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43화 (43/110)

#43화 전통과 고집 사이 (1)

김명장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융단폭격 속에서도 꿋꿋이 영진시장을 지키고 있는 이곳의 터주대감 빵집이다.

이 자리에서 영업을 한 지만 벌써 삼십 년째.

빵집 이름에서 다들 눈치채는 사실이지만, 김명장 베이커리의 주인은 바로 이 김명장 아저씨다.

다들 ‘명장’이라는 이름이 가명이 아니냐고 했지만, 아저씨의 진짜 이름이라고 한다.

집안의 돌림자가 우연히 ‘명’이었고, 장남인 아저씨에게 명 뒤에 ‘장’을 붙여 이름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빵 명장이 될 운명이었던 거다.

명장 아저씨는 결코 빵집 안으로 백반을 배달시킨 적이 없다.

바쁜 일과 중에도 꼭 식당으로 와서 밥을 먹는다.

그는 빵집에서 밥 냄새가 나는 순간, 그건 이미 빵집이 아니다, 라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빵은 냄새로 먼저 먹는다는 것이다.

너무 바쁘면 밥을 아예 안 먹는다.

특이한 사실은 빵의 명장인 그가 빵은 입에도 안 댄다는 사실이다.

그는 밥을 좋아한다.

특히 한식을.

나는 그를 꽤 존경하는 편이다.

빵집에 밥 냄새를 풍기지 않게 하기 위해 굶기까지 하는 그의 모습, 빵은 입에도 안 대면서 예술 작품을 만들 듯 빵을 만드는 그의 모습에서 무구한 장인 정신을 느끼기 때문이다.

밥이든 빵이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일종의 장인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게 나를 믿고 음식을 사 먹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다.

김명장 베이커리 안.

주부로 보이는 여자가 케이크가 진열되어 있는 곳을 둘러보고 있다.

“아저씨. 생크림 케이크는 없어요?”

“아, 저희는 버터크림 케이크만 만들고 있습니다.”

“아…… 생크림 케이크가 맛있는데.”

“그럼 길 건너 파리 빵집 가서 생크림 사다 드세요. 여기 오지 말고.”

“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손님한테.”

“손님이야말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버터크림 케이크가 맛없으면 안 사면 되지 왜 생크림 케이크를 얘기하냐고요.”

“어머, 별꼴이야. 흥.”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휑- 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저, 저런! 에휴…… 왜 다들 생크림 케이크만 찾고 난리야!”

김명장은 쓰고 있던 긴 모자를 잡아 던졌다.

요즘 들어, 아니 몇 년째 매출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단골들이 빠져나가고, 새로 유입되는 고객들도 없다.

- 호두크림치즈빵 없어요?

- 여기 아이스크림은 안 팔아요?

- 맛이 너무 옛날 맛이에요.

사람들이 하는 말.

호두크림치즈빵 대신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호두 파이를 판다.

아이스크림은 원래 빵집에서 파는 게 아니다.

옛날 맛이 아니라, 진짜 전통 빵의 맛이다.

아무리 이렇게 말해 본들, 다들 아까의 손님처럼 코웃음을 칠 뿐이다.

사람들의 입맛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하지만, 김명장은 전통의 방식을 지켜가는 게 그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에이, 밥이나 먹자.”

그는 흰색 제빵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가게 문을 잠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선우네 백반이었다.

* * *

<오늘의 메뉴>

- 가지된장덮밥

- 고추장아찌

- ‘직접’ 구운 김

- 냉이무침

- 계란국

- 그 외 기본 반찬

“어서오세요!”

김명장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오, 빵집 사장님이시네요.”

“저 빵집 사장 아닙니다. 파티시에입니다.”

“아, 맞다. 파테시로 불러 달라고 했죠? 호호호.”

“파. 티. 시. 에. 흐흠.”

“아이고, 알았어요. 깐깐하시기는. 여기 앉아요. 파테시 양반. 백반 드려?”

“네, 뭐. 주세요.”

메뉴판을 본 김명장의 표정이 살짝 께름칙했다.

‘가지된장덮밥?’

뭔가 처음 들어본 음식 이름.

하여간, 요새는 다들 이상한 걸 섞는다니까.

가지 덮밥이면 가지 덮밥이고, 된장밥이면 된장밥이지…… 웬 가지된장덮밥?

오늘은 백반집 메뉴도 맘에 안 든다고 생각하는 김명장이다.

