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감자탕, 왜 이제야 한 거야? (3)
말을 마친 황종훈의 머릿속에 방금 전 선우네서 먹은 감자탕이 떠올랐다.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살코기.
뼈에 달라붙어 있던 쫀득쫀득한 살과 포근포근한 감자까지…….
꿀꺽.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뭘 생각하길래 군침을 삼켜? 나 몰래 뱀이라도 삶아 먹었냐? 아주 입맛이 확 도나 보지? 이 인간 이거, 그래서 기분이 좋은가 보구먼?”
“뱀? 내가 뱀은 안 먹어 봤지만, 입맛이 확 돌게 하는 음식은 방금 먹고 왔지.”
“입맛 확 도는 음식? 아직까지도 그런 게 있냐? 입맛 도는 음식 먹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구먼.”
쓰읍- 장 씨는 맛깔나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머금었던 연기를 내뱉는 장 씨에게 황 씨가 말했다.
“너 밥 안 먹었으면 선우네 가 봐.”
“선우네? 기껏 얘기한다는 음식이 선우네야? 거기야 뭐 음식은 잘하지만, 그 맛이 그 맛이자녀. 그냥 푸근하고 따뜻한 집밥이지 뭐. 하긴 뭐, 마누라가 집밥도 제대로 안 해 주니까 거기 밥 먹으면 속도 편하고 좋지. 집에서 밥 먹은 것 같고. 그래도, 입맛 돌게 하는 그런 음식은 아닌디?”
“말 그만하고, 밥 안 먹었으면 그냥 거기 가서 밥이나 먹어. 내가 설명하고 말 것도 없으니까 그냥 가. 가, 무조건.”
황 씨는 장 씨 입에 물려 있던 담배를 뽑아서 바닥에 비벼 껐다.
“이 인간이 아직 한 모금 남았는디…….”
황 씨는 장 씨의 말을 뒤로하고 자리를 털며 일어섰다.
“됐고, 빨리 선우네 가서 밥이나 먹어 봐. 100개 한정 판매라니까 빨리 가 봐라. 없을 수도 있다.”
“한정 판매? 뭔 백반을 한정 판매를 혀? 허이구, 참.”
꼬르륵.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장 씨의 배에서 신호가 왔다.
“참 내. 벌써 밥 먹을 때가 됐나?”
배를 어루만지는 장 씨의 발걸음이 선우네 백반으로 향했다.
* * *
“오늘 음식이 그렇게 맛있다며어?”
장만국이 선우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매, 자리가 없네?”
작은 식당의 테이블을 꽉 채우고 있는 손님들.
선우네에서는 그다지 익숙지 않은 광경이었다.
선우네가 근처 시장 상인들에게는 꽤 괜찮은 집으로 알려져 있긴 했지만…….
상인들은 주로 직접 와서 먹기보다는 쟁반째 배달을 해서 먹는다.
식사를 위해 가게를 비울 수는 없는 상인들이 대부분이기 때문.
“장 씨 왔어? 여기 자리 하나 있어. 우리도 다 합석한 거야. 여기 앉아서 먹어.”
앉아 있던 누군가가 장 씨를 향해 말한다.
장 씨가 다시 한번 꽉 찬 테이블을 의아한 듯 둘러보더니 자리에 앉는다.
“아니, 오늘 여기 뭔 일 있어? 이렇게 북적대는 거 오랜만에 보는디?”
“…….”
“아니, 앉아서 밥 먹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왜 묵묵부답이여?”
“아이, 참. 나 지금 뼈 뜯는 거 안 보여? 뼈에 붙어 있는 살점 이거 이거 제일 맛있는 거 먹고 있잖아! 내가 언제 밥 먹으라고 했지, 말 시키라고 했어?”
“아, 알겄어…… 무서워 죽겠구먼. 개가 뼈다귀 빨아먹는 것도 아니고 아주 그냥 뼈까지 다 씹어 먹겠구먼?”
“아이, 거 O(@&&&$%#*@(!”
“뭐라고 지껄이는겨? 잔말 말고 밥이나 처먹으라고?”
남자는 여전히 뼈를 뜯으면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선우네 주인장 아들 선우가 장 씨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지금 자리가 없어서 이렇게 앉으실 수밖에 없겠네요. 괜찮으세요?”
“뭐, 뭐. 괜찮으니께 저거 국이나 한 사발 줘 봐. 저게 뭐길래 다들 뼈다귀를 저렇게 뜯고 있대애?”
“아, 오늘의 메뉴는 감자탕 백반입니다. 조금만 계세요. 맛있게 끓여서 드릴게요.”
“어, 어. 그려.”
장 씨는 총총걸음으로 주방으로 들어가는 선우를 보며 생각했다.
‘쟤가 저렇게 친절했었나?’
선우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늘 엄마가 시켜서 억지로 끌려오는 기분이 느껴져서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애가 착해서 티 안 내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는 것 같았고.
