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17화 (17/110)

#17화 삼치 생선가스

“이모. 여기 화장실 밖에 있죠?”

화장실 가는 척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 가게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얼마 후, 가게에 들어갔다 나온 내 손에는 반찬통이 하나 들려 있었다.

영숙 이모에게 드릴 선물이다.

다시 영진순댓국으로 돌아와 이모에게 다가갔다.

“이모, 여기 선물이요.”

“선물?”

오영숙이 영문 모를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나는 가져온 반찬통을 열었다.

“이거 깍두기 아니니?”

“네. 얼마 전에 담근 거라 지금쯤 적당히 익었을 거예요. 한번 드셔 보세요.”

“어? 어어. 그래.”

주저하는 오영숙에게 억지로 젓가락을 쥐여 줬다.

그녀는 내 권유에 못 이겨 깍두기를 한 알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아사삭.

이 깍두기 씹는 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잘 익은 깍두기를 씹는 소리는 참 묘하다.

딱딱하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어떤 걸 씹는 것 같은 그런 소리.

익으면서 무가 가득 머금은 수분 때문일 거다.

오영숙은 가만히 깍두기의 맛을 음미했다.

“맛있네. 역시 너희 어머니 솜씨는 그대로구나.”

“맛있죠? 근데요. 저는 아주머니가 담그신 깍두기도 진짜 맛있었어요.”

“내가 담근 깍두기?”

말끝에 오영숙은 내가 먹던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깍두기를 바라봤다.

아마도 수입산이 분명할, 싼 가격에 납품받았을 깍두기를.

“왠지 좀 부끄럽다. 깍두기 얘기를 하니까.”

오영숙의 낯빛이 살짝 붉어졌다.

* * *

장사를 하다 보면, 슬럼프를 겪는 시기가 온다.

오영숙처럼 수십 년간 장사를 해 온 사람들이 슬럼프 한 번 겪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이번에 오영숙에게는 큰 슬럼프가 찾아왔다.

바로, 그동안 같이 영진순댓국을 이끌어 온 최고의 파트너, 친언니 오미숙을 잃은 것.

췌장암이라고 했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었다고 했고.

깍두기를 가지러 가게에 가면서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이 이야기를 듣고도 영진순댓국에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었다.

그때는 내 자신조차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부끄러워하실 게 뭐가 있나요. 지금 이모는 이렇게 장사를 이어 나가시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신 건데요.”

“응?”

이모가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본다.

“진심이에요. 그렇게 큰일을 겪으셨는데, 이렇게 가게에 나와 계신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신 거죠.”

“…….”

언니 오미숙을 떠올렸는지, 오영숙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울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대로 오영숙을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에게는 도움이 필요했다.

이 상태로 계속 식당을 운영하는 건 그녀에게도 영진순댓국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좋지 않다.

“이모. 장사를 하다 보면 반드시 슬럼프라는 걸 겪게 되죠. 누구나 다 한 번씩. 아니, 몇 번씩요.”

“…….”

“그런 슬럼프 중에는 부딪혀서 해결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잠시 문제로부터 멀어져서 해결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

“잘 아시겠지만…… 미숙 이모가 그렇게 된 건, 이모의 탓이 아니죠. 그리고…… 반쪽이나 다름없는 분을 잃었다는 건, 이모의 몸과 마음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거고요.”

“…….”

“당분간 좀 쉬세요. 쉬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세요. 그래야 이모도 살고, 영진순댓국도 삽니다.”

듣고 있던 오영숙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녀는 얼른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어, 어떻게 알았니? 내가 지금 미치도록 쉬고 싶다는 걸. 어떤 때는 가게 간판만 봐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는 걸.”

“음…… 그냥 많이 힘들어 보이시니까요.”

“힘들지. 너무 힘들어. 그런데…… 언니랑 약속했거든. 죽어 가는 언니랑 약속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영진순댓국은 내가 죽을 때까지 지키겠다고. 손가락 깍지까지 끼면서 약속했어.”

오영숙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고,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며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조금 쉬셔야 해요. 이모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시면, 그제야 미숙 이모와의 약속을 지킬 준비가 되시는 겁니다.”

흐윽 흐윽.

오영숙은 말없이 울기만 했다.

“다시 장사를 시작하시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 주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뭐든지 도울게요.”

그 말을 끝으로 식당을 나섰다.

