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반전의 7분 김치
7분 김치, 이찬호 씨가 며칠째 안 보인다.
“7분 김치한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혹시 다른 밥집 찾은 거 아닐까?”
“음…… 강박증이라 다른 밥집 못 갈 텐데?”
“갑자기 안 보이니까 궁금하네.”
우리는 각자 이찬호가 안 보이는 데 대해 나름의 의견을 피력했다.
매일 두 시 반이면 정확하게 얼굴을 내밀던 사람이 안 보인다는 거.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며칠째, 두 시 반이 되면 다들 신경을 문 쪽으로 쏟는다.
스윽- 하고 문이 열리면 고개를 문쪽으로 홱- 하고 돌린다.
가끔씩 주방에서 진민호가 쑤욱- 하고 고개를 내밀 때도 있는데, 그 모습이 미어캣 같아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어쨌든.
보이지 않는 이찬호 씨가 우리를 생각보다 허전하게 했다.
그래도 김치찌개를 끓이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찬호 씨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매일 오후 두 시 반에.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여덟 시.
영업을 끝내고 마감을 준비하던 그때, 스윽- 하고 문이 열렸다.
이찬호 씨였다.
“어.”
“치, 칠 분…….”
“오랜만…….”
당황한 우리는 누구 하나 제대로 그에게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다.
매일 두 시 반에 찾아와 7분 만에 김치찌개를 먹고 가던 이찬호 씨가, 한동안 안 보이다가 저녁 여덟 시에 찾아왔으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
“혹시…… 지금 밥 먹을 수 있나요?”
“아, 아. 그, 그럼요.”
대답을 하며 아버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다들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궁금했던 만큼 그립기도 했던 이찬호 씨.
뭐, 그립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이찬호 씨가 왔는데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모질게 내칠 수는 없지.
“김치찌개로 하실 건가요?”
“…새싹비빔밥이 오늘의 메뉴던데…… 그건 안 될까요?”
“네에?!”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어머니는 애써 입을 틀어막으며 터져 나오는 소리를 막았다.
그만큼 다들 너무 깜짝 놀랐다.
7분 김치가 오늘의 메뉴를?
“놀라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영업시간도 지난 것 같은데, 다른 메뉴를 먹는 게 더 죄송해서요.”
“아아. 그, 그러셨군요. 물론입니다. 오늘의 메뉴 됩니다. 자, 여기 새싹비빔밥 하나요!”
새싹비빔밥.
봄을 맞아 준비한 메뉴이다.
특별한 조리는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싱싱한 새싹과 그에 잘 어울리는 양념장을 만드는 일.
적무, 알팔파, 적양배추, 클로버 등의 새싹 채소와 청경채, 비트, 적채잎, 적양배추순 등의 어린 잎채소를 듬뿍 담아준다.
고추장이나 초장을 사용해서 간단하게 비벼 먹어도 되지만, 그래도 오늘의 메뉴이니만큼 양념장을 만들었다.
고추장, 참기름, 올리고당, 다진 마늘, 간장 등을 넣고 잘 섞어 주면 양념장 완성.
밥과 채소 위에 양념장을 뿌려 주고, 미리 만들어 둔 계란프라이를 올리면 끝이다.
이찬호의 앞에는 새싹비빔밥과 냉이된장국이 놓여졌다.
우리는 일을 하는 척했지만, 사실 모든 신경은 이찬호에게로 향해 있었다.
- 새싹비빔밥도 7분 만에 먹을까?
- 음…… 더 빨리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뜨겁지가 않잖아.
- 일리 있네. 김치찌개도 어떤 때는 더 빨리 먹었으니까.
- 맞아요. 6분 23초 만에 먹었을 때도 있었어요.
- 진민호 씨. 그걸 또 언제 재셨어요?
- 자주 재어 봤습니다. 궁금해서요.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찬호는 서서히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비빈다.
그 동작이 어쩐지 여유롭게 느껴진다.
