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7분 김치
이찬호는 늘 앉던 그 자리에 앉았다.
수저를 꺼내고, 물을 따르는 규칙적인 동작.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반복되는.
끓는 찌개를 바라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달라진 김치찌개에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재료가 달라진 걸 알고, 이상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까?
혹시 그의 강박에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꼭 먹어야 한다는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갑자기 생각이 복잡해지네.
괜한 일을 한 걸까?
강박증에 좋다는 그놈의 ‘세로토닌(?)’ 때문에 평화로운 이찬호 씨의 일상을 방해한 건 아닐까?
그러는 사이 찌개가 완성됐다.
“여기 찌개 나왔습니다.”
어머니 고종숙 여사가 다가와 뚝배기 받침을 집는다.
“아들. 7분 김치가 이거 싫어하면 어떡하지?”
“음…….”
아닐 거라고 믿는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한 일이 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도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란 건 대부분 제대로 전해진다고 믿으니까.
어머니가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조심스레 들고 나간다.
이찬호 씨는 눈앞에 놓인 찌개를 가만히 바라본다.
저렇게 물끄러미 바라본 적은 없었는데.
아마도 달라진 비주얼에 살짝 흠칫한 듯하다.
- 저대로 그냥 나가 버리는 거 아냐?
어머니가 귓속말을 한다.
- …아닐 거예요.
확신은 없지만, 그냥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다.
휴…….
이찬호 씨의 다음 동작을 보고 나와 어머니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찬호 씨가……
밥을 찌개에 만 것이다.
늘 그렇듯이.
그 사소한 행동 하나가 우리 둘의 마음에 커다란 안도감을 가져다줬다.
이게 뭐라고.
참.
이내 이찬호 씨는 평소와 같이 밥을 말은 뜨거운 찌개를 우걱우걱 퍼 넣었다.
왠지 평소보다 속도는 더 빨라 보인다.
잠깐 머뭇했던 그 시간 때문일까?
7분 만에 식사를 끝내지 못할까 봐 저러는 것일까?
그 ‘강박’이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를 알고 나니, 쫓기듯 밥을 먹는 이찬호 씨가 괜히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천천히 드시라고 한 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이찬호 씨를 방해하는 거라 생각해서 참았다.
그렇게 7분 김치는 오늘도 7분을 넘기지 않고, 찌개에 말은 밥을 해치웠다.
찌개가 아니라 국밥에 가까운 그것을.
늘 그렇듯 주머니에서 오천 원짜리 하나와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아, 근데…….”
우리는 다소 긴장한 채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역시…… 멸치 육수가 잘못됐던 걸까?
참치 김치찌개가 입맛에 안 맞았던 걸까?
“오늘 찌개…… 맛있었어요.”
라는 말을 던진 그가 후다닥 뛰어나갔다.
부끄럽다는 듯이.
“다행이다.”
“다행이네요.”
“참치를 더 좋아했었나 봐.”
“그러게요.”
“그럼 지금껏 덜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그렇게 먹어 왔던 걸까?”
“뭐, 어쨌든…… 김치찌개는 김치찌개니까요.”
돼지나 참치는 부재료일 뿐이니까.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왜 꼭 김치찌개여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식당 사장으로서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건.
그저 매일 두 시 반에 그를 위한 김치찌개를 끓여 주는 일뿐일지 모른다.
강박증에 좋다는 세로토닌이 듬뿍 담겨 있는 멸치 육수로 끓인.
언젠가 그가 기적적으로 회복된다면, 그 회복에 김치찌개의 지분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겠지.
그걸로 됐다.
* * *
김치 중 내가 단연 좋아하는 종류는 바로 ‘생김치’이다.
갓 담근 김치.
겉절이.
뭐, 그런 종류.
요즘에는 사시사철 배추를 팔기에 사시사철 생김치를 맛볼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재료는 ‘제철’의 맛을 이기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봄동은 늦겨울과 초봄의 겉절이를 위한 최고의 식재료이다.
아침부터 최덕호 사장이 봄동을 가득 실어 배달해 왔다.
