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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54화 (54/110)

#54화 패밀리 레스토랑

영업이 끝난 후, 선우네 백반의 구성원들이 모두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바쁜 하루가 끝난 터라 다들 지쳐 있었지만, 오늘은 논의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솔직히…… 사람이야 한 명 더 있으면 좋긴 하지. 우리 직원들 입장에서는.”

안순미의 말이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인건비를 생각해야 하는 사장님 입장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죠.”

진민호가 덧붙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선우네 백반의 사장은 자연스레 내가 되어 버린 듯했다.

의사 결정이 필요한 일에는 대부분 나의 의견을 먼저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진짜 사장이신 두 분 부모님조차.

솔직히 고민은 된다.

손님이 많아지고, 김치 주문도 늘어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사실이다.

요즈음에는 일요일에도 가게에 나와서 다음 주 영업을 준비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인력을 한 명 채용하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쯤 홀에서 서빙할 인력 한 명쯤은 채용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그 자리에 혜승이를 뽑는 게 맞냐는 거다.

“추가 인력이 필요한 상황은 맞다고 봅니다. 확실히 홀 서빙이 요새 많이 밀리고 있는 것 같거든요. 테이블을 치우고, 세팅하는 것도 느려지고 있고.”

“선우야.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홀 서빙 및 카운터 담당인 아버지가 괜히 찔리는가 보다.

“그럼요. 아버지 탓을 하는 게 아닙니다. 제 말은 확실히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어머니, 아버지도 이 점에는 동의하시나요?”

두 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사실 하루 종일 김치 만드는 데에 힘을 쏟아도 손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배송도 시작한 터라 주문량이 더 많아졌다.

결국 어머니와 안순미 아주머니는 오롯이 김치 만드는 일만 전념해야 할 상황이라는 거다.

거기에 진민호가 올라운드 플레이어처럼 여기저기 힘을 보태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그 혜승이라는 친구가 정말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그게 의문이야. 그 여리여리하고 예쁘장한 애가 이런 식당 서빙을 잘할 수 있겠어?”

“맞습니다. 뭐, 어린 친구가 들어오면 활기도 있고 좋겠지만 그건 순간일 수 있죠. 일을 잘하지 못하면요.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어요.”

“그건 나도 동감이다. 그 친구는 여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깨끗하고 시급 많이 주는 데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 대부분의 의견이 반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반대의 이유는 결국 경험 부족이다.

사람을 구하더라도 유혜승 같은 초짜보다는 경험 많고, 능숙한 사람을 구하는 게 맞지 않겠냐는 의견.

나도 그런 의견에는 동의한다.

다만…… 마음에 좀 걸린다.

내가 차미란 원장님께 다짐했던 그 말이.

영진꿈마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겠다는 그 말이.

사실 혜승이는 지금 고아원을 나와 독립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취득했고, 본인이 말하기를 대학교는 다닐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디든 일하고 먹고 잘 그런 곳이 필요하다.

다른 거야 도움주기 힘들겠지만, 일할 수 있는 자리 정도는 마련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 주는 게 말뿐인 자원봉사나 사회공헌보다 훨씬 더 혜승이 같은 고아 친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 아닐까?

고민하던 나는 절충안을 하나 냈다.

“한 달 정도 수습으로 일을 시켜 보는 건 어떨까요?”

“한 달?”

“음…… 일을 시켜 보고 그 후에 결정하자는 거구나.”

“그걸 그 친구가 받아들이려나?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우리는 좋지. 어쨌든 그 친구가 일만 잘한다면 우리는 오케이니까.”

“그렇죠. 뭔가 젊은 친구와 함께하면 에너지도 더 날 것 같고. 그 친구가 일을 어느 정도 한다는 가정 하에.”

“그렇게 해 보자. 선우야.”

한 달 수습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내 의견을 수용했다.

그렇게 해서 혜승이에게 우리의 절충안을 전달했다.

혜승이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왠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차미란 원장선생님으로부터 고맙다는 메시지도 받았다.

혜승이가 일을 잘했으면 좋겠다.

톱 배우가 될 때 되더라도, 어쨌든 지금은 열심히 일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그런 단계니까.

보란듯이 잘해서 백반집 직원들의 칭찬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근데, 나도 좀 궁금한 건 있다.

혜승이는 왜 하필 우리 백반집에 일자리를 구하러 온 걸까.

아르바이트라면 차고 넘칠 텐데.

게다가 혜승이 정도의 외모라면 카페, PC방, 레스토랑 등등 두 팔 벌려 환영할 점주들이 많을 거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왜 하필 우리 선우네 백반이었는지.

* * *

오랜만에 맞이하는 평온한 일요일.

그동안 너무 바빴던 바람에 밀린 숙제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바로 이초희와 함께 하는 맛집 투어.

이번 맛집 투어의 종목은 바로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스테이크, 치킨샐러드, 파스타, 립 등 여러 가지 음식이 골고루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그런 레스토랑이 확 당길 때가 있다.

여러 패밀리 레스토랑 중에서도 오늘 갈 곳은 바로 샐러드바 형식의 레스토랑이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뷔페식으로 깔려 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

이초희에게는 가히 천국과도 같은 그런 곳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뷔페에 가는 게 그녀에게는 가장 식비를 절약할 수 있는 길일 거다.

어차피 어디를 가든 메뉴 서너 개는 기본적으로 시키는 사람이니까.

“여기요.”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이초희가 손을 흔든다.

“빨리 오셨네요. 저도 십 분이나 빨리 온 건데.”

“배고파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사장님이 십 분 빨리 오셔서 참 다행이네요. 앞으로 일 분만 더 기다렸어도 먼저 시작할 뻔했어요.”