근데, 저 표정은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본인이 막 즐거워서 열심히 일하려는 표정.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보지…….? 아무튼 간에 웃는 얼굴을 보니까 기분은 좋구먼. 허허.’
“웬일로 장 씨가 밥을 다 먹으러 왔지?”
“음…… 장씨 아저씨, 황씨 아저씨랑 친하죠?”
“그럴 걸? 황 씨가 투덜투덜거리는 걸 장 씨가 다 받아 주니까.”
“그래서 오셨나 보네요.”
“그래서 왔다고?”
“네. 황씨 아저씨가 감자탕 맛있다고 얘기해 줬나 봐요.”
“황 씨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 투덜이 황 씨가? 에이…….”
황 씨가 오늘은 맛있다고 얘기를 해 주고 갔지만, 그건 그냥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 투덜이가 감자탕 한 번에 그렇게 변할 리는 없지.
반면, 선우의 생각은 달랐다.
‘안티가 팬이 되는 건 한순간이지…….’
사실 안티와 팬은 한 끗 차이다.
그 둘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바로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
황 씨의 경우 선우네 백반에 대한 관심과 애정.
황 씨가 매번 투덜거리면서도 선우네에 오는 이유는 하나다.
선우네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는 안티의 탈을 쓴 팬인 것이다.
그냥 표현하는 방법이 투덜거림이었던 것.
그런데, 오늘 감자탕이라는 계기로 인해 그 투덜거림이 칭찬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황 씨의 마음에서 쏟아지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거다.
투덜거림이 머릿속을 거쳐서 나오는 말이라면, 칭찬은 가슴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
무슨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도저히 맛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
공식 안티가 공식 팬이 된 거다.
“너무 맛있으면 그럴 수도 있죠 뭐.”
“…그런가? 정말 그렇다면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정말 오오래 살고 볼 일이야…….”
* * *
손님들의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황 씨와 마찬가지로 뚝배기 끝까지 다 비운 장 씨는 ‘캬- 입맛 도네.’라는 말과 함께 허허허 웃었다.
방앗간에 들렀다가 온 것 같은 손님은 막 찐 가래떡 한 줄기를 내밀며 말했다.
- 방앗간 주인분이 여기 맛있다고 해서 왔는데……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뭐, 드릴 건 없고 이거라도…….
황 씨도 참…….
장 씨도 모자라 손님에게까지 소문을 내나 보다.
그 손님 이후에도 방앗간에서 추천받아서 온 손님이 꽤 많았다.
시장 상인들, 시장을 방문한 사람들로 북적이던 점심 장사가 끝나자 잠시 한가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난로 옆에 앉아 믹스커피를 마시던 어머니가 말했다.
“아까 감자탕은 왜 남겨 놓은 거야? 그거 다 팔면 오늘 장사 마무리해도 되는 거였는데.”
“아…… 일단 한 그릇은 아버지 드릴 거고요.”
“맞네.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
“후훗. 나머지는 단골손님들을 위한 배려.”
“단골손님? 음…… 시장 사람들은 거진 다 왔다 간 것 같은데?”
고종숙이 종이컵에 입술을 대고 후루룩 커피를 들이켰다.
“맞아요. 근데, 제가 기다리던 손님들은 아직 안 왔거든요.”
“기다리던 손님? 음…….”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어머니는 아버지 드릴 감자탕 싸서 먼저 들어가 계세요.”
“응? 오늘 장사는 거의 끝났다 해도 내일 장사 준비해야지.”
“에이…… 이틀간 보셨잖아요. 이제 그냥 저 믿고 먼저 들어가세요.”
“그래도…….”
“정 못 미더우시면 가서 좀 쉬었다가 나오셔도 되고요. 아버지 식사도 잘 못 드셨을 텐데 돌아와서 처음으로 제가 만든 감자탕 맛 좀 보여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돌아와? 어디를 갔다가 돌아와?”
아차.
“제정신이요. 요 며칠 어머니가 보셔도 제가 정신이 좀 돌아온 것 같지 않아요? 게임도 안 하고.”
나는 검지손가락을 관자놀이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어, 그, 그야 그렇지. 맞아. 그런 걸 돌아왔다고 하나?”
선우의 이런 모습은 난생처음 마주하는 고종숙.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도 돌아왔다고 표현하는 건가?
“에이, 뭘 그렇게 따지고 그러세요. 아버지 거 아까 냄비에 내가 담아 왔으니까 그거 들고 빨리 가 보세요. 아버지 배고프시겠다. 또 라면 끓여 드시면 안 되잖아요!”
“어이쿠. 얘가 왜 갑자기 소리를…….”
“아, 죄송해요. 헤헤. 아무튼 빨리 가 보세요, 어머니. 가게는 저한테 맡기시고요.”
고집부리던 고종숙 여사를 억지로 집으로 보낸 뒤, 잠시 후.
