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그 가게 저희가 쓸게요
허리 디스크에서 회복한 아버지가 가게에 합류한 뒤, 가게 사정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우리 셋은 각자의 업무를 명확하게 나누어 일했다.
아버지는 홀과 카운터를 맡았고, 어머니는 기본 반찬과 밥, 국 종류를 담는 역할을 했다.
나는 메인 메뉴를 만들며 배달을 했다.
아버지가 카운터를 볼 때는 어머니가 홀의 일을 메꿔 주고, 아버지가 홀 일로 바쁠 때는 어머니가 카운터로 가 계산을 했다.
내가 배달을 갈 때는 어머니가 메인 메뉴를 만들고, 아버지가 기본 반찬을 담아 서빙을 했다.
이 모든 건 서로 약속을 한 사항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두 분의 반대 아닌 반대가 있었다.
“에이, 우리같이 조그마한 가게에서 뭘 그렇게까지…….”
“그렇게 안 해도 다 서로 도와가면서 하게 되어 있어. 우리 가족이잖아.”
맞다.
우리는 가족이다.
하지만, 앞으로 규모가 커질 때도 가족들이랑만 같이 일할 수 있는가?
가족은 우리 셋뿐인데 말이다.
아무리 작은 식당이라도 자신의 직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직무명세(Job Description)같은 것.
나는 실제로 직무명세서를 만들어 두 분에게 드렸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어하던 두 분도 점차 적응해 갔다.
이렇게 업무를 배분해 놓으니, 불필요한 눈치 싸움 같은 것도 사라졌다.
업무 배분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괜히 자기가 더 일을 많이 한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불만이 생길 때도 있었으니까.
또한, 하루 장사가 끝나면, 단 5분이라도 오늘 장사에 대해 회의를 진행했다.
“뚝배기에 음식이 나오는 날에는 당신이 홀에 조금 더 많이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
“카운터를 차라리 주방 쪽으로 배치하는 건 어때? 그게 동선이 조금 더 편할 것 같은데?”
“피크타임 때는 배달을 받지 않는 게 어떨까? 아무리 레시피대로 한다고 하지만, 선우 네가 빠지면 아무래도 공백이 크거든.”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나눈다.
하나하나가 선우네 백반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서로 대화를 나눠 가면서 서로 간에 동지애 같은 게 생긴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같은 목표를 갖고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생길 수 없는 끈끈한 감정 같은 게.
* * *
윤복순 할머니는 선우네 백반의 단골손님이다.
내가 돌아오기 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오셨었는데, 내가 돌아오고 선우네 백반이 확 바뀌고부터는 거의 매일 오셔서 아침을 드신다.
윤복순 할머니는 선우네 백반에서도 특별히 관리하는 VIP 고객이다.
이분이 바로 선우네 백반이 세 들어 있는 이 상가주택의 건물주시기 때문이다.
조물주 위에 계신 건물주 아니, 갓물주에게는 늘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전생에서도 이분 덕분에 값싼 임대료로 장사 초반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었다.
할머니 이후 이 건물을 넘겨받은 못된 건물주가 선우네 백반을 내쫓기 전까지 말이다.
“할머니,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응, 오늘 들깨미역국이 참 맛있네. 고소하고, 술술 잘 넘어가. 아주 잘 먹었어.”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들깨미역국 만들면서 할머니 생각했었는데…….”
수줍은 듯 살짝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분은 조물주 위에 갓물주.
전생에서 익혀 온 비즈니스 스킬을 다 발휘해서 잘 보여도 아깝지 않은 상대이다.
“아이고, 선우는 무슨 말을 그렇게 예쁘게 혀? 아주 귀여워 죽겠구먼.”
“에이, 할머니가 예쁘게 봐주셔서 그렇죠. 들깨미역국 좀 더 드릴까요?”
“응, 좀 더 줘 봐. 미역 많이 넣어서.”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주방으로 들어가는데 고종숙 여사가 슬쩍 눈짓을 한다.
