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삼겹살 & 와사비 (1)
어머니가 먼저 젓가락을 움직였다.
노릇하게 잘 익은 삼겹살을 앞접시에 덜어 온 그녀가 말했다.
“고기 진짜 두툼하다. 선우야, 진짜 이런 두꺼운 삼겹살은 처음 봐.”
어머니를 따라 잘 익은 고기를 집어든 아버지가 말을 보탰다.
“그러게 말이야. 왜 스테이크식 삼겹살이라고 하는지 이유는 알 것 같네.”
“네, 드셔 보시면 그 이유를 더 확실히 느끼실 거예요. 이제 와사비를 떠서 고기 위에 올리세요.”
“이, 이렇게?”
어머니가 젓가락 끝에 와사비를 살짝 묻혀 들었다.
“너무 적어요. 조금 더 하셔도 돼요.”
“이, 이만큼?”
“네. 그 정도는 하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어요.”
“저렇게나 많이? 너무 맵지 않을까? 와사비 잘못 먹으면 코가 쨍- 하고 아플 텐데…….”
“그건 아버지가 제대로 된 와사비를 못 드셔 보셔서 그럴 거예요. 시중에 파는 와사비는 이거랑 완전 달라요. 색을 내기 위해서 일부러 연녹색 색소를 추가한 제품이거든요. 대부분 업소에서는 이것에다가 겨자를 섞어서 내기도 하고요. 그러니 코가 뻥- 하고 뚫릴 뿐 진정한 와사비 맛은 못 느끼셨던 거죠.”
“아…… 그러고 보니 얘는 보기부터 좀 다르긴 하네. 묽은 액체가 아니라, 건더기가 보여.”
“네. 생와사비 함량이 높아서 그래요. 이 제품이 최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와사비가 60퍼센트 넘게 들어 있더라고요. 똑같이 코가 찡- 하게 맵더라도 가짜와는 느낌이 다를 거예요. 기분 좋은 찡함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빨리 드셔 보세요!”
두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해드렸지만, 이제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먹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두 사람의 반응이 너무 궁금했다.
나란히 앉은 두 분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며 천천히 와사비를 얹은 두툼한 삼겹살을 입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두 분의 턱이 천천히 움직였다.
고종숙 여사의 입이 먼저 열렸다.
“와…… 진짜 와…….”
‘와’만 연발하는 고 여사.
그 어떤 맛있다는 말보다 확실한 반응.
원래 무언가에 진짜 감동받았을 때는 말이 안 나오는 법이다.
말을 하는 순간 그 감동이 깨져 버리니까.
다음은 아버지.
“허허…… 이게…… 허허허허허…….”
‘허허’ 하고 헛웃음만 짓고 있는 아버지.
이 역시 어머니의 ‘와’와 같은 반응이다.
너무 맛있어서 헛웃음이 나오는 거지.
두 분은 말없이 젓가락을 불판 위로 움직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와…… 허허…….
그날 선우네 백반에서는 고소한 삼겹살 냄새와 함께 감탄사와 헛웃음만 밤새 들렸다고 한다.
* * *
“엄마, 슬슬 배고프지 않아?”
“그러게. 짐도 많으니까 그냥 이 근처에서 간단하게 먹을까?”
모녀의 양손에는 검은 봉지가 가득 들려 있었다.
전통시장이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영진시장에는 이렇게 한가득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아무래도 5~60년대에 태어난 어머니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마트나 인터넷보다는 시장이 훨씬 익숙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게다가,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시장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정취도 그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저기 백반집이 있네? 저기 한번 가 볼까?”
엄마가 선우네 백반의 간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 좀 낡아 보이기는 하는데, 뭐 저런 가게에서 밥을 먹는 게 시장에 오는 낭만 같은 거기도 하니까. 엄마, 여기 있어 봐. 내가 메뉴 좀 보고 올게.”
딸은 선우네에 가까이 다가가 보드판에 적혀 있는 메뉴를 확인했다.
다시 엄마 쪽으로 다가온 딸이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여기는 안 되겠다. 엄마 삼겹살 싫어하잖아.”
“삼겹살? 여기 백반집 아니었어?”
“응. 오늘은 특별 메뉴로 삼겹살 정식을 판다네.”
“특별 메뉴? 음…… 내가 삼겹살을 안 먹긴 하지만…… 그래도 백반집이니까 다른 반찬들도 많지 않을까? 이젠 도저히 힘들어서 다른 데까지는 못 가겠는데?”