“이 사장! 물건 확인해 봐.”
“네!”
봄동이라고 하지만, 그 품종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겨울 노지에서 재배된 일반 배추를 우리가 보통 봄동이라 부른다.
추운 날씨로 인해 위로 자라지 못하고, 잎이 옆으로 퍼져 있다.
일반 배추보다 잎이 조금 두껍고,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더 달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
봄동을 고를 때는 먼저 배춧속부터 봐야 한다.
‘푸르고 좋네.’
사람들이 대부분 가운데가 노란 봄동이 신선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겉뿐만 아니라 가운데도 푸릇푸릇한 봄동이 더 신선한 놈이다.
물론, 큰 차이는 없다.
어쩌면 취향 차이 정도.
단, 너무 뻣뻣한 봄동은 겉절이 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특히 오늘의 메뉴를 위해서는 적당히 부드러운 것이 좋은데…… 최덕호 사장님이 가져온 봄동이 딱 그랬다.
언제나 그렇듯이 요청사항만 제대로 말씀드리면 늘 거기에 맞는 최상의 재료들을 구해다 주신다.
“사장님!”
“어이쿠, 깜짝이야.”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던 최덕호가 놀란다.
“왜? 재료에 문제 있어?”
“아니요. 배추가 너무 좋아요.”
“참나. 그래서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른 거야?”
“네! 늘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돈 받고 가져다주는 건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최덕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납품 마치고, 식사하러 오세요.”
“그럴까?”
“네. 오늘 메뉴 드시면 생동하는 봄과 같이 몸이 가벼워지실 겁니다.”
“아이고. 말만 들어도 아주 몸이 싱그러워지는 것 같네. 그래! 이따 밥 먹으러 올게.”
* * *
<오늘의 메뉴>
- 봄동 겉절이 비빔밥
- 비엔나 소시지
- 파래김
- 감자볶음
- 된장국
- 그 외 늘 아시는 기본 반찬.
메뉴 보드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장사 준비에 들어갔다.
오늘 메뉴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봄동 겉절이다.
어머니, 안순미와 함께 봄동 손질을 시작한다.
먼저 밑둥을 잘라 내고, 배추를 한 잎씩 분리한다.
포기 수가 많으니, 잎을 떼어 내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린다.
두 분은 빠른 속도로 잎을 떼어 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까지 나눈다.
“재동이 다시 학교 다닌다며?”
“응. 애가 갑자기 달라졌어. 요샌 술도 안 먹고.”
“재동이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었어?”
“그렇다니까. 거의 알코올 중독 수준이었어.”
“아이고…… 재동 엄마가 맘고생 많았겠네.”
“에휴…… 그래도 걔가 그러는 이유를 아니까 나도 뭐라고 말은 못 했지.”
그러실 줄 알고, 제가 좀 대신 나섰죠.
안 그래도 녀석을 이대로 뒀다가는 알코올에 찌든 실패자가 되었을 테니까.
“어쨌든 참 다행이다. 재동이가 공부를 좀 잘했어?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꼭 성공할 거야.”
“고마워, 선우 엄마. 근데 난 이제 성공 같은 거 바라지도 않아. 그냥 재동이가 늪에서 빠져나와서 이렇게 대학교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앞으로도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재동이 잘될 겁니다!”
확신한다.
평범했던 나도 미친 듯이 노력해서 기업 회장까지 되었었다.
똑똑한 재동이는 더 잘할 거다.
뭐, 진짜 배달 앱 같은 걸 만드는 놈이 될지도 모르고.
녀석이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슬쩍 힌트는 한번 줘 볼 생각이다.
회사를 만든다면…… 지분도 슬쩍 끼워 넣어 볼 생각도 있고.
후훗.
그 정보값이 얼만데 지분 투자 정도야 귀엽지.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두 분의 잎 따는 속도는 경이로웠다.
어느새 다 딴 봄동 잎을 물에 깨끗이 씻는다.
혹시나 모를 흙이나 모래까지 제거하기 위해 최대한 여러 번 깨끗이 씻어 준다.
