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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행복 식당-16화 (16/110)

#16화 이건 아닌데

한편, 송은희는 뚝배기에 꽉 차게 들어가 있는 알이 굵은 굴들을 보고 우선 놀랐다.

‘육천 원짜리 굴국밥에 굴이 이렇게 많이 들어가 있다고?’

물론, 매생이를 넣지 않은 대신에 굴을 더 넣어 준 것이었겠지만, 그걸 고려해도 양이 많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실하고 알이 굵은 것들로.

국물을 음미한 후, 굴 맛도 보았다.

‘어라, 이게 아닌데.’

훌륭했다.

몇 개월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그런 느낌과는 너무도 달랐다.

원래 백반집이라는 곳의 특성상 수많은 음식을 해야 하고, 다양한 음식을 매번 다르게 내어야 한다.

그래서 전문적인 맛보다는 집밥을 대신해서 먹는 사람들이 질리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을 구현하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이건…….

굴국밥 전문점에서 팔아도 손색이 없는 맛이다.

맛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중간중간 김흥범 교수의 눈치를 보았다.

내 입맛에는 맞지만, 전문가인 김흥범 교수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한 번 먹을 때마다 ‘음……’이라는 감탄사만 나직이 흘리는 김흥범.

얼굴 표정에서 느껴지는 변화도 없다.

저래서는 이게 맛있어서 저러는 건지, 맘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건지 알 수 없다.

희망적인 건, 김흥범 교수 앞에 놓인 뚝배기가 빠르게 비워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흥범 교수의 뚝배기가 사분의 삼쯤 비워져 갈 때 준비한 매생이 굴전을 들고 갔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하나씩 맛보세요.”

뚝배기에 얼굴을 묻고 있던 김흥범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매생이 굴전이군요.”

“네, 오늘 반찬 구성이 조금 심심할 것 같아서 하나씩 만들어서 드리고 있습니다.”

“음…….”

육천 원짜리 매생이 굴국밥에 매생이 굴전이 서비스로 나온다…….

반찬 구성에서 살짝 느꼈던 아쉬움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서비스 굴전을 내오는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매생이 굴국밥만 계속 먹으면서 지루함이 생길 수 있을 만한 때, 마치 맞춘 것처럼 나오는 매생이 굴전.

그것도 서비스로.

이건 확실히 고객의 감동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단골이 아닌 사람도 단골로 만들 수 있고, 기존에 단골이었던 사람은 완벽한 충성 고객으로 만들 수 있는.

깨끗하게 뚝배기를 비운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홀에 있던 나는 계산을 위해 빠르게 카운터로 이동했다.

김흥범은 조용히 카드를 내밀었다.

“만 이천 원 결제하겠습니다.”

신용카드로 금액을 결제한 후 영수증과 카드를 포개어 김흥범에게 건넸다.

“혹시 사장님이 어떤 분이신가요?”

“사장님이요?”

나는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어머니를 가리켰다.

“저분이십니다.”

“아…….”

저 아주머니가?

카페 본의 실패 요인을 분석하신 분?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흥범.

“잘 먹고 갑니다.”

* * *

“송 조교. 커피나 한잔하고 들어갈까요?”

“네? 좋습니다!”

“그럼 저기 언덕 위에 드립 커피집으로 갑시다. 거기 알죠?”

“네, 물론이죠.”

오호.

송은희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언덕 위 드립 커피집.

김흥범 교수가 기분 좋을 때만 간다는 그 집 아닌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괜히 커피 맛까지 안 좋아질 수 있다면서 가기를 꺼려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하던 기침을 하지 않는 김흥범.

식당에 나오고서부터는 얼굴 표정도 왠지 더 밝아진 것 같다.

‘휴…….’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기분이 좋다는 건 오늘 갔던 식당에 만족한다는 뜻이니까.

그나저나, 선우네 백반은 어떻게 그렇게 달라진 걸까?

스스로 느끼기에도 몇 개월 전이랑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초희의 얘기처럼 맛집이라도 대놓고 홍보를 해도 될 정도로 훌륭했다.

* * *

시장에는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이야기가 생긴다.

이야기는 소문이 되어 퍼져 가고, 시장만큼 소문의 파급력이 센 곳도 없다.

