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장사를 배우고 싶습니다
이초희에게는 날벼락이 아니라, 질문이 떨어졌다.
“초희 학생. 이 레포트, 본인이 직접 작성한 거 맞아요?”
김흥범은 ‘직접’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네? 네. 맞습니다.”
사장님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직접 작성한 것은 맞았으니까.
“음…… 분석도 직접 한 거고?”
“아…… 그, 그게…….”
말을 더듬는 이초희를 보는 김흥범의 눈을 빛냈다.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도움이요?”
김흥범이 흥미롭다는 듯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누구의 도움을 받은 겁니까?”
이초희는 살짝 난감했다.
누구라고 해야 하나?
아는 동네 오빠?
나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긴 하던데…….
고민하던 이초희는 그냥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근처 백반집 사장님이요?”
“백반집…… 사장님이요?”
“…네.”
“흐음…….”
김흥범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초희 학생이 낸 레포트.
학부생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분석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다고 백반집 사장?
그건 더더욱 아니지.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 백반집 사장인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의 이론적 분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은 아닐 거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 백반집 사장이 누구인지.
“그 백반집 상호명이 뭡니까?”
“아…… 선우네 백반이라고…… 영진시장 쪽에 있습니다.”
김흥범은 수첩에 가만히 메모를 했다.
선우네 백반.
영진시장 근처.
메모를 다한 김흥범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 보세요.”
“네? 저, 그냥 가면 될까요?”
“네.”
“아, 교수님. 근데 점수는…… 어떻게…….”
“제출한 과제의 내용대로 공정하게 평가될 겁니다. 저는…… 도움을 받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아…… 네! 감사합니다.”
이초희는 꾸벅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도움을 받는 것도 능력이라…… 그러니까, 점수를 잘 준다는 말이지?
은희 언니랑 커피나 마시러 가야겠다.
일이 잘됐으니…… 케이크도 먹어야겠지.
* * *
아침부터 꾸준히 손님들의 행렬은 이어졌다.
점심 시간이 되자, 홀에서 드시는 손님뿐만 아니라, 근처 상인들의 배달 주문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머니, 백반 세 개 배달이요!”
“오케이. 조금만 기다려.”
철제 쟁반 세 개를 꺼내 오늘 반찬을 나눠 담는다.
닭볶음탕이 다 끓으면 하나씩 담아 배달하면 된다.
배달이 많은 시간에는 내가 배달을 가고 어머니에게 주방과 홀을 맡기기로 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배달을 가는 게 나에게도 좋았다.
운동도 할 겸, 시장 분위기도 확인할 겸.
“여기 탕 나왔어!”
“네! 배달 다녀오겠습니다.”
TV에 나오는 배달의 달인들은 머리에 대여섯 개씩 올리고 가던데, 당연히 그렇게는 못 하고…… 그냥 하나씩 하나씩 배달한다.
대신 젊은 몸의 특권인 빠른 스피드로 기술을 커버하면서.
그렇게 배달하는 곳을 돌다 보면 손님들의 은근한 피드백도 받게 되어 있다.
“제육볶음은 맛있던데…… 콩나물이 좀 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내 입맛에는 그랬다고.”
돌려 말하기를 잘하는 이불집 정 씨 아줌마의 피드백도 들을 수 있고.
“김치를 많이 줘야지. 김치를! 한국 사람은 김치를 많이 먹어야 돼!”
걸걸한 뻥튀기 가게 이 씨 아저씨의 직설적인 피드백도 들을 수 있다.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다 고객 데이터가 된다.
나는 배달 중간중간에 휴대폰 메모 기능을 활용해서 저분들의 피드백을 기록해 둔다.
그리고, 밤에 데이터를 정리할 때 반드시 기록해 두고 다음번 배달에 반영한다.
손님들은 자신의 요청사항이 반영됐다는 걸 확인하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내 목소리도 들어주는구나 싶어서 감동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단골이 되는 것이다.
상인들 중에는 친구 아버지나 어머니도 있다.
그런 분들과는 사적인 얘기를 하면서 친분을 다지기도 한다.
“선우 너는 언제 그렇게 철이 다 들었니? 우리 준호는 에휴…… 허구한 날 게임질이야. 게임질. 도대체 밤에 잠 안 자고 뭘 그렇게 눈깔 빠져라 게임만 하는지. 에휴.”
“어머니. 저도 정신 차린 지 얼마 안 돼요. 준호도 곧 정신 차릴 겁니다. 아니면 뭐. 혹시 알아요. 프로게이머라도 될지?”
“프로게이머? 에라이.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그런 건 아무나 한다니? 그것도 그 수많은 애 중에 게임 제일 잘하는 놈들이 하는 거잖아. 뭐, 잘되면 돈도 많이 받는다고 하긴 하더만.”
“준호, 게임 무지 잘해요. 동네에서 유명해요.”
“에이, 동네에서 좀 잘하는 걸로는 안 된다니까.”
그런 수준이 아니라니까요?
준호는 나중에 진짜 프로게이머가 된다.
그것도 꽤 유명한.
그걸로 돈도 많이 벌고, 유튜브 방송도 하고, 매스컴에도 알려진다.
그러니 그냥 믿고 기다리시면 되는데…… 뭐,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해도 믿지 않으시겠지.
어쨌든 이런 재미도 있다.
남들이 모르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 준호 어머니의 걱정도 그저 희망적으로만 보인다.
어차피 잘될 걸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시장을 돌다 보면, 머릿속으로 큰 그림이 그려질 때가 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선우네 백반뿐만 아니라, 이 시장 전체를 키울 방법은 없을까?
