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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37화 (37/110)

#37화 주꾸미 득템

게는 참…… 맛있는 식재료이다.

동시에 참…… 성가신 녀석이기도 하다.

꽃게살의 부드럽고 고소하고 진한 풍미를 맛보기 위해서는 껍질과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 한다.

우리 셋은 각자에 싸움에 열중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싸움은 피가 튀기는 대신 게살이 튀기는 행복한 싸움이다.

“와…… 이거 알 봐…… 으음.”

“이거 진짜 제대로네. 제대로야.”

두 분은 연신 탄성을 내뱉으며 쉴 새 없이 손을 놀렸다.

살도 살이지만, 알을 정말 좋아하는 나는 게딱지를 먼저 공략했다.

꽉 찬 암게의 딱지에는 알이 잔뜩 배어 있었다.

고소한 내장과 더 고소한 붉은 알이 만나 극강의 고소함을 만들어 내었다.

“와…….”

탄성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게살과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때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머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고종숙 여사는 왜 그러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니?”

“어머니…….”

나는 어머니가 방금 내려놓은 게딱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거 내가 방금 먹은 건데?”

“정말이에요? 정말 다 드신 거예요?”

“응…… 다 먹은 건데…….”

“아니에요!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나는 젓가락으로 게딱지의 양쪽 끝, 그러니까 길고 뾰족한 부분을 파고 들어갔다.

양쪽 끝을 몇 번 파자, 붉은 알과 내장이 수북하게 쏟아져 나왔다.

“어라. 이게 뭐야? 여기 이렇게 알이 많았니?”

고종숙 여사는 깜짝 놀라 게딱지를 쳐다보았다.

“네,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이렇게 살이 많은 게딱지를…… 버리려고 하셨습니다.”

“그, 그랬네. 미안, 미안해. 그런데…… 네가 지금 들고 있는 그거. 내가 먹어도 되겠니?”

역시 게 앞에선 가족도 없고 아들도 없구나.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게딱지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구석구석 끝까지 파 드세요.

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진실수산 아주머니의 말마따나 조카분의 꽃게탕 끓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물론, 이미 재료가 좋기 때문에 맛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방금 먹었던 찜과 탕은 완전히 다른 요리이다.

찜이야 신선한 재료를 적당한 시간만큼 찌면 끝이다.

하지만, 탕은 재료를 해치지 않는 적당한 양념과 함께 간을 잘 맞춰야 한다.

진리식당의 사장님은 그 적절한 밸런스를 완벽히 알고 계신 듯했다.

“크으. 국물 진짜 시원하네. 꽃게 말고 다른 해물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 맛이 나지?”

“그러게. 담백하면서도 시원하네. 깊은 맛도 나고.”

“다 재료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신선한 꽃게로 끓였으니까요.”

“그런가?”

“맞아요. 꽃게탕은 재료가 다 하는 거지.”

이때 진리식당의 사장이자 진실수산의 조카분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걸걸하고 구수한 어촌 남자의 목소리였다.

얼굴을 보니 대략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사이의 남자였다.

근데, 아까 진실수산 아주머니의 조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진실수산 아주머니의 조카라는 분이 바로 사장님이신가요?”

“아, 맞아요. 후후. 조카처럼 안 보이죠?”

“…네.”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었다.

진실수산 아주머니의 남편이라고 하면 오히려 더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느낌.

“이모가 막둥이예요. 나는 외가댁 첫째의 아들이고. 그러다 보니 이모랑 내가 두 살 차이밖에 안 나요. 예전엔 다 애를 일찍 낳았잖아요. 허허.”

“아…….”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하긴, 기껏해야 자녀를 한두 명 낳는 요새와는 다르게 예전에는 예닐곱 명씩 형제자매가 있는 게 흔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첫째와 막내가 훌쩍 나이 차이가 나는 경우도 흔했고.

“어머니 비법이에요. 꽃게탕 끓이는 거. 뭐, 비법이랄 것도 없죠. 싱싱한 꽃게에 고추장, 된장 좀 풀고 나머지 양념 적당히 하고 팔팔 끓이는 거. 아! 직접 재배한 애호박을 푸짐하게 넣는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

“직접 재배하신 거군요. 애호박.”

