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친절한 ‘외식홀릭’
“음…… 이제야 좀 이해가 가네.”
“여보. 우리가 장사를 너무 띄엄띄엄 하고 있었나 봐. 이런 숨겨진 원리 같은 게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그러게…… 그나저나 선우 넌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냐?”
“내 말이…… 이게 정말 우리가 알던 아들 맞아?”
고종숙 여사가 내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 봤다.
“왜요? 또 마스크 씌워져 있는 거 벗겨 내시려고요?”
“헤헤. 아무리 봐도 예전에 내가 알던 우리 아들이 아닌 것 같아서. 당신도 동감하지?”
“응, 나도 그래. 이제 이 가게 사장은 우리가 아니라 선우 너인 것 같다. 부모 자식 떠나서 실력 있는 사람이 사장을 하는 게 맞는 거지. 오늘 네 설명에 완전 반해 버렸다.”
“에이, 뭘요. 이런 거 인터넷에 치면 다 나와요. 그러니까 두 분도 컴퓨터 열심히 배우세요. 제가 가르쳐 드린 것도 꾸준하게 실행하시고요. 제가 없어도 스스로 하실 수 있을 정도로.”
“엥? 네가 왜 없어? 엄마는 죽을 때까지 너랑 같이 이렇게 가게 할 건데?”
“그래, 선우야. 그런 섭섭한 소리 하지 마라. 엄마 아빠는 요새 너랑 같이 가게 하는 재미에 살고 있으니까.”
두 분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뭐, 내가 어디 간다는 건 아니었다.
나도 부모님과 이렇게 행복하게 장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으니까.
단, 앞으로 사업을 계속하다 보면 선우네 백반에만 내가 온 힘을 기울일 수는 없다.
나로서도 따로 해 보고 싶은 일이 있고.
그때는 두 분이서 온전히 이 가게를 꾸려 나가야 한다.
“할머니한테는 제가 얘기 드릴까요?”
“그럴래? 그러면 좀 잘 말씀드려서 보증금이라도 좀 싸게…… 어떻게 안 될까? 할머니가 선우 너 엄청 예뻐하잖아.”
“음…… 알겠어요. 노력해 볼게요.”
* * *
윤복순 할머니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우리 가족들을 기쁘게 해 주셨다.
- 어차피 한 가게니까 보증금은 따로 안 받을게. 월세만 줘.
바로 보증금 면제 혜택.
할머니 덕분에 아낀 보증금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기로 했다.
중간의 가벽을 헐어 한 가게로 만들고, 주방도 확장해야 한다.
확장된 크기에 맞게 테이블, 의자 등 가구와 비품도 추가적으로 구매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인테리어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머릿속에 장밋빛 미래를 그려 가며.
* * *
‘게스트북(Guest Book) 아이디가 뭐였더라…….’
‘게스트북’은 미국 회사가 만든 유명 SNS이다.
미래에는 게스트북보다 소위 ‘너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가 훨씬 더 인기를 끌게 되겠지만.
지금은 게스트북의 인기가 한창 치솟아 오르는 시점이었다.
선우네 백반을 확장하고, 깍두기까지 판매하기 시작해야 하니 지금부터는 홍보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영진시장 내의 상인들과 영훈대학교 학생들에게는 알려져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이런저런 아이디를 치다 보니, 드디어 게스트북 로그인에 성공했다.
‘자, 선우네 백반을 검색해 볼까?’
뭐, 딱히 기대되지는 않았다.
내가 제대로 SNS를 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손님들이 가게 홍보를 해 줘 봐야 얼마나 해 주겠냐 싶었으니까.
냉정하게 말해서 선우네 백반은 동네 또는 학교 근처의 좀 맛있는 밥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태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거 뭐지?
- ‘외식홀릭’ 님이 영진구 영진동 ‘선우네 백반’에 있습니다.
선우네 백반.
가정식 백반의 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매일 나오는 기본 반찬은 물론이고, 그날 그날 바뀌는 탕, 국, 볶음 등 일품 요리는 전문점의 그것을 방불케 하니까.
인생 백반집을 찾으신다면, 추천.
#영진동 #선우네백반 #훈남주인장
‘외식홀릭? 이 사람이 누구길래…….’
게시물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거의 매일 선우네 백반의 음식 사진이 담긴 포스팅이 올라와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참 고마웠다.
그리고…… 음식의 맛을 표현하는 실력이 꽤 훌륭했다.
표현만 들어도 마치 내가 그 음식을 먹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정말 음식을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진심으로 맛있게.
‘메시지를 한번 보내 볼까?’
이 정도 포스팅 실력이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홍보를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디 옆에 있는 아이콘을 클릭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선우네 백반을 운영하고 있는 이선우라고 합니다.
메시지를 보낸 후, ‘외식홀릭’ 님의 페이지를 더 둘러봤다.
여러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선우네 백반을 소개하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거의 매일 바뀌는 선우네 백반의 음식이 대부분 들어 있었으니까.