“푸흡. 자, 빨리 시작하죠.”

우리 사이에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이제 저기 깔려 있는 수많은 음식과 대화를 나눌 차례니까.

양심상 시작은 채소부터.

샐러드 야채에 오리엔탈 소스를 뿌린 가든 샐러드부터 채소들을 살짝 익혀 소스에 묻힌 믹스드 베지터블 샐러드, 훈제 오리와 함께 채소를 묻힌 훈제 오리 샐러드 등등.

오리도 채소냐고?

오리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아서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한다.

그러니 채소와 다름없지.

그렇게 샐러드 접시를 들고 천천히 먹고 있는데…… 나와는 차원이 다른 이초희의 전략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뷔페를 공략하는 그녀의 전술은 단순하고, 깔끔했으며, 완벽했다.

바로…… 한 접시에 한 종류의 음식만 담아 오는 것.

물론, 접시에 한가득.

샐러드 한 접시.

볶음밥 한 접시.

연어 한 접시.

립 한 접시.

치킨 한 접시.

파스타 한 접시.

와……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한 상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렇게 세팅을 마친 이초희가 식사를 시작했다.

늘 그렇듯이 조근조근 꼭꼭 씹어서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이 샐러드바에 오면 유독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지난 생에서 장사를 잠시 관두고, 외식 기업 브랜드에서 회사 생활을 할 때이다.

직속 상사 중 한 명이었는데, 그는 이 레스토랑에 오면 유독 한 음식만 집중 공략했다.

바로 바비큐 립이었다.

지금 이초희의 앞에 한가득 쌓여 있는 바로 그것.

그는 오직 립 하나만 계속해서 가져다 먹었다.

립 이외에 먹는 거라고는 콜라 정도?

그런 그에게 물었다.

뷔페에 와서 왜 그렇게 립만 먹는 거냐고.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 립이 가성비가 제일 좋은 메뉴이거든. 다른 건 전부 원재료도 싸고, 먹으면 배부르기만 하다고.

아…… 그랬구나.

평소 그의 짠돌이 같은 인색한 태도와 맞물려서 그런지 참…… 구차해 보였다고나 할까?

어쩌면 좀 불쌍해 보였다고나 할까?

그렇지 않은가.

립이 너무 맛있어서 그것만 먹는 게 아니라, 가성비가 좋은 메뉴라서 그것만 먹는다는 게.

물론,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취향은 존중해 주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호감 가는 사람은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군대 가기 전에는 나도 이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부모님 가게를 도와드렸어야 하는 게 맞는데, 그때는 ‘철이 든다’는 말의 치읓조차 몰랐을 때였다.

이천 년대 초반, 패밀레 레스토랑은 엄청난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우후죽순 격으로 여러 브랜드들이 생겨났는데, 장사가 다 잘됐다.

나중에 공부를 하면서 알았던 건데, 9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우리나라의 가계 소득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소득이 높아지니 돈을 쓸 데가 있어야 했고, 패밀리 레스토랑은 그런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선택지였다.

그러다 보니 진짜 바빴다.

평일에도 저녁에는 웨이팅이 발생했고, 늘 다양한 손님들이 자리를 꽉꽉 채웠다.

나는 그때 커다란 트레이에 접시를 가득 싣고 음식을 나르는 업무를 맡았다.

주문을 받거나 서빙은 하지 않고, 죽어라 음식만 나르는 거다.

주방이 있는 2층에서 1층과 3층을 모두 오가야 하는 일이니, 업무 강도가 진짜 셌다.

그때도 립에 얽힌 추억이 하나 있다.

그 레스토랑에서는 립을 서빙할 때는 통째로 들고 가서 테이블에서 썰어 줘야 했다.

썰어 드리냐고 손님들께 물어보면 백이면 백 썰어 달라고 했으니까.

그때 나와 같은 업무를 하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은 립을 서빙하러 갔던 녀석이 한참이 지나도 주방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거다.

주방에 음식은 쌓여만 가고, 나는 동분서주 날뛰고.

근데 그런 경우가 꽤 잦았다.

녀석은 립만 서빙하러 가면 꼭 한참 후에 돌아오곤 했다.

바쁜 가운데 그때그때 묻지는 못하고, 나중에 마지막 근무 날 녀석에게 물어봤다.

- 왜 립만 나가면 넌 돌아오지를 않는 건데?

- 친구, 미안하다. 너무 힘들어서 립 썰어 주면서 좀 쉬었다. 일부러 천천히…… 가끔씩 고기 대신 뼈도 썰어 가면서.

아…… 하하하.

역시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데에는 이런 까닭이 있었던 거다.

그땐 그냥 이렇게 생각했다.

아,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 했지?

천천히 맛있게 먹는 이초희에게 이런 얘기들을 했다.

이초희는 여전히 계속 듣기만 했다.

아, 진짜 듣고 있긴 한 걸까?

모르겠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내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건지 음식이 맛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녀의 입은 오로지 먹기만을 위해 남아 있다는 듯, 그 흔한 추임새 한 번 넣어 주지 않았으니까.

나 역시 그녀에게 어떤 리액션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우리 사이에는 불문율 같은 게 하나 있다.

어떤 것도 음식 앞에서는 그 우선순위를 잃는다는 것.

그게 우리가 서로를 맛집 투어 파트너로 대하는 방식이다.

이 원칙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

정말 마음 편하게 음식에 집중한다는 게 각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가치니까.

그렇게 패밀리 레스토랑 맛집 투어도 끝이 났다.

우리는 늘 하던 인사로 서로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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