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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31화 (31/110)

#31화 진민호 씨는 우리와 함께할 수……

7분 김치 이찬호 씨가 식사를 마치고 나간, 오후 두 시 삼십칠 분.

“자, 우리도 이제 밥 먹을까?”

점심시간이 끝나고, 저녁시간도 한참 남은 지금.

하루 중 가장 한가한 시간대이다.

우리는 보통 이때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네 시까지는 브레이크 타임 시간이다.

이때 좀 쉬면서 저녁 장사를 위한 체력을 보충하는 것.

우리들의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 영숙 이모.”

영진순댓국의 오영숙 사장이다.

“선우야. 이 문 잠깐만 잡고 있어.”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가게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고 있었다.

잠시 후 들어온 그녀의 손엔 커다란 쟁반이 들려 있었다.

쟁반 안에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 네 개가 담겨 있었고.

“희선 엄마. 이게 뭐야? 장사 다시 시작한 거야?”

“아이고, 무거워라. 일단 숨 좀 돌리고. 에휴.”

“그래, 그래.”

몇 번 호흡을 가다듬은 오영숙이 말을 이어갔다.

“장사 다시 시작했어. 그동안 쉬면서 마음 정리도 하고…… 이 순댓국은 고마워서 주는 선물.”

“고마워서?”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영문 모를 표정으로 오영숙을 바라봤다.

오영숙은 살짝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선우가…… 나 다시 살린 거야.”

“선우가?”

세 사람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에이…… 제가 사람을 어떻게 살려요.”

“말 한 마디로 천냥 빚도 갚고, 깍두기 한 통으로 사람도 살리는 거지 뭐.”

“엥?”

점점 더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나머지 세 사람.

깍두기 한 통으로 사람을 살렸다고?

세 사람의 의문을 오영숙이 풀어 줬다.

대강 이런 얘기였다.

언니 오미숙을 잃고 좌절에 빠져 있는 사이 선우가 건네준 깍두기 한 통이 큰 힘이 됐다는 얘기.

또 선우가 좀 쉬라고 말해 준 그 조언이 생각보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쉬는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회복한 그녀였다.

사람은 똑똑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내가 그렇게 힘든 줄 나도 몰랐거든. 그렇게 힘든 상태에서 만드는 순댓국이 맛있을 리가 있나. 그러니 손님은 안 오고. 암튼! 일단 이것부터 좀 드셔 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만든 순댓국이니까. 지금 식사하는 시간이지?”

어디 한번 볼까?

굉장히 궁금했다.

다시 장사를 시작한 영숙 이모의 순댓국이.

이모가 다시 기운을 차린 건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쁜 일이고.

그런데, 난 사실 그런 이모가 다시 만들기 시작한 이 순댓국의 맛이 더 궁금했다.

사실 순댓국 맛에서 모든 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영숙 이모가 제대로 복귀한 건지 아닌지는.

사람보다 음식이 중요하다는…… 그런 건 아니고.

어쨌든.

음식도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

일단, 비주얼은 합격이다.

비주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뭐겠는가.

결국 건더기의 양이다.

순대와 머릿고기의 양.

순댓국이라면 적어도 국물을 가뿐히 덮을 정도의 건더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의 영진순댓국처럼.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건 옛날 영진순댓국의 그 위용을 회복했다.

내가 순댓국을 보고 있는 사이 사람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내겐 그 장면이 소리가 삭제된 슬로우비디오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

음식을 앞에 두고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먹는 데 집중해야지.

먼저, 국물부터.

아, 긴장된다.

맛있어야 될 텐데.

제발 맛있어라. 제발.

간절한 염원과 함께 서서히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후룩.

다시 한번 후룩.

분명히 진해지긴 한 거 같은데, 조금 싱겁다.

간이 안 맞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순댓국 집에서는 각자 자기 간에 맞게 먹을 수 있도록 소금이나 새우젓을 가져다 놓으니까.

새우젓을 반 숟갈 정도 떠서 국물에 푼다.