주방으로 들어온 고종숙 여사가 선우에게 묻는다.

“파, 파티? 그게 뭐니?”

“파티라뇨?”

“아, 저기 김명장 씨가 만날 얘기하는 그거 있잖아.”

“아…… 파티시에?”

“아, 그래. 그거!”

“제빵사라는 뜻이에요. 프랑스 말이고요.”

“아…… 제빵사. 그럼 빵집 사장 맞네?!”

“후후. 그렇죠 뭐. 우리가 백반집 사장인 것처럼.”

“아이고, 별것도 아니구먼. 빵집 사장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정색을 해. 저 인간이.”

익히 알고 있다.

김명장의 ‘파티시에’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하긴, 저 연배에 프랑스에 가서 빵 공부를 하고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냥 그렇게 불러 주세요. 저희가 자부심 갖고 음식 만드는 것처럼 김명장 아저씨도 그런 거니까.”

“음…… 그런가? 아니 도통 입에 안 붙어서 말이지.”

파티, 파티시, 파테시…….

어머니는 파티시에를 입으로 계속 되뇌며, 반찬을 담으셨다.

오늘의 메뉴, 가지된장덮밥은 굳이 구분하자면 퓨전 한식에 속했다.

소스에 된장과 두반장이 한꺼번에 들어가는데, 그게 바로 중식과 한식의 콜라보라고 볼 수 있다.

퓨전이라고 해서 별건 없다.

그냥 기존에 있던 음식을 조금씩 변형하고, 새로운 소스를 추가하면 그게 퓨전이 되는 것이지.

가지된장덮밥은 아무래도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만든 메뉴이긴 하다.

생소한 것들에도 쉽게 도전을 할 수 있는 대학생들.

하지만, 누구든지 먹어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잘 익어 뭉근한 가지와 볶은 된장에서 옛 풍미를 가득 느낄 수 있을 테니.

두반장 소스의 살짝 치는 맛도 매력이고.

가지와 양파는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서 준비한다.

마늘은 다지긴 하되, 좀 알이 굵게 다져 주면 좋다.

송송 썬 대파도 준비하고.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 대파를 넣는다.

센 불에서 볶다가 깍둑 썬 양파도 넣고 같이 볶아 준다.

채소가 절반 정도 익으면, 간 돼지고기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해 준다.

돼지고기 빛깔이 먹음직스러운 갈색 빛으로 바뀌면 된장 한 큰술을 넣고 다시 볶는다.

구수한 냄새가 날 때까지 볶은 후, 가지와 물, 설탕 약간을 넣고 졸인다.

이때 두반장 소스를 넣어서 같이 졸여 준다.

녹말가루를 물에 풀어서 덮밥 소스에 부어 걸쭉하게 만들어 준다.

소스가 완성될 즈음, 참기름을 약간 넣어 준다.

완성된 가지된장소스를 흰 밥 위에 부어 주면 완성.

“가지된장덮밥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의 메뉴가 김명장의 테이블로 배달되었다.

김명장은 덮밥의 비주얼을 보더니 살짝 머뭇거렸다.

중국집에서 파는 마파두부덮밥 같기도 한 것이, 느낌은 카레 같기도 하고, 색깔은 된장찌개 색깔이 난다.

‘이런 건……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아닌데?’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단골 밥집을 바꿔야 하나?

이 집은 백반집 아닌가.

백반집이라면 모름지기 뜨거운 밥과 국과 찌개, 그리고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된다.

이런 새로운 메뉴는 없어도 된다.

그렇지만.

꼬르륵.

일단, 배가 너무 고팠다.

김명장은 밥에 소스를 살짝 비벼서 입으로 가져갔다.

‘음……?’

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소스를 조금 더 듬뿍 떠서 밥과 함께 비벼 입으로 가져갔다.

‘으흠……?’

된장 맛이 나는데, 거기에 살짝 매콤한 된장이 섞여 있는 느낌이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왠지 모르게 굉장히 당기는 맛이다.

감칠맛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잘 볶아서 뭉근해진 가지의 맛은…… 딱 김명장이 좋아하는 맛이다.

가지라고 하면, 그의 최애 식재료 중 하나.

이후로는 생각이 멈췄다.

오직 입에 음식을 넣고, 씹고, 넘기는 시간.

중간중간 호로록 넘겨주는 계란 국물이 또 훌륭하다.

