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이모의 행복
이모는 분명 두툼하게 썰어 온 삼겹살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두툼함’의 정도가…… 심각했다.
거의 수육용으로 자른 통삼겹살과 비슷한 크기의 그것.
두툼해도 너무 두툼한 그 고기는 잘 익어도 너무 잘 익고 있었다.
단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그런 고기였다.
고기와 함께 내 눈을 사로잡은 게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석쇠 밑에 깔려 있는 숯이었다.
가운데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갈라진 모양이 인상적인 참숯이었다.
난 예전부터 숯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특히 색깔이 좋았다.
검정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닌 그 색깔의 숯이 불을 품으면 그 불의 색과 숯의 색의 조화가 신비로웠다.
코로는 통삼겹살의 냄새를 맡고, 눈으로는 아름답게 타고 있는 숯을 바라봤다.
이 자체로 커다란 행복이다.
“이모. 이 숯 참 좋아 보이네요.”
“선우 네가 뭘 좀 아는구나. 그거 내가 직접 만든 숯이야.”
“처제가 직접 만들었다고?”
아버지가 제법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버지의 놀람과는 달리 간이로 숯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간이로 만든 숯을 숯가마에서 만든 진짜 숯과 비교하긴 힘들다.
마찬가지로 번개탄이나 싸구려 숯이랑 간이로 만들었지만 참나무로 만든 숯을 비교하는 것도 실례가 될 것이다.
“뭐, 그냥 대충 따라 해 본 거예요. 참나무를 쌓고, 불을 지피고, 기다린다. 그냥 이게 다예요. 호호.”
“그렇게 간단하다고?”
“네. 그렇게 오래 기다리다 보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런 숯이 나와요. 참나무로 만들었으니까 참숯이고.”
“오…… 신기하네.”
아름다운 숯을 써서일까?
다 익은 고기의 빛깔이 환상적이었다.
타지도, 덜 익지도 않은 먹음직스러운 갈색 빛깔의 통삼겹살.
불로만 익힌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뚜껑을 덮어서 공기로 고기를 익히는 훈제 방식도 접목했기 때문에 고기는 안까지 아주 잘 익어 있었다.
이모는 통삼겹살 한 덩이를 통째로 도마에 올려놓고 썰기 시작했다.
스겅.
튀기듯이 잘 익힌 지방 부위와 칼이 맞닿는 소리.
스윽.
바삭한 겉 부분을 통과해 낸 칼이 잘 익은 속살을 부드럽게 잘라내는 소리.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놈이 완벽한 ‘겉바속촉’이라는 걸.
“이모. 좀 빨리 썰어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현기증? 선우 너 어디 아프니?”
어머니가 제법 진지한 얼굴로 물어온다.
아.
이런 말은 아직 안 쓰이는 건가?
아니면, 어른들은 이 말을 모르는 건가.
돌아왔더니 단어를 쓸 때 가끔 이렇게 헷갈리는 경우도 생긴다.
이게 아직 안 쓰이는 건지, 아니면 상대방이 이 단어를 모르는 건지.
어쨌든,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아뇨. 그냥…… 너무 먹고 싶어서요.”
한계에 다다를 만큼 저 고기가 먹고 싶다는 게 중요한 거지.
드디어 시식의 시간.
큼직한 고기를 한 점 집어와서 소금에 찍는다.
고기를 먹는 나만의 법칙 중 하나이다.
첫 고기는 그저 소금에만 찍어서 먹는 것.
상추도 마늘도 청양고추도 쌈장도 곁들이지 않는다.
그게 고기의 맛을 가장 온전히 느끼는 방법이라고 믿으니까.
바삭.
첫 감촉이 좋다.
보던 바대로, 소리를 들은 바대로 바삭하게 잘 구워져 있다.
지방이란 모름지기 바싹 구워져야 맛있는 법.
바삭하고 고소한 겉면을 통과하자 부드러운 속살의 풍미가 느껴진다.
굽기만 한 것이 아니라, 훈제 방식도 겸해서인지 속살이 특히나 부드럽다.
안쪽 부분은 마치 수육의 속살같이 느껴질 정도.
‘와…… 맛있다.’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는,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맛이었다.
그렇기에 더 무서운 맛.
