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곰탕은 건강에 좋다? (1)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왕이나 드래곤도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지만,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건강을 걱정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건강을 걱정한다.
단, 그게 주강재의 경우처럼 지나칠 경우 다소 문제가 될 수는 있다.
특히 주강재는 외식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가.
뭐든지 먹어 보고, 새로운 식재료나 음식에도 도전해 보는 게 일인 사람이 음식에 대해 지나치게 까다로워서 좋을 건 없다.
주강재를 위한 건강식.
주 메뉴는 바로 곰탕이다.
많은 사람들이 곰탕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곰탕을 끓이는 게 무서웠다.
한 번 끓인 곰탕은 그대로 앞으로의 일주일치 식단이 되어 버리니까.
나이가 들고 나서야 곰탕이라는 걸 사랑하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맑은 국물일 뿐인 그것이 뭐가 맛있다는 건지.
국 안에 들어가 있는 고기들도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자고로 고기는 굽거나 튀겨야 맛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어린이였으니까.
전생에서 설렁탕집을 내기 위해 수많은 맛집을 돌아다녀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유명한 설렁탕 맛집의 설렁탕은 하나같이 어머니가 끓여 주셨던 곰탕 맛이 났다.
그리고…… 그 설렁탕이 너무 맛있었다.
이 맛있었던 걸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걸까.
하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였던 그때.
설렁탕 맛집에 들어갔다 나오면 얼굴이 땀과 물로 범벅됐다.
그 물이 눈에서 나온 눈물인지 더워서 흘린 땀인지 헷갈렸지만.
그때 그렇게도 엄마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아니라.
엄. 마.
한 번이라도 엄마의 곰탕을 맛있게 먹었던 적이 있었는지 반성하면서.
그저 왜 또 맛없는 곰탕이냐고 투덜거리지는 않았었는지 또 반성하면서.
다행히도 그 엄마는 여기 잘 살아 계신다.
갑자기 또 현실감이 무뎌진다.
어쨌든.
주강재를 위한 메인 메뉴는 곰탕이다.
곰탕 중에서도 꼬리곰탕.
반찬?
곰탕에 무슨 반찬이 더 필요하겠는가.
곰탕에 함께 넣어 먹을 송송 썰은 대파와 소금.
잘 익은 깍두기와 오늘 담근 배추김치.
이거면 끝이다.
* * *
꼬리곰탕은 며칠 전 이미 끓여 놓았다.
판매용은 아니고, 직원 보양식 용으로.
곰탕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조리 과정이 복잡한 음식은 아니다.
물론, 정성만큼은 엄청나게 들어가야 하지만.
우선, 최덕호 사장님에게 받은 한우 소꼬리를 반나절 정도 찬물에 담가 놓는다.
핏물을 빼주는 과정인데, 물을 수시로 갈아 줘야 한다.
그 후 깨끗이 씻어서 불에 한 번 끓여 낸다.
끓여 낸 꼬리를 찬물에 깨끗하게 씻어 준다.
이때 불순물이나 지저분한 것들을 잘 씻어 줘야 잡내도 제거되고 국물도 맑아진다.
찜솥에 잘 씻어 낸 꼬리를 넣고 물을 한가득 부은 후 강불에서 끓여 준다.
팔팔 끓여 낸 꼬리는 한 번 더 씻어 준 후 따로 빼놓는다.
고기를 뼈에서 분리하여 놓았다가 곰탕을 먹을 때 고명으로 넣어서 먹으면 된다.
그 후 다시 솥에 물을 붓고 끓인다.
이렇게 세 번 정도 우려내어 끓여 내면 완성.
중간중간 국물에 뜬 불순물들을 제거해 주면 더 깔끔한 곰탕을 맛볼 수 있다.
이렇게 끓여 낸 곰탕은 어머니들에게는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예전에는 부인이 곰탕을 끓여 놓으면 남편들은 경계심을 가졌다고 한다.
곰탕 끓여 놓고 맨날 밖에 나가서 놀까 봐.
뭐, 다 가부장적인 시절의 옛날이야기다.
지금 그런 소리하면 꼰대라고 욕먹는다.
* * *
스윽-
문이 열리고, 오늘의 특별 손님 주강재가 입장했다.
“안녕하세요.”
“네, 편안한 데 앉으시죠.”
