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멘보샤 왜 만들었지?
유림농산의 노유림 사장.
오늘 내가 만나러 온 사람이다.
긴 머리를 질끈 묶은 그녀는 바쁘게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사장님, 부추 그거 좋은 거야. 그냥 가져가시면 된다니까.”
“아이고, 오빠! 뭘 자꾸 그렇게 만져 봐. 물건 사기 싫으면 딴 데 가. 딴 데!”
그녀의 나이 이제 고작 삼십 대 후반.
아니지.
15년 전이니까 이십 대 초반이구나.
하여간,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이곳 시장판에 뛰어든 그녀는 이 바닥에서 억척스럽기로 유명했다.
처음에는 다들 그녀의 곱상한 외모를 보고 쉽게 접근한다.
하지만, 그녀의 온몸에 돋아 있는 엄청난 가시에 다들 놀라고 말지.
그렇다고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그녀는 아니다.
오히려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붙임성으로 어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번 좋은 물건을 보장하는 그녀의 실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참을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바쁜 와중에 끼어들어 봤자 욕만 바가지로 먹을 뿐이다.
지난 생에 나였다면 그녀와 오빠 동생 하면서 정겹게 인사를 나누겠지만…… 아직 그녀는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까.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그녀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처음 보는 오빠네?”
제법 서늘한 날씨에도 그녀의 이마는 땀으로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일단, 이거 한 잔 드세요.”
미리 준비해 온 커피를 건넨다.
“오…… 나 커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시장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바로 반말이 나와야 한다.
오랜만에 느끼는 거친 분위기가 반갑기까지 하다.
한 모금 커피를 마신 그녀가 말을 잇는다.
“커피 줄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거고. 물건 사러 왔어?”
“네. 지나가다가 보니 여기 물건이 좋아 보이네요.”
“훗. 말솜씨가 좋은 오빠구나. 근데, 어쩌지? 우리는 대부분 물건이 다 납품계약이 되어 있어. 소규모 업체에 팔 게 없다는 얘기야.”
“네.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고?”
알고 있다.
나같이 초보로 보이는 구매자에게 이들이 먼저 던지는 말이 있다는 걸.
일단, 무조건 물건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도 이유는 있다.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장에서 이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 와 봐야 걸리적거리기만 한다.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큰 규모의 거래를 할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대충 없다고 하고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노유림은 커피까지 사 온 내 정성을 봐서 오래 상대해 준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제대로 말도 못 붙였을지도 모른다.
“자, 커피 잘 마셨고. 오빠 좀 나와 보지. 우리 바쁜데?”
“음…… 물건은 다 파신 거 같은데요?”
“아이고, 그건 또 어떻게 아셨대? 그러니까 바쁘지. 이제 나도 좀 쉬어야 될 거 아니야.”
“그렇군요. 근데…… 식사는 안 하세요?”
“식사?”
마침 꼬르륵- 하고 노유림의 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젠장. 이놈의 배는 꼭 시간 맞춰 울리고 지랄이네.”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구수한 멘트를 던졌다.
“오빠. 그럼 밥이나 먹고 가. 여기 시장 백반집 맛있어. 배달도 해 주고.”
식당에 전화를 걸려는 그녀를 막아섰다.
“도시락 싸 온 게 있는데, 같이 먹을래요?”
“풉. 이 오빠 진짜 순수한 오빠네. 와…… 오빠. 시장에서 그렇게 흐물흐물거렸다가는 밟혀 죽어. 오빤 시장이 안 어울리네. 진짜.”
후훗.
장사를 하면서 몇 년간 시장 바닥에서 굴러가며 물건 사는 법을 익혔던 나이다.
지금 모습이야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기 전 대학생 때의 모습이니 그녀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장사 처음 시작하는 순진한 젊은 사장 정도로.
그녀의 비웃음 섞인 말을 뒤로 하고, 일단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헙!”
그녀에게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이건…….”
“멘보샤라는 중국 요리입니다.”
“…….”
멘보샤.
어찌 이 요리의 이름을 모르겠는가.