선우네 백반의 음식 맛이 확 좋아졌다는 소문은 금세 시장 상인들을 통해 동네에 퍼져 갔다.

상인들은 식사 시간이 되면 으레 선우네 백반에서 밥을 시켜 먹었고, 정기적으로 배달을 시켜먹는 집도 늘어갔다.

시장에 방문한 손님들은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이끌고 선우네 백반에 들러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그야말로 육천 원의 행복.

어딜 가도 그 가격으로는 먹을 수 없는 맛과 양을 제공하니 안 찾아올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장 모자의 환한 얼굴을 보고 가면 기분까지 좋아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있고……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다.

영진시장 후문 골목에 위치한 영진순댓국의 오영숙 사장.

그녀는 파리 날리는 식당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 * *

일요일.

선우네 백반의 정기 휴일이다.

휴일을 맞아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식당 일에만 매달리느라 제대로 동네도 돌아보지 못했다.

궁금했다.

십오 년 전 영진시장의 모습이.

기억 속의 영진시장과 실제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음식 배달을 다니면서 보긴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스치듯 안녕’ 수준이었다.

뜨거운 김이 나는 밥상을 들고 다니면서 두리번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추운 날씨 탓인지 시장에는 손님이 적었다.

오히려 좋았다.

사람에 치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으니.

나온 김에 영훈대학교 캠퍼스도 한 바퀴 돌았고, 역시나 사람이 없는 동네의 공원도 한 바퀴 돌아 봤다.

특별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진짜 특별한 건 없었다.

기억 속 영진시장과 실제 영진시장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눈여겨보지는 않아서 기억에 없던 가게들이 조금 눈에 띄는 정도?

그렇게 길을 걷다가 미리 생각해 두었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영진순댓국.

이곳도 역시나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이다.

낡은 간판을 보고 있자니, 옛 기억이 슬며시 떠오른다.

‘날 순댓국의 세계로 이끌어 준 가게.’

고등학교 시절 처음 접했던 순댓국.

처음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순대가 국물에 빠져 있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는데, 같이 빠져 있는 특이한 모양의 고기들은…… 고등학생 시절의 타오르는 식욕도 거두게 했다.

게다가 아버지로부터 그 고기들의 정체를 들은 순간…… 구역질까지 나올 뻔했다.

머릿고기라고 불리는 그 고기들의 정체.

돼지 귀, 돼지 뽈(볼)살, 돼지 혀, 돼지 콧등살…… 구체적인 부위의 명칭을 들으니, 돼지머리의 총체적인 모습까지 떠올랐다.

떠오른 돼지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니, 이팔청춘의 어린 나이에 그 고기들이 선뜻 입으로 들어가겠는가.

다행히 국물은 먹을 만했다.

아니, 진한 육수의 국물은 아주 맛있었다.

국물만 조금씩 떠먹으며, 소극적으로 먹고 있는 내 앞에서 아버지는 ‘으허, 좋다!’ 같은 소리를 연발하며, 열심히 드셨다.

얼마나 맛있게 드시던지……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달까?

어른이 아이를 보며 느끼는 그런 감정.

적당한 표현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 느낌이었다.

- 한번 먹어 보라니까.

세상 맛있는 걸 드시는 듯한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한 번쯤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돼지 머릿고기를 입에 넣게 되었다.

뽈살로 시작했다.

귀, 혀, 콧등살보다는 그나마 제일 덜 야만적으로 느껴졌으니까.

이건 뽈살이 아니다, 이건 돼지 볼이 아니다!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뽈살을 입에 넣고 천천히 오물거리는데…… 연하고…… 고소하고…… 한 마디로…… 맛있다!

은근히 보쌈 고기 같기도 하고, 삼겹살의 살 부분 같기도 했다.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뽈살을 맛본 나는 뚝배기를 뒤적거려 뽈살만 찾아 먹었다.

- 뽈살 맛있지? 다른 것도 먹어 봐. 다 맛있다니까.

이것은 어쩌면 악마의 유혹.

콧등살은 뽈살을 시도할 때보다 조금 더 쉬웠다.

솔직히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훨씬 수월하다.

콧등살은 뽈살과는 완전히 질감이 달랐다.