주강재를 앉혀 두고, 조리를 시작했다.
큰 솥에 끓여 놓은 곰탕을 뚝배기에 덜었다.
고명으로 넣을 꼬리 고기도 듬뿍 담아 같이 끓였다.
곰탕이 팔팔 끓어오를 때쯤 찬장에서 양념통을 꺼내 뚝배기에 듬뿍 뿌려 줬다.
“어머, 선우야. 그걸 그렇게 거기에 뿌린다고?”
“네. 이게 들어가야 맛있죠.”
어머니의 눈에 의문이 가득 들어차 있다.
“저 강재 학생을 위한 특별 메뉴라며?”
“네. 맞아요. 지금 뿌린 이게 바로 주강재 학생을 위한 특별 레시피입니다.”
“흐음…….”
어머니는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곰탕 나왔습니다.”
“오…… 특별 메뉴가 곰탕이었군요.”
“네. 곰탕 좋아하시죠?”
“네, 좋아해요. 뭔가 제일 건강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영양소가 풍부할 것 같고. 잘 먹겠습니다.”
주강재는 의욕적으로 수저를 들었다.
오랜만, 아니 처음으로 보는 것 같다.
음식을 앞에 둔 주강재의 저런 적극적인 모습은.
그동안 초희 씨를 비롯한 일행들에게 너무 가려져 있던 그다.
하긴, 괴물 같은 식성의 초희 씨나 안, 이 커플은 음식에 있어서는 일반 사람들도 훨씬 초월하는 수준이니까.
그 셋이 먹는 걸 보다 보면 주강재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안, 이는 쉴 새 없이 음식에 대해 얘기하면서 잘 먹었고, 이초희는 쉴 새 없이 그냥 잘 먹었으니까.
주강재는 먼저 국물을 한 번 떠 먹었다.
키야.
“사장님, 이거 진짜 곰탕이네요. 파는 게 아닌 진짜 끓인 곰탕.”
“음…… 강재 씨에게 파는 곰탕인데요?”
“네?”
“농담입니다. 맞아요. 어디서 사 온 게 아닌, 제가 직접 오랜 시간 끓인 곰탕입니다. 꼬리도 한우 투플러스 등급입니다.”
“네. 진짜 그런 거 같아요. 국물 맛이 정말 진합니다.”
“국물이 참 진하죠?”
“네!”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진한 국물에 내가 뭘 넣었는지 알면 주강재의 반응이 어떨까?
자못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우 투플러스라서 그런지 고기도 정말 부드럽네요. 우와.”
“후훗. 고기도 맛있죠? 아, 참.”
고기에 찍어 먹을 양념장을 미처 내놓지 못했다.
얼른 주방으로 가서 양념장을 만들려는데, 스윽.
간장 종지가 조리대 위에 놓인다.
“이거 찾으시는 거 맞죠?”
“오. 어떻게 아셨어요?”
진민호가 특유의 진중한 얼굴로 씨익 웃는다.
“딱 보면 척이죠. 하하.”
“하하. 감사합니다.”
진민호 씨, 장사 많이 느셨네. 후훗.
잠시 후.
드르륵 드르륵.
선우네 백반에 뚝배기 긁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감 시간이 되어가 손님도 없으니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후아. 진짜 잘 먹었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진짜 근래 들어 최고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곰탕 국물은 진하면서도 깔끔해서 맛있었고, 깍두기는 명불허전이고, 새로 담근 김치도 진짜 맛있었어요. 배추가 어쩜 그렇게 달콤한지.”
“오.”
문득 놀랐다.
주강재가 이렇게 맛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었나.
진짜 다시 보게 되네.
“강재 씨. 시간 괜찮으시면, 요 앞에서 커피나 한잔하실래요?”
“좋아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아니요. 그냥 믹스커피. 강재 씨는 커피 안 드시니까 둥굴레차.”
* * *
“곰탕 진짜 맛있었죠?”
“네. 최고의 곰탕이었습니다.”
주강재가 엄지손가락을 높게 치켜들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혹시 제가 곰탕에 뭘 넣었는지 아세요?”
“곰탕에요?”
주강재가 둥굴레차를 홀짝거리며 눈알을 굴렸다.
