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돼지불백과 방송국 (2)
오늘의 저녁 시간은 그야말로 헬(hell)이었다.
안 그래도 손님이 많은데, 방송국 촬영까지 겹쳐서 완전 난리통이 되어 버렸으니까.
단골들은 방송 촬영을 한다는 소리에 다들 몰려들었다.
선우네 백반이 ‘테레비’에 나간다는데 가서 도움을 줘야 되지 않겠냐면서.
‘인타뷰’에서도 좋은 말을 가득 해 줘야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겠냐면서.
주도해서 시장 상인들과 단골들을 끌어 모은 건 역시 선우네 백반의 홍보대사 황종훈 아저씨였다.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웠다.
어디서 들었는지 영훈대학교의 학생들도 찾아와 줬다.
안대훈, 이수미의 안/이 커플.
외식업계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느라 고군분투 중인 주광재.
나의 맛집 탐방 파트너이자 온라인 홍보대사 이초희까지.
다들 몰려들어서 마치 잔치집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가장 신이 난 건 피디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아야 촬영할 맛도 나고, 그림도 잘 나온다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촬영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덧 영업 종료 시간이 다 되었다.
“와…… 오늘 진짜 힘들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도 오늘 같은 날엔 맥주 한잔하러 가야 하지 않겠어요?”
“오…… 좋습니다! 빨리 정리하시죠!”
그렇게 장사를 마무리하려 할 때, 스윽- 가게 문이 열렸다.
윤희선이었다.
“저기…… 아직 장사하세요?”
“어, 희선이니? 그럼, 그럼. 장사하지. 하고 말고! 어여 들어와.”
어머니가 유독 반가운 얼굴로 희선이를 반겼다.
고 여사는 여전히 희선이를 미래의 며느릿감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서 죽으려고 했던 분이 희선이 얼굴을 보고 저렇게 반기는 걸 보면.
“그럼…… 잠시만요.”
문을 열어 둔 채로 사라졌던 희선이 휠체어를 끌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 희선이 아빠!”
“어, 학철아!”
어머니, 아버지와 안순미 아주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들어온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희선이 아버지인 윤학철 아저씨였다.
“오랜만입니다.”
윤학철이 휠체어에 앉아 빙그레 웃었다.
“와…… 진짜 이게 얼마 만이냐! 같은 동네 살면서도 통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진짜…….”
“형. 그러니까 형이 놀러 왔어야지. 내가 이 꼴을 하고 여기까지 와야겠어?”
“아, 그렇네. 미안하다, 인마. 나도 사는 게 바빠서.”
아버지와 윤학철이 반갑게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꽤 친한 사이였다.
학철 아저씨가 저렇게 다리를 못 쓰게 되기 전에는.
십 년 전, 그가 저렇게 된 이후에는 거의 두문불출했으니 서로가 거의 만날 수가 없었던 거다.
* * *
윤학철과 윤희선은 돼지불백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어서 드셔 보세요.”
“그래, 먹자.”
윤학철은 왼손에 상추를 들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고기를 집어 들었다.
고기를 먼저 얹고, 마늘을 쌈장에 찍어 얹었다.
매운맛을 추가해 줄 청양고추도 얹고, 고슬고슬한 쌀밥도 얹어 줬다.
단출해 보이지만 갖출 건 다 갖춘 한 쌈이 완성되었다.
윤학철은 입을 크게 벌려 쌈을 맞이했다.
오물오물.
상추를 사각 씹으니 먼저 쌀밥의 포근한 맛이 느껴졌다.
이어서 들어오는 짭짤하면서도 달큰한 돼지불고기의 맛.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있는 식감이 참 좋았다.
마늘과 고추는 약간의 느끼함을 잡아 주는 완벽한 도우미였다.
채소의 아삭거리는 느낌도 좋았고.
오랜만에 맛보는 완벽한 한 쌈이다.
입에 있는 음식을 대충 다 씹어 갈 무렵, 뜨끈한 된장찌개를 한 숟갈 퍼먹는다.