노유림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손을 움직여 멘보샤 한 덩이를 들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당히 익어 옅은 갈색을 띠는 멘보샤를.
한참을 바라보던 그것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바삭.
튀긴 지 조금 지나서 바삭함은 줄어들었지만, 특유의 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치킨이 식어도 맛있는 것처럼 멘보샤도 그랬다.
빵 안에 숨겨 있던 새우살은 혀에 닿자마자 그 짭쪼름하면서도 고소한 풍미를 전달했다.
특히 새우의 탱글탱글함이 좋았는데, 생새우를 쓴 모양이었다.
냉동 새우로 하든 뭘로 하든 멘보샤는 맛이 있지만, 생새우로 만들면 당연히 더 맛있다.
멘보샤를 음미하는 노유림의 앞에 준비한 음료를 꺼내 놓았다.
타앗. 치익-
어젯밤에 미리 냉동실에 얼려 놓은 맥주캔.
어렵게 중국 마트에 가서 구해 온 거다.
지금은 15년 후처럼 세계 맥주를 만 원에 네 캔씩 파는 시대가 아니니까.
“멘보샤엔 이 중국 맥주만 한 게 없죠. 느끼하다고 느껴질 때 한 모금씩 시원하게 들이켜다 보면…….”
어쩐지 노유림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멘보샤를 입에 넣고 씹는 행동만 반복하고 있었다.
멘보샤의 맛에 감동한 것처럼.
때로는 아련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멘보샤를 먹을 뿐이었다.
나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그런 그녀를 지켜보았다.
마지막 멘보샤를 입에 넣은 그녀가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근처의 상인들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유림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야, 이 자식이. 너 왜 유림이 울려?!”
“아니야, 아니야. 이 사람 잘못 없어. 아무 일 아니니까 제발 관심 좀 꺼 줘.”
다가오는 상인들에게 한마디 던진 그녀는 그대로 고개를 들이박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여전히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봤다.
그녀의 슬픔이 뭔지 알기에.
멘보샤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물론, 이렇게 그녀를 울릴 생각은 없었다.
그 점은 좀 미안하네.
* * *
가락시장 인근 카페.
한참 울던 그녀가 울음을 그친 후 나를 여기로 데리고 왔다.
“도대체 내가 멘보샤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안 거예요?”
어느새 그녀의 목소리는 일반적인 이십 대 초반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반말도 존댓말로 바뀌어 있었고.
“그걸 알 리가 있나요. 배추 사러 온 사람이.”
노유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리가 없죠.”
울음을 멈췄던 그녀의 눈에 다시 슬픔이 고이기 시작했다.
“멘보샤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예요?”
그녀가 다시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아 말을 걸었다.
“그게…… 휴…… 처음 만난 사람한테 별 얘기를 다 하려고 하네. 됐어요. 커피나 드시고 가세요.”
“커피로 될까요?”
“네?”
“내가 먹으려고 만들어 온 멘보샤…… 다 드셨잖아요. 나도 오랜만에 특식으로 만들어 본 건데.”
“아…….”
“그렇잖아요. 누가 멘보샤를 매일 만들어 먹겠어요. 게다가…… 멘보샤라는 요리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걸요.”
그렇다.
이즈음의 멘보샤는 고급 중식당에서만 간간이 나오는 그런 메뉴였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중식 메뉴가 아니었던 거다.
그만큼 멘보샤라는 걸 먹어 본 사람도 흔하지 않았고.
“아까 하려던 얘기나 마저 해 주세요.”
“네?”
“멘보샤 값. 그걸로 퉁칠게요.”
“아…….”
잠시 고민하는 듯한 그녀의 입이 열렸다.
나로서는 아는 얘기였지만, 아는 얘기라고 해서……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원래 튼튼한 건설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아버지의 사업은 잘되었고, 노유림은 남부럽지 않게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먹고 싶은 건 다 먹을 수 있었고, 사고 싶은 건 다 살 수 있었다.
발레도 배웠고, 연기도 배웠다.
