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행복은…… 김치전에 (1)
김명장 베이커리는 두 달째 휴업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휴업이 시작한 게 내가 김명장 아저씨와 얘기를 나눈 다음 날이었다.
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 또는 불안감을 느꼈다.
내가 잘못 얘기한 걸까?
아저씨도 아저씨만의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린 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으로 맘 졸이던 어느 날 김명장 아저씨가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브레이크 타임이 되자마자 앞치마를 벗고 길을 나섰다.
김명장 베이커리로.
* * *
“파티시에님, 안녕하세요.”
“어, 선우야! 아니 이 셰프!”
김명장 아저씨는 나를 유일하게 제대로 ‘셰프’라고 불러 주는 유일한 시장 사람이다.
“오랜만에 뵙네요?”
“응, 한 두 달 만인가?”
아저씨는 환하게 웃었다.
쉬고 오셔서 그런지 뭔가 재충전을 확실히 하신 듯했다.
“그동안 푹 쉬신 거예요?”
“쉬었냐고? 내가 쉴 시간이 어디 있어?”
“아…… 그럼 뭐 때문에 두 달을…….”
“메뉴 개발했어.”
“메뉴 개발이요?”
“그래! 내가 선우 네 말 듣고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거든.”
“아…….”
“네 얘기 들으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난 뭘 위해 빵을 만들고 있었는가.”
“…….”
“사람들에게 맛있고 건강한 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빵집을 시작한 건데…… 어느 순간 내 고집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었던 거야. 주객이 전도된 거지.”
“그래서 두 달 동안 빵 연구를 하신 거군요?”
“맞아! 선우 네 말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남을 그런 빵을 만들어 보려고. 그저 과거의 기억에 얽매어서 고집만 피울 게 아니라.”
“오…….”
감동적이다.
내 말 몇 마디로 저렇게 변하시다니.
어쩌면 내가 했던 말은 그저 약간의 도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안간힘을 다해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에게 살짝 알의 겉면을 깨어 주는 그런 정도의 도움.
아저씨에게는 이미 그렇게 할 마음이 있었던 거다.
뭔가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을 뿐.
“궁금해지네요. 아저씨가 개발해 오신 새로운 빵이 뭔지.”
“후후. 걱정 말아라. 오늘부터 판매하려고 이미 구워 왔으니까.”
“오, 진짜요?”
“그래. 네 뒤에 한번 봐 봐.”
김명장 베이커리의 새로운 빵은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로 눈에 띈 빵은 ‘뺑 오 쇼콜라(Pain au Chocolat)’.
프랑스어로 ‘pain’이 빵이고, ‘chocolat’가 초콜릿이니, 말 그대로 초콜릿이 들어 있는 빵이라는 뜻이다.
빵 자체는 페이스트리의 맛이나 식감과 비슷한데, 안에 들어 있는 초콜릿으로 인해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빵의 맛에 한 끗의 달콤함을 선사한다.
예전의 아저씨라면, 빵이면 빵이고, 초콜릿이면 초콜릿이지 빵 안에 무슨 초콜릿이냐고 했을…… 그런 종류의 빵이었다.
뭔가를 섞는 것, 전통적인 방식을 파괴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던 사람이었으니까.
다음 눈에 띈 빵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뺑 오 쇼콜라가 페이스트리와 초콜릿을 티 안 나게 섞은 빵이라면, 이 빵은 그냥 두 가지 종류를 대놓고 섞은 빵이다.
바로 크로핀.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다시피 크루아상과 머핀이 합체된 빵이다.
머핀의 몸통에 크루아상 머리를 입혔다고 할까?
머핀이랑 기본 형태는 같은데, 머리가 크루아상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그 머리 위에는 초코, 크림, 딸기 등 다양한 부재료를 올릴 수 있다.
그럼 머리색을 염색하는 것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표현할 수 있다.
마치 버섯을 닮은 크로핀의 모양이 꽤 귀엽다.
다음에 만난 빵은 진짜 크로핀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아저씨. 이 식빵은…….”
