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46화 (46/110)

#46화 두릅은 건강에 좋다

선우네 백반의 원조 제비들인 안대훈, 이수미, 이초희, 주강재.

이들은 소위 ‘절친’들이다.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같이 먹고, 놀러도 같이 다니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선우네 백반을 찾는 찐 단골손님들이기도 하고.

이들은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음식을 사랑하고 먹는 걸 좋아한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 한 사람, 주강재는 나머지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이다.

“강재 오빠. 두릅은 진짜 건강에 좋은 음식이야. 많이 먹어도 돼.”

“그, 그런가? 근데 돼지고기 지방이 양념이랑 만나서 타면 거기서 발암물질이 생성된대. 두릅은 괜찮지만, ‘두릅돼지고기주물럭’은 몸에 안 좋을 수도 있는 이유지.”

에휴.

이초희가 깊은 한숨을 쉰다.

“강재야.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우리 세 사람이 어떻게 너랑 친해진 걸까? 이렇게 음식을 가려 먹는 너랑.”

“그러게 말이야. 강재 오빠. 그냥 먹어 좀. 오빠가 알고 있는 지식이 다 맞다고 생각하지 말라니까. 그렇게 따지면 아무것도 먹을 수 있는 게 없어.”

안대훈과 이수미가 답답하다는 듯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주강재.

따지자면 그는…… 일종의 ‘건강염려증’을 갖고 있는 친구였다.

다른 것보다 특히 음식에 대한 그의 염려증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술은 일 년에 한 번 입에 댈까 말까 하고, 과자 같은 간식은 입에도 안 댄다.

밀가루 음식은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고, 과한 양념이 들어간 음식도 안 먹는다.

고기도 삶아 먹는데, 그마저도 지방이 있는 부위는 콜레스테롤을 높인다면서 돼지고기 목살을 주로 먹는다.

백반집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짜거나 양념이 강하거나 동물성 지방이 많은 음식들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처음 감자탕을 끓여 줬을 때도 다른 셋과는 다르게 깨작거렸었던 게 기억이 난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주강재와 나머지 세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친해진 건지.

그리고 주강재는 어쩌다가 외식경영학과에 들어오게 된 건지.

저렇게 음식을 가려 먹는 사람이 말이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네! 저 자연산 두릅은 처음 먹어 보는데 향이 진짜 좋네요. 신기했어요.”

“수미 씨. 미안하지만, 자연산은 아닙니다. 엄연히 이것도 산에서 키운 거니까요.”

“에이. 산에서 키웠으면 자연산인 거죠! 유기농 맞잖아요. 무농약!”

“네, 그건 맞죠. 하하.”

내 말을 들은 이수미가 밝게 웃는다.

“저도 진짜 잘 먹었습니다. 돼지고기랑 궁합이 정말 좋더라고요. 약간 한정식집에서 메인 메뉴로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안대훈의 말처럼 두릅돼지고기주물럭은 봄철 한정식 집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뉴이다.

물론, 거기에는 이모가 산에서 재배한 진짜 두릅이 들어 있지 않겠지만.

“맞아요. 역시 대훈 씨가 아는 게 많네요. 고급 한정식집 가면 봄철 메뉴로 꼭 등장하는 음식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안대훈은 이수미를 향해 몸을 돌리며 ‘오빠, 말이 맞지?’를 연발했다.

이런 가운데 이초희는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펴 내 앞으로 뻗었다.

“공깃밥 다섯 그릇 리필하셨군요. 음식은 맘에 드셨어요?”

이초희는 다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무언가 만족스러울 때 그녀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록 입을 닫는다.

그걸 맛있는 음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여간.

다음은 이 무리의 유일한 ‘외계인’ 주강재.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음…… 아, 사장님. 두릅 같은 경우에는 숙회로 내어주셨으면 어땠을까요? 아무래도 양념이 있는 것보다는…….”

“오빠.”

“강재야.”

나머지 세 사람의 만류.

그만하라는 거다.

“흐흠…… 잘…… 먹었습니다.”

주강재는 마지못해 잘 먹었다는 인사를 했다.

하지만, 주강재의 이런 식성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건강염려증이라고 했었나?

이런 사람들은 애초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대부분의 식당에는 음식에다가 몸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조미료를 가득 넣으니까.

그나마 우리집은 화학조미료를 최소화하여 반찬을 만드니까 주강재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나물이나 김 등 기본적인 반찬도 많이 있고.

게다가 무리가 같이 식사를 하는데 혼자서 늘 빠지기도 쉽지 않겠지.

주강재가 먹는 모습을 보다 보면, 때로 이런 말이 생각난다.

[건강에 대한 지나친 걱정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은 없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시대에는 모두들 아는 게 너무 많아진 게 문제라는 것.

영국의 어느 대학에서 연구한 결과 OO은 발암물질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연구한 결과 OO은 발암물질을 전혀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이렇게 같은 식재료에 대해서도 연구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연구 결과를 내어놓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 와중에 주강재같이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저렇게 지나칠 정도로 음식을 가려 먹는 건강염려증을 앓게 되는 것이다.

“강재 씨. 평소에 음식점들 다니기 쉽지 않죠?”

“아무래도…… 조미료나 몸에 안 좋은 것들을 많이 쓰잖아요. 뭐, 맛은 좋을지 모르지만.”

“음…… 그럴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에 제가 건강 밥상을 좀 해 드리고 싶은데 저녁에 식사하러 오실래요?”

“건강…… 밥상이요?”

“네. 아마 강재 씨한테 딱 맞을 거예요.”

“오…… 저야 감사하지만, 귀찮게 해 드리고 싶지는 않은데.”