칭찬이다.
윤복순 할머니에게 또 한 번 점수를 딴 데 대한.
그런 고종숙 여사에게 윙크를 한 번 날려 주고 미역을 푸짐하게 퍼서 할머니에게 가져다주었다.
“할머니, 여기 미역국 다시 나왔습니다. 미역 많이 넣었어요.”
“아이고,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떻게 해? 이래 가지고 뭐가 남아?”
“할머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우리 가게의 VVIP인 윤복순 할머니에게 뭐가 아까운 게 있다고. 하하하.”
“아이고오, 저 말 예쁘게 하는 것 좀 봐. 하여간, 여우라니까, 여우! 선우 엄마. 어디서 이런 여우를 낳았어? 선우 엄마나 선우 아빠나 둘 다 여우과는 아닌 거 같은디?”
“아, 선우 아빠는 몰라도 저는 사실 여우과예요. 꼬리 들킬까 봐 티를 안 낼 뿐이지.”
“꼬리? 하이고 참. 모자가 아주 둘이 난리가 났구먼. 하여간, 재미있게 장사하는 모습 보니까 내가 다 기분이 좋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주 초상집 같었는디.”
“음…… 인정합니다. 초상집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보다 분위기가 많이 어두웠었죠.”
가만히 듣고 있던 이철민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려. 지금은 아주 한겨울인데도 여기만 들어오면 꽃이 피어 있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훈훈한 대화들이 오고 가며 윤복순 할머니의 식사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숟가락을 놓은 윤복순이 갑자기 커다란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한참 자기 일을 하던 우리 셋의 고개가 동시에 할머니 쪽으로 돌아갔다.
한숨을 한차례 내쉰 할머니는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일세. 어. 아…… 아직도 임자가 없다고? 에휴…… 하긴 뭐. 이런 구석탱이에 있는 가게에 누가 들어오려고 하겠어. 알겠어. 좀 잘 찾아봐. 복비는 잘 챙겨 줄 테니까. 그려, 수고해.”
통화를 마친 윤복순이 다시금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할머니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내게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고, 할머니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물었다.
“할머니,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일? 아, 아니여. 일은 무슨. 밥 맛있게 잘 먹었는디.”
“한숨을 너무 크게 쉬셔서요. 무슨 일 있으신지 싶어서…….”
“아…… 그게…… 그냥 좀 귀찮아서 그런 거여. 신경 쓰지 말어.”
“혹시…… 우리 집 옆 카페 때문에 그러세요?”
윤복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딱 그 표정이었다.
선우네 백반이 있는 윤복순 할머니의 상가주택은 총 3층짜리 건물이다.
1층에는 선우네 백반과 카페가 절반씩 사이좋게 나눠서 자리 잡고 있고, 2층에는 주거를 하는 세입자들이, 3층에는 윤복순 할머니네 가족이 살고 있다.
성업 중인 우리 선우네 백반과는 달리 옆집 카페는 장사가 안된 지 꽤 됐다.
가게를 내놓은 것까지는 몰랐는데, 할머니의 전화 통화 소리를 듣고 눈치를 챈 거다.
건물주가 복비 얘기하는 거면 뭐 뻔한 거지.
게다가.
‘저 상태로 카페를 계속 운영하긴 힘들어 보였지.’
자리가 안 좋고, 요새 카페가 많아 경쟁이 심한 건 둘째치고서라도 일단, 사장이 가게에 잘 나오지 않았다.
낮이든 밤이든 마주치는 얼굴은 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뭐, 알바 입장에서는 꿀일 수도 있다.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일정 시급을 받으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가게는 더 망해 가는 거지만.
작은 가게일수록 사장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사장이 가게에서 손 떼면, 망하는 건 순간이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옆 카페, 눈독을 좀 들이고 있었다.
현재 선우네 백반의 규모로는 찾아오는 손님들을 다 못 받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웨이팅을 하다가 포기하고 다른 가게로 가는 사람들도 많고.
