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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32화 (3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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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잡채 같은 인연?

대부분의 반찬은 준비가 끝났다.

이제 잡채를 만들 차례.

잡채는 은근히 잘 쉬고, 만들어 두면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가장 늦게 만든다.

당면과 표고버섯은 미리 불려 놓았다.

면 모양처럼 썰어 낸 돼지고기에도 간장 양념을 미리 해 두었고.

시금치는 살짝 데친 후, 마늘, 소금, 참기름, 깨 등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무치면서 생각한다.

와, 이것만 그냥 밥이랑 먹어도 맛있겠다.

당근과 양파는 채를 썰어 준비한다.

불려 놓은 표고버섯도 채를 썰은 후 간장, 설탕, 참기름을 첨가해 살짝 무쳐 준다.

손으로 버섯을 무치는데 표고의 탱탱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런 버섯은 그냥 생으로 참기름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이제 볶는 시간.

커다란 팬에 기름을 두르고, 볶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재료가 있는 잡채는 볶는 순서가 있다.

색깔이 연한 재료부터.

기름이 나오지 않는 것부터.

오늘 재료를 기준으로는 양파, 당근, 표고버섯, 고기 순이 되겠다.

물론, 이건 팬을 한 개만 쓸 때의 팁이다.

아삭하게 익을 정도로 볶은 재료를 종류별로 모아 둔다.

불려 둔 당면은 간장을 넣은 물에 1, 2분 정도 삶아 준다.

삶아 낸 당면은 다진 마늘, 간장, 참기름을 넣고 버무려 준다.

자, 이제 모든 재료들을 모아 ‘잡채’로 만들어 낼 시간이다.

모든 재료를 커다란 팬에 넣어 주고 휘리릭 볶아 준다.

오래 볶을 필요는 없다.

재료들이 잘 섞여서 하나의 요리가 되었다고 느껴질 만큼만 볶아 주면 된다.

아, 돼지고기가 익을 정도로는 볶아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간장, 설탕 등으로 간을 한다.

간은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재료들에 간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마무리로 참기름을 한 번 둘러 주고, 깨를 솔솔 뿌려 주면 완성.

캬. 냄새 좋다.

내가 만든 거지만, 진짜 맛있게 생겼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한 움큼 집어 들고 어머니에게 뛰어간다.

“엄마, 아- 해 보세요.”

“이게 뭐야? 잡채니?”

“네. 아-.”

고종숙 여사가 입을 크게 벌린다.

그 안에 잡채를 살포시 밀어 넣는다.

오물오물.

어머니가 먹음직스럽게 잡채를 씹는다.

“와…… 맛있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꿀꺽.

옆에 있던 안순미 아주머니가 침을 넘기는 소리.

아주머니는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린다.

그런 아주머니에게도 한 움큼 잡채를 내민다.

“음……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나?”

왠지 민망해하는 듯한 아주머니.

“고무장갑 끼고 계시잖아요. 제가 재동이라고 생각하고 드시면 돼요.”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잡채는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주머니의 입에서 버섯을 씹는 소리가 먹음직스럽게 들린다.

그 쫄깃한 식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와…… 선우 너 요리 솜씨 진짜 장난 아니구나.”

“매일 보시면서도 모르셨어요?”

“아니…… 모를 리가. 근데, 이 잡채라는 게 생각보다 쉬운 요리는 아니거든. 손도 많이 가고. 예전에는 잔치 때만 만들었던 음식이거든.”

“맞아요. 생일이나 손님 오셨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죠.”

“그래. 이거 사실 잔치 음식이었어. 그만큼 특별한 음식이었지.”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지금이야 한식 뷔페에 가면 잡채가 있고, 반찬 가게에도 잡채가 있고, 심지어 냉동 식품으로도 잡채가 나온다.

하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어린 시절.

뭐, 내가 그렇게까지 어렵게 산 세대는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보다는 덜 풍요로웠으니까.

적어도 그때는 지금만큼 외식 문화가 발달하지는 않았다.

외식이라고 하면, 돼지갈비, 경양식 돈가스, 중국집.

이 선에서 대강 정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니 잡채라고 하면…… 집에서 먹지 않으면 구경하기 힘든 메뉴였다.

아버지와 진민호까지 잡채를 한 움큼씩 먹인 후…… 나도 한 입 했다.

최대한 모든 재료를 한 손에 다 집고…… 한입에 우아아.

오.

맛있다.

일단 갓 만들어서 맛있을 거고, 최대한 좋은 재료를 썼기 때문에 맛있을 거다.