사진의 퀄리티도 훌륭해서, 가게의 음식들이 누가 봐도 참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스크롤을 내리다가, 어느 한 게시글에서 시선이 멈췄다.
‘어라, 이건……?’
씨익- 웃음이 나왔다.
이 게시물을 보니 외식홀릭 이 사람…… 누군지 알 것 같아서.
이때 외식홀릭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 안녕하세요. 식당 리뷰 전문 SNS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외식홀릭입니다. 무슨 일로 메시지를 보내셨는지요?
뭐야, 왜 이렇게 딱딱해.
딱 봐도 일부러 그러는 게 느껴질 만큼 딱딱한 말투.
부끄러워서 저러나?
- 아…… 저는 영진구 영진동에서 선우네 백반을 운영하고 있는 이선우입니다. 다시 인사드릴게요.
- 영진구 영진동이라…… 아아……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네요. 그…… 백반집 말씀하시는 거죠?
하하하…… 발 연기는 텍스트로도 느껴지는구나.
어색한 말줄임표에서 연기라는 게 팍팍 느껴진다.
뭐, 일단 보조는 좀 맞춰 주자.
어색한 연기를 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니.
- 네, 이제 기억나시나요?
- 네, 뭐. 그런 것 같아요. 근데, 무슨 일로 메시지를 주셨나요? 제휴나 홍보 문의 건은 페이지에 적혀 있는 이메일로 공식적으로 주시면 됩니다.
공식적? 하하하.
점점 더 재미있어지네.
이제 슬슬 똥줄을 좀 타게 해 볼까?
- 아, 그렇군요…… 그런데요. 그…… 예전에 올려 주셨던 감자탕 있잖아요. 그거 참 맛있어 보이게 잘 올려 주셨더라고요.
- 아, 감자탕이요! 아, 그거 진짜 맛있었거든요. 너무 맛있어서 진짜…… 어디 전문점에서 팔아도 손색없을 정도였어요!
- 아이고, 그렇게 칭찬을 해 주시니 더욱 더 감사드립니다. 볶음밥도 맛있으셨죠?
- 와…… 볶음밥 최고였죠! 제가 진짜 다이어트해야 해서 볶음밥은 안 먹으려고 했거든요. 근데,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들기름 특유의 향과 함께 올라오는 견딜 수 없는 냄새. 그리고, 바닥에 살짝 눌어붙은 누른 밥을 긁어먹는 재미! 진짜 최고였습니다!
- 와…… 진짜 맛있게 드셨나 보네요! 그런데요…… 제가 그 볶음밥은 아무한테나 해 드린 게 아니라서…… 특별한 분들에게만 해 드렸거든요.
- 네? 음…… 아, 그러니까 아, 그럼 제가 다른 집이랑 헷갈렸나 보네요. 제가 아무래도 여러 맛집을 다니다 보니까 그게 좀 헷갈릴 때가 있어요. 게시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초희 씨.
- …….
- 아니, 그렇게 딱 들통나게 게시글을 써 놓고 모르길 바랐어요?
- 음…… 나도 참…… 아…… 그냥 몰래몰래 올리려고 했던 건데.
- 몰래요? 아니, 그 좋은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 왜 굳이 사람들 모르게 하려는 거예요?
- 그냥요. 좀 부끄러워서…… 애들한테 매일 많이 먹는다는 얘기 듣는 것도 싫고. 남자들도 저랑 밥 한 번 먹으면 왠지 저랑 거리를 두려는 것 같고 그래서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는 거죠? 먹는 것에 대한 사랑도, 내가 먹은 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도.
- …네…… 정확하세요. 하지만, 너무 의미 부여는 안 하셔도 되요. 저는 그냥 지난번에 과제 도와주신 것도 감사하고, 홍보해 드리겠다는 약속도 지킬 겸해서 그랬던 거니까.
약속을 지키려 했다는 이초희의 말.
그녀에 대한 신뢰감이 확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였네.’
- 초희 씨, 아니 외식홀릭 님. 식사하러 자주 오세요. 이렇게 홍보까지 해 주시는 외식홀릭 님을 앞으로 무한 리필로 모시겠습니다.
- 무한 리필이요? 오…… 구미가 확 당기네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 네. 잘 부탁드려요.
선우와의 대화가 끝난 후, 이초희는 선우네 백반 게시물들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음…… 이게 정말 홍보를 잘한 거라고? 글도 잘 쓴 거고?”
어쨌든,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게시글을 내리던 중…… 이초희는 갑자기 폭발하는 민망함에 그만 소리를 내질러 버렸다.
“으악!”
게시글의 마지막마다 달려 있는 해시태그 #훈남주인장…….
내가 이걸 비밀로 하려는 이유가 있었더랬지…….
이불킥 백만 년 감이다!
* * *
선우네 백반.
오늘의 장사를 마치고, 세 사람은 메뉴 회의에 들어갔다.
“내일이 수요일이라 사람들이 특별 메뉴를 생각하고 올 텐데…….”
