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감자탕, 왜 이제야 한 거야? (2)
밖에 적혀 있는 감자탕 메뉴를 보고 들어온 건지, 오늘 아침은 어제에 비해서 훨씬 손님이 많았다.
“여기 등뼈 좀 추가해 주세요!”
“혹시 감자는 추가 안 되나요?”
“겨자 소스 좀 더 주세요!”
여기가 백반집인지 감자탕 집인지 모르겠지만, 등뼈를 찾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등뼈 하나씩을 서비스로 주고, 감자를 찾는 손님에게는 몇 개 더 퍼주었다.
공식 메뉴가 아니라, 서비스로 드리고 있다는 점도 명확하게 밝혔다.
아무리 적은 이익을 남기는 단계라지만, 나중에 진짜 감자탕을 팔게 될 때도 이렇게 무료로 다 주는 걸로 생각하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 들어오는 손님을 본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에휴, 저 인간 또 왔네. 또 왔어.”
누가 왔나 고개를 들어 보니…… 요 앞 시장에서 방앗간을 하는 황 씨였다.
황 씨는 입맛 유별나기로 유명했다.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이 왜 도대체 집에서 밥을 안 해 먹고 꼭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꼭 밥을 먹고 나서 한마디씩 한다.
아니, 음식에 대한 일장연설을 씨부리고 간다.
전생에서는 나이로 밀어붙이는 저 인간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몇십 분이고 투덜대는 말들을 들어주곤 했다.
그때는 황 씨가 하는 말이 맞는지 틀린지도 몰랐다.
그냥 빨리 지껄이고 나갔으면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오, 감자탕? 감자탕을 했다고? 우허허. 감자탕이 쉬운 음식은 아닌데…….”
“그럼 그냥 다른 거 드셔도 돼요. 김치찌개 같은 것도 되니까.”
어머니가 거만한 표정으로 팔걸이에 팔을 걸고 앉아 있는 황 씨에게 말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이랬을 거다.
자기가 만든 음식은 욕을 먹어도, 아들이 만든 음식은 욕을 먹게 하기 싫다는 마음.
모성애가 깃든 마음.
가만히 생각하던 황 씨가 말했다.
“에이, 내가 이래 보여도 단골인데 그럴 수 있나…… 새 메뉴가 나왔으면 한번 맛을 봐야지. 감자탕으로 주쇼. 헤헤. 사이다도 한 병 내오고.”
황 씨는 꼭 식사와 함께 사이다를 시킨다.
맛없는 음식도 쑤욱 내려가게 해준다나 뭐라나.
하여간, 꼴 보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는 인간이다.
황 씨가 아무리 진상 손님이지만, 음식까지 진상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건 황 씨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어머니 그리고 선우네 백반의 자존심 문제였으니까.
똑같이 감자탕을 끓여 뚝배기에 담아 황 씨에게 내간다.
뚝배기를 내려놓으며 친절한 멘트도 덧붙인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드세요.”
입가에는 전생에서 단련한 비즈니스 미소를 띄우며.
“어, 그래. 너 좀 친절해진 것 같다?”
“하하하. 늘 친절해야죠. 장사하는 사람이. 맛있게 드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응, 그래.”
황 씨, 황종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펄펄 끓고 있는 뚝배기로 숟가락을 가져갔다.
먼저 뜨끈한 국물부터 한 입.
‘음…… 진하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진한 육수의 맛이 우러나는 게 진국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도 궁합이 딱 맞았고.
몇 번 더 국물을 떠 먹은 황종훈은 젓가락을 들고 우거지를 몇 개 집었다.
후루룩.
국물과 섞여 있어 자연스럽게 입으로 빨려 드는 우거지.
너무 무르지도 않고, 너무 질기지도 않은 적당한 식감.
씹히는 맛이 재미있으면서도 부드러워서 훅 넘어갔다.
그렇게 몇 번 더 우거지를 집어먹은 황종훈의 젓가락이 이번에는 푸짐해 보이는 등뼈로 향했다.
젓가락질로 큰 등뼈를 집으려던 황종훈의 손길이 몇 차례 실패로 돌아갔다.
살짝 짜증이 난 황종훈이 젓가락을 테이블에 탁 놓을 때.
선우가 다가가 그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비닐 위생 장갑.
“등뼈는 손으로 발라 드셔야 제맛이죠. 후훗.”
지금 그에게 이 한 짝의 위생 장갑은 신이 내린 동아줄과도 같았다.
저 커다란 뼈에 붙어 있는 두툼한 살코기가 얼마나 그의 침샘을 자극했던가.