그렇게 씻어 낸 배추를 체에 걸러 놓는다.
물이 다 빠져나가면 그때부터는 양념의 시간이다.
나는 잠시 물러나 있는다.
두 김치 고수들의 시간이기 때문.
“액젓 이 정도면 될까?”
“음…… 조금 더 넣어 볼까?”
“그치? 아무래도 조금 더 넣는 게 낫겠어.”
어머니가 액젓을 몇 번 더 휘휘 두른다.
“그래. 이 정도면 되겠다.”
계량과 레시피를 신봉하는 나이지만, 저 두 절대 고수 앞에서 지금 그걸 논할 수는 없다.
어차피 계량과 레시피라는 게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인데, 저 두 분의 김치는 맛없던 적이 없으니까.
그저 가만히 대략적으로 재료들의 양을 머릿속에 기억해 둔다.
훗날 내가 하게 됐을 때 대강이라도 기억할 수 있도록.
액젓과 소금을 넣은 봄동은 잠시 동안 절여 놓는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양념을 만든다.
대야에 고춧가루를 붓고, 다진 마늘을 넣고, 잘게 썬 파를 넣는다.
액젓을 조금 더 넣고, 설탕을 가미한다.
양념이 가득 담긴 대야에 잘 절여진 배추를 투하한다.
“자, 이제부터 힘센 제가…….”
“안 돼.”
“아니지.”
고무장갑을 끼고 나서려는 나를 두 분이 제지한다.
한목소리로.
그러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 번씩 한 번씩 김치를 양념에 버무리기 시작한다.
“버무리는 게 제일 중요한 건데…… 우리가 해야지.”
“그래, 선우야. 김치는 우리한테 맡겨.”
두 분의 표정에서는 제법 비장함까지 흐르고 있었다.
그래.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어디 절대 고수들 사이에 내가 끼랴.
나는 가만히 고무장갑을 벗고, 화구 근처로 왔다.
된장국이나 끓여 놓자.
국을 끓이는 사이에 완성된 봄동 겉절이.
어머니가 배춧잎 하나를 내 입속으로 집어넣어 주신다.
새콤, 달콤, 매콤한 양념장의 맛이 먼저 느껴진다.
각기 다른 맛의 조화가 훌륭하다고 느끼면서, 배추를 씹는다.
아삭.
봄동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입안에서 춤춘다.
마치 생동하는 봄기운처럼.
이어서 코를 통해 들어오는 고소한 냄새.
참기름에 고소한 봄동 향이 어우러져 들어오는…… 식욕을 자극하는 향.
적어도 내 기준에는…… 어떤 꽃향기도 비교할 수 없는 향기로운 냄새.
됐다.
이걸로 오늘 메뉴도 끝이다.
* * *
정인태 씨.
그는 영훈대학교의 시간강사다.
전공 과목은 ‘동양 철학 사상의 이해’.
과목에서 나타나다시피 그는 인기 강사는 아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고루한 동양 철학에 관심을 갖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수업을 들으러 온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거나, 다른 과목의 과제를 한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어쩌랴.
세상이 변해 가고 있는걸.
그나마 시간강사 자리라도 유지할 수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오늘은 새 학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학과장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아침부터 굶었더니 심히 배가 고프다.
‘뭐 좀 맛있는 거 없나?’
그는 요 근래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린다.
매운 라면, 짜장라면, 순한 라면, 비빔면…….
라면이 아니라면 가끔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피자, 햄버거, 중국집.
갑자기 어머님의 음식이 그리워진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제철 음식을 때에 맞게 먹곤 했었는데…….
쩝.
아쉬움과 배고픔이 섞인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렇게 영진시장을 돌아다니고 있던 정인태의 눈에 웬 글씨가 들어온다.
‘오호…… 봄동 겉절이 비빔밥?’
어머니가 해 주시던 봄동 겉절이가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입에 침이 고인다.
물론, 아닐 걸 안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을 이런 작은 백반집에서 맛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라면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선우네 백반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