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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23화 (23/110)

#23화 김치전에는 오징어?

가격표를 보자 나는 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십오 년 후 미래에 살았던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집의 전 가격은 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말 이 가격으로 팔아도 되나 싶을 정도.

“김치전 하나, 육전 하나. 그리고, 오뎅탕 하나. 어때요? 형님.”

“형님? 넉살 좋네? 뭐, 난 아무거나 괜찮아. 아주머니. 얼음장에서 방금 꺼내 온 차가운 소주 있죠?”

“있지. 우 사장이 맨날 찾는 그거.”

“네. 일단 술부터 좀 가져다주세요.”

우성진의 말대로 병 표면에 살얼음이 달라붙어 있는 차디찬 소주가 나왔다.

안주도 없이 몇 잔 나눠 마셨다.

차가운 소주는 몸 안으로 들어가자 뜨겁게 변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해.

왜 이렇게 차가운 술이 목젖을 넘어가면 뜨겁게 변하는지.

어쨌든.

술을 몇 잔 나눠 마시자 우리 사이는 왠지 조금 더 가까워진 듯했다.

곧이어 노릇노릇하게 익은 김치전이 배달됐다.

“육전이랑 오뎅탕도 곧 나와요. 먼저 이것부터 드시고 계셔.”

아주머니는 접시를 놓자마자 빠르게 말을 전달하고는 사라졌다.

캬.

잘 구웠다.

김치전은 모름지기 얇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꺼워서 밀가루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런 김치전은 매력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얇은 반죽이 속까지 바삭하게 익은 김치전이 좋다.

이 집 김치전이 딱 그랬다.

“오늘 김치전 맛있네.”

우성진의 입맛에도 맞았나보다.

나도 그렇고 우성진도 그렇고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어차피 우성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고, 우성진은 원래 말이 좀 없는 편이다.

다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맛있는 안주를 나눠 먹었다.

어쩌면 그걸로 충분하다.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부담감 자체가 그 자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 불편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런 자리를 하고 돌아오면, 몸 안에는 화 같은 감정이 쌓여 있게 마련이고.

천천히 술병을 비워 가는 도중, 우성진이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좀 가난했거든.”

“네.”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 이미 알고 있기도 하고.

“엄마가 가끔씩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준다고, 이 김치전을 구워 주셨어. 비가 올 때 특히 많이 먹었던 것 같아.”

“아…….”

조금씩 술이 들어가니까 우성진의 입도 트이기 시작하는구나.

“맛있게 먹었지.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해 준 음식은 다 맛있잖아. 근데 하루는…… 친구네 집에 가서 김치전을 먹는데…… 글쎄, 오징어가 잔뜩 들어가 있는 거야.”

“아, 오징어!”

김치전에 오징어는 참기 힘들지.

“그래서 걸신 들린 사람처럼 먹었지. 그리고 얼마 후에 엄마가 김치전을 굽는데, 오징어가 없으니까 갑자기 너무 심심한 거야. 그렇게 맛있었던 김치전이 갑자기 말이야.”

“사람이 원래 그렇죠. 없을 때는 모르는데, 있다가 없으면 서운한 법.”

“그래. 바로 그런 느낌. 그래서 엄마한테 오징어 넣어 달라고 떼썼지. 엄마는 당연히 오징어 살 돈이 없으니까 그냥 먹으라고 달랬고. 난 친구네 집을 들먹여 가며 고집부렸지. 영준이네는 오징어 잔뜩 들어가 있던데! 왜 우리 집 김치전은!”

“음…… 뭔가가 날라왔겠군요.”

“정답. 프라이팬 크기만 한 식은 김치전이 그대로 얼굴로 날아왔어.”

“오…… 그래도 식은 걸로 던지셨네요. 아들 화상 입을까 봐.”

우성진이 큭큭- 웃었다.

“그것도 나름 엄마의 배려였던 건가?”