“흐흠. 고, 고맙다.”
“네, 맛있게 드세요.”
선우가 여전히 환하게 웃는 채로 몸을 돌렸다.
이제 고기 파티의 시작이다.
뼈다귀를 손에 든 황종훈은 너무 커서 이제 막 뼈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는 고깃덩어리를 와앙 입으로 가져갔다.
‘부, 부드럽다…….’
한입을 가득 채운 고기가 적당한 식감을 주면서도 굉장히 부드러웠다.
이번에는 한쪽 손으로 뼈다귀를 잡고 살덩이 하나를 뜯어내어 종지에 담긴 겨자 소스에 풍덩 찍었다.
입안으로 가져가자 살짝 혀를 자극하는 겨자의 맛이 느껴졌다.
그 맛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고기의 맛을 완벽하게 잡아 주었다.
‘와…… 이, 이건 뭐…… 아니 이렇게 맛있는 감자탕을 할 수 있으면서 왜 이제야 내놓는 거야.’
살코기를 다 뜯어먹은 황종훈은 뼈와 뼈 사이에 붙은 쫄깃한 연골 부위까지 낱낱이 떼어 먹었다.
황종훈이 남긴 뼈에는 사람이 먹을 만한 어떤 단백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황 씨…… 많이 배고팠나 보다. 원래 저렇게 음식을 먹는 인간이 아닌데…….”
“그러게요. 아니면 뭐, 추위 속에서 몸을 떨다가 들어왔나?”
나는 괜히 너스레를 떨어 봤다.
황 씨는 지금 배고픈 것도 추위에 떨다 온 것도 아니다.
배가 많이 고픈 상황이었다면, 저렇듯 온 얼굴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식사를 음미하지는 못했을 거다.
추위에 떨다 들어왔으면, 일단 따뜻한 물부터 찾았을 테고, 국물부터 미친 듯이 들이켰을 거다.
지금 황 씨의 저 모습은 감자탕의 맛에 완전히 빠져든 상태이다.
국물 맛이 깊게 배인 감자탕 속 감자처럼.
“그런가 보다. 원래라면 이 반찬, 저 반찬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가 하고 인상을 팍 썼다가 혼자서 투덜거리다가 하면서 온갖 맘에 안 드는 티를 팍팍 내면서 먹어야 맞는 건데.”
“후훗. 원래라면…… 그렇겠죠.”
근데 저 감자탕은 외식업계의 레전드 이선우가 만든 음식이니까.
불평을 하려다가도 쏙 들어갈 거다.
등뼈 두 덩이를 뼈만 남겨 놓고 싹 비워 버린 황 씨는 남은 밥을 국물에 확 말았다.
이제 탄수화물과 감칠맛 파티의 시작이다.
폭 익은 감자를 으깨어 국물과 함께 입속에 넣는다.
국물의 감칠맛과 감자의 포근포근한 식감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거기에다가…… 선우네 백반의 ‘전가의 보도’인 깍두기.
적당한 크기의 그것을 입안에 넣고 아삭 깨물어 먹으면, 혹시라도 남아 있는 느끼함이나 텁텁함이 눈 녹듯 사라진다.
이렇게…… 영원히라도 먹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탁.
황 씨가 숟가락을 놓는 소리가 들린다.
트라우마 때문에 깜짝 놀란 어머니가 반사적으로 그곳을 쳐다본다.
보통 황 씨가 수저를 테이블에 놓을 때는 뭔가 불평을 쏟아 내기 위한 포석 같은 거였다.
하지만……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싹 비워져 있는 황 씨의 뚝배기를 보라.
고종숙 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어머. 저 인간이 뚝배기를 싹 비워 냈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후훗. 오늘따라 어머니가 담근 깍두기가 더 맛있었나 보네요.”
괜히 어머니에게 공을 돌린다.
어머니가 모르겠는가.
황 씨가 뚝배기를 싹 비워 낼 정도로 내가 만든 감자탕이 맛있었다는 걸 말이다.
황 씨는 뚜벅뚜벅 계산대로 다가왔다.
“흐흠…… 이거 얼마요?”
“아유, 뭘 물어보고 그래요? 만날 먹는 거면서. 똑같이 그 가격이지요. 육천 원.”
우쭐해진 어머니의 목소리가 크다.
황 씨는 주춤주춤 주머니를 뒤져 지폐를 꺼내 어머니의 손에 올려놓는다.
“황씨 아저씨. 육천 원이라니까, 육천 원. 이 양반이 오늘따라 정신이 나갔나…… 왜 만 이천 원을 내냐고. 만 이천 원을.”
