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18화 (18/110)

#18화 우성진의 테스트

김치 제조 사업은 지난 생에 선우 푸드가 했던 주력 사업 중 하나였다.

어머니의 김치는 그냥 두기에는 아까웠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아쉬움은 더 컸다.

어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이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살리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더 의욕적으로 임했다.

어느 순간에는 외식업 브랜드보다 김치 브랜드에 더 집중했었다.

그렇게 ‘선우네 김치’는 대한민국 3대 김치가 되었다.

대갓집 김치, 이진경 김치와 함께.

이미 선우네 김치의 성공 가능성은 확실하고.

지난 생과 달리 이번에는 좀 빠르게 시작해 볼 생각이다.

대신, 조금 작게 시작할 거다.

지난 생에서는 선우 푸드의 기반을 바탕으로 공장형 김치 제조로 사업을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우선 이곳 시장에서의 판매를 시작으로 점점 넓혀 나갈 생각이다.

어차피 잘될 걸 아는 이상…… 굳이 무리해서 급하게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불안하고 급한 이유는 그게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난 그럴 필요가 없다.

선우네 김치는 무조건 성공할 걸 아니까.

* * *

다산시장.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재래시장으로, 무려 550여 개 업체가 들어와 있는 대형 시장이다.

개인 사업이나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 갈 수밖에 없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품목의 다양한 제품들이 있으니까.

그중에서도 다산시장에서 특히 유명한 건, 바로 포장과 인쇄 관련 업체들이다.

다산시장의 아치형 문을 통과해 들어가자 길 양쪽에 늘어선 수많은 상회가 눈을 현란하게 했다.

현란한 간판들을 뒤로하고 내가 들어선 곳은 시장 건물 A동 2층에 있는 한 포장업체.

‘김치 파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지.’

김치를 팔기 위해서는 만든 김치를 담아낼 패키지가 있어야 한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흔히 보는 비닐 패키지.

그런 것들도 전부 사이즈와 디자인에 맞게 따로 주문이 되어 생산된 것이다.

바로 이런 포장업체에서.

성진비닐포장.

전생에 선우 푸드의 패키지를 담당했던 업체이다.

외식 사업을 하면 할수록 포장에 대한 필요가 늘어갔다.

사람들이 점점 더 포장이나 배달을 선호하기 시작했으니까.

인터넷의 발달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것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고객들의 수요와 필요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파악하던 나였다.

2020년대의 외식 트렌드는 포장과 배달 쪽으로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우성진 사장. 잘 있으려나?’

아니지.

잘 있으려나 하는 말은 좀 상황과 맞지 않다.

우성진 사장은 더 어린 모습을 한 채로 살아가고 있을 거고, 그 시간대로 내가 돌아온 거니까.

이곳에서만 이십오 년을 장사했다고 했으니, 우성진 사장이 어디 다른 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자재들이 벽이면 벽마다 꽉꽉 채워져 있는 점포 안으로 들어서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왔어요?”

얼굴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투박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우성진 사장이다.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게 거칠고 투박했던 그의 목소리.

맞다.

“포장 패키지 좀 주문하러 왔는데요.”

“패키지요?”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우성진 사장.

헉.

그의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알던 민대머리의 그 우성진은 어디 가고, 머리숱이 빽빽한 젊은 시절의 우성진이 저기 있었다.

아니, 우성진인 것도 잘 모르겠다.

내 기억 속의 우성진은 완벽한 스킨헤드를 하고 있으니까.

“와우.”

“뭐 못 볼 거 봤어요? 놀라기는 참나.”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하하.”

“용건만 빨리 말하세요. 안 그래도 바쁘니까.”

투박한 말투와 거친 성격은 젊었을 때부터 그랬던 거였나 보다.

15년 후인 그때와 꼭 같으니까.

다른 거라면 오직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머리숱뿐.

저렇게 투박해 보이는 우성진이지만, 사람이 속은 꽉 차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밥 한 번, 술 한 번 같이 못 먹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같이 술잔을 기울여 보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만큼 일을 할 때도 정말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으니까.

단, 이 사람은 조금 진입 장벽 같은 게 있다.

알면 참 좋은 사람이지만, 초보자에게는 많이 혹독하게 굴었다.

시장 사람 특유의 심보가 살아 있는 거다.

그래서 선우 푸드의 신입직원들은 마케팅 직무를 맡으면 이 포장 업체부터 바꾸고 싶어했다.

물론, 내 반대로 실현은 못 했지만.

그만큼 이 우성진이란 사람을 대할 때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성진비닐포장 우성진 사장은 선우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딱 봐도 신입사원이거나 이제 막 식당을 연 초보 사장 티가 팍팍 났다.

허여멀건한 얼굴은 물론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해 보이는 선우의 표정은 우성진의 확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줬다.

‘이상하게 저런 친구들만 보면 짓궂게 굴고 싶단 말이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기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을 오래 봐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진국이라며 추켜세우기도 하니까.

그런데, 시장 바닥에서 오래 굴러먹다 보니 이상한 심보 같은 게 생겼다.

그게 고치려고 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우성진은 멀뚱히 서 있는 선우를 향해 말했다.

“포장 패키지 주문하러 왔다고요? 내용물이 뭔데요?”

“김치요. 저희 가게에서 판매할.”

“김치라…… 패키지 사이즈, 기본 디자인 의뢰 방향, 업체 로고 같은 건 준비했어요?”

초보들은 대부분 이 첫 번째 관문에서 나가떨어진다.