아마 오영숙은 한참 더 울어야 할 것이다.

그녀가 다시 돌아올 때는 ‘추억’의 영진순댓국이 다시 돌아오는 날이 되겠지.

* * *

<오늘의 메뉴>

- 삼치구이

- 된장찌개

- 흑미밥

- 삼색 나물

- 그 외 기본 반찬

삼치는 겨울이 제철이다.

우리나라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생선들은 대부분 늦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살이 오른다.

즉, 겨울에 더 맛있어진다는 거다.

어떤 식재료가 제철이라고 할 때…… 가끔씩은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녀석들도 살자고 살을 찌운 걸 텐데…….

물론, 내가 그런 걸 깊이 생각할 만큼 모든 생명에 아가페적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고.

그냥 가끔씩 그렇다는 거다.

생선은 대개 크면 클수록 좋지만, 오늘은 한두 사람이 먹기에 좋을 만한 크기의 삼치로 준비했다.

큰 생선을 나눠서 주자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으니까.

반으로 가른 삼치 몸통에 밀가루와 달걀 노른자를 발라 준다.

생선을 구울 때는 불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약한 불에서 생선 안쪽 살 부분이 먼저 팬에 닿게 굽는 게 포인트.

그렇게 해야 나중에 살이 부스러지지 않는다.

노릇하게 구운 삼치를 키친타월 위에 올려 기름기를 뺀다.

노르스름한 빛깔이…… 예술이다.

군침을 삼키며 접시에 낸다.

“삼치 나왔습니다.”

“네네, 갑니다!”

고종숙 여사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접시를 내간다.

갓 구운 삼치가 배달된 곳은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앉아 있는 테이블.

삼치구이를 본 엄마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와…… 진짜 맛있겠다…… 유진아. 맛있겠지?”

“히잉. 나 이거 싫어. 무섭게 생겨떠. 안 머글 꼬야.”

여자아이가 투정을 부린다.

사실…… 삼치가 좀 무섭게 생기긴 했다.

식재료의 모양을 살린다고, 생선 대가리까지 같이 구운 게 패착이었다.

물론, 어른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하지만.

“장유진. 왜 자꾸 투정이야. 얼른 먹어. 밥 먹어야 힘내서 집에 가지.”

“히잉. 먹기 싫어. 싫다구. 무섭다구.”

아이의 목소리가 커진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슬쩍 내 쪽을 본다.

- 어떻게 해야 돼?

어머니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 걱정 마세요.

나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마침 좋은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 유진이를 달래기 위한 요리를 시작한다.

밀가루, 소금, 후추, 달걀, 빵가루.

재료들을 꺼내 놓고, 생선을 손질한다.

우선 과감하게 대가리를 자르고, 꼬리를 쳐낸다.

껍질을 벗겨 내고, 뼈에서 생선살을 분리해 낸다.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아- 하는 표정을 짓는다.

“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우리 아들 진짜 천재 아니야?”

“천재는 무슨…….”

천재라고 하기엔 너무나 간단한 해결책이다.

어린이 손님을 위한 생선가스를 만드는 거였으니까.

어려운 것도 없었다.

며칠 후 반찬으로 내기 위한 돈가스를 만들기 위해 준비한 재료를 조금 활용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 재료들마저도 대부분 원래 가게에 있는 거고.

오목한 팬에 충분히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입힌 삼치살을 튀겨 낸다.

기름의 온도는 돈가스 튀길 때보다 살짝 낮추는 게 좋다.

160에서 170도 정도?

적당한 온도에 바삭하게 튀긴 생선가스를 건져 내어 기름을 빼준다.

그러는 사이 생선가스에 필수인 타르타르소스를 준비한다.

마요네즈, 머스터드, 오이 피클, 레몬즙, 소금, 후춧가루, 추가로 꿀 조금.

이 정도만 있으면 금세 만들 수 있는 게 타르타르소스이다.

본래 다진 양파가 들어가야 맛있지만, 아이에게 줄 것이니 양파는 빼기로 했다.

이렇게 준비한 생선가스를 넓은 접시에 담아낸다.

살짝 볼품은 없지만, 타르타르소스도 간장 종지에 담아낸다.

아.

마지막으로, 냉장고에서 옥수수 통조림을 꺼내어 생선가스 옆에 듬뿍 얹어 준다.