영훈대학교로 떠나보낸 제비가 황금 박을 물고 입장했다.
“안녕하세요!”
직화 제육볶음 커플은 두 사람의 친구를 더 데리고 들어왔다.
“사장님, 어제 제육볶음 너무 맛있게 먹고 시험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그 제육볶음이 너무 생각나서 또 왔어요!”
“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자리에 앉으세요.”
네 사람을 자리에 앉힌 나는 ‘장사 마감’이라는 종이를 가게 앞에 붙이고 문을 걸어 잠갔다.
학생들은 그런 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학생들 여기 감금시키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고요. 마침 오늘 준비한 감자탕이 네 그릇 밖에 남지를 않아서…….”
“아…….”
“추울 텐데 따뜻한 물 좀 드시고 계세요. 음식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네!”
예상한 대로 커플이 와 줬다.
사실 저들이 진짜 올 줄은 나도 몰랐다.
내가 불가사의한 현상을 겪고 회귀했다지만, 무슨 예지 능력을 얻은 건 아니니까.
다만, 전생에 식당에서의 여러 가지 경험과 직감으로 왠지 저들이 다시 올 것 같았다.
오늘은 금요일.
시험 기간의 마지막 날이었고, 학기를 마치는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당연하게도 왠지 맛있는 걸 먹고 싶어진다.
어제 식사를 하는 커플의 표정.
세상 맛있는 걸 먹는 것 같은 얼굴.
막 시험이 끝나고 배가 고픈 저들.
밤을 새워 꾀죄죄한 몰골에 어디 멀리 나갈 수는 없고, 맛있는 음식은 먹고 싶고.
학교 근처에 맛있는 곳이 있다면 당연히 올 수밖에 없다.
뭐, 이런 예상이 다 틀려도 손해는 1도 볼 게 없었다.
어차피 남은 감자탕은 다른 손님에게 팔아도 그만이니까.
남은 감자탕을 큰 냄비에 붓고, 화구에 올렸다.
낮에 손님들이 먹었던 건 사실 뼈다귀해장국이다.
뚝배기에 등뼈 두 덩이와 감자 한 알, 우거지가 담겨 있었던.
하지만, 진짜 감자탕은 이렇게 냄비째 먹어야 제맛 아니겠는가.
어차피 다른 손님도 들어올 일이 없으니 진짜 감자탕 느낌 나게 준비해 준다.
확 끓여 낸 탕에 깻잎, 청양고추, 들깻가루 등 부재료들을 얹는다.
부탄가스 레인지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탕이 담긴 냄비도 올린다.
네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터진다.
“와…… 이거 진짜 감자탕이네요?”
“우와. 사진 찍어야지. 백반집에서 감자탕을 다 보네. 호호호.”
“이거 양이…… 한 10인분은 되는 것 같은데? 와우.”
“음…… 비주얼은 합격이네.”
커플의 앞에 앉아 있는 여학생이 새침하게 말했다.
아마도 이들 중 입맛에서는 제일 까다로움을 자부하는 분인 듯.
물론, 깐깐한 척을 하는 학생의 표정이 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인다.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거지. 후훗.
뭐, 그게 바로 학생의 특권이기도 하고.
“5분 정도만 더 끓여서 등뼈부터 하나씩 발라 드세요. 다음 우거지랑 수제비 드시고, 감자는 제일 나중에. 여기 겨자 소스 하나씩 종지에 담아서 찍어 드시고요.”
“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다른 손님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드시고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사장님…… 혹시 소주도…… 있나요? 시험이 끝나서…… 헤헤.”
어제도 왔던 남학생이 간절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물론이죠!”
저 학생.
어제 어묵탕에 소주 한잔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얼굴이 생생히 기억난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떠올렸을 때의 얼굴이었으니까.
그래서 미리 준비해 두었다.
제비 대접은 확실히 해 줘야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친구 제비들을 몰고 올 줄 모르는데.
냉동고에서 반쯤 얼린 소주를 꺼내 테이블로 들고 갔다.
“자, 여기 슬러쉬 소주 나왔습니다.”
“헉…… 이 소주는…….”
“얼어 죽어도 소주는 차갑게 마셔야죠. 그래야 제맛이지. 안 그래요?”
“마, 맞아요. 아, 나 눈물 날 것 같아.”
“오빠 왜? 응. 왜 눈물 나? 무슨 일 있어?”
뼈다귀를 들고 뜯고 있던 여학생이 눈치 없게 묻는다.
그렇게 뼈다귀랑 사랑을 나누고 있으니, 오빠의 마음을 알 리가 없지.
너무 좋아서 눈물 나는 거잖아.
백반집에서 슬러쉬 소주를 먹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냐는 말이지.
“수민아. 뼈다귀나 마저 먹자.”
“응. 그럴게.”
이수민은 더 이상 관심도 없다는 듯 다시 뼈다귀와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