비계가 꽤 붙어 있는 게, 쫀득하다고나 해야 할까?

어쨌든 이것도…… 맛있다!

뽈살과 콧등살에 이어 혀와 귀도 맛보게 되었고, 결국에는 모든 고기를 숟가락에 떠서 한번에 맛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도 모르게 ‘으허, 좋다!’ 소리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순댓국은 딱 그런 음식이었다.

뜨끈하게 한 뚝배기 비우면, 아저씨가 아니어도 ‘좋다’는 탄성을 내뱉게 하는 그런 음식.

* * *

“안녕하세요?”

영진순댓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사장님이긴 하지만, 중학교 동창 윤희선의 엄마이기도 한 오영숙 아주머니. 아니, 영숙 이모.

오랜만에 뵈니 반갑다.

“어, 선우니?”

“네, 이모. 저 순댓국 먹으러 왔어요.”

“아, 그랬구나. 거기 앉아. 어떻게 줄까?”

“특으로요. 순대보다 머릿고기 많이 주세요.”

“그래. 조금만 기다려.”

영숙 이모의 뒷모습.

어깨가 축 쳐져 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신가, 하고 생각하는데…… 그러고 보니 손님이 하나도 없구나.

지금 시간은 열두 시.

아무리 추운 겨울이고, 사람들의 이동이 뜸한 일요일이라지만, 그래도 점심시간이다.

게다가 순댓국은…… 요즘 같은 겨울 날씨에 먹는 게 딱이다.

가게에 손님이 없으니…… 사장님의 어깨가 처질 만도 하지.

생각을 접고, 우선 깍두기의 맛부터 보았다.

스겅. 스겅.

음…… 식감이 좋지 않다.

기억 속 영진순댓국의 깍두기는 이렇지 않았는데…… 시장 골목에서 선우네와 영진순댓국의 깍두기가 1, 2위를 다투지 않았었나?

내 기억에는 분명 그랬다.

깍두기 맛에 실망 아닌 실망을 하고 있는 와중 순댓국이 나왔다.

뚝배기 안에서 순대와 각종 고기들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일단, 군침이 돈다.

세상에서 아는 맛이 가장 무섭다고…… 순댓국을 영접하자, 그간 순댓국에 얽힌 좋은 기억으로 인해 침부터 나오는 거다.

지난 생에 순댓국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순댓국 맛집은 다 찾아다녔다.

각각의 순댓국집은 다들 개성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영진순댓국은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은 맑은 국물에 푸짐한 건더기를 주는 게 장점인 곳이었다.

국물은 맑았지만, 육수의 진한 맛이 살아 있었고 듬성듬성 썰어 낸 고기들의 식감이 훌륭했었다.

양념 다대기는 취향이 아니니까 패스.

들깻가루만 한 스푼을 추가하고 국물을 떴다.

후룹- 음…….

다시 한번 더 후룹, 후룹- 엥?

이게 아닌데?

절로 고개가 갸웃거렸다.

이건 아니다.

들어오기 전까지 추억에 젖어 떠올리던 그 맛이.

머릿고기를 못 먹을 때도, 국물 맛만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그 맛이.

결코, 아니다.

괜히 고개를 들어 이모를 바라봤다.

그녀는 등을 돌린 채, TV를 보고 계셨다.

여전히 처진 어깨에는 왠지 모를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혹시 모르니까…… 뽈살을 하나 집어 맛을 봤다.

국물 맛만으로도 고기의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미련이 남았다.

뚝배기 안에서 뽈살을 찾으면서 더 암울했던 건…… 분명 ‘특’을 시켰는데 고깃덩어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푸짐한 건더기가 장점인 곳인데…….

겨우 찾아낸 뽈살을 한 번 씹어 보고는 결론을 내렸다.

총체적 난국.

이 순댓국에는 추억도 없고, 현재도 없다.

이런 맛으로는 손님을 끌 수 없다.

모르는 가게였다면 이대로 이곳을 나간 뒤, 다시는 방문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난 저분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이렇게 성의 없게 음식을 만들 분이 아니라는 걸.

뭔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다.

추억 속에서 빛나던 영진순댓국이 이렇게 된 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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