구수하고 짭짤한 국물과 함께 두부와 호박 같은 건더기가 입안으로 들어온다.
입속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다.
된장찌개 한입은 바로 윤학철의 입을 완벽하게 리셋해 주었다.
“맛있으세요?”
윤희선이 묻는다.
“응, 너무 맛있다. 진짜 옛날 생각나네.”
추억을 떠올리는 중인지, 윤학철의 눈이 촉촉하게 빛나고 있었다.
윤희선은 그런 윤학철을 지그시 바라봤다.
윤학철은 오늘따라 돼지불백이 그립다고 했다.
몸이 멀쩡할 때 기사 식당에서 먹고 다니던 그 돼지불백이.
윤희선은 인터넷에서 돼지불백 맛집을 검색했다.
그러던 도중 마침 게스트북에서 선우네 백반의 오늘의 메뉴가 돼지불백인 걸 알게 됐다.
“근데, 아빠는 예전에 왜 기사 식당을 자주 다니셨던 거예요? 택시 기사도 아니셨으면서.”
“아…… 그게 말이야. 우리 경찰들도 늘 차를 몰고 다니잖아. 늘 범인들 쫓느라 바쁘고. 그러니, 길거리에 편하게 차 대고 밥을 빨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게 되어 있거든. 그러기엔 기사 식당이 제격이었지.”
“아…….”
윤학철은 경찰이었다.
그것도 강력반 소속.
늘 범인들을 쫓느라 뛰어다니는 게 일이었고, 자주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는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는 남들처럼 빨리 승진을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
그가 ‘진짜’ 경찰이라는 걸.
이것만큼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 * *
어머니와 나머지 두 직원들은 맥주집으로 향했고, 나와 아버지가 남아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저 자리에 끼어서 같이 학철 아저씨와 얘기하고 싶어 했지만, 내가 말렸다.
왠지 오늘 두 사람을 방해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서.
저 두 사람이 이렇게 밖에 나와 식사를 하는 것도, 아버지가 학철 아저씨를 못 본 시간만큼 오래된 듯해 보였으니까.
“학철이 녀석. 참 맛있게 먹네.”
“그러게요. 다행이네요. 이렇게 나오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러게 말이다. 에휴. 그 멋있던 녀석이 어쩌다가 저렇게 돼서.”
아버지가 혀를 쯧쯧 찼다.
나는 학철 아저씨의 사연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저 아저씨가 불의의 사고로 저렇게 됐었다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아저씨는 어쩌다 저렇게…… 되신 거예요?”
“학철이? 휴……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너무 몸을 사라지 않았던 게 화가 됐다고 해야 하나.”
한숨을 한 번 더 길게 쉰 아버지가 말을 이어 갔다.
그날도 아저씨는 여느 때처럼 범인을 쫓고 있었다.
전과 9범의 소매치기였다.
놈은 빠르고 날쌨다.
복잡한 주택가를 생쥐처럼 요리조리 피해 가며 아저씨의 추격을 따돌렸다.
한창 추격을 하는 도중 아저씨의 눈에 범인이 들어왔다.
아저씨는 2층 높이의 주택에 올라 있었고, 점프해서 덮치면 아저씨의 손에 범인은 꼼짝없이 잡힐 것 같았다.
그렇게 범인을 향해 몸을 날렸는데, 눈치를 챈 녀석이 잽싸게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저씨는 범인을 덮치려던 자세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고, 그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척추를 다쳤다고 했다.
하반신 마비.
경찰 생활은커녕 걷기도 어려울 거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의사의 말은 그대로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 정의롭던 녀석이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상실감이 컸겠니.”
“흐음…… 그랬었군요.”
얘기를 듣고 나니, 희선이가 경찰이 되는 걸 극구 반대하는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역시 뭐든지 간에 한쪽 얘기만 들어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희선이의 꿈을 응원하는 입장이다.
불의의 사고는 사고일 뿐이니까.