휘휘 저은 후, 다시 국물을 뜬다.

후룩.

아…… 이거다.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를 따라 먹어 봤던 영진순댓국의 그 국물 맛.

머릿고기에 식겁했을 때도 국물만은 맛있었던 그 맛.

다음은 순대와 머릿고기.

순대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 순대는 바로 당면이 가득 들어 있는 찰순대이다.

영진순댓국의 순댓국에는 내가 선호하는 찰순대가 들어가 있다.

뜨끈한 찰순대가 입에서 터져 퍼지는 느낌이 훌륭하다.

다음으로는 머릿고기.

뽈살, 혀, 귀, 콧등살.

이름만 들었을 땐 굉장히 기괴해 보이는 그 살들의 맛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그 옛날의 무지막지한 고기양을 회복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던.

뚝배기 밑에 고기의 샘이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였던 그때의 양을.

그렇게 정신없이 먹다가, 마지막에 뚝배기를 통째로 들고 국물을 마셨다.

탁.

빈 뚝배기를 내려놓고 소리쳤다.

“캬. 좋다!”

모름지기 순댓국을 먹은 다음에는 이 소리가 나와야 한다.

뱃속에서 터져 나오는 ‘캬’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순댓국이 아니지.

그런데…… 뭔가…… 얼굴이 뜨겁다?

뜨거운 순댓국을 먹어서일까?

선우를 제외한 네 사람은 언제부턴가 선우의 ‘먹방’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게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선우가 너무 맛있게 먹으니까.

정말 압도적으로 맛있게 먹으니까.

자신이 먹는 것보다 선우가 먹는 걸 보는 게 더 맛있게 느껴지기까지 하니까.

선우는……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 순댓국과 이선우밖에 없는 것처럼.

먹어라.

한 번도 먹지 않은 것처럼.

이런 느낌이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었구나.

괜히 민망해지네.

내가 너무 맛있게 먹었나?

“아, 너무 맛있어서요.”

“아, 응, 그, 그래.”

“그건 말 안 해도 알 것 같아.”

“선우야. 네가 이렇게 잘 먹는 애였니?”

고종숙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자기 아들을 무슨 외계인 바라보듯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말은 안 했지만, 동의하는 모양새이다.

하긴…… 부모님이나 다른 분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먹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나도 살짝 이성의 끈을 놓은 상태였으니까.

“배가 고팠다고 해 두죠. 아. 순댓국이 정말 맛있기도 했고요.”

“음…… 근데 말이다. 선우 네가 순댓국 먹는 걸 보니까, 처음 너랑 영진순댓국 갔을 때가 생각나네.”

아버지가 고개를 사선으로 올리며 말했다.

눈빛에는 아련함이 가득했다.

“그때 희선이 엄마가 고기 부위들을 설명해 주셨는데…… 아직도 기억난다. 네 표정.”

“아…… 그러고 보니 나도 기억난다. 선우야. 너 완전히…… 그런 걸 표정이 썩었다고 하나요, 선우 아빠?”

“하하하. 맞아요.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먹을 수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었죠. 무슨 괴물 바라보듯이.”

“그 다음이 더 중요하죠. 한 점 먹어 보더니.”

“아주 그릇까지 다 먹어 치울 정도로 맹렬하게 먹었었죠.”

“마치 지금처럼.”

“네, 지금처럼요. 하하하.”

순댓국과 내 먹성(?) 덕분에 선우네 백반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순댓국도 정말 맛있었고, 이모의 복귀도 정말 반가웠다.

왜냐.

순댓국 없는 이모는 가능하지만, 이모 없는 순댓국은 불가능하거든.

어쨌든 잘된 일이다.

그게 깍두기 한 통 때문이었든 아니든.

시간이 흘러갈수록 추억이 사라지는 것만큼 안타까운 게 없다.

오랜만에 찾아간 옛 동네에 그때 먹었던 가게, 그때 놀았던 놀이터가 그대로 있으면 그것만큼 반가운 것도 없으니까.

