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30화 (30/110)

#30화 최고의 먹방 파트너

라면부터 시작한 나와 달리, 이초희의 시작은 쫄면이었다.

냄비를 휘휘 저어 가득 담은 쫄면을 그릇에 담는다.

후- 하고 불어 뜨거운 기운을 날린다.

그다음 한가득 입속으로 직행.

꽤 많아 보였는데…… 젓가락질 한 번에 이초희의 그릇이 휑 하고 비어 버렸다.

나도 질 수 없지.

먹는 것 가지고 싸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식한 거라고는 하지만.

이상하게 잘 먹는 사람 앞에 있으면, 더 식욕이 돋고 더 많이 먹고 싶어진다.

“쪼며…… 분…… 까…… 쪼면…… 터…… 빠리…….”

“쫄면 부니까 쫄면부터 빨리 먹으라고요?”

입은 여전히 가득 채운 채 이초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

쫄면은 오래 두면 불면서 국물을 다 흡수하는 게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사실 부는 것보다 바닥에 눌어붙는 데 있다.

타서 눌어붙으면 나중에 냄비를 청소하기 어려워지니까……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눌어붙은 쫄면이 아까울 뿐.

휘휘 냄비를 저어 쫄면과 라면, 면 형제부터 공략한다.

면 다음 공략 대상은 떡볶이의 주인공 아닌 주인공, 떡이다.

주인공인데 왜 주인공이 아니냐.

떡볶이에는, 특히 즉석 떡볶이에는 자기들이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재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다들 각자 주인공일 수 있는 이유들이 있기도 하고.

떡은 특별히 더 열을 많이 품고 있어서 뜨겁다.

그래서, 몇 개 덜어 놓은 후 식혀서 먹는 편을 선호한다.

떡이 식는 사이 어묵, 양배추, 깻잎 등의 조연들을 맛본다.

잠깐.

여기서 어묵은 조연이라 하기에는 좀 아쉽다.

떡볶이 안에서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재료 중 하나가 어묵이니까.

누군가는 어묵을 먹기 위해서 떡볶이를 먹는 경우도 있고.

어떤 떡볶이집에는 오뎅(어묵)볶이라는 메뉴도 있다.

여하튼 삼각형 모양으로 썰린 얇은 어묵에 국물이 잔뜩 배어 있었다.

오오.

좋은 어묵을 쓰는지 밀가루 맛보다는 생선 맛이 많이 난다.

다음은 만두다.

소위 ‘야끼만두’라고 불리는 얇고 긴 튀김 만두.

만두소라고는 당면밖에 없는.

지금처럼 국물에 듬뿍 적셔 먹어도 좋고, 그냥 한 번 튀겨서 간장에 찍어 먹어도 좋다.

국물에 적신 만두를 먹다가 슬쩍 고개를 들었는데, 마침 이초희와 눈이 마주친다.

“만두 한 개 더?”

“국물에 섞지 말고.”

“동의.”

그렇게 해서 나온 튀김 만두를 젓가락으로 들고 베어 먹는다.

튀김의 바삭한 맛과 당면의 고소한 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맛있다.

어릴 적 학교 앞에서 먹던 그 맛이 난다.

계란은 전 국민이 다 아는 국룰을 지켜 먹는다.

알을 접시에 가져다 놓고, 여러 번 국자로 국물을 뜬 후 숟가락으로 으깬다.

알이 으깨지면서 국물과 만나 벌개진다.

적당이 으깬 그것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다.

아…… 삶은 계란은 언제나 옳다.

다른 생각 같은 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이초희의 선택에 감사한다.

감히 계란을 두 알 시켜 한 알씩 나눠 먹으려 했던 내 짧은 식견이 부끄러워진다.

이걸 어떻게 하나만 먹고 멈추겠는가.

볶음밥은 언제나 대미를 장식하는 훌륭한 메뉴이다.

야구로 치면 마무리 투수.

우리나라 식당에는 마무리로 볶음밥이 참 많이 있다.

삼겹살집, 샤브샤브집, 곱창집, 그리고 즉석 떡볶이집.

