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60화 (60/110)

#60화 첫 회식

“아니, 소금인지 설탕인지 찍어 먹으면 모르나? 어휴, 참.”

“그러게나 말이야. 그런 걸로 괜히 트집 잡으려는 놈들이 꼭 있어요. 갑질이지, 갑질.”

“그나저나 아까 혜승이…… 진짜 멋있더라?”

“재동 엄마도 그렇게 느꼈어? 와…… 나였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나였어도 못 하지. 벌써 흥분해서 같이 소리 질렀을걸?”

“맞아, 맞아. 게다가 말은 또 어찌나 똑 부러지게 하던지.”

“그니까. 틀린 말 하나도 없더라니까?”

“곱상하게 생겨서 전혀 그럴 줄 몰랐는데, 완전히 다시 봤어.”

“나도, 나도.”

입사 하루 만에 두 어머니들의 혜승이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만큼 아까 혜승이의 행동은 임팩트가 컸다.

힘으로 막은 건 나와 진민호, 빅터였지만 그 전에 남자를 완전히 기세로 눌러 버린 건 혜승이였다.

“선우야. 혜승이 그 친구…… 더 볼 것도 없겠는데?”

“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아니…… 아까 그 진상 손님 대처한 건 그렇다 쳐도, 그냥 일을 너무 잘해. 식당 알바 최소 몇 년은 해 본 사람처럼.”

“아, 그래요?”

“맞아요. 눈치도 빠르고, 손도 빨라서 서빙 속도도 저보다 빠르더라고요. 몇 개월 먼저 일한 게 부끄러울 만큼.”

진민호도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음…….”

나도 두 사람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혜승이는 복장만 어울리는 게 아니라, 진짜 식당 일을 잘했다.

어려서부터 고아원의 집안일도 도맡아서 했다고 하더니, 그게 허언이 아니었다.

“그래, 선우야. 저런 친구가 수습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

“맞아. 빨리 다른 일자리 구하기 전에 우리가 잡아 둬야 할 것 같아.”

“그렇네. 괜히 우리가 수습 딱지 준 것 때문에 다른 좋은 데로 가 버리면 어떻게 해?”

“그래, 그래. 내일이라도 당장 얘기해서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합시다!”

하루 만에 바뀐 사람들의 평가에 살짝 적응이 안 되긴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봉사다운 봉사, 사회공헌다운 공헌을 이번 생에는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혜승이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잘된 일이다.

“알겠어요. 그럼 내일 저녁은 채용 기념으로 간단한 회식을 하는 건 어때요? 지난번에도 제대로 회식을 못 했으니.”

“오, 그러자.”

“좋습니다!”

* * *

나는 직장인이 되어 본 적은 없다.

뭐, 잠시 회사를 다녀 본 적은 있지만 그건 정말이지 아주 잠깐이었다.

대부분의 삶에서 식당이나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이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하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다.

회식은…… 소고기라는 걸.

회식할 때 삼겹살 먹자고 하면, 욕먹는다는 걸.

장사를 마치자마자 차를 타고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이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아파트 상가.

상가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영 별로다.

“여기가…… 회식 장소입니까?”

진민호의 진중한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살짝 묻어나 있었다.

“선우야…… 아무리 그래도 회식은 좋은 데서 해야지…… 자, 그럼 내가 아는 고깃집으로 가자. 여기서 가까우니까 금방…….”

“아버지. 그리고, 여러분들. 이 오래된 아파트 상가 안에 진짜 보물 같은 집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만 믿고 따라 오세요.”

“…….”

의심이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을 뒤로 하고 앞장섰다.

1층 상가에 들어서자 세탁소, 분식집 등의 상점이 보였다.

그런 풍경들 자체가 진짜 오래되어 보이긴 했다.

뭐, 실제로도 오래된 곳이기도 하고.

하지만, 언제나 난 생각한다.

보이는 건 실제보다 훨씬 덜 중요하다고.

“자, 도착했습니다.”

“여기라고? 여긴 정육점이잖아.”

“설마 고기를 사서 가게에 가서 구워 먹자는 거니?”

“그런 거 아닙니다. 일단, 저쪽 식당에서 다들 기다려 주세요. 제가 고기 사서 들어갈게요.”

