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스폰서가 그 스폰서가 아니라고요
“여보. 이거 무슨 냄새야?”
“음…… 전 부치는 냄새 아니야?”
“전은 전인데…… 왠지 감자볶음 냄새가 나지 않아?”
“흠흠…… 그러네. 약간 감자튀김 냄새도 나고. 선우가 감자전 부치고 있나?”
“흐음…….”
고종숙 여사는 연신 코를 벌렁거렸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 중의 하나가 바로 감자다.
감자라면 그녀는 사족을 못 쓴다.
된장찌개에 들어간 포근포근한 식감의 감자, 감자탕에 들어 있는 커다란 통감자, 채를 썰어 볶은 감자볶음의 그 감자 등등.
모든 감자 요리는 그녀의 최애 메뉴로 등극되어 있다.
그녀는 과자도 감자칩만 먹는다.
소금맛, 양파맛, 고추장맛 감자칩.
한국산, 미국산, 일본산 감자칩.
그녀가 안 먹는 감자칩은 없다고 보면 된다.
다른 과자는 쳐다도 보지 않으면서.
당연하다.
그녀는 과자를 먹는 게 아니라 감자를 먹는 거니까.
* * *
“안주 나왔습니다.”
크게 부친 감자채전 두 장을 양손에 나눠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오…….”
고종숙 여사의 눈이 커진다.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는 그녀의 표정.
“어서 드셔 보세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 여사의 젓가락이 움직였다.
바스락.
그녀가 끝부분을 뜯어내자 잘 익은 튀김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와앙.
커다랗게 떼어 낸 조각이 어머니의 입으로 직진한다.
바삭바삭.
오물오물.
그녀의 입이 바쁘게 움직인다.
“와…… 이거 너무…… 맛있다. 프렌치 프라이를 합쳐서 튀겨 놓은 것 같아.”
와앙.
말을 마친 그녀의 입으로 다시 감자채전이 입장했다.
그 후로도 그녀의 먹방은 계속 진행됐다.
맥주를 먹자고 했는데, 안주만 먹고 있는 고 여사.
감자채전에 빠져 있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와 건배를 했다.
크으.
불 앞에 있어서 느껴졌던 뜨거움이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날아간다.
이 맥주의 첫 모금이란.
어떤 음료의 그것도 맥주 첫 모금의 대단한 청량감에 비하긴 힘들다.
“크으. 시원하다.”
“감자채전도 좀 드셔 보세요.”
맛있게 구워진 끝부분을 떼어 내 아버지의 앞접시에 덜어 드렸다.
와삭.
씹는 소리만으로도 그 바삭한 느낌이 느껴졌다.
“이거 별미네.”
“네. 맥주 안주로는 정말 최고죠.”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냐?”
아버지가 입을 오물거리며 묻는다.
“인터넷이요.”
“아…….”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히 인터넷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본래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걸 익히기 힘들다.
게다가 요새 백반집은 느긋하게 인터넷을 배울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여전히 두 분이 인터넷을 무슨 보물 창고나 마술 상자처럼 여기는 이유이다.
“선우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가 좀 당황했던 건 사실이다.”
“네. 이해해요.”
아버지의 마음은 아까와는 다르게 다소 누그러진 듯했다.
이런 게 바로 음식이 주는 여유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만나거나 중요한 얘기를 할 때 꼭 같이 음식을 나눠 먹는다.
뭔가를 같이 나눠 먹는다는 건 그 자체로 우리가 같은 편에 서 있다는 안도를 주는 법이니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은 부드러워진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그 효과는 더 크다.
입에 맛있는 게 들어가면 저절로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마련이니까.
감자채전 한 접시를 홀로 오롯이 비워 낸 후에야 고 여사는 정신을 차렸다.
“흠흠…… 내가 너무 급하게 먹었나 보네. 호호호.”
어머니의 너스레에 나와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머니. 감자채전 맛있죠?”
“응? 으응. 맛있다…… 너무 맛있어.”
