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22화 (22/110)

#22화 삼겹살 & 와사비 (2)

“네, 뭐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혹시…… 고기 추가되나요? 헤헤.”

딸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고 웃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지금은 안 된다.

고기 추가를 못 해 주는 게 아니라, 웨이팅하는 손님들 때문에.

“손님, 고기 추가는 당연히 됩니다만…… 저쪽을 한 번 보시면…….”

나는 난롯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저기뿐만 아니라 밖에도…….”

불투명 유리문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바깥의 대기자들까지.

“어머, 기다리고 있는 분이 계신 줄 몰랐어요.”

“아닙니다. 수요일에는 특별 메뉴가 제공되다 보니 평소보다 손님이 좀 많습니다.”

“아, 근데…… 이렇게 손님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고기는 맛있게 드셨나요?”

“네, 너무 잘 먹었어요. 미나리를 같이 구워서 먹은 것도, 고기에 와사비를 곁들여 먹은 것도 정말 처음이었는데…… 너무 맛있었네요. 냄새도 하나도 안 나고요.”

“오…… 다행이네요. 그럼, 어머니 이제 삼겹살에 입문하신 건가요?”

“호호호. 아마도요? 근데, 다른 데에 가서는 못 먹을 것 같고, 여기서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후후. 조만간 다른 데에서도 와사비와 미나리가 등장하기 시작할 겁니다. 그전에는 집에서 드실 때라도 그렇게 해서 드셔 보세요. 아니면, 어디 놀러 가셔서 그렇게 드셔도 되고요.”

“그래야겠네요! 엄마가 펜션 같은 데 가서 고기 구워 먹을 때 항상 시무룩해하셨거든요. 오늘처럼 이렇게 먹으면, 엄마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좋네요. 가실 때 카운터에 명함 있으니 가져가시고요. 제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오늘처럼 드셨던 방법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고기나 재료 구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도 될까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미정아. 저기 손님들 기다리시니까 빨리 일어서자. 사장님, 아무튼 정말 잘 먹었습니다. 저희 또 올게요.”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엄마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네, 어머니. 그럼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특별 메뉴 날이라 그런지 하루 종일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고기만 몇백 킬로그램은 구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고기를 굽다 보니 어느덧 장사 마감 시간이 되었다.

“와…… 오늘 진짜 미친 듯이 바빴네.”

“선우 아빠, 허리 안 아파? 거기 좀 앉아요. 등받이에 기대고.”

“안 그래도 허리가 뻐근하네. 아이고, 죽겠다.”

아버지가 앓는 소리를 내며 난롯가 옆 의자에 털썩 앉았다.

주방 정리를 끝낸 나와 어머니도 의자를 끌고 와 아버지 옆에 앉았다.

세 사람은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쉬었다.

고요한 선우네 백반에 싱크대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힐끗 쳐다봤다.

두 분의 얼굴 표정에서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쉬는 시간도 필요하지.’

나는 사실 별 피로감을 느끼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이것보다 최소 두 배는 힘들게 장사를 해 왔던 경험이 있는 데다가 얼마 전까지 사십 년짜리 몸뚱이를 굴리다가 갑자기 이십오 년된 몸뚱이를 굴리니까 힘든 줄을 모르겠다.

십만 킬로를 넘게 탄 중고차를 타다가 따끈따끈한 신차를 뽑은 느낌이랄까?

기름만 제때 먹여 주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좀 충전이 되셨는지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선우야, 아까 그 손님 기억나니? 삼겹살 못 드시던 아주머니 손님.”

“물론이죠. 삼겹살 못 드신다더니 고기 추가되냐고 물어봤던 그 테이블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거기. 그 손님은 처음에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걸까?”

“에이, 그게 뭐라고 당신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역시 충전을 마친 고종숙 여사의 말.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기를 잘 드시던데? 그러니, 내가 의심할 수밖에. 나한테 고기 못 먹는다고 대신 반찬 많이 달라고 했었던 사람이.”