당황해 하는 사람들을 먼저 식당으로 보내고, 정육점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한우 정육점 / 셀프 식당]

이 집의 간판이다.

따지자면 정육식당 같은 곳이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옆 칸의 식당에서 구워 먹는.

큰 축산 시장 근처에나 있을 법한 정육시장이 이런 아파트 상가 내에 있다는 게 이 집의 특별한 점이다.

물론, 고기의 맛과 가격은 더 특별하다.

지난 생에서 참 많은 고깃집을 다녔다.

소고기 구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다녔던 고기집만 해도 전국적으로 수백 곳은 될 거다.

그렇게 수많은 가게를 다녀본 결과 알게 된 사실은 정말 간단했다.

고기는 비쌀수록 맛있다는 사실.

가성비가 좋다고 알려진 곳을 가 보면 대개는 고기 질이 떨어졌다.

맛있다고 알려진 곳을 가 보면 대개는 고기 질이 훌륭했고, 그만큼 값이 비쌌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이 집은 고기가 싼데 맛있다.

한우 1++ 등급의 고기를 그냥 일반 한우 가격에 판다.

고기 등급의 차이만큼 맛의 차이가 난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꽁꽁 숨겨 두고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 바로 이 집이다.

한번 소문나면 사람들이 밀려올 게 뻔하고, 그럼 내가 먹고 싶을 때 못 먹으니까.

정육점에 들어서니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네, 안녕하세요. 음…… 처음 뵙는 얼굴인데…… 저희 가게 자주 오셨었어요?”

아차.

반가운 마음에 잘 지냈냐고 물어 버렸다.

“네, 뭐. 그런 셈이죠. 하하. 오늘 고기 뭐가 좋아요?”

“오늘은…… 꽃등심 좋고요. 살치살도 좋고, 안창살도 좋습니다. 몇 분이시죠?”

“저희 여섯 명이요.”

“그럼 이것저것 해서 한 2킬로 정도 하시죠. 제비추리 생고기는 서비스로 드릴게요.”

“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2킬로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지난번 김밥을 먹던 유혜승의 무지막지한 먹성이 떠올랐다.

“그래요? 많이 드시는 분들인가 보네요. 그럼 500그램 더하시죠. 2.5킬로. 이 정도면 여섯 분이서 충분하실 겁니다.”

충분할 거라고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뭐, 일단은 이 정도로 가져가자.

먹어 보고 더 맛있는 부위를 추가로 사면 되니까.

“음……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주세요.”

* * *

안창살은 소 한 마리당 500~700그램 정도 나오는 희귀 부위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격이 꽤 비싼 편인데, 단지 희귀하기 때문에 비싼 건 아니다.

지방도 적당히 붙어 있는 데다가 육질 자체의 식감이 훌륭하다.

향 또한 강렬하여 소고기를 좀 먹어 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인기 있는 부위가 바로 이 안창살이다.

“와…… 이게 진짜 안창살이구나?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안창살은 뭐였을까?”

아버지의 얼굴에 감탄이 서려 있다.

“이 안창살 진짜 입에 착착 감기네요. 뭐랄까? 입안을 감싸고 돈다고 할까? 저도 직장 생활할 때 소고기 많이 먹어 봤는데…… 이 안창살은 역대급입니다!”

진민호도 안창살이 마음에 드나 보다.

하지만, 오늘의 씬 스틸러는 따로 있다.

유혜승은 맛있다, 라는 말을 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입에 안창살을 집어넣고 있었다.

아니, 욱여넣는다고 해야 하나?

이초희가 다소곳이 오래 먹는 스타일이라면, 유혜승은 푸드 파이터 스타일이었다.

그 광경에 두 분 어머니는 입을 쫙 벌리고 혜승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좀 천천히 먹지…… 그러니?”

“네, 네. 저 천천히 먹고 있어요. 헤헤헤.”

“아, 그, 그렇구나?”

오늘 혜승이는 푸드 파이터로서의 면모와 함께 본인의 원래 성격을 드러내 보였다.

처음에 왠지 새침해 보이고, 말이 없어 보였던 건 알고 보니 혜승이의 전략(?)이었다.

원장 차미란의 부탁이 있었다.

제발 처음에는 얌전히 있으라는.

처음부터 네 본 모습을 보여 주지 말라는.

