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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62화 (62/110)

#62화 행복은…… 김치전에 (2)

바스락.

튀긴 듯이 익은 전 끝부분의 바삭한 식감이 참 좋다.

모든 전이 이 부분처럼 바삭했으면 좋겠다는 게 전을 구울 때의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얇고 넓게 전을 부친다.

그래야 이 바삭한 맛을 전의 전 부분에 걸쳐서 음미할 수 있으니까.

단, 김치전에 삼겹살을 넣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삼겹살 김치전은 끄트머리, 가운데 할 것 없이 다 맛있다.

고기, 김치, 밀가루.

맛있는 세 가지가 기름을 만나 함께 구워졌다.

맛없을 수가 있는가?

“선우야. 이거 너무 맛있다.”

“진짜…… 아니, 김치전에 삼겹살을 넣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거니?”

“인터넷에서 봤어요.”

“아…… 인터넷…….”

“인터넷이라는 게 참 좋은 건가 봐.”

“그럼요. 별게 다 있죠. 후훗.”

그렇게 방금 부친 김치전을 흔적도 없이 먹어 치운 우리.

두 번째 전을 부치는데 왠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전을 부쳐 먹으면서…… 들이켜는…… 막걸리가 없었구나.

“어머니, 전 좀 보고 계세요.”

얼른 내려가서 시원한 막걸리를 가지고 올라왔다.

이제는 정말 완벽해졌다.

잠시 후.

디저트로 믹스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든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내리는 비를 바라봤다.

“우리 이 집으로 오길 참 잘한 것 같아.”

“나도. 사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걱정을 많이 했다 뿐이랴.

이 집 살 때 내가 두 분 설득하느라고 몇 날 며칠을 고생한 걸 생각하면…….

죽어도 대출은 안 된다고 했던 분들이 누구였더라?

“선우야. 고맙다.”

“나도…… 고맙다, 선우야.”

“네? 고맙긴요.”

“아니야, 정말 고마워.”

아버지가 내 얼굴을 은근히 바라봤다.

그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고개를 홱 돌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좋지만, 남자끼리 저런 눈빛은 좀 곤란하지.

난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저런 눈빛은 뭔가 마음속으로 심한 감동을 느꼈을 때 나온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건 눈물만이…….

“지난 몇 달간의 시간이 진짜 꿈만 같구나.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어.”

“맞아. 그때 당신은 허리 디스크로 누워 있었고, 나는 매일 한숨만 쉬면서 근근이 살아갔지. 선우 너는…….”

“매일 게임만 하며 살았었죠.”

그때의 나는 그랬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도와 가게를 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가게에 없었다.

그저 빨리 끝내고 재동이랑 같이 게임이나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공부도 재미없었고, 장사도 재미없었다.

여러모로 갈 길을 잃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우리집이 변한 건 선우 네 덕분이다. 무슨 마술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 아빠를 네가 일으켰어.”

“그래. 가게도 네가 일으켰어. 진짜 무슨 마술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마법처럼 네가 가게를 완전히 바꿔 놓았어.”

“그거 진짜 마법 맞아요.”

“뭐?”

“마법 맞다고요. 게임을 하도 하다 보니까 마법도 배우게 되더라고요. 헤헤.”

너스레를 떠는 내 모습에 두 분이 한바탕 크게 웃으셨다.

덩달아 나도 웃었다.

진짠데…… 내가 마법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건 맞거든.

아…… 세 가족이 모여 이렇게 환하게 웃는 이런 장면.

내가 가장 꿈꿔 왔던 이 장면.

이런 장면은 전생에서도 없었던 장면이다.

우리집이 평범한 가정이긴 했지만, 어떤 집보다도 화목한 가정이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으니까.

사실 모든 건 장사가 안되고, 아버지가 쓰러지고, 그러면서 사는 게 힘들어지니 생겼던 문제였다.

누구나 그렇다.

기본적인 생계가 힘겨운데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주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그래서 의식주가 중요하다고 하는 거다.