허겁지겁 김치찌개에 밥을 퍼 넣던 그 동작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조금이라도 덜 비벼지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매우 정성스럽게 밥을 비볐다.
마치 그의 동작 앞에서 시간이 정지해 있는 듯했다.
- 2분 27초.
- 진짜요?
- 네. 밥 비비는 데 걸린 시간.
- 와…… 예전 같았으면.
- 이미 꽤 밥을 먹었을 시간이죠.
밥을 다 비빈 이찬호는 이번에는 숟가락을 냉이된장국으로 가져갔다.
저 냉이로 말할 것 같으면, 유림농산의 노유림이 거래를 튼 기념으로 특별히 가져다준 자연산 냉이이다.
자연산인만큼 그 향이 무척 진했다.
된장을 넣고 심심하게 끓이니, 새싹비빔밥과의 궁합이 환상적이었다.
된장국을 한술 퍼 넣은 이찬호는 음미하듯이 천천히 냉이를 씹었다.
그 모습이 생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게 정말 7분 만에 김치찌개를 전쟁 치르듯 먹던 그 이찬호 맞단 말인가.
이후에도 이찬호의 느린 식사는 계속됐다.
비빔밥을 한 입 먹은 후에는 어김없이 오랫동안 밥을 씹었다.
국 한 숟갈, 반찬 하나도 급하게 넘기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동물 구경하듯이 신기하게 그 장면을 관람했다.
마감을 해야 된다는 생각도 잊은 채.
- 27분 52초.
- 어머나. 그렇게나 시간이 흘렀어요?
- 네. 기록입니다. 기록.
- 저 사람 진짜 7분 김치 맞아?
맞다.
수염도 깨끗하게 깎고, 안경도 바꾸고 어딘지 모르게 표정도 달라졌지만, 그는 이찬호가 맞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그의 모습과 행동 때문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였지만.
“맛있게 드셨어요?”
“네, 잘 먹었습니다. 비빔밥이 아주 맛있네요. 채소도 신선하고, 양념장도 잘 어울리고요.”
“맛있게 드셔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슬쩍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궁금해했으니까.
이찬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7분 김치가 어떻게 7분 김치에서 벗어나게 된 건지.
그의 행동이 상처로 인한 강박증 때문이었다는 걸 알기에 더 궁금해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괜찮아진’ 것인지.
새싹비빔밥을 먹던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으니까.
“날씨도 좋은데, 이 앞에 있는 벤치로 나가서 얘기 나누실까요?”
“아, 그래도 된다면…… 저야 좋죠.”
믹스커피 두 잔을 들고, 시장 골목 끝에 있는 벤치로 나갔다.
벤치라기보다는 어쩌면 평상에 가까운 그곳은, 시장 상인들이나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 가는 간이 쉼터 같은 곳이었다.
호로록.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이찬호가 말문을 열었다.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감사요……?”
“네. 그동안 매일 저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여 주신 것에 대해서요. 늘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감사는요, 무슨. 손님이 와서 식사를 드린 것뿐인데요. 돈도 받았고요. 저희가 감사를…….”
“알고 있었습니다. 두 시 반부터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된다는 걸.”
아…… 그걸 알고 있었구나.
이찬호의 말대로 두 시 반부터 네 시까지는 사실 선우네 백반의 브레이크 타임이다.
하지만, 매일 두 시 반에 오는 이찬호에게는 예외였다.
뭐, 이찬호 덕분에 가끔씩 두 시 반 넘어서 다른 손님까지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손님이 있다는 걸 알고 들어오는 다른 손님을 내칠 수는 없는 거니까.
이찬호의 말은 이어졌다.
“저는 사실…… 일부러 두 시 반에 맞춰서 온 겁니다. 사람들 눈에 띄기 싫었거든요. 혼자서 밥을 먹고 있으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나를 흉보는 것 같아서요.”
“음…….”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따위의 추임새는 넣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그때 그가 갖고 있었던 솔직한 심정이었을 테니.