이 시장 전체가 하나의 상권을 형성한다면, 외부에서도 많은 손님이 찾아오게 할 수 있다.
시장을 보러 온 김에 맛집에 가고, 맛집을 찾으러 온 김에 시장을 보러 가는 선순환.
그렇게만 된다면, 이 영진동의 영진시장 전체가 부흥하는 것도 꿈이 아니다.
전생에서는 선우네 브랜드를 론칭한 후 상권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 버렸다.
선우네가 떠난 영진시장은 더 휑해져 버렸고.
그때는 뒤를 돌아볼 겨를 따위는 없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이 동네를 빨리 떠나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 생에는 사고가 날 일도 없을 테니…….’
지금 아버지의 의지라면 가게에 다시 나오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지가 디스크를 털고 일어서면, 라면을 끓이다가 끔찍한 사고가 날 일도 없다.
‘시장 전체를 살릴 방법…….’
급하게 생각할 건 없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을 만족시키다 보면 선우네 백반이 더 유명해질 거다.
우리 가게를 오려는 손님들이 다른 가게도 찾게 될 거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갈 거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면 된다.
* * *
저녁 일곱 시 반.
손님이 남아 있는 테이블은 이제 하나뿐.
새로 들어오는 손님도 삼십 분 전부터 끊겼다.
오늘 장사가 막바지에 달했다는 뜻.
“내기는 엄마가 이긴 것 같네?”
고종숙 여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는다.
고된 장사를 끝내고도 얼굴이 밝으니 참 보기 좋다.
하지만…… 내기에서 질 생각은 없다.
“우리 주문 마감 여덟 시잖아요. 아직 삼십 분 남았어요.”
“그래, 그래. 뭐, 어디 한번 기다려 봐. 호호호.”
어머니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전생에서의 진민호 점주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정말 우직함의 표본 같은 사람이었다.
시키는 일은 다 했고, 무작정 열심히 했다.
왜 이런 사람이 이렇게 늦게 외식업에 뛰어들었는지 아쉬울 정도로 참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돈 100원이라도 떼어 먹고는 못 사는 양심적인 사람이 진민호였다.
시간은 흘러가고, 어느새 마지막 테이블의 손님도 나갔다.
시간은 일곱 시 오십오 분.
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일 분 일 분 시간이 갈수록 노랫소리는 커져 갔다.
그렇게 여덟 시가 몇 초 앞으로 다가온 시점.
갑자기 쾅- 하고 문이 열렸다.
후욱- 후욱-
문을 열고 들어온 진민호가 가쁜 숨을 몰아쉰다.
“아, 아직 여, 영업…… 아, 안……”
“말 그만하시고, 일단 앉으세요. 영업 안 끝났으니까.”
어머니가 먼저 나서서 진민호를 자리에 앉혔다.
얼마나 세게 달려왔는지 진민호는 자리에 앉고서도 한참 동안을 헉헉거렸다.
조금 진정이 되자 진민호의 입이 열렸다.
“미안합니다. 저는 며칠 전 아침에 여기서 밥을 먹고 갔던 사람인데…….”
“알아요.”
“네? 아…… 하긴, 음식값 떼어 먹고 간 사람을 기억 못 하실 리 없죠.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때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나가 버렸습니다.”
“진짜 오실 줄은 몰랐네요? 저는 고상하게 생겨서는 음식값 떼어 먹고 갔다고 아들한테 별별 욕을 다 했는데. 호호호.”
“아…… 무슨 욕을 하시더라도 달게 받아야죠. 그렇게 맛있게 먹고 음식값을 안 내고 가다니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여기 음식값 받아 주시죠.”
진민호는 흰 봉투 하나를 고종숙 여사에게 내밀었다.
“음식값을 무슨 봉투에 줘요. 이 봉투는 됐으니까…….”
봉투만 빼서 되돌려 주려던 고종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게 얼마야. 하나, 둘, 셋, 넷, 다섯. 오만 원? 아니, 육천 원짜리 밥을 먹고 왜 오만 원을 내요?”
“일종의 이자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한 끼의 밥은 오만 원이 아니라 어떤 액수로도 값을 매기지 못할 만큼 제게는 소중했으니까요.”
그 식사를 계기로 진민호는 가족에게 해고 사실을 알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진민호의 예상과 달리 너무도 따뜻하게 자신을 위로해 줬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면서, 힘들게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그날 이후로 진민호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에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됐던 것이다.
“이자는 무슨…… 여기 거스름돈 받아요.”
고종숙은 정확히 사만 사천 원을 거슬러 진민호에게 내밀었다.
“나 여기서 이십 년 장사하면서 큰돈은 못 벌었지만, 여기 있는 제 아들 부끄럽지 않게 장사한 거 하나만큼은 자부해요. 그냥 이렇게 늦게라도 음식값 내신 걸로 충분하니까 이 돈은 그냥 다시 가져가세요.”
“…….”
크으.
우리 엄마 멋있다…….
우리 엄마라서가 아니라, 진짜로.
“그래요, 아저씨. 이 돈은 다시 가져가시고요. 그냥 저희 집 음식 생각나시면 자주 들러 주세요.”
언제 어떻게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생에서도 선우 푸드를 창립하고 나서야 만난 진민호니까.
그사이에 이분도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야겠지.
그런데…….
왠지 진민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뭔가 대단한 결의를 하고 온 사람처럼 말이다.
“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뭘까?
저 진중한 사람이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하려는 건.
“장사를 배우고 싶습니다.”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