두 분의 말마따나 어떤 마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십오 년 전으로 돌아온 나는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기본이 되어야 행복한 삶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선우야. 이 아버지 진짜…… 행복하다.”

아버지의 눈가엔 늘 그렇듯이 눈물이 찔끔 맺혀 있었다.

“저도 그래요. 행복해요.”

이런 날에 좀 울면 어떤가.

하늘도 새싹을 틔우는 봄비를 이렇게 쏟아 내고 있는데.

역시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은…….

김치전에 있다.

* * *

어느 날 갑자기 화천에 사는 미숙 이모가 생각났다.

그때 거짓말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미숙 이모였다.

볼에 땀이 가득 찰 때까지 이모와 통화를 했다.

뜨거워진 전화기 때문에 더웠고, 흘러내리는 땀이 불편했지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모가 들려줬던…… 마치 드라마 같은 이야기 덕분이다.

이모는 여느 때처럼 평상에 앉아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외로우면서도 행복했다.

그렇게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모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해가 지는 시간이면 이런 산골에는 인기척이 뚝 떨어진다.

원래도 사람이 잘 없지만, 해가 져 가는데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산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그렇게 긴장을 하며 올라오는 사람을 주시하는데…… 오 마이 갓.

그 사람을 본 이모는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헉…… 헉…… 잘 지냈어?”

“…….”

“찾아오느라 진짜 힘들었어…… 나 물 한 잔만 주면 안 돼?”

이모는 말없이 차가운 물을 그에게 건넸다.

꿀꺽 꿀꺽.

물 넘기는 소리가 고요한 산골을 울렸다.

여전히…… 곰 같구나.

듬직한 체구도 그대로였고, 그 체구로 물을 마시는 폼도 여전히 곰 같았다.

그랬다.

그는 이모가 애정하는 곰이었던 전 이모부, 조원중이었다.

이제는 그냥 아저씨 또는 전 이모부.

“왜…… 온 거야?”

십오 년만이다.

그 간 일체의 연락도 없었다.

서로의 모든 걸 깡그리 잊고 산 시간이다.

조금씩 조금씩 이모가 가슴에 새겨졌던 상처를 극복하고 있던 시간이다.

그런데, 왜.

왜 이제야.

이모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제 와서 왜 여기까지 온 거냐는.

“그대로네. 얼굴도 그대로고, 표정도 그대로야. 아니다. 표정은 더 좋아졌네. 나랑 같이 있을 때보다.”

이 남자가 꿀을 퍼먹었나.

같이할 때도 한 번도 안 하던 그런 말을 한다.

이 곰은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할지라도 결코 그런 걸 표현할 사람은 아니다.

곰이 달리 곰이랴.

“흠흠…….”

이모는 생각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찌해야 하나.

꽁꽁 숨겨진 산골에 이 곰이 그냥 찾아왔을 리는 없고.

뭔가 할 얘기가 있을 테고.

역시 이럴 땐…… 뭘 좀 먹는 게 좋겠다.

“밥 먹었어?”

곰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밥 얘기를 하니까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곰.

그래, 일단 뭘 좀 먹고 들어 보자.

무슨 얘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딱 마침…… 두릅을 판 돈으로 사 온 적당한 식재료가 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참 신기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그 식재료는 바로…… 연어.

곰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늘 나오는 장면.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튀어 오르는 연어를 낚아채서 잡아먹는 곰들이 나오는 장면.

어쩜 이런 날에 딱 맞춰 왔을까.

곰이 이제 눈치를 장착한 걸까?

우연이겠지만…… 왠지 피식 웃음이 난다.

마침 연어를 사 온 날에 찾아온 곰이라…….

연어는 충분히 사 왔다.

두릅을 판 돈이 꽤 쏠쏠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먹는 김에 풍성하게 먹어 보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생연어는 그대로 잘라서 먹으면 되고…… 두툼한 한 조각은 연어 스테이크를 해 볼 생각이다.

“불 좀 피워 줄래?”

“어, 불?”

“그래, 불. 거기 화덕 있잖아. 아…… 장작부터 패야 되는구나.”