“같은 고기라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기 때문이죠.”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삼겹살을 아예 못 먹던 사람이 그렇게 변한다고? 순식간에?”

“네, 그렇게 변할 수 있어요. 두 분…… 어제 삼겹살에 와사비 곁들여서 드셨던 맛 기억하시죠?”

두 사람은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듯 사선으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기억나지. 뭐랄까…… 삼겹살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고기를 씹는 것 같은 느낌.”

“어떻게 보면, 구운 고기가 아니라 잡내를 싹 뺀 보쌈 고기를 씹는 것 같은 느낌도.”

“그러면서도 구운 고기 특유의 그 감칠맛은 살아 있었고.”

“고기가 두툼하다 보니 그 감칠맛은 더욱 더 배가됐었지.”

두 분은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만담을 하듯 말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야, 너 웃어?”

“선우 넌 우리가 웃기니?”

“아니요, 아니요. 너무 좋아 보여서 그래요. 후후. 어찌 됐든, 바로 그 느낌을 아까 그 손님이 느꼈던 거예요. 결코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삼겹살의 맛. 그야말로, 삼겹살의 신기원을 보신 거죠.”

“아…….”

“아마 평소 삼겹살을 먹었던 사람보다 감동은 더 크게 다가왔을 거예요.”

“그건 또 왜?”

“원래 삼겹살을 먹던 사람은 그냥 이렇게 생각하겠죠. 아, 이렇게도 삼겹살을 먹는구나. 이거 맛이 꽤 좋네. 그런데, 삼겹살을 먹지 않던 그 손님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세상에, 삼겹살이라는 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구나. 내가 왜 이렇게 맛있는 걸 지금까지 안 먹고 살았지?”

“음…… 일리가 있네.”

얘기를 들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만, 더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다.

“이제 그 손님에게 선우네 백반은 완벽하게 각인됐을 거예요. 나에게 첫 삼겹살을 경험하게 해 준 집으로. 그 기억은 절대 잊혀지지 않죠. 아마 지금도 남편이나 친구에게 말하고 있을 거예요. 나 드디어 삼겹살 먹게 됐다고, 정말 신기하지 않냐고. 너무 맛있었다고. 결국 그분은……”

“단골손님이 되어 버린 거네?”

“정답입니다! 팬이 하나 더 생기게 된 거죠.”

“와…… 삼겹살 하나에 그렇게 깊은 뜻이?”

“그럼요. 오늘 우리는 그 손님에게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준 거니까요. 인생에서 잊혀지기 힘든 자기만의 이야기를요.”

얘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는 내 말을 음미하듯 되뇌었다.

“스토리를 만들어 준다…… 와…… 멋지다. 우리는 그럼 단순히 음식만 판 게 아니라, 그분에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만들어 드린 거네.”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그 추억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죠. 앞으로 그 손님은 다른 가족들,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계속 우리 가게를 방문해 줄 테니까요.”

“캬…… 진짜 완벽하네. 우리 아들 너무 멋있다!”

“뭘요. 저 혼자만 한 것도 아닌데요. 우리가 같이한 거죠.”

“그렇지, 맞아. 우리가 같이한 거지…….”

여운을 남기고 말을 멈춘 아버지의 눈이 습기를 머금고 빛나고 있었다.

아버지가 저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나?

돌아와서 보니, 아버지는 내 기억 속의 그 사람과는 많이 다른 분이었다.

고집 세고 완고한, 강한 분이신 줄만 알았는데…… 완전 눈물 많고, 여린 분이었다.

“당신 또 울어?”

“아, 이 사람아. 내가 울긴 뭘 울어!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치이. 피곤하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 참나. 자, 빨리 마저 마무리하자. 이렇게 노닥거릴 때가 아니야.”

민망한지 아버지는 자리를 떴고, 그 모습을 본 나와 어머니는 서로를 마주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 * *

장사를 마친 저녁.