나는 우성진의 빈 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럼요. 뜨거운 전도 안 던지시고, 프라이팬을 날리지도 않으시고. 천사셨네요.”

“천사?”

‘천사’라는 단어를 들은 우성진의 얼굴에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내가 실수한 건가?

설마…… 어머니가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신 건가?

우성진이 직접 궁금증을 풀어 줬다.

“엊그제 동대문에서 천사 옷을 사다 드렸어.”

“네? 천사 옷이요?”

“응. 이제 환갑밖에 안 되신 분이 벌써 치매에 걸리셨거든…… 본인이 가끔씩 천사인 줄 아셔. 아기 천사.”

“아…….”

웃을 수도, 울 수도 어떤 반응을 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안타까운 감정밖에는.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어. 그때가 좋았다는.”

“식은 김치전으로 맞을 때?”

“풋. 그래. 김치전으로 나 때릴 기운이 있었던 그때의 어머니가 좋았었어.”

우성진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다.

아마도 스물다섯 살의 나였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그런 감정.

부모님은 늘 그렇듯, 영원히 그렇게 살아 계실 걸로 착각한다.

그러나 가끔씩 부모님의 확 늘어난 주름살을 볼 때면, 갑자기 체감이 되기도 하지.

참 많이 늙으셨구나.

천사 옷을 사다가 어머님께 드리는 우성진의 모습을 상상했다.

실제의 우성진은 기억 속 우성진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같이 소주를 마시길 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이 너무 맛있었다.

김치전도 그렇지만, 육전도 최고.

* * *

여느 때처럼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밤.

부모님을 집으로 보내고, 팔각정으로 뛰어 올라가던 중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찍힌 이름은 이재동.

“어, 왜?”

- 왜긴 왜야, 인마. 스타나 한판 하자고 전화했지.

“나 지금 운동 중이야. 끊어.”

- 야, 야. 너 고깔콘 팀 알지?

“고깔콘? 알지. 지난번에 우리 무참히 발라 버렸던 놈들 아니야.”

15년이나 흐른 전생에서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던 이름 고깔콘.

아이디 Goccalcon.

나와 재동이를 2:2 팀플레이에서 무참히 발라 버렸던 놈들이다.

넷상에서 꽤나 한다고 알려졌던 우리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상대가 프로게이머도 아닌데, 우리가 손도 못 쓰고 그렇게 진 건 처음이었으니까.

게임에서 지고 난 후 재동이는 고깔콘에서 콘은 ‘con’이 아니라 ‘cone’라고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X타크래프트의 세계에서 스펠링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게임 잘하는 놈이 강한 놈이고, 그놈 아이디가 고유명사가 되는 거지.

재동이의 말이 이어졌다.

- 걔들이 다시 한판 붙자는데?

“뭐?”

나는 달리던 걸음을 딱 멈췄다.

돌아오고 난 후, 온 정신을 사업에 쏟았다.

사업하는 게 제일 재미있기도 했고, 다른 데에 시간을 쏟는 게 아깝기도 해서.

근데, 고깔콘 놈들이 내 승부욕을 자극했다.

재동이도 한번 만나고 싶기도 했고.

그럼 겸사겸사 오랜만에 손 좀 풀어 볼까?

“너 지금 어디야? 레토 게임방?”

- 옳지. 이렇게 나와야 이선우지. 매일 하던 그 자리다. 바로 와. 컴퓨터 켜 놓을 테니까.

“오케이. 십 분만 기다려.”

나는 팔각정을 뒤로하고 레토 게임방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 * *

약 두 시간 뒤.

고깔콘 놈들은 여전히 강했고, 스물다섯 살의 손놀림으로도 그놈들을 이기긴 힘들었다.

“와…… 이 자식들 역시 잘하네.”

“그러게. 얘들 프로게이머 아니야?”

“그럴걸. 프로게이머 아니면 누가 우릴 이렇게 이기겠어. 야, 그래도 오늘은 한 판 이겼잖아. 지난번처럼 다 지진 않았어. 잊고 나가서 맥주나 한잔하자.”