지금 드러났다시피 그 전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오늘 아침 더 이상 수습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본래의 유혜승은 진짜 털털함 그 자체였다.

거의 남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

뭐, 그런 성격은 일할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식당 일이라는 게 내숭 떤다고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창살에 이어 등장한 부위는 바로 살치살.

소의 윗등심 상부에 붙어 있는 고기인데, 별로 움직임이 없는 부위라 마블링이 가득한 부위 중 하나이다.

다만, 살치살은 목심 쪽에 가까운 부위보다는 등심 쪽에 가까운 부위를 골라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육향이 센 편은 아니지만, 육즙이 가득해서 인기가 많은 부위 중 하나이다.

“나는 이게 좋네. 부드러워서 잘 넘어가.”

안순미 아주머니는 안창살보다 살치살을 더 맘에 들어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러네. 부드럽고 육즙이 가득한 게 아주 맛이 고급스러운데?”

어머니는 소금에 찍은 살치살을 내 입에 넣어 주며 말했다.

그래도 아들 생각하는 건 엄마뿐이구나. 흑흑.

혜승이는 어떤 부위를 더…….

좋아하는지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쟤한테는 안창살이건 살치살이건 꽃등심이건 그냥 소고기다.

굳이 한우 1++를 먹일 필요가 있었을까?

뭘 먹어도 잘 먹었을 것 같은데?

* * *

네 분 어르신은 너무 배불러서 도저히 차를 못 타겠다며 걸어가셨다.

중간에 너무 힘들면 택시를 타겠다고 하셨다.

나는 차로 혜승이를 바래다주기로 했다.

얘는 그냥 편안해 보였다.

평소에 먹는 밥 한 끼 그냥 먹은 것처럼.

갑자기 선우네 백반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됐다.

직원 식비 때문에 이거 망하는 거 아니야?

상념을 깨는 혜승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잘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었어요.”

“아, 응. 맛있었다니 다행이네.”

“네…… 사실 그런 고기 처음 먹어 봐서…… 진짜 맛있었어요.”

“아…… 그랬구나.”

그런 거 또 처음 먹어 봤다고 하니까 괜히 마음이 짠하다.

맞다.

혜승이는 부모님 손 잡고 소고기를 먹으러 다녀 본 기억 같은 건 없겠구나.

소고기는커녕 중국집이나 분식집도 다녀 본 적이 없을 테지.

“다음 회식 때도 맛있는 거 사 줄게.”

“정말요? 헤헤. 다음 회식은 언제인데요?”

“응?”

우리 방금 회식했거든?

“농담이에요. 어떻게 매일 저렇게 비싼 걸 먹겠어요. 오늘 먹은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말을 마친 혜승이가 창밖을 바라봤다.

마침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는 참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야경이 꽤 아름답다.

“참…… 혜승이 너는 왜 우리 가게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거야?”

처음부터 궁금했던 부분이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 왜 선우네 백반이었어야 했는지.

사실 우리 가게가 혜승이에게 그다지 좋은 조건은 아닐 텐데 말이다.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요.”

“응?”

“진미채 김밥, 돈가스 김밥, 묵은지말이 김밥. 이름도 다 기억해요. 맛도 다 기억하고요. 아직도 그때 기억 떠올리면 침 고여요. 봐요. 지금도, 지금도! 이거 보이죠, 침 고인 거?”

에헤이.

아무리 털털해도 침 고인 걸 보여 주냐?

애써 시선을 정면에 고정시키며, 다시 물었다.

“그게 다야?”

“네, 그게 다인데요?”

“아, 그게 다구나.”

“네, 그게 다예요.”

음…… 나는 뭘 기대했던 걸까?

뭐, 적어도 김밥에 얽힌 아련한 추억이라든가 뭐 그런 드라마 같은 사연?

그게 아니라면 나중에 식당을 하기 위해서 미리부터 준비할 겸 들어왔다는…… 뭐, 그런 꿈에 얽힌 이야기?

얘는 배우가 될 관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중요한 이유이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 음식을 만든 집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그런 것만큼 순수한 이유도 없겠지.

혜승이만 한 나이의 학생이라면 더욱더.

모든 일에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겉은 스물다섯이지만, 속은 마흔 살인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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