그리고…… 만든 사람이 잘 만들었기…….

외식업 15년 했으면 당연히 잘해야지.

잡채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온갖 다양한 재료가 섞여서 맛을 내는 맛의 ‘하모니’다.

후루룩 넘어가는 당면 사이에 씹히는 돼지고기.

그 와중에 느껴지는 탱글탱글한 표고 버섯의 식감.

양파, 당근, 시금치는 자기도 잊지 말라며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고.

마지막으로 고소한 참기름과 달콤 짭짜름한 간장 양념이, 이 서로 다른 재료들을 조화롭게 이어 준다.

잡채를 완성하고 나니 오늘 메뉴에 대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12첩 반상 기대되는걸.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오려나.

참.

반찬들을 만들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 나는 어렸을 때 못 먹고 자라서인지…… 반찬을 최대한 많이 차려 놓고 먹는 걸 좋아해. 그래야 밥을 먹는 것 같거든.

생각난 김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 *

손님들의 반응은…… 상당했다.

“와…… 이게 진짜 백반이지.”

철물점 정 씨 아저씨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했다.

“우와…… 반찬이 다 맛있어. 진짜 대박. 이건 우리만 먹을 수 없지.”

안대훈과 이수민 커플은 맛있게 먹는 도중 SNS로 친구들에게 알렸다.

덕분에 안 그래도 번잡한 가게가 아주 손님으로 꽉꽉 들어찼다.

고마운 일이다.

모름지기 가게에는 손님이 많아야 하니까.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수십 번 반찬을 리필한 손님이 있었으니.

바로 이초희였다.

그녀는 애매한 수업 시간 때문에 애매한 시간에 혼자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혼자 네 명분의 음식을 먹고 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 눈치도 좀 보더니, 이젠 그런 것도 없다.

어차피 다 알지 않느냐고, 잘 먹는 게 무슨 죄냐고, 이제 숨기지 않겠다고 한다.

그녀가 먹는 모습은 언제나 경이롭다.

허겁지겁 먹지도 않는다.

그냥 평범한 사람의 속도로 정말 맛있게 먹는다.

그렇게 무지 오-래 먹는다.

한참 바쁜 시간에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왔다.

“갖고 오신 건 이쪽에 놓아 주세요.”

우성진은 김치 비닐 패키지 박스를 들고 찾아왔다.

김치가 워낙 잘나가서 추가로 제작한 패키지.

아침에 내 전화를 받고, 물건도 직접 납품할 겸 식사도 할 겸 온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큰데? 손님도 많고.”

“훗. 최근에 확장했어요. 자, 일단 식사를 하셔야 될 텐데…….”

마침 2인용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있었다.

“저쪽에 앉으시죠.”

우성진은 테이블 위에 놓인 열두 가지 반찬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래. 이게 진짜 밥상이지.’

반찬 한두 개 놓고, 때우듯이 밥을 먹는 걸 우성진은 싫어한다.

끼니는 때우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으며 행복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에 이 12첩 반상은 정말 환상적이다.

가장 먼저 손이 가는 반찬은 바로 김치.

김치 패키지 납품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관심이 갈 수밖에.

‘어디 한번 맛을 볼까?’

이 작은 백반집에서 김치 패키지를 주문하는 양이 상당하다.

얼마나 잘 팔리기에 그러는 걸까?

아삭.

먼저 깍두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

너무 익지도, 설익지도 않은 적당한 신맛의 깍두기가 훌륭하다.

확- 하고 식욕을 당기는 맛이다.

‘음…… 이 정도 깍두기면 진짜 유명할 만하네.’

가게를 나서면서 한 봉지 사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한, 그런 맛이었다.

김치 다음으로 집어 든 반찬은 분홍 소시지.

누군가에게는 이게 추억의 음식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성진은 어린 시절에 이런 소시지를 많이 먹어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분홍 소시지는 우성진에게는 ‘새로운’ 맛있는 반찬이다.

계란물을 입혀 구운 소시지의 맛이 좋다.

그렇게 순서대로 반찬 맛을 음미하며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앞자리에 누군가가 앉았다.

“성진이 형. 미안한데, 이분이랑 합석 좀 해도 될까요?”

“합석?”

“젊은 친구. 같이 좀 먹읍시다. 내가 이 집 완전 단골이야. 여기서는 다 그렇게들 먹어. 허허허.”

황종훈이다.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라고 하려는데, 넉살 좋은 황종훈이 우성진 앞에 빈자리를 발견해 버렸다.