순댓국 가게는 많지만, 내 어린 모습을 기억해 주는 순댓국 가게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정말…… 잘된 일이다.

* * *

진민호 씨는 출근 첫날부터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호텔 주방장이나 쓸 법한 조리모와 흰색 유니폼을 입고 왔으니까.

머리는 스포츠 머리처럼 짧게 밀고, 손톱은 아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짝 깎았다.

얼굴에는 턱수염, 콧수염 하나 자라 있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

“아, 그런가요? 하하하.”

물론,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면 좋다.

하지만, 너무 과한 것도 때로는 좋지 않은 법이다.

무엇보다 우리 백반집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옷은 단출하게 차려입고, 깔끔한 조리모 하나와 깨끗한 앞치마 하나 정도면 백반집의 복장으로서는 충분하다.

진민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 건, 첫 출근 이후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나왔고, 누구보다 늦게 들어…… 가려 했다.

우리는 마감을 끝내고 다들 같은 시간에 들어가니 가장 늦게 나가는 건 불가능했지만.

어쨌든, 그는 특유의 성실성과 우직함으로 벌써부터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시작했다.

힘도 생각보다 셌다.

“그 고무대야 들 수 있어요?”

“물론이죠!”

그는 절인 김치가 가득 들어 있는 고무 대야도 곧잘 옮겼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영업도 결국 체력이거든요. 의사들에게 영업하려다 보면 술을 엄청 먹어야 해요. 거의 매일이 술이죠. 체력이 없으면 아예 못 버텨요. 그래서 매일 헬스장에서 살았습니다. 하하하.”

“아…….”

어머니도 안순미 아주머니도 흡족해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 보였다.

그간, 본인이 해 주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상당한 미안함을 갖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결국.

진민호 영입은 대체적으로, 아니 매우 성공적이었다.

* * *

이번에는 정말 백반다운 백반을 해 볼 생각이다.

백반(白飯).

흰 백 자에 밥 반 자.

결국 흰 밥이라는 뜻인데, 뭐 이런 사전적인 정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백반을 먹으러 오는 사람이 뭘 기대하느냐이다.

결국 집에서 먹는 몇 첩 반상처럼 다양한 반찬과 쌀밥을 먹을 수 있는 걸 기대하는 것 아니겠는가.

뭐, 요즘 같은 시대에 집에서 7첩 반상, 9첩 반상을 만드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가게에서 그런 걸 해야 하는 거다.

자, 어떤 반찬이 좋을까.

참, 어느 순간부터 메뉴 기획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느라 바빠진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좋다.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으니.

백반다운 백반이라…… 우선 반찬을 몇 개 만들지부터 정해야 한다.

9첩은 너무 평범하다.

아마 평소에도 9첩 정도는 나갈 거다.

그렇다고 15첩은 너무 많다.

대충 12첩 정도로 하자.

12첩이면 평소보다 반찬은 많아 보이고, 충분히 내 능력으로 해낼 수 있을 듯 하니까.

그런 고민 끝에 탄생한 오늘의 메뉴.

<오늘의 메뉴>

12첩 반상!

- 제육볶음

- 삼종 김치(깍두기, 배추김치, 갓김치)

- 느타리버섯볶음

- 매콤콩나물 무침

- 멸치 마늘쫑 볶음

- 분홍 소시지

- 양념게장

- 고사리무침

- 시금치무침

- 도라지무침

- 계란찜

- 잡채

+애호박된장국과 흰쌀밥

와…… 메뉴를 다 적는 것조차 힘들다.

메뉴 보드판 끝까지 활용해 메뉴를 다 적은 다음 장사 준비에 들어간다.

대부분의 반찬은 어제 만들어 두었고…… 제육볶음은 그때그때 볶아서 나가면 된다.

아쉽게도 이제는 직화 제육까지는 힘들 듯하지만…….

가게 규모가 커지면서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서비스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가게를 찾아온 손님들이 모두 만족하고 갈 수 있도록.

맛있는 밥 한 끼로 행복해지고, 살아갈 힘을 얻어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정성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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