“그건 그래. 나도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움직이기 싫다. 그럼 그냥 여기서 먹을까? 삼겹살은 내가 먹을게. 엄마는 반찬 위주로 먹어, 그럼.”
“그래, 그러자. 들어가자.”
모녀는 선우네 백반의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두 분이세요?”
“네, 두 사람이요.”
“마침 저쪽에 자리가 하나 남았네요. 저기로 앉으세요. 홀에 두 분 오셨습니다!”
이철민은 주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네, 두 분 확인했습니다.”
주방 쪽에서 대답을 하는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참 잘 오셨네요. 매주 수요일에 특별 메뉴가 있는 날이긴 한데, 오늘은 더 특별하게 삼겹살 정식을 준비했거든요.”
이철민의 설명에 딸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 그건 아는데…… 저희 엄마가 삼겹살을 못 드시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백반 반찬을 위주로 좀 먹을게요. 삼겹살은 많이 안 주셔도 돼요.”
“아…… 그러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방에 전달할게요.”
이철민은 주방 안으로 들어가 고기를 굽고 있는 선우에게 다가갔다.
“선우야. 지금 오신 손님 중에 어머니가 삼겹살을 안 드신다는데…… 이걸 어쩌지?”
“삼겹살을 안 드신다고요?”
“응. 그래서 바깥에 메뉴도 적어 놓은 건데…… 삼겹살인 줄 알고서도 왜 들어오셨을까…….”
이철민의 얼굴에는 잔뜩 걱정이 묻어나 있었다.
아버지의 걱정은 사실 사장들이 흔히 아는 착각에서 비롯된 거다.
사장들은 가끔씩, 아니 자주 손님들이 자기만큼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손님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주의 깊지 않다.
저 모녀는 그냥 선우네 백반의 간판만 보고, 백반집인가보다 하고 들어왔을 수도 있다.
어쩌면 삼겹살 정식이라는 메뉴를 보고서도 백반집이니까 다른 반찬도 많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게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중요하지 않다.
일단 들어온 손님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
‘삼겹살을 안 드신다라…….’
손으로는 고기를 구우며,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정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겹살을 못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돼지 특유의 냄새 때문.
이 냄새는 고기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더 심하다.
하지만, 오늘 이 고기는 최덕호로부터 특별히 공급받은 1+등급의 좋은 고기다.
냄새가 날 가능성도 그만큼 적다는 뜻.
‘게다가…….’
오늘의 곁들임 재료는 냄새를 잡아 주는 데는 아주 최고의 것들만 모여 있었다.
바로 와사비와 미나리.
향이 강한 이놈들은 돼지 특유의 냄새를 잡아주고, 감칠맛을 돋워 준다.
기다리고 있는 모녀를 한 번 쳐다봤다.
어쩌면 저 어머니 오늘…….
‘삼겹살 입문하는 날 되겠는데?’
* * *
접시에 잘 구운 삼겹살과 구운 채소를 담았다.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와 김치 등 밑반찬, 참기름장과 와사비를 담은 그릇까지 쟁반에 담았다.
“아버지, 이거는 제가 직접 서빙 나갈게요.”
“그럴래? 그래. 잘 좀 설명해 드려. 밑반찬 많이 담았지?”
“네, 근데 밑반찬 많이 필요 없으실 거예요.”
“응? 저분이 삼겹살을…….”
“맛있게 드시게 될 거예요. 후훗”
1도 이해 안 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를 스쳐지나, 테이블로 향했다.
“여기, 음식 나왔습니다.”
삼겹살 접시부터 하나씩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코로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 딸과 달리 엄마 쪽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와…… 스테이크식 삼겹살이 뭔가 했더니 이렇게 두껍게 썰어 나오는 거였구나.”
“네, 맞아요. 이런 두께 처음 보셨죠?”
“네네. 삼겹살 하면 이렇게 얇은 것만 떠올리게 되는데…… 정말 이렇게 두꺼운 삼겹살은 처음이에요. 되게 먹음직스러워 보이네요.”
딸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미정이 너 많이 먹어. 엄마 것까지.”
“헤헤. 어쩔 수 없이 그래야 되겠지?”
아니요.
따님은 곧 마지막 남은 삼겹살을 어머니와 다투는 장면을 생애 최초로 보시게 될 거예요.
“이건 와사비입니다. 특별히 고기 냄새를 싫어하시는 분도 이 와사비와 함께 고기를 드시면 다들 잘 드세요. 그리고, 이 미나리. 이게 또 삼겹살 냄새를 잡아 주는 데는 1등입니다. 같이 드시면 식감도 좋고, 지방도 분해해 줘서 건강에도 좋고요.”