“어쩐지 맛있더라.”

“맞아요. 달큰하고 포실포실한 게 아주 맛이 좋더라고요.”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을 거예요. 잘 자란 녀석을 요리 전에 바로 따와서 써는 거니까. 어머니는 꽃게가 싱싱하지 않거나, 직접 기른 애호박이 없으면 꽃게탕을 아예 내어놓지 않으셨어요.”

“아…… 재료가 좋지 않으면 아예 안 파신 거군요.”

“맞아요. 좋은 재료야말로 모든 음식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하시던 분이라…… 좋지 않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건 손님들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하셨어요.”

아.

우리 셋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게 바로 식당을 하는 사람의 장인 정신 같은 거다.

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수십, 수백 번 맘에 안 드는 도자기를 깨어 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마음에 안 드는 식재료로는 아예 음식을 만들지 않겠다는 거.

“어머니는 어디 가셨나요?”

잠시 뜸을 들이던 사장님이 창가 밖 먼 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따라서 바다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어부셨는데, 저 어렸을 때 고기 잡으러 가셨다가 못 돌아오셨거든요.”

“아…… 괜한 걸 저희가…….”

“아닙니다. 이미 오래 지난 일이에요.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꼭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 달라고 하셨어요. 혹시 아냐고. 아버지랑 함께 꽃게 같은 걸로 태어나서 다시 만날지. 그러려면 아버지가 있는 바다에 뿌려져야 한다고.”

“…….”

“그러면 제가 말씀드렸죠. 다 좋은데, 게로 다시 태어나시면 저한테 잡히지 마시고 두 분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시라고요. 마치 손님들 두 분처럼요.”

사장님은 나란히 앉아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켰다.

어머니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버지는…… 이미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신 모양이다.

수산시장 나들이는 이렇게 감동 엔딩으로 끝이 났다.

싱싱한 주꾸미를 손님들에게 대접할 생각을 하니 서울로 돌아오는 마음이 한층 가벼웠다.

물론, 주말 저녁의 엄청난 교통 체증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 *

월요일 새벽.

안순미 아주머니는 알이 밴 주꾸미를 한 마리 들어 올렸다.

“와…… 이거 알 꽉 차 있네.”

“어라. 재동 엄마는 그거 보기만 해도 아는 거야? 물건 좋은지.”

“그럼. 나도 주꾸미 엄청 좋아하거든. 예전에 낚시도 다니고 그랬었지. 알밴 주꾸미는 간단해. 자, 이 알이 차 있는 대가리 보이지.”

“응.”

“이걸 손으로 딱 잡았을 때 터질 듯이 꽉 차 있으면 알이 잘 배어 있는 거지.”

“아, 이렇게?”

고종숙이 안순미를 따라 주꾸미를 꽉 쥐어 보았다.

“오…… 진짜 꽉 들어차 있다는 게 느껴지네?”

“느껴지지? 희한한 건 지금 사 온 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렇다는 거야. 도대체 어디서 사 온 거야? 이 정도로 좋은 걸 사려면 가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고종숙의 아들 자랑이 시작되었다.

진실수산에 얽힌 이야기를 하시던 어머니는 마지막에 이 말을 꼭 덧붙이셨다.

- 선우가 날 닮아서 똑똑하잖아. 어른들한테도 잘하고.

다행히 아버지는 못 들으신 것 같다.

아버지가 이 말을 들으셨으면 또 논쟁에 불이 붙었을 거다.

영진시장의 소문난 잉꼬부부가 서로 결코 양보하지 않는 유일한 주제가 바로 이거였으니까.

나머지 분들이 1차로 주꾸미를 손질하는 동안, 메뉴 보드판을 채워 나갔다.

<오늘의 메뉴>

- ‘알’주꾸미볶음

- 미역국

- 콩나물 무침

- 어묵볶음

- 돌김

- 그 외 기본 반찬

당연하게도 주꾸미볶음 앞에 ‘알’을 강조했다.

알밴 주꾸미는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정말이지…… 환장하는 음식이다.

쌀알 모양을 하고 있는 잘 익은 알의 맛은 꽃게살과는 다른 고소함의 끝을 보여 준다.