개인적으로 이 떡볶이 국물에 볶아 먹는 밥은 여러 볶음밥 중에서도 진짜 최고라고 생각한다.

가득 차 있던 떡볶이 건더기가 사라지고, 나와 이초희는 다시금 눈을 마주친다.

“두 개?”

고개를 젓는 이초희.

“세 개?”

약간 고민하는 이초희.

“세 개 먹고 나가서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원래 당연한 건데.”

“음…… 넷?”

네 개까지는 난 좀 무리이다 싶은데…… 이초희의 얼굴이 밝아진다.

“떡볶이도 4인분 먹었으니까 볶음밥도 인원수를 맞춰서.”

아…… 나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애초에 두 명이 와서 떡볶이를 4인분 먹었다.

이미 두 배를 먹은 셈인데…… 거기에 볶음밥까지 4인분으로 맞춘다.

그럼 8인분?

근데 이게 인원수를 맞추는 거라고?

이초희의 신박한 셈법에 경의를 표한다.

그렇게 4인분의 볶음밥을 해치운 후, 근처 편의점에서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저도 잘 먹었습니다.”

누가 사준 것도 누가 얻어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잘 먹었다는 인사를 건네며 헤어졌다.

진짜로 잘 먹었으니까.

만나서 잘 먹은 거 말고 특별히 한 일도 없고.

오늘 느낀 거지만, 이초희는 역시나 최고의 식사 파트너였다.

* * *

김치는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거의 매일 김치를 담그다시피했다.

이제 두 분은 김치 담그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잘 팔릴 줄은 몰랐네.”

영업이 끝난 가게에서 어머니가 지친 얼굴로 말씀하셨다.

“그러게. 선우네 김치가 맛있는 건 다들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팔릴 줄은.”

“재동이네 손맛까지 추가되서 그런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아버지가 너스레를 떤다.

아버지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밝아졌다.

평생 저렇게 밝은 얼굴은 마주한 적이 없을 정도로.

밝은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뿌듯하다.

다시 돌아와서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인 듯싶다.

절망에 빠져 있던 아버지를 구덩이에서 빼낸 일은.

“근데 문제는…….”

어머니의 얼굴이 살짝 심각하다.

“김치 담그느라 정작 백반집 일은 거의 못 하고 있다는 거야.”

아.

그걸 걱정하고 계셨구나.

아닌 게 아니라, 요새 일손이 좀 달리는 게 느껴지긴 한다.

15년 젊어진 회귀자의 ‘젊음의 권능’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는 내가 있지만…… 아무래도 몸을 두 개로 나누는 이능 같은 건 없으니.

그래서 생각은 하고 있었다.

새로운 직원 한 명을 채용해야 될 때라고.

“재동이더러 와서 좀 일하라고 할까?”

“아주머니! 그건 안 됩니다.”

“아이쿠, 깜짝이야. 뭘 그렇게 크게 말해?”

“아, 죄송해요. 하여간, 재동이는 안 돼요. 열심히 공부해야죠.”

열심히 공부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그래. 나도 사실 그냥 해 본 말이야.”

우리 네 사람은 계속된 대화 끝에 결론을 내렸다.

직원 한 명을 더 채용하기로.

지난번처럼 가게 앞에 채용 공고를 붙여 놓고, 각자 아는 사람 통해서도 알아보기로.

“이제 다들 들어가시죠.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 같이 문을 나서려는데…… 스윽- 하고 문이 열렸다.

고개를 빼꼼 내민 인물은 바로…… 진민호.

“손님, 죄송하지만 영업 끝났습니다.”

진민호의 얼굴을 모르는 아버지가 공손히 진민호를 내보내려 했다.

“아, 선우 아버지. 그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그래? 누구시길래?”

아버지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진민호가 직접 해결해줬다.

“안녕하세요. 진민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제가 일전에…….”

구구절절한 진민호의 이야기.

덕분에 진민호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어졌다.

진민호가 다시 돌아왔다는 건…… 어찌 됐든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거겠다.