어머니는 민망한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혼자 한 접시를 다 비우고서 맛없다고 하면 그건 말이 안 되지.
다만, 감자채전 한 접시 때문에 알게 모르게 냉전 중이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져 버린 거.
그게 어머니가 다소 민망해하고 있는 포인트인 듯하다.
이제 두 분 다 감정적인 상태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건물을 사는 건 덮어 놓고 위험한 짓이며, 대출을 받는 건 집안을 망쳐 버릴 최악의 행동이다.
라고 두 분이 생각하시는 건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여러 가지 두려움과 불안감이 교차되어 생겨난 불분명한 감정일 뿐.
사업을 하다 보면 반드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 순간이 온다.
위험하다고 해서 돌아가려고만 한다면, 결국에는 원하는 곳에 이를 수 없게 되니까.
또한, 돌아가는 건 그 자체로 위험하다.
그 돌아가는 길에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령 문어대가리 건물주의 횡포 같은.
오늘 밤은 다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대출에 대한 이자는 아낀 월세와 2층 세입자들에게서 받는 월세로 충당하면 된다는 얘기.
몇 년 전 금융 위기 이후 지금의 부동산 가격이 저점을 찍고 있다는 얘기.
그래서 결국엔 우리가 이 건물을 사는 게 여러모로 큰 이득이라는 얘기.
그런 얘기들을 차분히 부모님께 설명드려야 하니까.
내겐 두 분에게 뭔가를 강요할 자격 같은 건 없다.
망해 가는 선우네 백반을 살려 놓고, 지금처럼 장사가 잘되는 가게를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그게 모든 걸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권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회장이라는 위치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것.
회장의 권위로 몰아세우는 것.
이런 것들은 늘 별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대화와 서로 간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했을 때 더 많은 것이 돌아왔다.
최소한 그렇게 하면 사람을 잃는 법은 없었다.
물론, 난 그 반대로 해서 사람을 많이 잃어 봤기에 할 수 있는 소리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건 전생의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다.
* * *
며칠 간의 수많은 대화와 고민 끝에 할머니의 건물을 우리가 사들이기로 했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선의를 베풀었다.
아니, 이건 선의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주변 시세보다 10퍼센트나 싸게 건물을 넘기셨으니까.
갓물주는 끝까지 갓물주였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이 집. 우리가 손수 지었을 땐 몇천만 원도 안 들었어.
- 그때야 지금과 물가가 너무 다르니까요.
-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이 집 살면서 애들 다 키우고, 나도 편하게 살았어. 월세 받으면서 굶지 않고 잘살았고.
- …….
- 이 집에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우리도 누군가에게 좀 베풀어야지. 큰 도움은 아니겠지만.
- 아니에요, 할머니. 너무 큰 도움이에요.
-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처럼 부모님 모시고 잘살아. 너무너무 보기 좋으니까. 그리고…… 빨리 좋은 처자 만나서 장가도 가고.
- … 네. 저 결혼할 때 꼭 와 주세요.
- 아이고. 초대나 꼭 해 줘. 잊어버리지 말고.
- 그럼요! 걱정 마세요.
어쨌든 이렇게 우리는 선우네 백반 건물을 인수하게 됐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미리 집을 마련해 두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집이 팔리자마자 시골로 이사하셨다.
우리도 전세를 빼서 할머니가 사시던 3층 주인집 세대로 이사했다.
그렇게 한 달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집 매매 문제, 이사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정리된 어느 날.
장사로 몸은 여전히 바빴지만, 마음만은 한가해진 그런 날.
다소 의외의 손님이 가게에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어, 학생은…….”
“네, 영진꿈마을에서 저 보셨죠?”
“네, 그쵸.”
거기서 뿐만 아니라, TV 화면으로도 많이 봤었지.
브레이크타임에 가게를 방문한 손님은 바로 유혜승이었다.
톱 배우가 될 유혜승.
먹방 BJ 뺨치게 잘 먹는 유혜승.