악기는 일 년에 하나씩 돌아가면서 배웠고, 매번 방학 때마다 외국 여행을 길게 다녀왔다.
친구들은 그녀를 부러워했다.
정말…… 풍요로운 일상이었다.
그렇게 행복하던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버지의 회사가 짓던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은, 같이 공사에 참여한 대기업이 아니라 아버지 회사의 몫으로 온전히 돌아왔다.
아무리 견실한 건설사라고 해도, 그 큰 공사의 피해 보상을 다 해 주기는 무리였다.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고, 유림의 가족은 빈털터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해외로 도피했고,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돌아가셨다.
그때 유림의 나이가 열다섯.
외동딸이던 그녀는 이모의 손에 맡겨졌고, 그때부터는 눈칫밥을 먹는 괴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거기에다가 가끔씩 느껴지는 이모부라는 사람의 뱀 같은 눈길.
아직도 그 눈빛만 생각하면 몸서리를 치는 유림이다.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삶의 격차가 너무나도 컸다.
유림은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 독해져야 했고, 더 강해져야 했다.
홀로 인생을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모 집을 나와 가락시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 험한 곳으로.
멘보샤는…… 풍족했던 어린 시절 자주 가던 고급 중식당에서 유림이 가장 좋아하던 메뉴였다.
아빠, 엄마는 늘 가지 요리나 생선 요리를 유림에게 권했다.
하지만, 코스 요리 중간에 나오는 이 멘보샤가 유림에게는 가장 맛있었다.
그 어떤 고급 요리도 이 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마…… 어려서 그랬을 거다.
멘보샤는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맛을 내는 요리니까.
“집이 그렇게 된 후로는 한 번도 멘보샤를 먹어 보지 못했어요. 멘보샤는커녕 제대로 자장면 한 번 먹어 보지 못했으니까.”
“음…….”
처음 듣는 게 아닌데도 생생했다.
유림이 겪어 왔을 고통이.
어린 나이에 느꼈을 충격이.
멘보샤를 보고 벼락처럼 다가왔을 과거의 그 기억들이.
“아버지는…… 아직 못 찾으셨나요?”
“…네. 어디에선가 건강히 잘살고 계시기만을 바라야죠. 지금 아버지를 만난다 해도 삶은…… 달라질 게 없을 테니까.”
유림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잘될 겁니다. 하는 일도 잘될 거고, 아버지도 찾으실 거예요.”
“훗. 아까도 느꼈지만…… 진짜 립서비스가 좋은 오빠네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말만 그런 게 아니다.
실제로 노유림은 이 가락시장 내에 가장 큰 중도매상 중 하나가 된다.
그때 연 매출이 200억이라고 했었나?
저렇게 악착같이 하니, 안 될 것도 되는 것이겠지.
그런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인 거다.
아빠도 찾는다.
말도 안 되게 그녀의 아빠는 외국에서 사업을 벌여 큰 성공을 거둬 돌아온다.
어이없게 좋은 일만 생기는 드라마처럼 그렇게 된다.
믿을 수 없게도.
어쨌든.
잘된다는 거다.
참.
나도 내 할 일을 해야지.
“배추와 무. 제가 필요한 건 두 개입니다.”
“네. 드릴게요. 드려야죠. 저한테 멘보샤까지 만들어 주신 분인데.”
“근데…… 저희가 생각보다 물량이 좀 많이 필요합니다.”
대충 매주 필요한 양에 대해서 노유림에게 얘기했다.
그걸 들은 노유림이 화들짝 놀랐다.
“이 정도면…… 우리 가게 거래처 중에서도 꽤 큰 축에 속하는데요?”
“네?”
“그 정도 배추, 무를 매주 수급할 정도면, 거꾸로 우리가 거래하자고 졸라야겠어요.”
“아…….”
음…… 어쩌면 멘보샤 같은 건…… 필요 없었을지도…….
뭐, 새벽 두 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긴 했지만…… 그 노력과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녀에게 멘보샤는…… 특별한 선물이었으니까.
그걸로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