느지막이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우성진 사장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 통화가 안 되어서 문자 남겨요. 그때 주문했던 김치 패키지 샘플 나와서 이메일로 사진 보내 놨어요. 확인해 보고 연락 주세요.

나는 답장 버튼을 눌러 우성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네, 사장님. 안 그래도 내일 쉬는 날이라 직접 가서 샘플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음 날 오후.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한 후,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성진비닐포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성진의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 왔어요?”

“네, 제 얼굴 기억하시네요?”

“기억하죠. 워낙에 흔치 않은 사람이었어서.”

“흔치 않다고요? 제 생김새가요?”

“아니요. 샌님처럼 생겨서는 한 이십 년 이 바닥에서 구른 사람처럼 일을 하니 머리에 박힐 수밖에.”

우성진은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아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뭐, 그러시던지. 훗. 오늘도 그래. 아니, 이거 하나 만드는데 굳이 또 샘플을 보러 오겠다고. 참나.”

툭툭 쏘는 듯 말을 하는 우성진.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사람이 말로는 속일 수 있어도 표정은 숨기기 어려운 법이다.

우성진은 이렇게 꼼꼼하게 챙기며 일을 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겉으로는 투박해 보이고, 대충대충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한 장인 정신을 갖고 일을 한다.

그렇기에 전생에서도 그와 계속 거래를 했던 것이고.

본인이 그런 사람이니, 상대방도 그렇게 일을 하면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자, 여기 샘플 한번 확인해 봐요.”

우성진에게서 받아든 비닐 패키지를 요모조모 살펴봤다.

사이즈, 인쇄 상태, 마감 처리 등등.

모든 게 완벽에 가까웠다.

굳이 추가적으로 수정할 게 없을 정도로.

“음…… 완벽하네요. 이렇게 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할까 봐요? 이렇게 확인하러 안 와도 내가 완벽하게 하지. 참, 원산지랑 재료명 같은 건 언제 줄 거예요. 필수 표시 문구라서 다 집어넣어야 할 텐데.”

“아, 안 그래도 어제 구청에서 최종 신고 및 확인 끝났어요. 제가 집에 가서 내용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그래요. 그것만 보내 주면 바로 생산 들어갑니다. 다 확인했으면 가 봐요. 나 바쁘니까.”

참나.

성격 참 그대로네.

우성진의 성격은 나이가 먹어서 형성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저랬던 모양이다.

뭐 기분 나쁜 건 아니고, 그냥 괜히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근데, 나도 오늘은 그냥 온 게 아니다.

“사장님, 저랑 소주나 한잔하실래요? 일 잘 처리된 기념으로.”

“네?”

갑자기 웬 소주냐는 표정의 우성진.

그렇지만, 이미 그의 입가는 씰룩이고 있었다.

그의 소주 사랑은 여간 끔찍한 게 아니었으니까.

만약 그가 내 제안에 응한다면…… 그건 ‘나랑’ 소주를 마시고 싶어서가 아닐 거다.

‘소주’를 나랑 마시는 걸 테다.

“한 시간만 기다리슈. 요 앞 카페에서.”

“네, 그러죠.”

* * *

시장에서는 모름지기 시장 음식을 먹어 줘야 한다.

다산빈대떡.

이곳 다산시장의 유명한 전 맛집이다.

“안주는 뭘로 할까요?”

맞은편에 앉은 우성진에게 물었다.

“그쪽 좋아하는 걸로 해요. 참, 나이가 몇 살이에요?”

“사십…… 아니, 스물다섯이요.”

“스물다섯이라…… 내가 여덟 살이나 많네? 말 좀 편하게 해도 되지?”

“네, 그러세요.”

간혹 말을 편하게 하면서 대접도 너무 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나이 많다는 걸로 유세를 떠는 사람들.

우성진은 그쪽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말을 편하게 해도 되냐는 그의 물음은 친해지고 싶다는 그의 의사표시이다.

그건 그렇고.

뭘 먹는다?

위장은 한정되어 있고, 먹고 싶은 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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