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축제의 맛 (3)
대학교에는 대학생이 가장 많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있고, 학교의 행정을 수행하는 교직원이 있다.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름대로의 직분을 다하고 있다.
학생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을 때에도 그들이 대회의실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이유이다.
“하반기 대학 평가에서는 역시 취업률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각 학과에서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과 행정을 꾸려 나가시길 바랍니다.”
회의를 마무리하는 멘트가 끝나고,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총장이 입을 열었다.
“김흥범 학과장님.”
“네, 총장님!”
김흥범이 얼른 일어서서 총장의 옆으로 다가갔다.
“부르셨습니까?”
“뭘 그렇게 딱딱하게 서 있어요. 편히 앉아요. 그 옆에.”
“네, 총장님.”
자리에 앉은 김흥범은 총장의 얼굴을 일견했다.
신임 총장은 인심 좋은 할아버지처럼 생긴 인물이다.
머리만 하얗게 세면 딱 켄터키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그런 사람이다.
얼굴만 봐서는 진짜 친형이나 삼촌처럼 대해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김흥범은 조심하고 있다.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게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깨달은 진리다.
총장이 허허, 웃으며 말한다.
“지금이 축제잖아요, 학과장님.”
“네, 맞습니다.”
“내가 이 학교 총장으로 오면서 다짐한 게 있어요. 학생들이랑 최대한 친하게 지내자. 그래서 친근하고 다가가기 쉬운 총장이 되자.”
“아…….”
김흥범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런 멘트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한 대외용 멘트인가, 아니면 진짜 그의 진심인가.
적어도 이런 멘트를 하는 사람치고 정말로 학생들이랑 친근하게 지내려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래서 말인데…… 외식경영학과 주점 음식 맛이 어때요?”
“예?!”
갑자기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만큼 놀라고 당황했다는 뜻.
“뭘 그렇게 놀라요? 허. 허. 허.”
“아, 그, 그런 게 아니고…… 아…… 그러니까…….”
학생들이랑 친해지고 싶다, 그리고 주점의 음식 맛을 물어본다.
그럼 총장이 하고 싶은 말은 뻔하다.
외식경영학과 주점에 가 보고 싶다는 말이겠지.
음식 맛을 보고 싶다는 말이다.
하…… 어차피…… 거절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그가 보아온 총장들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사람을 자르고 붙였다.
관용 따위는 없었다.
“마, 맛있습니다. 네, 그럴 겁니다.”
“오…… 그런가요? 하긴, 우리 학교의 외식경영학과가 전국적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허. 허. 허.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아시다시피 제가 좀 먹을 걸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배가…… 허. 허. 허.”
“…하하하…….”
마지못해 따라 웃는 김흥범.
얼굴로는 웃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 그럼 갈까요?”
“네, 총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 * *
송은희는 김흥범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어머, 이거 어떡해! 비상이다, 비상!”
슬리퍼를 신은 그대로 조교실을 뛰쳐나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외식 마을이 운영되고 있는 잔디밭.
총장님이 외식 마을에 오신다고?
일단 자리부터 마련해야 한다.
학생들 단속도 시켜야 하고.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쫓아내야 한다.
학과장님도 아니고, 무려 총장님이 직접 오신다니까.
뛰어가는 동안 외식 마을 담당인 안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대훈아! 비상이다, 비상!”
- 왜요, 누나? 무슨 일 있어요?
“초, 총장님이 가신대!”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총장님이 어딜 가신다고요?
“외식 마을!!! 총장님이 지금 거기로 가고 있대!”
- 네에?? 와 씨, 젠장. 아, 알겠어요! 잠깐만. 그럼 저 뭐 해야 돼요?
“일단 좀 자리부터 마련해 두고, 깨끗하게 정리도 좀 하고, 아, 그리고 음…… 학생들한테 주의도 좀 시키고!”
- 네네, 알겠어요! 와, 미치겠네.
안대훈은 바쁘게 움직였다.