식감 또한 훌륭해서 주꾸미 마니아들은 이때가 되면, 알밴 주꾸미를 먹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볶음으로 해 먹긴 살짝 아쉬운 감이 있긴 한데…….”

싱싱한 주꾸미를 양념과 함께 볶는다는 건 사실 그리 좋은 조리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무런 양념 없이 삶거나 쪄서 먹는 게 제일 좋을 거다.

재료가 싱싱할수록 재료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상이니까.

하지만, 선우네 백반은 시장 상인들과 학생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밥집이다.

오직 주꾸미 마니아만을 위한 식당은 아닌 것.

그렇기에 대중적이면서도, 여러 명에게 제공할 수 있는 볶음을 택했다.

단, 진리식당의 꽃게탕 사장님의 말씀을 기억했다.

재료의 맛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조리법.

양념을 최소한으로 줄여 주꾸미의 신선한 맛을 최대한으로 살릴 예정이다.

씻어 낸 주꾸미의 머리를 과감하게 뒤집는다.

보이는 내장은 떼어 내고, 하얗고 동그란 알이 보인다면…… 그건 떼어 내서 한곳에 잘 모아 둔다.

바로 오늘의 핵심 재료인 알집이니까.

내장 제거 다음에는 안쪽에 숨어 있는 이빨도 꼭 제거해 준다.

이후, 밀가루를 적당량 넣고 손으로 빨래하듯이 주물러 준다.

이때 불순물이 빠져나오는데, 너무 세게 주무르는 건 피한다.

주꾸미의 진액까지 다 빠져나오면 안 되니까.

불순물과 밀가루를 깨끗이 씻어 내고 체에 받쳐 물기를 빼준다.

채소 손질은 진민호에게 맡겼다.

진민호는 요새 한창 칼질을 배우고 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커다랗고 네모난 중식도를 쓰는데, 풍채가 좋아서인지 꽤 잘 어울린다.

다만…… 아직까지 칼질 실력은 멋진 칼만큼은 못하다.

그래도 꼼꼼하게 해낸다.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주꾸미볶음에는 충분히 쓸 수 있을 듯하다.

양념장은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고추장, 매실액 등으로 최소화한다.

무엇보다 오늘의 콘셉트는 주꾸미의 신선함을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해 주는 거니까.

물기가 빠진 주꾸미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준다.

팬에 기름을 둘러 준 뒤 양파와 대파를 넣고 달달 볶는다.

양파의 색이 투명해졌다 싶은 순간, 주꾸미를 투하한다.

따로 모아 둔 알도 넣어 준다.

만들어 둔 양념장을 한 국자 부어 달달 볶아 주면 완성.

이때 팬을 움직여 살짝 불맛을 입혀 주는 것도 좋다.

단, 너무 오래 볶으면 질겨지니 적당한 시간 볶아 낸다.

주꾸미의 탱글탱글함이 잘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자, 오늘의 메뉴도 완성.

손님 맞을 준비가 완벽하게 끝났다.

* * *

누구에게나 소울 푸드가 있다.

외식경영학과의 대학원생 송은희의 소울 푸드는 바로 주꾸미이다.

이유 같은 건 딱히 없다.

학창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서해 바다에 놀러 갔었고 그때 처음 주꾸미를 접했다.

처음에는 주꾸미의 비주얼에 다소 먹기가 꺼려졌었다.

사춘기 소녀라면 한창 감성이 폭발할 시절.

살아서 움직이던 주꾸미가 끓는 물에 들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둥둥 떠오른 모습은…… 그다지 식욕을 자극하는 풍경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의 그녀에게는.

물론, 억지로 억지로 주꾸미를 한 입 맛보고 난 후에는 그런 그녀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지만.

오징어도 아니고, 낙지도 아닌 것이.

오징어처럼 고소하면서도, 낙지처럼 탱글탱글했다.

자세히 보니 크기도 참 적당했다.

다리 하나를 굳이 자르지 않아도 한 입에 호록 먹기에 딱 좋았으니까.

백미는 바로…… 흰 쌀밥을 뭉쳐 놓은 것 같이 생긴 알이었다.

그 맛을 본 이후로는…… 그녀의 NO.1 소울 푸드는 바로 주꾸미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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