“자, 어린이를 위한 생선가스가 나왔습니다.”

눈가가 붉어진 유진이의 앞에 생선가스가 놓여졌다.

“아……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요.”

유진이 엄마가 세상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니에요. 어차피 똑같이 백반 가격 받는 건데, 어린이 손님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줘야죠. 어차피 이것도 생선구이랑 똑같은 거예요. 그냥 빵가루만 묻혀서 튀긴 거니까.”

어머니의 설명.

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기름도 더 들고, 생선살을 발라낸 내 수고도 더 들고, 그러면서도 다른 손님을 위한 생선을 구웠던 내 멀티태스킹 능력도 인정받아야 하고…….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한 거니까.

그저 유진이가 맛있게 먹었으면 한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나?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따른다는 뭐 이런 뜻.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똑같다.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음식의 맛은 손님의 뜻에 따르는 거다.

유진이 엄마가 생선가스를 천천히 자른다.

바삭. 스으윽.

소리가 좋다.

겉은 바삭하게 잘 튀겨지고, 속은 부드럽게 잘 익었다는 증거.

적당히 자른 생선살을 포크에 찍어 유진이에게 내민다.

콘 옥수수를 오물거리고 있던 유진이가 포크를 들고 생선가스를 입으로 가져간다.

잠시 후.

“우와. 이거 맛이떠.”

예스! 성공이다.

유진이는 스스로 포크를 들고 생선가스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스스로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럼 끝난 거다.

아이들은 솔직하니까.

맛없는 음식을 직접 집어 먹는 아이는 없다.

이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유진이 엄마도 식사를 재개했다.

큰 생선 뼈를 바른 뒤, 먼저 생선 뼈에 붙은 껍질을 떼어 먹는다.

갈비를 뜯듯이 양손에 뼈의 끝과 끝을 쥐고.

“저분. 드실 줄 아네요.”

“그러게 말이다. 새침하게 생긴 사람이 저렇게 잘 먹으니까 좀 의외네.”

어머니의 말대로 유진이 엄마는 좀 도시 여자같이 생겼다.

생김새도 그렇고, 꾸밈새도 그렇고.

물론, 여기는 도시니까 당연히 다들 도시 사람이지만.

왠지 조금 더 도시 사람같이 생긴 사람은 있는 법이니까.

여하튼.

그런 사람이 생선 뼈를 들고 껍데기를 뜯고 있으니까 그 모습이 왠지 더 좋아 보인다.

도시 여자는 잘 바른 생선 뼈를 놓아두고, 이번엔 생선 살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두툼하게 잘라낸 삼치살을 와사비 간장에 찍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직접 먹지 않아도 그 두툼한 살의 감촉이 느껴진다.

등푸른 생선 특유의 고소한 향과 담백한 맛까지도.

모녀는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마쳤다.

계산을 하고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좋은 기운이 넘쳐 보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 준다는 건…… 더 기분 좋은 일이고.

뭔가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가슴에 남았다.

“여기 생선구이는 더 안 주나?”

상념을 깨는 황 씨의 말.

이제 황 씨는 선우네 백반 공식 투덜이에서 공식 홍보대사로 보직을 변경했다.

아마도 감자탕이 큰 계기가 된 듯했다.

사람들에게 말하기로는…… 그때 그 감자탕에서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 주셨던 뼛국 맛이 난다고 했다.

음식에서 추억을, 그것도 어머니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큼 강렬한 건 없다.

어머니의 음식 맛이 난다는 건…… 정말 정말 맛있다는 뜻이다.

영혼을 달래 주는 소울 푸드라는 뜻이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슬쩍 보며, 작은 생선구이 한 덩이를 황종훈 아저씨에게 가져다주었다.

윙크를 살짝 날리자 아저씨도 알아들었다.

아저씨는 눈알을 돌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생선구이로 젓가락을 놀렸다.

“맛있게 드세요.”

조용히 말하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사실 아저씨에게 저 정도는 줄 만하다.

방앗간에 들렀던 손님 중 식사를 안 한 사람은 대부분 우리 가게로 오는 것 같으니까.

뭘 어떻게 홍보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홍보대사로서 상당한 능력자임에는 분명하다.

‘역시 안티와 팬은 한 끝 차이.’

선우네 백반 최고의 안티가 최고의 팬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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