불행한 일이 한 번 있었다고 해서 그 두려움 때문에 인생이 발목 잡히면 안 되니까.
돼지불백을 맛있게 먹고 있는 저 두 사람.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 * *
“아빠는 경찰 된 거 후회해요?”
“후회?”
윤학철이 곰곰이 생각한다.
후회라…….
“아니. 경찰이었던 걸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 다른 건요? 후회되는 게 있으세요?”
“후훗. 우리 딸이 오늘 궁금한 게 많은가 보네. 뭔가 작정하고 온 것 같은데?”
“작정은 무슨…….”
윤희선은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슬쩍 윤학철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냥 몸을 좀 사리지 못한 건 조금 후회되지. 아주 조금. 진짜…… 아주 조금.”
“몸을 사라지 못한 거? 근데…… 몸을 사려 가며 어떻게 범인을 잡아요?”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래서 아주 조금만 후회하는 중이야. 그런데, 희선아.”
“네?”
“엄마가 너 경찰되지 말라고 하는 거, 나는 이해한다.”
“…….”
“내가 스스로 경찰이 되고, 이렇게 다쳐서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사는 거…… 그건 난 하나도 후회하지 않아. 하지만…… 그걸 지켜봐야 하는 사람의 마음. 그건 다르다. 너도 잘 알잖니? 엄마가 이 못난 아빠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
윤희선으로서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엄마의 고생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게 바로 자신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어떤 것이었다.
경찰이 될 수 없다면,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해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래도…… 행복하셨잖아요. 범인을 쫓느라 미친 듯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기사 식당에서 함께 땀 흘린 동료들과 먹었던 돼지불백. 너무 맛있었잖아요. 너무 보람찼었고. 그런 추억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나오신 거잖아요. 그 마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서…….”
“…그래, 맞아. 미친 듯이 바쁘고,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고,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지. 그런 시절에 기사 식당에서 먹었던 이 음식. 정말 꿀맛이었지. 범인을 잡고 나서 먹으면 더 꿀맛이었고. 훗. 영광의 시절이랄까? 네 말대로 그때의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살아 있었다고 느꼈던 그때를.”
이어지는 침묵.
뚝배기에 담겨 있던 된장찌개도 차갑게 식어 갔다.
아빠는 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본인이 저맘때 그랬으니까.
나쁜 놈들을 잡고, 정의로운 일을 하겠다는 결의로 가득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기질을 희선이가 물려받았다는 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늘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고, 약자 편에 서서 싸우던 애였으니까.
그 상대가 남자애든 어른이든 가리지 않고.
그 모습은 마치 윤학철 본인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딸도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겠는가.
더군다나 엄마 오영숙은 평생을 순댓국을 만들며,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 그녀가 경찰이 되겠다는 딸의 꿈을 반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아빠.”
“희선아.”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아빠 먼저.”
“너 먼저.”
피식-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윤희선이 몸을 뒤로 젖혀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
말할 순서를 양보한다는 무언의 표시.
그걸 눈치챈 윤학철의 입이 열렸다.
“내가 엄마를 설득해 보마.”
“네?”
윤희선의 몸이 테이블 앞으로 튕겨져 나왔다.
“진심이세요?”
윤학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희선은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경찰의 꿈을 포기하겠다고 아빠에게 말하려던 참이었다.
휴…… 먼저 말했으면 큰일날 뻔했다.
* * *
“맛있게 드셨어요?”
“그래, 선우야.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근데, 너 언제 이렇게 듬직하게 큰 거니? 진짜 멋있게 컸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돼지불고기도 제가 만들었어요.”
“오, 진짜니? 와…… 철민이 형! 진짜 좋겠수다! 이런 아들 둬서!”
“그럼, 그럼! 좋아 죽겠다 아주. 허허허.”
두 분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희선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고마워.”
“응?”
“그냥…… 고맙다고.”
“아…… 그래. 나도 고마워.”
윤희선이 방그레 웃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얘기가 좀 잘 풀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