나게 웃고, 떠들고, 환호하고, 기뻐하고.

우리 모두.

다 같이.

* * *

5월에는 축제도 많지만, 기념일도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로즈데이 같은 날들.

그중 가장 제일은 어린이날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대한민국의 모든 어린이가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니까.

어버이날이 온다고 막 설레고 그런 어버이도 없고, 스승의 날이라고 며칠 전부터 가슴 뛰는 스승도 없다.

석가탄신일이라고 부처님이 현신해서 방방 뛸 일도 없고.

하지만, 어린이날은 다르지.

세상의 모든 존재들 중 가장 활기차고 에너지가 많은 존재인 어린이들이 목놓아 기다리는 날이니까.

선우네 백반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야지.

어린이날에 무슨 백반집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엔 생각보다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어린이가 부모님의 양손을 잡고 놀이동산에서 신나게 뛰어놀 때, 어떤 어린이는 일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며 굶주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한 명이라도 그런 어린이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선우네 백반에서 맛있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린이날 특별 메뉴는 성공인 거다.

<오늘의 ‘특별’ 메뉴>

- 짜장면

- 미니 탕수육

- 군만두

- 단무지

- 김치

*오늘은 어린이날. 12세 이하 어린이들은 무료입니다. 단, 준비한 음식이 다 소진되면 마감입니다. 어서 어서 들어오세요!

짜장면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재료는 바로 춘장이다.

먼저, 춘장을 식용유에 볶는 것부터 짜장면을 만들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는 거다.

최덕호에게 공급받은 춘장을 커다란 팬에 충분히 넣고, 식용유 역시 충분히 붓는다.

그리고, 춘장을 튀기듯이 볶아 준다.

춘장이 뭉침 없이 잘 풀어질 정도로 볶아졌으면, 기름을 덜어 내고 한쪽에 볶은 춘장을 놓아 둔다.

짜장에는 파, 양파, 양배추가 들어간다.

오늘이야말로 진민호의 커다란 중식도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날.

“민호 아저씨. 파부터 송송 썰어 주세요!”

“오케이. 간다!”

탁. 탁. 탁.

묵직한 칼이 도마를 때리는 규칙적인 소리.

참 언제 들어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다.

식욕이 돋는 소리고.

민호 아저씨가 송송 썰어 준 파를 식용유에 넣고 파기름을 낸다.

수분이 날아가고, 파 향이 풍기고, 보기에도 노릇하게 파가 익을 때쯤, 다진 돼지고기와 설탕을 넣는다.

설탕이 팬 위에서 눌어 가며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를 풍겨 내면 양파, 양배추를 넣고 계속 볶는다.

양파와 양배추의 숨이 죽을 때까지.

의외로 오래 볶아야 한다.

양배추라는 채소는 생각보다 질기거든.

채소가 다 익으면 그때 만들어 놓은 춘장을 넣고 같이 볶는다.

이 볶아진 상태는 흔히 얘기하는 간짜장이다.

간짜장은 손님이 올 때마다 일일이 볶아 내기에 일반 짜장보다는 신선한 느낌이다.

고기나 채소의 질감도 살아 있고.

하지만, 오늘은 많은 손님이 예상되는 바.

일일이 손님이 올 때마다 볶아 내는 건 무리가 있다.

간짜장을 일반 짜장으로 바꾸는 방법?

어렵지 않다.

볼에 물을 받아서 팬에 부어 준다.

물만 붓고 다시 졸여 줘도 간짜장에서 일반 짜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아직 부족해 보인다.

약간 묽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의 추가 재료가 들어가야 한다.

바로 전분물.

물과 전분을 섞은 전분물을 천천히 넣으면서 잘 섞어 준다.

이때 잘 저어주지 않으면 전분물이 가운데에서 뭉치니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짜장 소스와 전분물을 잘 섞어 주면 짜장 완성.

여기에 삶은 면을 섞으면 짜장면, 밥을 섞으면 짜장밥이 되는 거다.

다음으로는 오늘의 두 번째 메뉴, 탕수육을 만들 차례이다.

탕수육은 튀김이지만, 튀김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튀김이 튀김 가루를 이용해서 만든다면, 탕수육은 전분 가루를 고기에 입혀 만들기 때문이다.

전분 가루를 고기에 입히기 위해서는 전분 앙금이란 걸 만들어야 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볼에 전분과 물을 섞은 후 기다린다.

한 30분 정도 기다리면, 전분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위에는 투명한 물만 남는다.

그 물을 버리면 바로 전분 앙금이 되는 거다.

기다리는 동안, 탕수육 소스를 만든다.

물에 설탕, 간장, 식초, 오이, 당근, 목이버섯을 넣고 끓여 준다.

아, 후르츠 칵테일 통조림도 빼놓을 수 없다.

어렸을 때는 그 통조림의 파인애플을 하나씩 건져 먹는 게 큰 재미 중 하나였다.

중간중간 맛을 보면서 달면 식초를 추가하고, 너무 시면 조금 더 끓여 주면 되겠다.

식초 맛이 많이 난다고 설탕을 더 넣어 줄 필요는 없다.

식초는 오래 끓으면, 신맛이 날아가는 대신 단맛을 내니까.

그렇게 적당히 끓여 주면 탕수육 맛을 돋워 줄 소스 완성.

앙금이 다 만들어지면, 최덕호 사장님에게서 공급받은 질 좋은 뒷다리살을 전분 앙금에 버무린다.

아, 탕수육을 보통 등심으로 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지금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국집에서는 돼지 뒷다리살을 쓴다.

이유?