포장 패키지가 필요하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장을 방문하는 경우가 대다수니까.

주변의 선배들이 항상 말하지.

다산시장에 가면 다 있다고.

가면 다 해결된다고.

물론, 크나큰 착각이다.

이미 해 본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냥 쉽게 말하는 것일 뿐.

질문을 마친 우성진이 히죽-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당황해하는 상대방의 모습이 상상되는 찰나.

선우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여기 USB에 다 담아 왔어요. 파일 확인해 보시면 될 거예요. 기본적인 사이즈, 디자인 초안, 콘셉트 같은 것들 대략적으로 그려 왔거든요.”

“어, 아, 그래요? 일단 줘 보세요.”

우성진은 선우가 건넨 USB를 받아들고 PC 앞으로 움직였다.

한편, 선우는 우성진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봤다.

지금 우성진은 1차 테스트를 한 거였다.

보통은 이 1차 테스트에서 대부분 나가떨어진다.

일을 잘 모르는 신입일수록 그냥 가게에서 물건을 사듯이 업체에만 오면 다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 사장 딴에는 나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미리 USB까지 준비해 왔으니, 아마 좀 당황스러웠을 거다.

파일을 확인한 우성진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번에는 좀 더 깊은 질문이겠지.

2차 테스트이다.

“이거 몇 도 인쇄로 할 건데요?”

인쇄 도수.

통상 1도에서 4도까지 단계로 나뉘며, 인쇄 시 필요한 색상의 수를 말한다.

색이 한 개가 필요하면 1도 인쇄, 두 개가 필요하면 2도 인쇄다.

금, 은, 형광색 등 특이한 색의 경우 도수는 추가될 수 있고, 도수가 추가될수록 인쇄비는 증가한다.

“1도로 할게요.”

“1도요? 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우성진의 얼굴에서 약간의 조롱이 느껴졌다.

이 아저씨.

한 건 잡았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그럼요. 보통 김치 포장 패키지에 1도는 잘 안 쓰죠. 누가 김치 포장하는 데 그냥 흰 바탕에 검정 글자만 쓰겠어요. 다들 먹음직스럽게 김치 이미지를 찍어서 넣으려고 하겠죠.”

“…….”

우성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선우를 쳐다봤다.

‘아는 놈이 왜 그래’라고 말하는 듯했다.

“근데, 우리 집에서 파는 김치는 사람들이 다 먹어 보고 사는 거거든요. 아직까지는 인터넷 같은 데서 팔 생각도 없고요. 그러니, 그냥 최대한 단순하게 할 생각이에요. 인쇄도수 높아지면 비용도 더 드니까. 굳이 쓸데없는 데에 돈 쓸 필요 없잖아요?”

“흐음…… 뭐, 그렇기야 그렇지. 그렇기야 그런데…… 뭐.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그렇게 해야죠. 끄응.”

할 말을 잃은 우성진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우성진은 뭔가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쇄 방식은 뭘로 할 거요? 실크? 오프셋? UV? 그라비아?”

허허.

이 양반 선 넘었다.

자신의 심보가 통하지 않자, 최후의 무기를 들고 나온 모양새.

인쇄 방식은 초보나 신입사원이 결코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관련 일을 좀 해 본 경험자라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고.

하지만, 다행히 이 문제는 내 예상 문제의 범위 안에 있었다.

나도 어젯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인터넷 검색을 해 본 끝에 알아낸 정보이다.

“그라비아로 해야죠. 비닐 포장에 주로 그거 쓰잖아요. 말씀하신 나머지 방식은 비닐 포장에는 적합하지 않고요.”

“…….”

우성진이 쳐 놓은 최후의 벽이 무너졌다.

설마 내가 이것까지 대답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우성진이 백기를 들 차례다.

“흐음…… 그래요. 그렇게 하면 되겠네. 근데, 어디서 일 좀 해 보셨나 봐요? 가게 차리기 전에 회사 다니셨어요?”

“음…… 네, 뭐 그런 셈이죠.”

정확히는 가게를 하다가 회사를 차렸었지만, 어쨌든 회사를 다녀본 건 맞다.

그것도 전생에서.

“그래서 그랬구나. 이렇게 똑 부러지게 준비해 온 고객님은 또 처음 보네. 일단 이거 하나 받으세요.”

우성진은 성진비닐포장 상호명이 적힌 명함을 한 장 건넸다.

“아, 저는 아직 명함이 없어서.”

“상관없어요. 여기 연락처랑 성함이나 적어 주고 가세요. 아, 이메일 주소도요.”

우성진이 내민 의뢰서에 빈 칸을 채워 돌려줬다.

“주문 제작 최소 수량은 오백 개입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네, 딱 적당합니다. 제작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음…… 빠르면 일주일, 늦어지면 열흘. 우리도 미리 잡혀 있는 일정들이 있어서요.”

“네, 그 정도 일정이면 저도 문제없겠네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디자인 시안 나오면 여기 적어 준 이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성진비닐포장을 나왔다.

살짝 기가 죽은 듯한 우성진의 얼굴 표정을 확인한 건 덤이다.

뭐, 이런 경우는 자기도 처음 봤겠지.

그렇다고 뻔히 우성진의 마음을 아는데 당해 주는 것도 안 될 일이니까.

조만간, 소주나 한잔합시다.

‘이제 김치 포장 패키지 의뢰는 완료했고…….’

식품제조업 신고절차 등 이런저런 준비들을 마치면, 머지않아 선우네 백반에서 김치를 판매할 수 있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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