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산드라 교수의 비밀
김흥범은 묻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한국 최고의 한정식집에서도 젓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했던 저 산드라가 갓김치를 후루룩 먹는 저 장면이…… 말이 되는 거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산드라의 젓가락은 다음 목적지를 탐색했다.
꾹.
그녀는 간장 두부조림의 두부를 양 젓가락 끝에 꽂았다.
그리고는 커다란 두부를 한입에 넣어 버렸다.
“우앗.”
당황한 김흥범의 탄성.
산드라는 씨익- 하고 웃어 준 뒤, 다음 타깃을 탐색했다.
그녀의 젓가락은 탐욕적이고 탐닉적이었다.
한 번 맛을 보고 맛있는 건 몇 번이고, 다시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렇다고, 편식을 하지는 않았다.
깔아 둔 반찬들을 최소 한 번씩은 다 먹었으니까.
오물오물 입을 놀리는 그녀의 표정이 매우 행복해 보였다.
마치 친정집에 놀러 와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는 출가한 딸처럼.
나물이며, 김치며, 각종 볶음이며…… 한 번씩 다 맛을 본 걸 확인한 나는 주방으로 가서 커다란 양푼을 가지고 나왔다.
“산드라. 비빔밥 알아요?”
그녀의 고개가 빠르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교수님도 같이 드실 거죠?”
멍해 있는 김흥범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는 모두가 섞이는 시간, 비빔밥 타임이다.
취나물, 고사리나물, 무나물, 애호박볶음, 느타리버섯볶음 등등.
넣을 수 있는 모든 반찬을 다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도 듬뿍 넣었다.
아, 된장찌개도 크게 한 국자 떠 넣었다.
비빔밥에 된장찌개를 넣어 비비는 건 이제 국룰이니까.
한데 모인 재료들을 쓱쓱 비볐다.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을 내던 재료들이 비비면 비빌수록 하나의 음식이 되었다.
양푼에 담긴 비빔밥의 붉은 색깔이 참 먹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하지?
뭔가가 빠졌다는 느낌으로 비빔밥을 보는 그때.
아! 계란프라이!
“잠깐만요! 아직 드시지 말고 계세요.”
양푼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의 숟가락을 막고,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내 손에는 막 튀겨 낸 계란프라이가 들려 있었다.
바로 양푼으로 집어넣고…… 다시 비볐다.
숟가락 끝으로 계란프라이를 부수어 가며.
계란이 존재감을 잃고 비빔밥과 완전히 동화될 때까지.
“자, 이제 드셔도 됩니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숟가락이 튀어나왔다.
산드라가 가장 빨랐다.
그녀는 도저히 한 숟가락에 담을 수 없을 양을 한 숟가락에 퍼내어…… 도저히 한입에 들어가지 않을 것만 같은 양을 한입에 넣었다.
넣기만 했을 뿐, 씹히지 않을 것만 같은 그것이 오물오물 잘도 씹혔다.
역시 서양 사람들은…… 피지컬이 다르다.
뭐든지 다 커.
그렇게 화려하고도 전투적인 식사가 모두 끝났다.
산드라는 역전의 용사답게 입가에 고추장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만히 냅킨을 건넸다.
“아, 고마워요.”
수줍은 듯 냅킨을 받아든 그녀가 입가를 닦아 내었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디저트를 내왔다.
디저트도 시골식으로 준비했다.
바로, 믹스커피.
시장 상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으면서도, 한 봉지에 백 원이면 마실 수 있는 최고의 디저트였다.
가장 한국적인 커피였고.
산드라는 종이컵에 든 믹스커피를 호로록거리며 잘도 마셨다.
저 호로록 소리만 들어도 판별할 수 있다.
믹스커피 좀 마셔 본 사람인지, 아닌지.
산드라의 표정을 보니 매우 만족한 듯했다.
나도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나니, 매우 만족스러웠고.
하지만 여기…… 왠지 모르게 뭔가가 찝찝하고 뭔가가 궁금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흥범 교수.
“산드라.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호로록.
믹스커피를 마시는 그 소리가 유난히 정겹다.
“음…… 지금까지 다녔던 식당들이 마음에 안 드셨습니까?”
“아…… 그것 때문이시군요. 일단은…… 제 식사까지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 주시는 데에 먼저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별말씀을. 호스트가 손님을 챙기는 건 당연한 거지요.”
“호호. 그래도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시는 건 흔치 않지요. 어쨌든…… 그 얘기를 하려면, 제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네요.”
“대학…… 시절이요?”
“네. 사실 대학교 때 이곳 한국에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왔었습니다.”
“아…….”
나와 김흥범은 동시에 반응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렇다면 더 궁금해진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있는 만큼 한정식이 더 맛있게 느껴져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서 십오 년 만에 한국에 올 때 기대를 많이 했어요. 아…… 드디어 한국 음식을 다시 맛볼 수 있겠구나, 하고.”
“…….”
“데려가 주셨던 식당들 전부 다 훌륭한 곳이었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가 봐야 할 그런 곳들이요.”
“그렇죠. 나름 고심해서 고른 식당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입장에서의 맛집이었던 거예요.”
“아…….”
“교환학생 때 하숙을 했어요. 홈스테이를 하숙이라고 하잖아요. 그때 하숙집 아주머니가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었는데, 정말 토속적인 한국식 밥상을 매일 내어주셨어요.”
“…….”
“처음에는 입맛에 안 맞았는데…… 먹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는 완전 중독이 되어 버린 거죠. 저는 교환학생 때 거의 집에서만 밥을 먹었어요. 굳이 나가서 사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숙집 음식이 맛있었으니까.”