“식사하러 왔어요? 브레이크 타임이긴 하지만…… 그쪽에 앉으세요.”
“아뇨. 저 밥 먹으러 온 거 아니에요.”
“그럼요?”
“일자리 구하러 왔어요.”
“네?”
유혜승의 말에 가만히 앉아 있던 어머니도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잠시만요. 일단, 거기 좀 앉아 계세요.”
유혜승에게 말하고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저 예쁘게 생긴 애는 누구니?”
“음…… 지난번에 고아원에 갔을 때 만났던 친구예요.”
“아…… 영진꿈마을?”
“네.”
“근데, 엄마가 지금 잘못 들은 거 맞지? 저 애가 지금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고 한 거.”
“음…… 잘 들으신 거 맞아요. 저도 그렇게 들었으니까.”
“너 혹시 우리 모르게 공고 낸 적 있니?”
“아뇨.”
“근데 난데없이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고?”
그때 유혜승이 몸을 일으키더니 저벅저벅 이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유혜승은 공손히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여기 있는 아저씨가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런 걸 뭐라고 하죠? 스폰서?”
“스, 스폰서?!”
어머니와 내 머릿속엔 동시에 불온한 어떤 느낌이 떠올랐다.
돈 많은 아저씨와 돈이 필요한 여자와의 사이에서 생기는 그런 관계.
스폰서라는 건 자주 그렇게 불건전한 관계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착!
어머니의 강력한 스매싱이 내 등짝에 꽂힌다.
“예끼, 이 녀석아!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뭐, 스, 스폰서? 후원자?”
“아니, 어머니.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오해?! 그럼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데? 어, 말해 봐! 너 말 잘해. 안 그러면 엄마가 직접 너 끌고 경찰서 갈 수도 있어!”
아, 억울해.
어머니는 도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걸까?
아무렴 내가 고아원에서 만난 학생에게 스폰서나 제의하는 그런 천박한 놈으로 생각하시는 건가?
그럴 마음도 없고, 깜냥도 안 되고, 그럴 돈도 없다.
오해를 불러일으킨 원흉, 유혜승에게 다그쳤다.
“야,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내가 영진꿈마을의 후원자가 되어 주겠다고 했지, 네 스폰서가 되어 주겠다고 했어?”
“그 말이 그 말이죠. 제가 영진꿈마을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영진꿈마을 후원자면, 제 후원자도 되시는 거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어쩌면…… 쟤는 그냥 순수한 거다.
닳아빠진 나와 어머니와는 다르게.
세상의 이상한 꼴을 다 알아서 스폰서라는 말이 곧이 들리지 않고, 이상하게 들리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어머니.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제가 사과드릴게요. 무슨 오해인지는 모르지만, 아드님이 무언가 잘못을 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 고아원에는 참 고마운 사람이죠.”
당당하다.
유혜승은 이런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말투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으, 응? 아, 그래. 음…… 그랬구나. 내가 뭔가를 잘못 생각한 것 같네? 호호호.”
당당한 혜승이 앞에서 어머니가 멋쩍게 웃었다.
“어머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 아파.”
오랜만에 맞아 본 등짝 스매싱의 위력은 대단했다.
“미안하다, 아들. 난 또 스폰서라고 하길래…… 그것도 저렇게 예쁜 아이가 그러니까…… 오해할 수밖에.”
“쯧쯧쯧. 당신 아들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 내 유전자를 그대로 닮아서 착하고 바른 우리 선우가?”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아버지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또 유전자 이슈를 들이밀었다.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당신 닮아서 착하고 바른 건 아니지. 우리 선우가…….”
“무슨 소리! 착하고 바른 사람들은 아예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안 그러냐, 선우야?”
“그럼요. 저는 스폰서라는 말에 그런 이상한 의미가 있는 줄은 아예 알지도 못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아픈 등짝 때문이었을까.
지금 순간에는 격렬하게 아버지 편에 서고 싶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