“미나리요?”
엄마의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어, 미나리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채소잖아. 그리고, 와사비…… 초밥집 가면 엄마가 매일 듬뿍듬뿍 발라 먹는 그 와사비네?”
“음…… 그러게. 사장님, 이거 생와사비인가요?”
오…… 생와사비를 아시네?
생와사비의 맛까지 안다면, 게임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
“네. 완전 생은 아니지만, 생와사비 함량이 매우 높은 제품이에요. 드시기 좋게 첨가물을 더한 것이니 100퍼센트 생와사비보다 드시기엔 더 좋을 거고요.”
“음…… 와사비와 미나리를 보니까 입맛이 좀 도네요.”
“어머님은 고기를 싫어하시는 게 아니라, 냄새를 싫어하시는 거죠? 잡내 잘 잡은 수육 같은 건 잘 드시잖아요. 그쵸?”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엄마가 삼겹살은 못 먹는데 보쌈은 킬러세요.”
“얘가 킬러는 무슨…… 저는 그냥…… 구운 돼지고기는 냄새가 별로여서…….”
“그럼 저 믿고 와사비랑 미나리와 함께 드셔 보세요. 잡내는커녕 채소들의 향과 어울려 진짜 풍부한 고기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음…… 알겠어요. 한번 먹어 볼게요.”
“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선우의 설명을 들은 그녀는 용기(?)를 내어 고기 한 점을 집었다.
앞에 있는 딸은 이미 입안 가득 쌈을 집어넣고 씹고 있었다.
“어, 아멀아아라. 쌈 미나리랑 머그면, 와…… 오…… 이거, 냄새…… 하나…… 와……. 머그 봐, 머그 봐. 쁘알랑.”
딸은 상추에 고기를 올리고, 와사비를 잔뜩 묻혔다.
미나리까지 듬뿍 추가해서 엄마의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엄마는 못 이기는 척하며, 딸이 싸 준 쌈을 받아먹었다.
‘상추에 쌌으니까…… 냄새는 괜찮겠지…….’
엄마의 젓가락에는 김치가 들려 있었다.
행여나 냄새가 올라올 경우 응급조치로 김치를 밀어 넣기 위해서였다.
집도 아니고, 냄새 난다고 고기를 뱉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천천히 턱을 움직이던 그녀.
오물오물.
먼저 쌈 채소인 상추가 먼저 씹히고, 그 다음에 미나리가 씹혔다.
미나리의 상큼한 향이 기분을 좋게 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두툼한 고기의 질감.
어금니가 맞닿을 만큼 크게 씹었다.
보통 이렇게 크게 고기를 씹을 때, 냄새가 확 올라오곤 한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겠지…… 하며 걱정을 하는 찰나에, 확 밀고 들어오는 와사비의 진한 향.
그리고, 코끝을 살짝 아리게 하는 매운맛.
이어서 혀로 전해져 오는 살코기와 지방의 감칠맛.
음…….
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눈이 휘둥그레진 엄마가 딸을 쳐다봤다.
딸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치, 내 말이 맞지? 냄새 하나도 안 난다니까. 냄새는커녕 향이 너무 좋지 않아?”
“우우…… 엉, 내, 냄새…… 하, 하나…….”
“엄마, 엄마. 알겠으니까 다 드시고 얘기해.”
엄마는 입을 계속 오물거리면서 고개만 힘차게 끄덕였다.
이후로 모녀 사이에 대화 따위는 사라져 버렸다.
오직 바쁜 젓가락질과 입놀림만이 테이블의 두 사람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른 뒤.
삼겹살과 채소가 푸짐하게 담겨 있던 접시에는 어느새 삼겹살 한 조각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미나리랑 와사비가 떨어졌네. 그럼 이 삼겹살은 내가…….”
“얘는…… 꼭 와사비랑 미나리가 있어야 삼겹살을 먹니?”
“네? 지금 내가 잘 들은 거 맞나요? 엄마는 원래 삼겹살 안 드시잖아. 와사비랑 미나리 맛으로 지금까지 먹은 거 아니었어?”
“원래는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르네? 여기 고기가 맛있어서 그런가?”
“…추가로 더 되는지 물어볼까?”
“그래, 그럼. 한 번 물어봐 봐.”
“사장님, 사장님!”
안 그래도 두 모녀를 지켜보고 있던 내가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