“아, 그거…… 색깔이 좀 특이하지? 예전부터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건데…… 빵에 미술 작품을 가미해 놓은 거야. 식용 색소를 활용해서. 그 빵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의 색깔을 차용한 거야. 뭐랄까. 빵이 예술이 된달까? 하하하. 민망하네. 내 입으로 이런 얘기를 하니까.”
와…… 아저씨가 한 얘기는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얘기이다.
지금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런 빵을 몇 년 후에 실제로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
한 대학가에서 시작한 그 빵집은 이 식빵으로 초대박이 났다.
일명 ‘별이 빛나는 밤식빵’.
전국적인 유명세에 빵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 폭발이었으니까.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미래에서 온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 아저씨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아저씨는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닌 거다.
지금까지 전통을 지켜야겠다는 쓸데없는(?) 고집이 아저씨의 능력을 봉인해 놓고 있었던 거다.
이건 잘만 만들어서 팔면 무조건 대박이 날 테니까!
“뭘 그렇게 생각해? 아…… 아무래도 저 빵은 너무 간 거 같지? 나도 사실은 좀 너무 하다 싶긴 했어. 그저 내가 하고 싶었던…….”
“아니요. 계속하세요.”
“응?”
“이 빵 계속 만드시라고요. 다른 미술 작품도 차용해서 만드시고요. 이 빵도 하루에 백 개씩 막 만드시고요. 암튼, 이대로 계속 가시면 됩니다.”
“아, 그, 그럴까?”
“네. 이대로 죽 이 방향으로 가시면 돼요. 너무 잘하셨어요.”
“그래. 고, 고맙다. 참, 그래도 빵 맛은 보고 가야지.”
“보나마나 아니겠어요. 빵 만드는 실력이야 아저씨 이름처럼 ‘명장’이고, 그 맛있는 빵에다가 이렇게 트렌디함과 개성까지 섞었으니, 앞으로 아저씨는 무조건 대박입니다. 파이팅입니다, 아저씨. 아니, 파티시에님.”
두 손으로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고, 빵집을 나왔다.
내가 좀 너무 흥분했나?
아저씨의 새로운 빵 덕분에 살짝 흥분한 건 사실이지만, 일부러 더 과하게 행동한 것도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아저씨에게 자신감을 팍팍 불어 넣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자신감을 가지셔도 될 빵을 만드셨다.
그저 고집을 조금만 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아저씨는 그 몇 배 이상의 노력을 보여 주셨다.
사람이 스스로 태도와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아저씨는 ‘명장’답게 그걸 스스로 해낸 것이다.
모양이 어그러진 도자기를 직접 두 손으로 깨뜨리는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를 가로막고 있던 막을 스스로 깨뜨리고 나오셨다.
앞으로의 김명장 베이커리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 * *
일요일 오후.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창문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각양각색의 우산을 쓰고, 시장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비가 와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는구나.
누군가는 아이들에게 구워 줄 고기를 사 가고, 누군가는 어른들에게 선물할 과일을 사 간다.
누군가는 결혼식장에 가고, 누군가는 일을 하러 간다.
또 누군가는…… 김치전을 생각한다.
그 누군가는…… 바로 나다.
비 오는 날에는 김치전이지.
오늘은 김치전 중에서도 다소 특별한 녀석을 부쳐 볼 생각이다.
바로 ‘삼겹살 김치전’.
별다른 건 아니고, 그냥 김치전에 삼겹살을 넣은 것이다.
아니다.
오늘은 삼겹살에 김치전을 추가할 계획이다.
그만큼 고기를 많이 넣을 예정.
고기는 남으면 아깝지만, 부족하면 화난다.
아까운 게 낫지.
화나는 것보다.
오랜만에 맞는 평안한 휴일에 화를 내는 건 결코 좋지 않으니까.
우선, 옥탑으로 올라간다.
아, ‘건물주’가 되고 나서 가장 좋은 게 바로 이 옥탑의 존재이다.
옥탑에서는 하늘도 볼 수 있고, 빨래도 널 수 있고, 채소도 심을 수 있다.
그리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다.
이게 핵심이다.
저런…….
비가 오는 바람에 평상이 다 젖어 있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처마 끝에 어닝(차양막)을 설치해 두었다.
