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곰탕은 건강에 좋다? (2)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백반집에는 주강재와 나만 남아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녹색 술병이 하나 놓여 있었고.
또르륵 또르륵.
빈 잔에 술이 채워지는 맑은 소리가 고요한 식당 내부를 울렸다.
짠.
술잔 두 개가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주강재와 나.
생각해 보면 묘한 조합이다.
단골손님과 식당 주인.
정확히는 건강염려증에 걸린 단골손님과 불가사의한 일로 십오 년 전으로 회귀한 선우 푸드 회장.
크윽-
소주잔을 비워 낸 주강재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쓰죠?”
“네. 근데 오늘은 좀 달기도 하네요.”
“위험한 날이군요.”
“저한테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날이기도 하죠.”
다시 빈 술잔이 채워지는 도중 주강재의 입이 다시 열렸다.
“친구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고 있어요.”
“흐음.”
“유별나고,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 외식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자기들과는 왠지 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사람.”
“…….”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그에 대한 나의 평가도 사실 그와 비슷했으니.
“왠지 이런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조적으로 웃는 주강재.
“본래 속 얘기일수록 잘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게 더 쉬운 법이죠.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에게는 속 얘기를 하는 게 좀 부담스럽달까?”
“훗. 맞는 말씀이네요. 별건 아니지만, 비밀은 지켜 주실 거죠?”
“원하신다면.”
짠.
두 소주잔이 다시 허공에서 부딪혔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을 거예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3학년 때는 할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죠.”
“일 년 사이에 두 분이 모두…….”
“네. 두 분 다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아직 끝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해에는 큰고모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셨고, 그다음 해에는 외할아버지가 폐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흐음…….”
위암, 췌장암, 유방암, 폐암.
종류도 참 다양하다.
듣고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다.
“외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 집안의 식단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구운 거, 튀긴 거, 매운 거, 짠 거. 그런 음식들은 아예 식탁에 올라오지를 않았죠.”
“고역이었겠네요.”
도대체 그런 음식들을 안 먹으면 도대체 뭘 먹고 살아야 되나 싶다.
“어린 나이에는 정말 견디기 힘든 식단이었죠. 전 한창 클 때였고, 그때는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는 게 큰 즐거움이잖아요. 떡볶이, 튀김, 돈가스, 라면 등등. 근데, 어머니가 그런 걸 절대 못 먹게 했어요. 어쩌다 몰래 먹은 걸 들키면 진짜 불같이 화를 내셨죠.”
“이해는 가네요. 어머니의 마음이.”
“네. 저도 이해는 돼요. 암이라는 게 원래 유전이 있잖아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다양한 암들을 가족 내력으로 겪었으니…… 어떻게 보면 유별난 것도 아니셨죠.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주강재라는 사람을 덮고 있던 표피가 조금씩 벗겨지니, 그가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예민함, 까탈스러움, 건강에 대한 집착.
어쩌면 그건 그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구나.
“어머니가 그렇게 철저하고, 독하게 하시니 저도 어느 순간부터 그런 식단에 적응이 되더라고요. 어머니가 끊임없이 매일 얘기하셨거든요. 우리 가족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암은 가족력이 제일 위험하다.”
“저라도 매일 얘기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강재 씨 어머니라도요.”
“네. 근데, 저에게 딜레마는 이거였죠. 제가 외식업을 하고 싶다는 거. 사장님도 말씀하셨다시피 외식업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대중적인 입맛을 가져야 하는 거잖아요.”
“흐음.”
왠지 모르게 조금은 혼란스럽다.
나의 처음 계획이라면…… 주강재는 본인이 얼마나 예민한지,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깨닫고 조금씩 입맛을 바꾸려고 노력해가야 한다.
그걸 MSG를 잔뜩 넣은 곰탕으로 깨닫게 해 주려고 한 거고.
하지만…… 각종 암에 대한 가족력이 있는 주강재라면.
만약 내가 주강재의 입장이라면, 주강재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고개를 젓게 된다.
아니.
어쩌면 더 심한 건강염려증을 갖게 되었을지도.
이제 그의 건강염려증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주강재는 그렇게 사는 게 맞다.
MSG 곰탕 솔루션은 나의 오만이었다.
주강재라는 사람을 전생에도 알았었다면, 이런 트라우마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이런 솔루션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무리 미래에서 왔어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
순간적으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전생에서 알았던 수많은 정보들을 되짚어 보았다.
건강염려증과 외식업.
외식업은 하고 싶은데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둘 사이에는 당연한 침묵이 흘렀다.
주강재는 홀로 소주를 들이켜며 쓰게 웃었다.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면 기겁을 하실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불현듯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강재 씨. 아까 내가 했던 말은 취소입니다.”
“네?”
“외식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중적인 입맛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말 취소라고요.”
“에이. 괜히 저 위로해 주려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사장님이 배려심이 깊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니요.”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진짜 아니니까.
배려심? 없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배려를 위한 배려야말로 최악의 이타심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배려는…… 진짜 배려여야 한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게 없는 빈털터리 배려는 하등의 의미가 없다.
특히 주강재처럼 자신의 트라우마 때문에 좋아하는 일에 대해 의심을 갖고 있는 이런 사람 앞에서는 말이다.
“외식업에 길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겠죠.”
“뻔한 말이 아니라, 진짜로요. 맵고 짠 떡볶이, 기름진 삼겹살, 튀긴 탕수육을 파는 것만이 외식업이 아니라는 겁니다.”