“글쎄요. 그냥 소금 정도? 제가 간을 하려고 했더니 이미 간이 되어 있더라고요. 원래 곰탕이 간을 안 하면 밍밍하잖아요. 소금을 넣어야 고소해지고.”
“그건 맞아요. 물론, 소금도 넣었죠. 근데, 그것만 넣은 건 아니에요.”
난 주머니에서 작은 양념통을 꺼내 주강재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소금?”
“아뇨. 미원이요. MSG.”
“아…… 사장님도 미원 쓰세요? 의외네요.”
“그럼요. 적당히는 쓰죠. 이 미원 없으면 솔직히 맛을 못 내는 음식도 많아요.”
“아…… 어라. 그럼 혹시?!”
“이제 눈치채셨나요?”
“…….”
“듬뿍 넣었습니다. 후훗.”
“으윽.”
주강재가 인상을 구겼다.
그는 뜨거운 둥굴레차를 연신 홀짝거렸다.
이미 먹어 버린 미원의 맛을 없애 버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왜요? 실망인가요? 곰탕에 미원을 넣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네, 실망이에요. 사장님은 이런 화학조미료 안 쓰시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오늘은 저를 위한 건강식을 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네, 건강식 맞아요. 강재 씨.”
목소리 톤을 낮춰 그를 불렀다.
“네.”
“아까 곰탕에 MSG 넣은 줄 몰랐을 때는 진짜 맛있게 드셨잖아요. 안 그래요?”
“음…… 그건 맞아요. 진짜 맛있긴 했었는데, 어떻게 그게 미원을 넣은 맛이지? 완전 잘 우러난 곰탕 국물이었는데.”
그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의 곰탕은 그에게는 원효대사의 해골물 같은 느낌일 테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덜하다.
해골바가지에 곰탕을 담아 준 것도 아니고, 나는 그저 곰탕에 MSG를 조금 뿌려 준 것뿐이니까.
물론, 화학조미료를 혐오하는 그에게는 상당히 거북스러운 일이었겠지만.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강재 씨는 음식을 다루는 공부를 하시죠? 앞으로도 그쪽으로 일을 하실 거고. 맞나요?”
“음…… 네.”
“실례가 안 된다면, 왜 외식업을 하고 싶은지 물어봐도 될까요?”
“보람된 일이잖아요.”
“보람이요?”
“네.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어서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도록 대접하는 거. 맛있게 드신 손님들이 만족하고 돌아가면서 내가 만들어 준 음식에 대해 칭찬하는 거. 참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음…….”
제법 진지한 생각을 갖고 있었구나.
오늘 그에게 여러 번 놀란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는 노력해야 한다.
건강염려증을 극복하도록.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대접하는 음식을 드시고 만족해하시는 손님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하고 보람찬 감정이 솟구쳐요. 그건 돈과도 바꿀 수가 없어요. 돈으로는 그런 감정을 못 사니까.”
“맞아요. 그런 감정은 물건 사듯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제가 오늘 강재 씨 곰탕에 MSG를 잔뜩 넣은 겁니다.”
“네? 그게 그렇게 연결된다고요?”
주강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봤다.
“네. 외식업을 하면 정말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그들의 입맛 또한 천차만별이고. 우리 같은 식당 사장들은 그런 모든 사람들의 입맛 중 딱 중간 정도 되는 입맛에 음식의 맛을 맞추려고 노력해야 해요.”
“중간……이요?”
“네. 그래야 간신히 많은 사람이 음식을 ‘맛있다’라고 느껴요. 그런데, 지금 강재 씨의 식성은 어떤가요?”
주강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식성을 곱씹어 보는 듯했다.
잠시 후 다시 주강재의 입이 열렸다.
“뭐…… 따지자면…… 거의 자연식을 하는 자연인에 가깝죠.”
“풋.”
웃음이 나왔다.
주강재가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이러면 일이 더 쉬워진다.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안다는 건, 바뀔 수 있는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니까.
“웃기신가요?”
“네. 생각보다 잘 알고 있으시네요.”
“에이. 그럼 사장님은 제가 제 입맛도 모르는 줄 아셨어요?”
“알면서도 그러셨다는 게 더 대단한데요? 그런 노력이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휴…… 근데요, 사장님. 저도 이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주강재는 빈 종이컵을 괜히 홀짝거렸다.
“혹시…… 술이 필요한 순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