“휴…… 그래. 안 그래도 배가 출출하던 참이었다.”

이런 말이 이상하지만, 재동이는 그대로였다.

내가 스물다섯 살에 봤던 이재동의 모습 그대로.

마흔 살의 이재동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많이 망가져 있었었다.

“야, 이렇게 만나니까 반갑다.”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장사하느라 바쁘다면서 게임도 안 하던 놈이 누구인데.”

우리는 500cc 잔을 맞대고 건배를 했다.

아직은 추운 겨울이었지만, 날씨 상관없이 맥주는 꿀꺽꿀꺽 잘도 넘어갔다.

고깔콘 놈들 때문에 속이 좀 불타기도 했었고.

시원하게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잘 구워진 반건조 오징어의 통통한 몸통을 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몇 달 만에 보니까 반갑다는 얘기였지. 그나저나 넌 학교 복학 안 하냐?”

“복학? 에휴. 학교 다녀서 뭐하냐. 뭐, 제대로 배우는 것도 없는데.”

재동이는 푸욱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은 사실 우리 동네에서 알아주는 수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수능 성적도 상위 1% 안에 들었던 녀석은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한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재동이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잘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그의 삶은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내가 기억하는 마흔 살의 이재동이 되어 버렸다.

알코올 중독자에 폭행 전과자 이재동.

할 수만 있다면, 녀석의 삶을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재동이는 손에 꼽히는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고, 전생에 녀석이 그렇게 된 걸 나는 누구보다도 아쉬워했으니까.

2020년대가 되면, 컴퓨터를 공부한 개발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 같은 시대가 열린다.

녀석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정상적으로만 살아갔어도 가진 능력을 발휘하며 잘살았을 거다.

“대학교에서 뭘 배우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학위를 딴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지.”

“하이고, 네가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한다고? 장사한다고 학교 휴학하고 있는 네가?”

“야, 나는 좀 케이스가 다르지. 자, 한잔해.”

우리는 다시 서로의 잔을 맞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정말 케이스가 다르다.

전생에서 내가 제일 쓸데없다고 생각한 시간이 장사를 하다가 중간에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친 시간이다.

그렇게 따낸 학사 학위.

뭐, 아예 쓸모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대한민국에서 학위는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게 선우 푸드 회장이 되는 데 요만큼의 도움을 줬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야 외식업을 할 사람이고, 게다가 국문과 나와서 외식업에 딱히 도움이 될 일은 없으니까 안 하는 거지. 근데, 너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될 거라며? 그럼 어쨌든 그런 회사에 취직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려면 학위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스티브 잡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이 새끼. 너 기억 안 나? 사람들이 다 의대 가라고 할 때 네가 고집부려서 컴퓨터공학과 간 거잖아. 스티브 잡스 따라 한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터틀넥 티셔츠 입고 다니면서.”

“음…… 내가 그랬었나?”

“와…… 이놈 완전히 사람 잡아먹을 놈이네. 너 벌써부터 치매 왔냐? 윤호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까? 정우, 치환이, 준태. 다 전화해서 물어봐. 그 얘기 모르는 사람 없을걸?”

“야, 뭘 또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그랬으면 그런 거지. 알겠어, 알겠다고.”

녀석은 잔에 남아 있는 맥주를 한입에 비워 냈다.

“여기 오백 한 잔 더요.”

“아니요, 됐습니다. 주지 마세요.”

“야, 너 뭐 해? 왜 남이 시킨 술을 네가 취소하는데?”

녀석은 제법 공격적인 어투로 쏘아댔다.

그 모습을 보니, 마흔 살의 이재동이 오버랩됐다.

지금이야 정도는 훨씬 덜하지만, 딱 이런 모습이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행동.

한 번 술을 마시면 제어를 못 하고, 공격성이 심해지는 모습.

나는 이번 생에는 녀석이 그렇게 되는 걸 내버려 두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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