이건 표고버섯을 활용해 육수를 내 깊은 맛을 낸 모양이다.

또한, 심심할 때마다 싸먹는 구운 김과 고추 장아찌가 된장덮밥과 잘 조화를 이룬다.

탁.

숟가락을 놓는데, 아쉬움과 만족감이 동시에 밀려든다.

더 먹고 싶다는 아쉬움.

맛있었다는 만족감.

* * *

“맛있게 드셨어요?”

“어, 선우구나. 생각보다 맛있더구나. 흠흠.”

“아, 다행이네요. 사실 좀 오늘 메뉴 만들면서 걱정을 했거든요.”

“그래?”

“네. 아무래도 어르신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메뉴니까요. 이름도 그렇고.”

“아…… 맞아. 나도 사실은 좀…….”

“이해해요. 참, 시간 되시면 꽃차 한 잔 드시고 가실래요?”

“꽃차?”

마침 김명장이 식사를 마친 시간은 브레이크타임을 앞둔 오후 두 시 반이었다.

한 달 전쯤이었다면, 7분 김치 이찬호 씨가 들어왔을 시간이다.

김명장에게 방금 물을 부은 매화차를 건넨다.

“매실청이 소화에 좋은 거 아시죠? 매화차도 비슷한 효능이 있습니다. 특히 신경을 써서 소화가 잘 안 될 때 좋아요.”

“음…… 어떻게 알았어? 요새 내가 아주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거든. 후후.”

“뭐, 그래서 드렸던 건 아니고요. 후후. 무슨 일 있으세요?”

호로록.

김명장이 뜨거운 매화차를 한 모금 넘긴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그의 입이 열린다.

“나, 빵집 문 닫을까 봐.”

“음…….”

“몇 년째 겨우 유지 중인데, 이제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아. 오던 손님은 안 오고, 새로 오는 손님도 없고. 에휴.”

“아무래도…… 새로 생기는 프랜차이즈 빵집 영향이 크겠죠?”

“휴…… 프랜차이즈의 ‘프’도 꺼내지 마라. 걔네들 때문에 아주 죽겠으니까. 공장에서 찍어대듯 만드는 빵이 뭐가 그리 맛있다고.”

김명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런 고민은 오직 그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OOO 베이커리, XXX 빵집은 사라져 가고, 파리 빵집 27호점, 매일 빵집 76호점 등등…… 프랜차이즈 빵집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으니까.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해 가고, 사람들의 입맛이 변해 가는 걸 뭐라 탓할 수는 없다.

밥집이든 빵집이든 장사라는 건 결국 고객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거니까.

다만, 안타까운 건 모든 빵집이 프랜차이즈가 되어 가며 획일화되어 간다는 거다.

획일화의 피해는 결국 고객들에게 돌아온다.

나중에는 다들 프랜차이즈에서 파는 똑같은 빵을 먹을 수밖에 없는 거니까.

프랜차이즈의 파급력은 실로 무섭다.

그건, 지난 생에 직접 경험을 해 봐서 잘 알고 있다.

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그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다.

그저 백반집 사장일 뿐인 나에게까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그의 고민이 얼마나 오래되고, 깊었는지 알 수 있다.

“어찌나 속이 답답한지 담배 생각이 나더라니까.”

“아…….”

빵 냄새를 해치기 싫어 밥도 빵집에서 안 먹는 김명장이다.

담배하고는 수십 년 전 인연을 끊었었다고 했다.

나로서도 김명장 베이커리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김명장 베이커리는 내 어린 시절 동네의 유일한 빵집이었다.

설탕 가루가 곰보처럼 붙어 있는 소보로빵이 있었다.

모닝빵 안에 각종 채소가 케첩, 마요네즈와 함께 버무려진 사라다빵도 있었고.

물론, 사라다가 아니라 샐러드빵이다.

맘모스빵은 조금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었다.

커다란 빵 안에 딸기잼이 발려 있었는데, 조금씩 뜯어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케이크는 또 어떤가.

지금이야 케이크를 흔하게 먹었지만, 어렸을 때는 진짜 생일에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바로 케이크였다.

버터크림인지 생크림인지, 그런 구분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으니까.

장미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설탕 장식물을 서로 먹겠다고 싸우던 기억까지 고스란히 갖고 있다.

이런 김명장 베이커리가 없어진다는 건, 나에게도 추억의 한 페이지가 사라져 버린다는 거다.

그런데, 말이다.

사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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