어머니는 지금이 기회다 싶었는지 다분히 공격적인 어투로 황 씨에게 따졌다.
하지만, 감자탕 맛에 취해 버린 듯한 황 씨가 헤헤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나는 포장해 줘. 포장도 되지, 이거?”
제법…… 간절해 보이는 황 씨의 표정.
그 앞에서 고종숙 여사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저 인간이 포장을?
365일 내내 불만만 터뜨리던 저 인간이 음식이 맛있다고 포장을 해 달라고?
멍해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나섰다.
“죄송하지만 포장은 안 됩니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황 씨의 표정이 급 우울해졌다.
마치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대신, 쟁반에 담아서 하나 가져다드릴게요. 배달해 드시는 것처럼. 나중에 뚝배기째로 데워 드셔도 되니까.”
다시 황 씨의 표정이 환해졌다.
“응, 고마워. 아, 그리고 선우 엄마.”
“왜요?”
“……잘 먹었다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어 본 감자탕 중에 제일 맛있었어. 오늘 날씨랑도 딱 맞고.”
그 말을 끝으로 황 씨는 가게 밖을 나섰다.
열린 문틈으로 차가운 공기가 휙 밀려 들어왔다.
“선우야.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니?”
“네. 그런 것 같은데요?”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오- 래 살고 볼 일이야.”
* * *
황종훈은 선우네 백반의 문을 나서면서도 입안에 감도는 감자탕의 여운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행복해지는 음식을 먹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사실 황 씨가 선우네 백반에서 음식 맛으로 투정을 부린 건 선우네 음식이 맛없어서가 아니었다.
맛도 없는데 괜히 매일 선우네 가서 밥을 먹었겠는가?
시장에 음식점은 널려 있다.
‘맛이 있으니까 괜히 투덜거려 보고 싶었단 말이지…….’
마치 유치한 초등학생의 마음 같은 거다.
좋아하는 여학생을 괜히 괴롭히는 남학생의 마음 같은 거.
그런데 오늘 감자탕은…….
‘왜 돌아가신 어머니의 뼛국이 생각나지?’
시골집의 커다란 솥에다가 아주 특별한 날에만 끓여 주셨던 뼛국.
지금의 감자탕과는 그 모양이 달랐지만, 오늘 먹은 감자탕에서 그 뼛국의 진한 육수맛이 났다.
그야말로 추억의 맛.
이젠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어머니의 맛.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를 쑤시며 걸어가는 황 씨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어이, 황 씨. 뭔 일 있어?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이네?”
철물점 장 씨, 장만국이다.
“나? 허허. 기분 좋지. 허허허.”
어라?
장만국은 실실 웃고 있는 황 씨가 무지 낯설다.
황종훈은 이 골목 ‘영진시장’에서 알아주는 투덜이다.
뭐가 그렇게 늘 불만이 많은지, 매사 투덜거리며 돌아다니는 게 그의 일이다.
뭐,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게 시장 상인들의 평이다.
그냥 성격이 좀 부정적이고, 불만이 많은 것뿐.
“진짜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봐?”
두 사람은 시장 뒷골목에 있는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모금 깊게 담배를 빤 황종훈이 말했다.
“아, 맛 좋다. 맛있는 거 먹고 맛있는 거 피우니까 더 맛있네. 어우, 좋다.”
“날씨도 추워 죽겠는데 그렇게 담배가 피우고 싶냐? 거, 나도 한 대 줘 봐.”
“뭐? 장 씨 너 담배 끊었다며? 마누라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에이, 빌어먹을. 담배도 끊고, 간 때문에 술도 못 마시고 무슨 낙으로 살어. 이럴 때 한 대 태워야지. 어차피 날 추워서 애들 엄마 바깥에 나오지도 않을 거여.”
“난 걸려도 모른다?”
“아이, 빨리 줘 보래도?”
장민국은 황종훈의 손에 든 담뱃갑을 낚아채서 한 대 꺼내 물었다.
“후우…… 아우, 좋다.”
“야, 장 씨. 근데 너 지금 인생에 낙이 없다고 했지?”
“그려. 늙어 가는 인생에 무슨 낙이 있겠냐? 이제 뭘 먹어도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뭘 해도 재밌는지도 모르겠고…… 에휴.”
“뭘 먹어도 맛있는지 모르겠다고?”
황 씨가 정색을 하며 장 씨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래! 넌 안 그러냐? 만날 선우네서 밥 먹고 투덜투덜 거리더니만. 그게 그래서 그런 거잖아. 뭘 먹어도 맛이 없고, 그냥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뭐……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방금 생각이 바뀌어 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