“음…… 그래도 그런 음식들을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잖아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많은 사람…… 모든 사람?”
“네. 틈새시장이라는 개념 아시죠?”
“네, 니치마켓(Niche Market)이잖아요. 수요가 비어 있는 틈새를 공략해서 시장을 개척하는 거요.”
“맞아요. 같은 메뉴라고 해도 독특한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도 있고, 아예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서 틈새를 공략할 수도 있죠. 그런 틈새 중에 강재 씨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아요.”
“틈새시장이라…… 어렵네요. 하하.”
주강재가 멋쩍게 웃었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닐 거다.
하지만, 말을 하면서 내 흐릿하던 직감은 확신으로 변해 갔다.
지금은 크게 각광받지 못하고 있지만, 2020년대로 갈수록 점점 더 주목받는 트렌드.
웰빙, 로하스, 친환경, 채식주의 등등.
건강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주강재처럼 건강한 식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간다.
내 지론 중 하나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아이템으로 삼아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사람이 샐러드를 팔아봐야 오래 못 간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샐러드를 어떻게 맛있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반대로 샐러드를 좋아하는 주강재 같은 사람이 삼겹살을 팔 수는 없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갈색으로 익어 가는 삼겹살을 보고 발암물질이라고 생각할 게 뻔한 사람이 어떻게 삼겹살을 맛깔나게 굽고 있겠는가.
누군가에겐 맛을 극대화시키는 마이야르 반응인 그것이 누군가에겐 몸을 해치는 최악의 것이 될 수 있다.
“강재 씨.”
“…….”
“억지로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밀고 나가세요.”
“네? 하하. 저 이대로 괜찮은 건가요? 이렇게 가다가 외식 기업에 취업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분명히 길이 있고, 기회가 있을 겁니다.”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실제로 지금 내 머릿속에만 해도 크게 성공하는 샐러드 브랜드가 몇 개 떠오른다.
꼭 샐러드가 아니라도 건강식을 표방한 한정식 식당이나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들도 떠오른다.
취업을 하든, 사업을 하든 그에게도 반드시 기회가 있는 거다.
예민하고, 까탈스러우며, 건강염려증에 걸린 주강재에게도 자신이 생긴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걸로 제대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다.
주강재만이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반드시 있을 거다.
이건, 싸구려 믿음이 아니라 확신이다.
이미 난 그런 세상을 살다 왔으니까.
“자, 마지막으로 한잔합시다.”
“네. 술도 오랜만에 마시니까 좋네요.”
“네. 앞으로는 절대 마시지 마세요. 제가 강재 씨라면 술은 입에도 안 댈 겁니다.”
“이제 와서 그런 얘기하시는 거예요? 곰탕에 MSG를 가득 넣으신 분이?”
“몰랐으니까요. 알았더라면, 절대 안 그랬을 겁니다.”
짠.
마지막으로 두 술잔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적어도 이번 생에 다시 주강재와 술잔을 나누는 일은 없을 거다.
그를 알고 나니 더 그와의 술자리가 그리워질 것 같긴 하지만.
* * *
봄,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는 바로 봄 소풍이다.
소풍이라고 하면 친구들과 함께 줄을 지어 소풍지까지 걸어갔던 그런 일들도 떠오르고, 놀이기구가 무서워서 다른 친구들이 다 놀이기구를 탈 때 혼자서 그런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래도 ‘범퍼카’는 재미있게 탔었는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풍,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김밥이다.
소풍을 갈 때면 김밥을 싸 주는 문화는 언제부터 생겨난 걸까?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그냥 어렸을 때는 소풍 가는 날은 김밥 먹는 날로 정해졌었다.
그때는 김밥을 파는 집이 많지 않았고, 어머니들은 늘 자신만의 레시피로 김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 주셨다.
오늘 메뉴는 봄 소풍 분위기 나는 김밥이다.
김밥 중에서도 지금은 대중적이지 않은 재료가 들어간 그런 김밥을 만들어 볼 예정이다.
“뭐라고? 김밥에 돈가스를 넣는다고?”
“김밥에 진미채를?”
“에잉? 김밥에 씻은 묵은지를 만다고?”
내가 돈가스 김밥, 진미채 김밥, 묵은지말이 김밥을 한다고 했을 때의 어른들의 반응이다.
이들에게는 분명 생소할 수 있다.
내가 살았던 십오 년 후에는 꽤 대중적인 김밥들이 되어 있었지만.
기획 단계에서 두 분의 어머님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냥 밀고 나갔다.
어차피 매일 김치를 담그느라 바쁘시기 때문에 그 이상 더 신경 쓸 여력도 없으신 게 내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웠다.
솔직히…… 안 드셔 보셔서 그렇지 드셔 보시기만 한다면, 완전히 생각이 달라지실 거다.
김밥에 계란, 단무지, 햄, 맛살, 당근 같은 것만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완전히 편견이라는 걸 깨닫게 되실 거니까.
사람들이 별로 기대하지 않는, 때로는 반대하는 메뉴로 반전의 맛을 선사할 때가 가장 즐거운 법이다.
이번에도 김밥 맛을 볼 두 어머니의 반응을 미리 떠올려 보니 벌써부터 짜릿해진다.
특히 묵은지말이 김밥.
이건 완전히 어른들 취향 저격일 거다.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