주방도 너무 좁다.
앞으로 깍두기를 담가서 판매하려면, 지금보다 주방도 훨씬 커야 한다.
“옆에 카페. 부동산에 내놓은 거 맞으시죠?”
“으, 응. 임대료도 못 내게 생겼다고 급하게 가게 뺀다고 하더라고.”
“근데 가게가 안 나가고 있는 거고요.”
“그려.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물어보는 사람 자체가 없다고 하는구먼. 에휴. 나이가 먹어 가니까 아주 이런 것도 귀찮아 죽겠어. 내 딴에는 서로 잘살아 보자고 임대료도 적게 받고 있는데 말이여.”
“알죠, 알죠. 저희도 그래서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선우네 백반 가게 임대료도 주변 시세에 비해 많이 싸다.
윤복순 할머니는 그 흔치 않은 착한 건물주인 것.
하지만, 건물주님의 맘과는 다르게 장사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옆 카페의 사장도 나름 사정은 있을 것이다.
그 사정이 나로서는 뭐…… 잘된 일이고.
“할머니. 그 가게 저희가 쓸게요.”
“엥? 그게 무슨 소리여?”
윤복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윤복순이 놀란 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야, 이선우!”
“선우야? 너 지금 무슨 소리니?”
주방에서 나란히 설거지를 하고 있던 고종숙과 이철민이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튀어 나왔다.
“할머니, 얘가 그냥 헛소리한 거예요. 못 들은 걸로 하세요.”
“맞아요. 그냥 언젠가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희망 사항 같은 걸 얘기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선우야, 잠깐 우리 좀 볼까?”
두 사람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손짓했다.
“할머니. 제가 잘 얘기할 테니까, 집에 가서 쉬고 계세요.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예요.”
“응? 어, 그려. 일단, 나는 밥 다 먹었으니까 올라갈게. 여기 육천 원 놓고 가네.”
“네, 할머니. 조심히 올라가세요.”
할머니를 문 앞까지 배웅하고 뒤돌아섰다.
눈앞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팔짱을 낀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무서워라. 왜 그렇게 무섭게 저를 보고 계세요? 그것도 두 분이 나란히.”
“지금 안 그러게 생겼니?”
“그래, 선우야. 오늘 이건 네가 좀 선을 넘은 것 같다.”
선을 넘었다라…….
아버지의 말도 맞다.
어쨌든 현재 선우네 백반의 사장은 저 두 분이시니까.
내 맘대로 가게를 확장할 수는 없는 일이지.
하지만, 오늘의 일은 결코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기다리다가 못 드시고 돌아가시는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김치까지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더 큰 공간이 필요했으니까.
새로운 건물로 이사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는, 이 자리에서 그대로 크기만 확장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일단 이런 내 생각들을 차분하게 설명해 드렸다.
내 얘기를 들은 두 분은 한결 차분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래, 선우야. 네 얘기가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다.”
“그래, 나도 그건 이해했어. 근데 정말 우리가 그 임대료나 비용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깍두기를 그렇게 많이 담그려면 사람 하나 정도는 더 써야 될 테고, 확장하고 나면 임대료도 두 배로 들 테고.”
“네, 제 계산으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자, 이것 좀 보세요.”
나는 PC를 켜서 파일 하나를 열었다.
지난 한 달간 매출, 비용 등 각종 데이터들을 기록해 놓은 엑셀 파일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나도 정신을 바짝 차렸다.
매출액이니 이익률이니 하는 표현들을 부모님께 설명해 드려야 했다.
핵심은 바로 ‘원가가 잡힌다’는 개념이다.
백반은 소위 원가가 잡히는 메뉴인데, 별다른 건 없다.
그냥 많이 팔면 팔수록 원가가 줄어들어 이익률이 높아진다는 뜻.
차분히 이 모든 걸 설명해 드렸다.
최대한 쉬운 용어를 써 가며, 알아듣기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