등심보다 절반이나 싸고, 맛은 똑같으니까.

굳이 돈까스에 쓸 등심을 비싼 돈 주고 탕수육에 쓸 이유가 없는 거다.

달군 기름에 전분을 입힌 고기를 하나씩 떼어 넣어 준다.

튀김을 젓가락으로 건드렸을 때 바삭하다는 느낌이 들면, 붙어 있는 것들을 툭툭 쳐서 분리해 준 후 건져 낸다.

그렇게 체에 받혀 1분 정도 둔 뒤, 다시 기름에 넣어 2차로 튀겨 준다.

2차로 튀길 때는 약 1분 정도만 간단하게 튀겨 내면 된다.

그렇게 튀긴 고기를 다시 기름에 넣는 도중 옆에 있던 진민호가 묻는다.

“왜 고기를 두 번 튀기는 겁니까?”

“아…… 수분을 완전히 날리는 겁니다.”

“수분이요?”

“네. 고기에 남아 있던 수분이 첫 번째 튀길 때 튀김옷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 남아 있는 수분을 두 번째 튀길 때 기름과 함께 날려 보내면 더욱더 바삭한 튀김이 되는 겁니다.”

“아…….”

진민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이렇게 두 번 튀기면 시간이 조금 지나도 바삭함이 계속 유지가 된다.

군만두는 시중에 파는 군만두용 만두를 사서 굽기로 했다.

단, 약간의 특별함을 추가하기 위해 일반 군만두가 아닌 교자식으로 굽는다.

군만두를 팬에 넣게 펼쳐 둔 후, 먼저 바닥을 노릇하게 굽는다.

다음 물을 약간 붓고 뚜껑을 닫아 만두의 윗부분과 속을 찌듯이 익혀 낸다.

그렇게 하면, 바닥면은 바삭하고, 윗면은 촉촉하고, 속은 잘 익은 교자식 군만두가 완성된다.

자, 오늘의 메뉴 완성.

무엇보다 먼저 맛을 봐야지.

시식을 위한 한 상을 차려 냈다.

호로록.

면을 흡입하는 고종숙 여사가 내는 경쾌한 소리.

“우와…… 이거 완전히 파는 짜장면 맛인데?”

“그러게요. 선우야, 이거 진짜 완전 맛있다. 진짜 파는 것 같아!”

옆에 있던 안순미 아주머니도 거든다.

“음…… 지금 두 분이 드시는 거…… 우리가 팔 거긴 해요.”

“아…… 그렇네?”

“그렇구나. 맞다. 이것도 파는 거지. 호호호.”

고 여사가 멋쩍은 듯 웃는다.

파는 것 같은 맛이라……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안다.

여기가 중국집도 아니고, 내가 중국집 셰프도 아닌데, 그만큼 이 짜장면이 맛있다는 얘기신 거지.

어쩌면 두 분의 말씀은 최고의 칭찬이겠다.

뭐니 뭐니 해도 짜장면은 사 먹는 맛이 최고다.

중국 음식은 예전부터 늘 외식 메뉴로 사랑받아 왔으니까.

바스락.

아버지의 입에서 먹음직스러운 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버지는 감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난 이 탕수육 진짜…… 내 인생 탕수육인데?”

“저도 이 탕수육이 진짜 최고인 것 같네요. 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흐음…….”

진민호가 덧붙였다.

소스도 없이 탕수육 한 조각을 더 집어먹은 아버지가 묻는다.

“근데…… 이 탕수육은 왜 노릇노릇하지도 않은데 이렇게 바삭한 거냐?”

“아…… 원래 전분을 묻혀 튀긴 건 바삭하게 튀겨 내도 그렇게 하얀색을 띱니다. 노릇해지면 잘못된 거예요.”

“엥? 노릇해질수록 맛있게 튀겨진 게 아니고?”

“네. 전분 튀김옷은 아무리 튀겨도 그렇게 노릇해지지 않아요. 만약 탕수육이 노릇하다면 그건 고기의 핏물을 제대로 제거해 주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핏물을 잘 제거해 주면 그렇게 하얗게 예쁜 색으로 더 바삭한 튀김이 만들어집니다.”

“오…….”

아버지의 얼굴에 다시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이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지금 입을 놀렸다가는 순식간에 먹을 것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

그 불안감의 근원은 바로 푸드 파이터…… 혜승이었다.

그녀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뭘 궁금해하든, 이 짜장면이 파는 맛이든 아니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입으로 음식을 가져갈 뿐.

가게 안은 단순하면서도 원색적인 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후루룩, 바사삭, 쩝쩝.

후루룩, 바사삭, 쩝쩝.

그저 맛있게 먹는 소리에 중간중간 와…… 하는 감탄사만 추임새로 들려왔을 뿐.

충분히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남는 것 따위는 없었다.

맛있는 시식을 마치고, 마저 장사 준비를 끝냈다.

오늘 유난히 사람들의 표정이 더 밝아 보였다.

어린이날이라 그런가?

그렇게 장사 준비를 마치고 나니, 어떤 어린이 손님들이 가게를 찾아 줄지 자못 궁금해졌다.

이왕이면 많은 어린이가 무료 짜장면을 많이 먹고 갔으면 좋겠다.

만들어 놓은 게 부족해서 쉬지 않고 음식을 해도 좋으니까.

이날만큼은 최대한 많은 아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짜장면을 입에 한가득 넣고, 입가에 묻혀 가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만 같다.

짜장면은 맛있어야 맛이고, 어린이들은 웃어야 맛이다.

활짝 웃는 어린이의 미소만큼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게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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