무려 전자동 어닝.
지잉- 버튼을 누르니 어닝이 천천히 펼쳐지면서 내리는 비를 막아 준다.
이미 평상에 쏟아진 비는 걸레로 잘 닦아 주고.
우선, 최 사장님께 받은 한돈 1+ 등급 오겹살을 프라이팬에 구워 준다.
며칠 전 일기예보를 봤고, 오늘 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도 오니 맛집 탐방은 다음에 가자고 생각했다.
그럼 뭘 먹지?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김치전.
그것도 삼겹살 김치전이 슝- 하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최덕호 사장님에게 연락드렸다.
오겹살 두 근 추가 주문합니다.
김치전에 넣는 고기인데 무슨 그렇게 좋은 고기를 쓰냐, 라고 누군가는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생각한다.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이 만나면 늘 더 맛있는 걸 만들어 낸다고.
그러니, 김치전에 들어갈 고기라고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남는 고기 같은 걸로 만들 수는 없다는 뜻이다.
1+ 등급 한돈 오겹살이 맛깔나게 익어 간다.
바닥면이 익어 가는 고소한 냄새와 함께 윗면도 조금씩 색깔이 변해 가면서 기름기가 슬슬 올라온다.
이때가 바로 고기를 뒤집을 때다.
스윽- 촤악.
기름이 불과 만나 끓는 소리가 경쾌하다.
뒤집은 고기는…… 과연 갈색으로 아주 맛깔나게 구워져 있다.
구운 고기는 가위로 잘 잘라서 팬 위에 그대로 펼쳐 놓는다.
다음은 김치전 반죽을 만들 차례.
나의 김치전 반죽은 세상 간편하다.
물 하나, 부침가루 하나, 김치 하나.
일 대 일 대 일의 비율로 섞는다.
이때 유의할 점은 김치의 양념을 한번 쓰윽 걷어 내 주는 거다.
양념이 들어가면 색깔이 탁해지고, 빨리 타기 쉽다.
어차피 신김치 고유의 맛은 배추 안에 다 스며들어 있다.
섞은 반죽을 삼겹살이 들어 있는 팬에 그대로 붓는다.
기름도 필요 없다.
삼겹살 김치전의 핵심은 바로 이 돼지기름이다.
삼겹살집의 마무리는 늘 볶음밥이다.
바로 이 돼지기름을 써서 볶아 낸 그 볶음밥.
오늘의 김치전에서는 그 삼겹살집 볶음밥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처음에 전을 굽는 방법을 몰랐을 때는 무조건 센 불에 구웠다.
센 불에 구울수록 바삭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바삭해지기는커녕 타기만 했다.
기름을 아무리 많이 부어도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은 그런 전이 만들어졌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알게 되었다.
전은 중불에서 꽤 오래 구워야 한다는 걸.
센 불에서 확 구우면 바삭해질 것 같지만, 중불에서 기름에 오래 구워 낸 게 훨씬 더 바삭하고 맛있다는 걸.
지글지글.
전이 기름에 익어 가는 은근한 소리가 듣기 좋다.
그러고 보니, 전 굽는 소리는 진짜 비 내리는 소리를 닮았구나.
쏴- 하고 내리는 빗소리는 잘 달궈진 팬에 반죽을 부으면 들리는 쏴- 하는 소리와 닮았다.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후두둑 소리는 팬 위에서 전이 익어 가면서 내는 후두둑 소리와 닮았고.
빗소리도 좋고, 전 굽는 소리도 좋다.
둘이 합쳐지니 최고의 소리가 난다.
바로, 비 오는 날 전 굽는 소리.
코로는 냄새까지 퍼지니 진짜…… 미치겠네.
현기증 난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맛있는 걸 혼자 먹을 수 없지.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히익.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두 분.
“선우야.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지.”
“아, 안 그래도 부르려고…….”
“전 다 타면 부르려고?”
어머니의 눈에 살기가 서려 있다.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할 일이지.
비 오는 봄날 옥탑 평상에 앉아 부쳐 먹는 삼겹살 김치전.
가히 천상의 맛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