“귀찮을 것도 없어요. 대신 저녁 여덟시쯤 느지막이 와 주세요. 그때 되면 한가해지니까.”

“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단골손님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늘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주강재를 보며 마음에 걸렸던 게 사실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건강염려증의 주강재를 위한 특별한 식사를 준비해 줘야겠다.

뭐,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

* * *

“와…… 이런 두릅은 진짜 오랜만에 접합니다. 향이 아주 좋네요.”

“강원도 화천 깊은 산골에서 재배한 겁니다. 거의 자연산과 다름없죠.”

“아…… 그래서 이렇게 향이…… 참, 사장님. 그거 아세요? 동의보감에서는 이 두릅을 ‘성질이 미지근하고 독이 없어서 기침, 당뇨, 소화불량을 다스리는 데 매우 좋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한의학에서는 이 두릅이 혈당과 혈중 지질을 관리해 주고, 나쁜 콜레스테롤을 배출해 주는 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죠.”

“아…… 두릅이 그렇게 좋은 재료였군요?”

카운터에 있는 아버지의 앞에서 두릅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사람.

얼마 전에 방문한 바 있는 동양학자였다.

영훈대학교의 시간강사라고 하셨던가?

이름은 정인태였던 걸로 기억한다.

“네. 좋다마다요. 갑자기 두릅을 먹으니까 퇴계 이황 선생의 시구절이 생각납니다.”

“퇴계 이황이요? 그분이 두릅에 대한 시를 쓰셨었나요?”

“네. 한번 읊어 보겠습니다.”

흠흠.

목을 한번 가다듬은 정인태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의 표정은 제법 진중했다.

“산에서 나는 나물 중에 으뜸은 목두채요.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 중에 으뜸은 석수어다.

복사꽃 붉게 비오듯 날리는 이 봄에.

배불리 먹고 누워서 책을 읽노라.”

짝. 짝. 짝.

정인태의 음시(吟詩, 시를 읊는 행위)가 끝나자 난데없이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황종훈과 장만국.

선우네 백반의 홍보대사가 된 황씨 아저씨와 그의 절친이자 황씨 아저씨를 따라 선우네 백반의 찐 단골이 된 장씨 아저씨다.

“와…… 백반집에서 한시를 다 들어 보네?”

“나이도 젊은 양반이 아주 공부를 많이 했는가벼. 시 읊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먼?”

“하하하. 제가 이래 봬도 동양학을 전공한 학자입니다.”

“아이고, 박사님이셨구먼. 그래서 그렇게 한시를 멋들어지게 읊어 주셨어!”

“좋게 들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시 한 편으로 백반집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다른 손님들의 반응을 걱정하던 아버지의 굳었던 표정도 싹 풀어졌다.

정인태는 난데없이 시를 읊고, 손님들은 그런 걸 불편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환영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게 선우네 백반이 갖고 있는 장점일 것이다.

서울 도심에 있는 어떤 식당에서 누가 한시를 읊을 것이며, 어떤 손님이 그걸 시끄럽다고 하지 않고 즐겨 들을 것인가.

시를 읊은 정인태 강사에게나, 박수를 쳐 준 황종훈에게나, 조용히 들어주신 다른 손님들께 모두 고마울 따름이었다.

“오…… 근데 박사님. 읊은 시에 두릅이라는 말은 없네요?”

“아. 첫 행에 나오는 목두채가 바로 두릅입니다. 나무 머리 위의 채소라는 뜻으로 오늘 반찬으로 해 주신 참두릅을 뜻하지요.”

“아…… 나무 머리 위의 채소! 정확하게 딱 두릅을 표현하는 말이네요. 두릅이라는 말보다도 더.”

“그렇습니다! 이렇게 옛 성인들의 지혜가 뛰어났습니다. 참고로 두릅은 목두채 외에도 ‘조불숙’, ‘자룡아’, ‘노호자’ 등으로 불렸습니다. 참, 두 번째 행에 나온 석수어는 뭔지 아십니까?”

“아이고. 제가 그걸 알 턱이 있나요. 하하하.”

“석수어는 바로 참조기를 뜻합니다. 머리 상단부에 다이아몬드 같은 돌이 박혀 있다 하여 그렇게 불렀지요. 다른 생선에 비해 비린내가 거의 없고, 지방이 적은 대신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 옛사람들의 뛰어난 영양식이었습니다. 하하하.”

정인태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한복 자락을 펄럭이며 가게를 나섰다.

비록 개량한복이었지만, 팔자걸음으로 걷는 폼이 영락없이 사극에 나오는 서생 같은 모양새였다.

그는 오늘처럼 두릅이 나오거나 전통적인 제철 식재료가 메뉴에 나오는 날에 가게를 주로 찾는다.

그리고는 저렇게 식재료에 대해 알고 있는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간다.

그의 그런 행동은 생각보다 전혀 불편하지 않다.

다른 손님들도 그렇게 느끼는 모양인데, 내 생각에는 그의 행동거지에 타인을 향한 배려가 은연중에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식재료에 대해 말을 하는 그의 음성은 차분하고, 논리정연하다.

시를 읊는 그의 목소리는 누구를 거스르려는 마음이 없이 청아하다.

누가 보기에도 많은 공부를 통해 지식과 지혜를 겹겹이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인다.

결국 왠지 모르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는 거다.

거슬림이 없이, 편안한.

어느 순간부터 그를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시간강사라는 자리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든지 알기에 어서 그의 자리가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저렇게 제대로 공부를 한 학자가 좋은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연구도 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바라본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 정도일 뿐이다.

아,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좋은 재료로 맛있는 밥상을 차려 주는 것.

언제든지 그가 와서 살아갈 힘을 얻어 갈 수 있게.

밥은 곧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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