집 뒤편에는 여기저기서 주워 온 나무를 장작으로 팰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곰은 도끼를 들고,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매우 잘 어울렸다.

곰이 장작을 패고, 불을 피우는 동안 연어 스테이크를 위한 준비를 한다.

껍질이 그대로 붙어 있는 연어의 수분을 제거해 준다.

수분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제거해 준다.

수분을 제거해 준 연어살에 앞뒤로 넉넉히 소금을 뿌려 준다.

그렇게 살짝 숙성을 시키고 나니, 어느새 곰이 화덕에 불을 피워 냈다.

솥뚜껑을 개조한 팬을 올리고, 기름을 충분히 부어 준다.

팬이 충분히 달궈진 후에는 불을 아주 약하게 조절해야 한다.

“장작 좀 빼 줘.”

“오케이.”

“조금 더 빼 줘. 불이 최대한 약해야 되니까.”

“알겠어.”

불이 최대한 약해진 걸 확인한 후, 껍질이 붙어 있는 부분을 팬에 닿게 올린다.

연어 스테이크의 핵심은 바로 바삭한 껍질이다.

껍질이 바삭해지려면, 약한 불에 오래 구워야 한다.

이건, 연어를 좋아하는 고미숙이 여러 번의 실패 끝에 터득한 방법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내이다.

다 익었다는 생각에 뒤집어서 구워 버리면, 연어살은 순식간에 익어 버린다.

과하게 익은 연어살은 퍽퍽하기 이를 데 없고.

연어의 윗부분은 뒤집지 않은 상태로 익혀 준다.

별다른 비법은 없다.

잘 달궈진 기름을 숟가락을 이용해 살 위로 계속 부어 주면서 익히면 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연어의 색이 핑크색에서 적당히 익은 살색으로 변한다.

겉면의 색이 전부 살색으로 변할 때쯤 되면 연어 스테이크 완성.

“소스 같은 건 없어. 여기 산나물 무침을 샐러드라고 생각하고, 이 장아찌들을 피클이라고 생각해. 난 이렇게 먹어. 뭐, 더 맛있기도 하고.”

“맛있겠는데? 느끼한 소스랑 함께 먹는 것보다 더.”

“그래. 제법 먹을 만해. 당신…… 그러니까 조원중 씨…… 오빠……? 에이, 참. 뭐라고 불러야 돼! 하여간, 그쪽 말처럼 느끼하지도 않고 좋거든.”

곰이 씨익 웃었다.

호칭 때문에 복잡해하는 고미숙의 얼굴이 귀여워 보였는지.

바삭한 껍질의 식감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굉장한 감칠맛이 껍질에서 묻어 나왔다.

그 감칠맛과 함께 미디움 정도로 적당히 익은 연어살을 먹으니, 가히 천상의 맛이었다.

산등성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해가 만들어 내는 붉은 노을은 그 분위기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 줬고.

“나, 자고 가도 되지?”

푸웁.

갑작스러운 곰의 말에 고미숙의 입에서 씹던 연어 껍질이 튀어나왔다.

“뭐?!”

“왜 그렇게 놀라? 그럼 나더러 이 산골에서 지금 내려가라는 거야? 이렇게 어두운데?”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설마 이 곰이 올 때부터 그럴 작정으로 온 건가.

곰은 뭐가 즐거운지 스테이크와 함께 마시자고 내온 담금주를 벌컥 들이켰다.

“크으. 좋다. 이거 몇 년 묵은 술이야?”

“십오 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가장 먼 사이가 된 그날부터 지금까지.

술이 익어 가는 그 시간 동안 각자의 시간도 익어 갔다.

이제는 들끓던 그 마음도 다 사그라들었고, 누군가를 향한 미움 같은 감정들도 잊혀 가고 있었다.

“뭐, 그러시던가. 어차피 방은 많으니까.”

“오케이. 그럼 마음 놓고 마셔야겠다.”

짠.

산골의 밤하늘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술잔이 맞부딪혔다.

원래 산골의 밤은 짧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꽤 긴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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