그 책들을 읽어 보고도 장사를 아직 하고 싶다면 다시 오라고 했었으니까.

진민호는 등에 메고 온 책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쿵.

무슨 무거운 거라도 들었는지, 책가방을 내려놓는데 돌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가방을 연 진민호가 꺼낸 건…… 바로 내가 알려 줬던 열 권의 책이었다.

“아…….”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열 권의 책을 봤기 때문이 아니었다.

모든 책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색색의 북마크 때문이었다.

한 권을 꺼내 열어 보았다.

북마크가 붙어 있는 페이지마다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그 메모지에는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 식당 사장의 마음가짐은 이래야 되는구나. 이게 영업사원일 때랑은 또 다르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일 수 있겠다.

뭐, 이런 식이었다.

그 북마크와 메모에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한눈으로 진민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 담긴 감정은 그의 노력에 대한 경의였다.

이렇게까지…… 정말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진민호의 끈기와 성실성을 익히 알고 있던 나조차도.

그의 마음은 이 책들을 보는 순간 확실히 확인이 됐다.

그래도 나는 아직 궁금한 게 남아 있었다.

“장사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면…… 이 가게에서 장사를 배우고 싶으신 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저 정도의 열정이면, 어느 프랜차이즈를 찾아가도 된다.

평범한 수준의 브랜드만 돼도, 금방 자리를 잡을 것이다.

저 정도로 열심히 한다면.

그래서 궁금했다.

여전히 이곳 ‘선우네 백반’에서 장사를 배우고 싶은 건지.

어디서든 장사를 하고 싶다면…… 탄탄한 브랜드 몇 개를 추천해 줄 수 있다.

회귀해서 몸을 두 개로 만드는 이능력은 없지만, 어느 브랜드가 흥하고 망할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반면, 선우네 백반에서 장사를 배우고 싶다면…… 그건 좀 논의가 필요한 일이다.

지금 모여 있는 가게의 구성원들과 함께.

마침 새로운 직원이 필요한 타이밍에 진민호가 오긴 했지만.

그래도, 심사숙고는 필요하다.

작은 공간에서 매일 몸을 부딪혀 가며 일할 사람을 뽑는 일이니까.

“이곳에서…… 장사를 배우고 싶습니다. 애초에 이곳의 음식을 먹으면서 장사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첫사랑처럼, 그때의 감정과 느낌이 아직도 몸에 생생합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여러분께 장사와 음식을 배우고 싶습니다.”

진민호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아니…… 도대체 우리 가게가 뭐라고?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과 별다르지 않은 것 같은 안순미 아주머니.

그리고…… 왠지 눈가가 촉촉해 보이는 듯한 아버지.

설마…… 진민호의 말에 감동하신 걸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에게도 조금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밖에서 기다리면 될까요?”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연락처 하나 주고 가시면…… 저희끼리 의논을 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여기 있습니다.”

진민호가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고 나갔다.

무거운 가방을 다시 들쳐 업고.

* * *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아버지의 입이 먼저 열렸다.

“난 찬성. 김치 담글 때 보니까 은근히 힘 쓰는 일이 많더라고. 내가 아무래도 아직 완전하지 않다 보니…… 남자 직원 한 명이 필요할 것 같아.”

“음…… 선우 아버님 말씀도 맞는데…… 그렇게 따지면 좀 더 힘세고 젊은 친구들도 있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젊은 친구들이 나도 좋다고는 생각하는데…… 아르바이트 한두 달 하다가 다 나가 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걱정되긴 해. 우리는 오래 같이 일할 사람이 필요한 건데 말이야.”

음…… 다 맞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남자 직원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시는 것 같은데.

힘쓰는 일을 할 사람이면 아무래도 팔팔한 사람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민호를 오래 겪어 본 사람으로서…… 저 정도로 성실한 사람을 직원으로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놓치기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기…… 다들 진민호 씨가 가져온 책 보셨죠?”

그 사이에 기억을 다 까먹으신 것 같아서 다시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그 정도로 열심히 하는 사람을 우리가 다시 구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지.

거기에는 다들 동의하는 눈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