“그러게…… 뭐 좀 특별한 게 없을까?”
선우네 백반은 매주 수요일을 정해 평소의 백반 메뉴와는 차별화된 특별 메뉴를 내놓고 있다.
평소에는 백반집으로서 충실하고, 매주 수요일은 전문점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내놓자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백반집으로서의 정체성도 지키고, 특별한 메뉴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기대도 충족시키고.
“내일은 삼겹살 정식 어떨까요?”
“삼겹살 정식? 음…… 삼겹살이야 누구나 다 좋아하는 거긴 하지.”
“맞아. 그런데…… 그게 또 특별 메뉴인가 하면 또 애매하기도 하고.”
“그냥 삼겹살이라고 하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애매할 수 있죠. 하지만, 스테이크형 삼겹살이라면 어떨까요?”
“스테이크형 삼겹살?”
“네, 얇은 냉동 삼겹살과 반대되는 두툼한 삼겹살이요.”
말을 하면서도 침이 고였다.
2010년 이 당시에는 두툼하게 삼겹살을 구워서 파는 집이 흔치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는 삼겹살에 다양한 변주를 한 브랜드들이 유행이었다.
삼겹살과 떡을 함께 싸먹는다랄지, 와인 같은 걸로 숙성한 삼겹살이랄지 뭐 그런 것들이다.
그 트렌드는 2010년대를 지나오면서 스테이크처럼 두껍게 삼겹살을 구워 파는 트렌드로 바뀌어 갔다.
물론, 내가 돌아오기 직전에는 다시 냉동삼겹살이 유행을 타기도 했지만.
이렇듯 유행은 돌고 도는 거고, 이 당시에는 두툼한 삼겹살이라는 개념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을 때였다.
“아무래도 감이 안 오시죠?”
나는 냉장고로 가서 미리 준비한 두툼한 삼겹살을 꺼내고 불판과 버너를 준비했다.
고기는 최덕호에게 미리 부탁해서 2센티미터 이상 되는 두께로 썰어 와 준비해 놓았다.
불판을 예열하고, 두툼한 삼겹살을 올렸다.
치익- 하는 기분 좋은 소리.
고기 위에 소금을 적당히 뿌리고, 불판에 닿은 면이 노릇하게 익기를 기다렸다.
계속해서 고기를 들어 올려 익은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선우야. 너 고기는 잘 못 굽는구나? 그렇게 고기를 자주 뒤집으면 육즙 다 빠져나가.”
“네? 아…….”
아버지의 말은 흔히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 중 하나였다.
어차피 육즙이라는 건 가둬 둘 수가 없다.
스테이크를 구워 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뒤집지 않고 구워도 흥건하게 빠져나오는 육즙을.
뒤집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열이다.
120도가 넘는 열로 고기가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굽는다.
바로 ‘마이야르(Maillard)’ 반응을 위해서지.
아미노산이 열에 반응하며 우리 인류가 사족을 못 쓰는 고소한 풍미가 이 갈변 현상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다.
뭐, 이런 걸 지금 아버지에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다 구워진 고기를 드셔 보면 답을 아실 테니까.
“네, 아버지. 일단은 저를 믿고 맡겨 주십시오. 맛있게 구워 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고기를 뒤집을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별수 없었다.
고기는 집게 잡은 사람 마음대로 하는 거다.
물론, 나는 이 집게를 끝까지 놓지 않을 예정이고.
그렇게 내 식으로 맛있게 구운 고기가 완성됐다.
2센티미터 두께로 썰려 있는 고기를 1센티미터 너비로 잘라서 불판에 올렸다.
기름이 나오기 시작할 때 버섯, 감자, 미나리, 묵은지 등을 미리 올려 구웠고.
새송이버섯은 통째로 구워 동그랗게 자르고, 얇게 저민 감자는 바삭하게 구워 냈다.
묵은지에는 돼지고기에서 나온 기름이 넉넉히 배어나게 익혔다.
그리고, 미나리.
이게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데 또 별미 중 별미다.
삼겹살과 미나리를 같이 먹으면, 평소 1인분 먹던 사람도 2인분을 먹는다.
고기가 부드럽게 잘 넘어갈뿐더러, 소화에도 좋고.
물론, 향 때문에 못 먹는 사람은 패스.
그렇게 맛있는 한 상이 완성됐다.
접시에 고기와 함께 구운 야채들을 담았다.
“자, 한번 드셔 보시죠. 아, 아차! 잠시만요. 이걸 깜박했네.”
냉장고로 달려가서 미리 준비한 와사비를 꺼냈다.
최덕호 사장에게 부탁해서 일식집에 납품되는 와사비를 조금 공급받았다.
이것 또한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신세계일 것이다.
이 당시에 누가 삼겹살과 와사비를 함께 먹을 생각을 했겠는가.
2020년대에서야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자, 이 와사비를 살짝 올려서 고기랑 드셔 보세요. 아주 기가 막히실 겁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의문이 탄성으로 바뀔 잠시 후의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