“음…….”
“그런 아주머니의 식단을 한국에 온 지 며칠이 지나서야…… 오늘 드디어 마주하게 된 거예요. 너무 그리웠거든요. 한국에서 그런 밥상을 마주할 생각에.”
그제야 김흥범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래서 유명 맛집에 가도 그렇게 시큰둥해 있었던 거구나.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
이선우 사장은 어떻게 안 건데?
산드라가 그런 음식을 찾을 거라는 걸.
김흥범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선우 쪽으로 돌아갔다.
“저요?”
나는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가리켰다.
설명이 필요한 거구나.
“저야 뭐 사실…… 그냥 산드라 교수님 입장에서 한 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물론, 교수님이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한 것까지는 몰랐지만요.”
“…….”
“음식을 사랑하는 나라면, 외국에 갔을 때 어떤 걸 먹고 싶을까 생각했죠. 브라질에 간다면 슈하스코를 먹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슈하스코 집은 안 가고 싶을 거 같아요. 오히려 현지인들이 찾는 집. 현지인들 사이에서 알려진 맛집을 가고 싶을 것 같았어요. 브라질 냄새가 그대로 나는. 정말 현지의 것을.”
산드라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서 아까 비빔밥을 먹을 때의 우악스러움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이젠 누가 봐도 고상한 교수님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결론이 났습니다. 시골 밥상처럼 투박하지만, 한국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밥상을 준비하자. 뭐, 사실 별로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습니다. 여기는 백반집이니까…… 있던 반찬들을 조합해서 내어 드리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아…….”
김흥범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옅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로군요.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됐다는.”
“맞아요. 외국인이니까 이건 못 먹겠지, 외국인이니까 이 집은 꼭 가 봐야겠지 하는 생각들. 그건 굉장히 한국 사람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거라는 거죠.”
끄응.
김흥범은 뭔가를 크게 실수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을 느꼈다.
“아, 교수님. 그렇게 의기소침하실 필요 없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저에 해당하는 얘기였어요. 다른 교수님들은 다 잘 드셨잖아요.”
“맞아요, 교수님. 한국에 처음 와 보신 다른 분들을 위해서는 그건 또 나름대로 최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잘하신 거예요.”
“그, 그런가요?”
“네. 게다가 산드라 교수님을 이리로 모시고 왔잖아요. 마지막 한 분까지 만족시키기 위해서.”
“맞아요. 그건 최고의 선택이었고, 오늘의 한 끼는 정말 추억이 가득한 환상적인 한 끼였어요. 감사드려요.”
산드라가 꾸벅 인사를 했다.
나에게 한 번.
김흥범에게 한 번.
외국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언제나 귀엽다.
빅터도 늘 커다란 덩치로 항상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데, 그 어색한 동작이 참 귀엽다.
산드라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길.
김흥범의 마음은 큰 짐을 덜어 낸 듯 후련했다.
사람들은 늘 별것 아닌 것에 좋아하고, 별것 아닌 것에 크게 실망한다.
세미나에 초청되어 온 교수들도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다.
연구 발표를 들으면서 점심에 뭐 먹지? 고국에 있는 딸은 밥을 잘 먹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
그렇다 보니, 김흥범이 손님을 모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바로 식사였다.
결혼식장을 가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던가.
밥이 맛있으면, 다 만족한다고.
반면, 밥이 맛없으면 왠지 그날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되고.
물론, 결혼할 사람을 축하해 줘야 하는 게 먼저겠지만.
어쨌든.
오늘 이선우 사장을 선택한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그는 마법 같지 않은 마법으로 산드라를 홀려 버렸다.
아직도 갓김치를 후루룩 국수처럼 밀어 넣던, 숟가락에 산처럼 비빔밥을 올려 입으로 집어넣던 산드라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난 후 그녀의 만족해하는 표정도.
그나저나…… 이선우 사장은 영어를 어디서 배웠을까?
알면 알수록 참…… 신기한 사람이다.
* * *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일요일 아침에는 자연스럽게 짜장라면이 생각나는 게.
광고가 이렇게 무서운 거다.
일요일은…… 요리사!
이 활기찬 문구 하나가 사람들의 일요일 아침 풍경까지 지배해 버렸으니까.
백반집을 운영하는 가족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마침 일요일은 휴일이고, 짜장라면을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여태껏 보지 못했으니까.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짜장라면을 끓이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
별건 아닌데…… 이상하게 그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다.
우선, 물을 끓인다.
물이 팔팔 끓으면 라면과 건더기 수프를 넣는다.
면이 끓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른다.
군대에서 먹던 일명 뽀글이.
이등병이었던 나는 짜장라면 뽀글이를 처음 먹을 때 흥건한 물에 짜장맛 스프까지 다 넣어 버렸다.
이 라면 하나가 얼마나 귀한데…… PX도 마음대로 못 갈 때였는데…… 그걸 버렸냐고?
못 버린다.
선임병들이 매의 눈을 하고 보고 있으니까.
- 야, 내가 사준 건데 버린다고?
이런 눈들이었다.
그렇게 맹숭맹숭한 뽀글이를 끝까지 먹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지만 그건 다 옛날이야기고.
이미 잊은 지 오래이다.
난 제대한 지 2년이 지난 스물다섯 살이 아니라, 17년이 지난 마흔 살이니까.
와…… 진짜 오래됐구나.
각설하고.
나의 별것 아닌 비법은 분말 스프를 넣는 과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