총장님이 외식 마을에 오신다는 건 전혀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아니, 지금까지 그런 적이 있었나?
교수님들이 학생들 보러 잠깐씩 들르는 건 봤지만, 총장님이 직접 오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 왜 하필 올해에 그러시나.
서빙을 하는 친구들에게 주의를 준 안대훈은 주방, 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어쨌든 선우가 음식을 만들고 있는 그곳으로 뛰어갔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네? 큰일이요? 해물파전이 열 개씩 주문 들어오기라도 했나요?”
진짜 식당 주방이라면 모르겠지만, 이곳은 대량으로 주문이 몰리면 답이 없다.
버너도 몇 개 없고, 화력도 거의 장난감 수준이니까.
“초, 총장님이 오신대요?”
“여기로요?”
“네! 여기 외식 마을로요!”
“총장님이 왜요?”
“그건 저도 모르죠! 암튼 완전 큰일 났어요! 어떡하죠? 뭔가 특별한 메뉴라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미치겠네. 실수라도 하면 학과장님한테 혼날 텐데…….”
“음…… 일단은 대훈 씨는 홀 쪽에서 잘 응대를 해 주세요. 음식은 저한테 맡기고.”
“그래도 될까요?”
“저 못 믿어요?”
“아뇨. 믿죠! 믿습니다!”
“그래요. 그럼 전 음식 만들고 있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안대훈이 꾸벅 인사를 하고 다른 쪽으로 뛰어갔다.
총장이라…… 좀 특이하신 분인가 보네?
학교 축제 주점에 총장님이 오신다는 소리는 못 들어 본 것 같다.
김흥범 교수도 죽을 맛이겠다.
지금 총장을 이리로 모시고 오는 건 바로 그일 테니까.
근데…… 어쩐지 긴장 같은 건 하나도 되지 않는다.
전생에서도 사업이 커지면서 여러 정계, 재계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들에게 식사 대접을 한 적도 많았고.
그리고 뭐…… 나도 좀 한가락 하는 거물…… 이라고 대접받기도 했고.
에헴. 어쨌든…… 내 생각은 이렇다.
총장이 어떤 사람이든 주점에 뭘 기대하고 오든 간에 특별 대접 같은 건 없다는 것.
비록 하루밖에 영업을 안 했지만, 주점에서 늘 내어주는 메뉴를 최대한 맛있게 만들어서 내보내는 것.
그것 외에는 별다른 게 없다.
그건 특별한 것도 아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렇게 해야 하는 거니까.
이건 내가 영훈대학교 교수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어서가 아니다.
그냥 음식을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래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음식 앞에 차별은 없으니까.
* * *
“어서 오세요! 외식 마을입니다!”
“반갑습니다! 외식 마을입니다!”
총장을 반기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더 밝고 활기찼다.
“오…… 역시 외식경영학과 학생들입니다. 분위기가 활기차고 좋군요. 허. 허. 허. 그래요, 저도 반갑습니다. 허. 허. 허. 허. 허.”
너털웃음을 지으며 준비해 둔 자리로 향하는 총장.
김흥범은 바쁘게 그의 뒤를 따랐다.
안대훈이 메뉴판을 들고 잽싸게 뒤따라왔다.
“오…… 이게 오늘 메뉴입니까?”
“네, 총장님!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음…… 학과장님은 어떤 게 좋으세요?”
“아, 저는 다 좋습니다. 하하하. 우리 학생들이 워낙에 음식을 잘해서요.”
말을 하는 김흥범은 내심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제 주점에 학과장이 큰 신경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문제나 사고를 일으키지 않기를 바랄 뿐.
축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이끌어 나가는 행사니까.
그러니, 주점에서 뭘 파는지, 어떤 게 맛있는지, 누가 요리를 만드는지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마지막 날 즈음 방문해서 어깨나 한두 번 두드려 줄 생각이었다.
그게 학과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총장까지 데리고 주점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
“이거 큰일이군요.”