“선우네 백반이 가장 편해서 그랬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브레이크 타임 때 가면 바로 눈치를 주거든요. 물론…… 제가 잘못한 거지만요. 그런데, 여기는 안 그렇더라고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웃으면서 저를 맞아 주셨어요.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그야…… 가게를 찾아와 주시는 귀한 손님이니까요. 이찬호 씨는 저희 가게의 나름 VIP셨습니다.”
백반집의 VIP가 별것 있겠는가.
매일 찾아와 집밥처럼 밥을 먹는 사람이면 VIP지.
“네. 저를 귀하게 대접해 주신다는 걸 충분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했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감사를 드려야죠.”
한 차례 마주 본 우리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훈훈한 분위기다.
따뜻한 봄바람이 평상 위를 훅 지나갔다.
“지금은…… 괜찮아지신 겁니까?”
“아…… 다들 알고 계셨죠? 제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음…… 어떻게 하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하게도.”
“미안해하실 거 없습니다. 어차피 동네 사람들 다 아는 얘기인 걸요. 훗.”
“…….”
“보시다시피 지금은 완전히 나아졌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니, 설명할 수가 없겠습니다. 갑자기 병이 찾아온 것처럼 갑자기 병이 저를 떠나갔으니까요. 맛있는 김치찌개를 매일 먹어서일까요? 하하하.”
움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박증에 좋다는, 세로토닌이 가득한 멸치 육수로 끓인 김치찌개가 정말 효능이 있었던 걸까?
“왜 놀라세요? 찌개에 뭐라도 넣으신 거 아닙니까? 정신과 약이라도? 하하하.”
“아하하하. 그럴 리가요.”
나름 천연 약효 성분은 넣었지만 말이다.
호탕한 웃음을 멈춘 이찬호의 말이 이어졌다.
“몸이 나아진 후, 학원 강사로 새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학원 강사요?”
“네.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수능 공부를 좀 오래 했거든요.”
“아…… 게다가 공부도 상당히 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와 같은 또래는 아니었지만, 또래들 사이에서는 수재로 유명했던 게 바로 이 이찬호라는 사람이었다.
“네. 그래서 애들 수능 공부 가르치는 건 자신 있습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수염을 자르고 깨끗하게 차려입은 이찬호는 상당히 모범적이고 바르게 보였다.
‘선생’이라는 수식어가 꽤 어울릴 만큼.
“응원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찬호는 꾸벅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어둠 속을 뚫고 나갔다.
그의 당당한 뒷모습에서는 무언가에 쫓기듯 김치찌개를 먹던 과거의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말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맛있는 김치찌개를 매일 먹어서일까요?
정말 그를 생각하며 만든 김치찌개가 효능을 발휘했던 걸까.
에이.
그런 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
내가 무슨 포션으로 약물을 만들어서 김치찌개에 넣은 것도 아니고.
어쨌든.
두 시 반에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쉬웠지만, 그를 괴롭히던 병증을 털어 내고 행복한 새 인생을 시작했다는 게 너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오늘의 메뉴, 새싹비빔밥과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그의 새로운 시작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처럼 힘차고 향기롭기를 기대한다.
* * *
“7분 김치가 뭐라고 했어?”
“모두에게 감사드린대요. 그동안 폐 끼친 거 죄송하고.”
“죄송은 무슨…… 가게를 찾아와 준 손님인데. 우리가 공짜로 밥 준 것도 아니고.”
“네. 저도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앞으로는 매일 여덟 시에 오는 겁니까? 28분 만에 새싹비빔밥을 먹으러?”
갑작스러운 진민호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설마?”
“새싹비빔밥이면 만들기가 더 편하긴 하겠네. 호호.”
“28분 동안 마감도 못 하고 기다려야 되는 건가, 그럼? 하하하.”
“불행하게도……”
살짝 표정을 굳히며 뜸을 들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건 아니랍니다.”
“에이, 놀랐잖아!”
“선우야, 어른들 놀리는 거 아니다.”
“떼끼!”
한바탕 웃으며, 오늘의 하루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