“네, 뭐. 그렇게 하시죠.”

우성진도 시장에서 닳고 닳은 인물이다.

이런 거에 크게 거부감을 갖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형, 고마워요.”

* * *

“간장게장도 좋은데, 역시 나는 양념게장이 더 좋아. 젊은 친구는 어때? 양념이야, 간장이야?”

황종훈이 양념게장 한 조각을 손에 쥔 채 말했다.

“음…… 둘 다 좋습니다.”

“둘 다? 아…… 취향이 그렇게 확고하지 않은 친구구먼. 허허허.”

공식 투덜이였던 황종훈은 투덜거림은 멈추었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말…… 말이 많다.

반면, 우성진은?

친해지면 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과묵한 편이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가 너무 다른…… 상극일지도.

“멸치는 이렇게 마늘쫑이랑 볶아도 맛있지만, 꽈리고추랑 볶아 먹으면 진짜 일품이지. 그건 술안주로도 진짜 좋아. 젊은 친구. 술 좋아하나? 아, 이름이 뭐라고 했지?”

“우성진……입니다.”

“아, 우성진. 아, 우가인가? 저기 건어물 가게하는 우장훈도 우가인데. 어디 우씨인가? 혹시 같은 성씨 아니야? 그렇겠네. 우가가 얼마나 있다고. 허허허. 세상 좁구먼.”

“아마…… 그럴 겁니다.”

그렇게 한쪽은 시끄럽고, 한쪽은 과묵한 이상한 합석의 식사가 끝났다.

먼저 일어선 쪽은 우성진.

우성진은 가게를 나가면서 카드를 내밀었다.

“에이, 돈은 됐어요. 제가 초대한 건데.”

“그래도 받아. 처음 먹는데 공짜로 먹기는 그래.”

음…… 생각해 보니 그렇다.

‘개시’라는 의미는 가게 주인에게나 손님에게나 중요하니까.

“그럼 이번에만 받겠습니다.”

“그래…… 근데 저분…… 원래 저렇게 말이 많으신 거야?”

“아…….”

두 사람의 성향을 생각하니, 우성진에게 왠지 미안해졌다.

“미안해요. 형이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좀 기다리시라고 했었는데…….”

“아니야. 미안할 건 없어. 어차피 시장 골목에서 다 그렇게 먹는 거지 뭐. 그렇긴 한데…… 내가 말이 좀 없어서…… 좋은 말동무가 못 되어 드렸을까 봐.”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해요. 근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말씀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

“그럼 다행이고. 나는 간다. 수고하고.”

“네, 들어가세요.”

“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부모님께도 전해 드려.”

“그럴게요.”

우성진이 이 정도 말한 거면, 진짜 맛있게 잘 먹었다는 거다.

좀처럼 음식에 대해서도 평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하긴, 취향 저격이었지.

테이블을 꽉 채우는 반찬들.

무려 12첩 반상.

그가 딱 좋아할 백반이었다.

한편, 식사를 마친 황종훈은 계산을 하면서 말했다.

“아까 그 친구는 누구야?”

“아, 저희 거래처 사장입니다.”

“음…… 무슨 사람이 그렇게…… 과묵해?”

“아?”

“아니, 무슨 말을 시켜도 죄다 단답형이야. 내가 말 시키는 게 그렇게 싫은가?”

“아닐 겁니다. 그 형이 원래부터 말이 별로 없어요.”

“아, 그래? 그럼 뭐…… 내가 잘못한 건 아닌가 보네. 난 또…… 괜히 사람 불편하게 했을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말수가 원래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오늘도…… 맛있게 잘 먹고 가네.”

“네. 늘 감사합니다.”

그렇게 공식 홍보대사도 자리를 떠났다.

그날 저녁.

묘했던 두 사람의 합석 테이블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오늘 두 사람의 식사는 ‘잡채’ 같은 거 아니었을까.

붉은 당근과 푸른 시금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색적인 재료가 공존하는 잡채 말이다.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은…… 서로가 조금씩은 불편했지만, 그걸 티내지 않으며 같이 식사를 했다.

서로가 더 잘났다고 우기지 않으며.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어우러져서…… 같이 밥을 먹었다.

그냥 그 조화가 오늘 반찬으로 나왔던 ‘잡채’ 같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황종훈과 우성진은 언젠가 서로 어우러질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내가 아는 두 사람 중 술을 좋아하는 걸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두 사람이니까.

언젠가 둘이 소주병을 마주하고 앉는다면.

그때가 그 둘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이 될 것이다.

마치…… 잡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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