“네, 총장님?”
“큰일입니다. 큰일.”
총장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미간의 잔뜩 힘을 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 맛있을 것 같아서…… 큰 고민이에요. 정말 큰일입니다. 큰일. 허. 허. 허.”
“아…… 그러셨군요. 하하하.”
“그냥 다 시키죠, 학과장님.”
“그럴까요?”
“네. 저기요. 사장님!”
총장이 직접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안대훈을 불렀다.
“우리 삼겹살 제육볶음, 소고기 안심 구이, 해물파전, 어묵탕 할게요. 술은 소주와 맥주.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아…… 메뉴를 다 고르셨군요. 정말 다른 건 필요 없겠습니다. 하하하. 잘 선택하셨습니다. 저희 주점 음식이 다 맛있거든요.”
“오…… 좋아요.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우린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다른 손님들처럼 생각하세요. 허. 허. 허.”
안대훈이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김흥범은 내심 안대훈의 자신감 넘치는 멘트가 마음에 걸렸다.
다 맛있다고?
하아…… 총장을 비롯한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가 바로 이런 거다.
외식경영학과 학생들은 다 음식을 잘할 거라는 오해.
그건 아주 심각한 오해이다.
외식경영학과 학생들은 외식경영을 배우려고 온 거지, 요리를 배우러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음식은 다들 잘 먹는다.
다들 먹는 거 좋아하고.
하지만…… 잘 먹는다고 요리 잘하나?
그건 완전 별개의 문제이다.
근데 왜 쟤는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 * *
잠시 후.
총장이 주문했던 요리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전복, 소라, 새우, 오징어가 가득 올려져 있는 해물파전.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향을 풍기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삼겹살 제육볶음.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갈색 빛깔을 한 채로, 진한 육향을 뿜어내고 있는 소고기 안심 구이.
그리고, 보기만 해도 짭짤하고 칼칼하고 시원할 것 같은 어묵탕까지.
“으흠…….”
음식을 본 총장이 감탄의 침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총장보다 더 놀란 건 바로 김흥범이었다.
‘아니…… 이 담음새가…… 이거 뭐지?’
김흥범의 지론 중 하나.
음식은 먼저 눈으로 먹는다.
따라서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음식의 담음새는 그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음식들의 담음새가 너무 훌륭했다.
이런 축제의 주점에서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그란 쟁반에 담긴 소고기 안심 구이는 깍둑 썬 상태에서 모양을 잡아 원래의 안심 부위처럼 보였다.
마치 실로 고기를 묶어 놓은 것처럼.
삼겹살 제육볶음은 그 색이 예술이었다.
보기만 해도 흰밥이랑 빨리 한술 뜨고 싶은 그런 먹음직스러운 색깔이었다.
해물파전은 또 어떤가.
새우, 전복, 오징어, 소라 등의 고급 해산물이 촘촘이 박혀 있어서 식욕을 자극했고, 부침의 두께 또한 딱 알맞았다.
그저 빨리 길게 찢어서 양념간장에 찍어 먹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이렇게 할 수 있는 애들이 아닌데?’
총장이 황홀한 표정으로 음식 맛을 보는 도중, 김흥범이 조용히 안대훈을 불렀다.
“이거 음식 누가 한 거니?”
“저희가 했습니다.”
“그래, 아는데…… 너희 중에 누구?”
“아…… 신입생이라 잘 모르실 겁니다.”
“신입생? 이름이 뭔데? 요리하다 온 애야?”
“이우선이라고…… 있습니다.”
“이우선?”
고개를 갸웃하는 김흥범의 귀에 총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과장님!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외식경영학과 학생들다워요. 허. 허. 허. 특히 이 해물파전은 이전에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특별한 맛입니다! 허. 허. 허.”
총장의 얼굴에 만족감의 미소가 피어 올라 있었다.
다행이긴 다행인데…… 신입생 이우선이 누굴까?
진짜 요리사 출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