사실 오늘의 주인공은 삼겹살보다는 나물들이다.
고기를 몇 점 집어먹은 뒤, 두릅나무 순을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살짝 데쳐져 있는 두릅나무 순을 하나 집어 올린다.
이 모양은 마치…… 뭐랄까?
머리채를 한 움큼 쥐어 놓은 것 같이 생긴 그런 모양새이다.
다음은 향.
사실 두릅은 이 향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독특하고 좋은 향이 나는데, 사실 뭐라 표현하기는 참 어렵다.
그냥 ‘두릅 향’이라고 말할 수밖에.
순의 끄트머리 부위를 한입 베어 문다.
꼬들꼬들한 식감이 기분 좋다.
잘 익은 깍두기를 씹는 식감이랄까?
그것보다는 살짝 더 부드럽지만.
다음은 잎 부분인데, 이 잎은 쌉싸름한 맛을 내면서 입안 가득 두릅나무의 향을 전해 준다.
으음. 향 좋다.
고기와 두릅나무 순의 조화가 왜 좋으냐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두릅은 고기를 계속 먹을 수 있게 해 준다고.
두릅 특유의 향이 고기의 느끼함을 완전히 제거해 주니까.
고기 한 번에 두릅 한 입을 먹으면 입은 완전히 리셋되는 것이다.
고기를 한 입도 먹지 않았던 처음의 그 입으로.
그렇게 제철 봄나물과 함께한 폭식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오늘 같은 날은 많이 먹어도 된다.
어차피 봄나물들이 고기의 지방분을 다 분해해 줄 거다.
그렇다고 믿는다.
* * *
아름다운 노을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이모네 집에서는 저쪽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이 보인다.
해는 뜰 때도 아름답지만, 개인적으로는 늦은 오후의 노을을 만드는 해야말로 정말 환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의 푸름과 해의 붉음이 저물어 가는 어둠 속에서 섞이는 그 오묘한 색감.
그 색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이렇게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보는 노을이란.
맥주의 맛을 두 배 세 배 업그레이드시켜 준다.
“이모. 산에서 사시니까 행복해요?”
“저 노을을 봐라. 안 행복하고 배기겠니?”
“하긴…… 매일 이런 풍경 보고 있으면 우울할 틈이 없겠다. 불행한 일도 금방 잊을 거고.”
“맞아. 그리고, 여기 있으면 사람들이랑 부딪힐 일이 없잖아.”
“아…….”
이모가 맥주를 한 모금 벌컥 들이켰다.
그때 생각이 나나 보다.
지옥 같았던 결혼 생활의 기억이.
참으로 모진 시어머니였다.
요즘 시대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이모의 전 남편은 전자부품을 만드는 한 중견기업의 2세였다.
재벌까지는 아니라도, 서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재산을 가진 집안.
이모와 이모부는 현격한 집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했다.
이모부는 이모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사려 깊은 됨됨이를 좋아했다.
물론, 외모도 한몫했을 거다.
이모는 큰 키에 작은 얼굴을 한, 당시에는 참 찾아보기 힘든 서구형 외모의 미녀였으니까.
이모는 곰같이 든든한 이모부의 성격을 좋아했다.
너무 수수한 사람이어서 처음에는 그런 큰 기업의 2세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 이후의 스토리는 그냥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막장 드라마의 스토리였다.
시어머니는 아무리 봐도 맘에 안 드는 며느리를 있는 대로 구박했고, 곰 같은 이모부는 이모를 위로해 주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모부가 곰보다 여우 같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이모의 결혼 생활이 더 편안했을까?
이렇게 이모가 산에 혼자 들어와 살 일도 없었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다.
애초에 여우 같은 사람이었으면 이모가 이모부를 좋아했을 리도 없겠지.
곰같이 든든한 이모부를 좋아했던 거니까.
이모의 결혼 생활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고.
“가끔 몸이 저릴 정도로 외로울 때가 있거든.”
“…….”
“그럴 때면 생각하지. 역시 사람은 사람이랑 부대끼며 살아야 하나? 나도 더 늦기 전에 산 생활 접고 내려가야 하나?”
나는 그저 묵묵히 이모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같은 추임새는 이 고즈넉한 산골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저녁을 맞이하는 산새 소리가,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는 산바람이 그런 추임새를 대신해 주니까.
“그렇게 생각을 거듭해 가다 보면 딱 그 지점과 만나. 아무리 그곳을 피해서 돌아가려 해도 결국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그 지점.”
그 지점이라 함은 아마도 이모의 결혼 생활이 있었던 그 삶의 지점일 것이다.
“거길 못 지나가겠더라.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면 거길 통과해야 하는데, 그게 안 돼. 이미 오래 지난 일이라는 거, 그들은 날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라는 거. 다 알고 있는데, 그게 안 돼. 그게 내가 여기서 살고 있는 이유야.”
“…네.”
“행복하냐고 물었지? 난 그냥 여기서 행복을 찾고 있는 거야.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산새들처럼, 이름도 모르는 풀꽃들처럼. 왜냐고? 여기 아니면 더 올라갈 곳이 없거든. 그러니, 여기서는 반드시 행복해야 되지 않겠어?”
이모의 말은 내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안타까우면서도 안타깝지 않았다.
이모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이모는 서울로 가는 내게 마지막 한마디를 덧붙였다.
- 다음에는 여자친구랑 와. 여기 방 많아.
뭐, 그럴 수 있다면요.
* * *
<오늘의 메뉴>
- 두릅돼지고기주물럭
(비닐하우스 재배 아님. 산에서 키운 진짜 두릅)
- 쌈 채소
- 달래된장찌개
- 흑미밥
- 그 외 기본 반찬
오늘은 이모가 푸짐하게 챙겨 준 두릅을 활용해 볼까 한다.
두릅은 돼지고기와 정말 궁합이 좋다.
그렇다고, 이모네 집에서 먹은 것처럼 손님들에게 드리긴 어렵고…….
돼지고기 앞다리살과 두릅을 활용해 주물럭을 만들어 볼까 한다.
주물럭이라고 하니 뭔가 특별한 걸 얘기하는 듯한데, 사실 그냥 돼지고기볶음이라고 보면 된다.
돼지고기볶음을 뜻하는 여러 용어들이 있다.
제육볶음, 두루치기, 주물럭이 대표적인 세 가지인데, 이 용어들은 서로 명확한 구분 없이 혼용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어떤 용어를 써도 별 상관이 없다는 뜻.
실제로 여러 식당을 다녀보며 주물럭과 제육볶음과 두루치기를 먹어 봤지만, 양념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있을 뿐 조리 방법에서는 대동소이했다.
결국 돼지고기에 각종 재료들을 넣고 볶는 것.
그것이 주물럭이고, 두루치기이고, 제육볶음이다.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간장, 고추장 등을 넣고 양념장을 만든다.
먼저 준비한 돼지 앞다리살을 양념과 섞어 골고루 잘 버무려 준다.
깨끗하게 손질한 두릅은 큰 것의 경우 줄기를 따서 활용하고, 작은 것의 경우 통째로 쓴다.
두릅도 역시 돼지고기와 함께 양념에 잘 버무려 준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재워 주면 고기 준비는 끝이 난다.
달래를 넣은 된장찌개는 사람들의 입맛을 깔끔하게 헹궈 줄 오늘의 한 끗이다.
주인공인 달래는 당연히 이모가 내어 준 선물.
야생에서 자란 달래는, 재배한 달래와는 비교할 수 없이 향긋한 냄새가 난다.
그런 달래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를 한입 맛보면 비로소 봄이 왔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
우려낸 멸치 육수에 감자와 양파를 먼저 넣고 끓여 준다.
된장을 넣어 주고, 고춧가루도 뿌려 준다.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놓은 두부도 추가한다.
찌개가 다 끓어 갈 때쯤 주인공인 달래를 넣어 준다.
달래는 그 향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오래 끓이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한 번 끓여 내면 달래된장찌개 완성.
장사 준비를 마치고, 잠시 바깥에 나와 선선한 아침 공기를 느껴 본다.
벌써부터 화천 이모네서 느꼈던 상쾌한 공기가 그리워진다.
그래도…… 사람은 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이 있는 거니까.
오늘은 또 어떤 손님들이 가게를 찾아와 북적이게 해 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