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직화 제육볶음 (1)
제육볶음.
왠지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어제 어머니와 얘기하기로는 한식 뷔페집처럼 대용량으로 만들어 놓고, 손님이 오시면 퍼서 내는 걸로 합의했다.
어제는 나도 그게 맞겠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뭔가가 좀 심심하다.
제육볶음에 어묵탕.
맛만 잘 내면 훌륭한 백반집 메뉴인 건 맞다.
하지만, 손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남들과는 다른 한 끗이 있어야 한다.
내가 프랜차이지(franchisee,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장님들에게 만날 했던 잔소리가 뭐였던가.
- 사장님들 잘 들으세요. 사장님들 몸이 힘들면 힘들수록 고객분들 입은 더 즐거워지는 겁니다. 그러니 가만 있지 말고 몸을 굴리세요. 그래야 여러분들도 살고 저도 삽니다.
너무 다그치는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무조건 맞는 말이다.
실력이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손님이 들끓느냐 파리가 날리느냐의 작은 차이는 바로 사장의 정성에서 결정난다.
작은 가게일수록 당연히 더 그렇고.
“좋아. 일단 제육볶음 양념부터 하자.”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간장,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고기와 함께 잘 버무린다.
양파, 대파, 청양고추는 볶을 때 넣을 거기 때문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 썰어서 준비해 둔다.
양념에 버무린 고기는 뚜껑을 비닐로 막아서 냉장고에 넣어 둔다.
30분 이상 냉장고에 넣어 숙성시켜 주면 고기에 양념이 배어 더 맛있어지니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한꺼번에 큰 냄비에 넣고 볶아 두는 거였지.”
양념이 묻은 손을 씻고, 메뉴 칠판이 놓여져 있는 테이블로 향한다.
‘제육볶음’이라 적혀 있는 글씨를 쓱쓱 지우고, ‘직화 제육볶음’이라 적어 넣는다.
‘직화’라는 글씨는 타오르는 붉은색으로.
“그래, 이게 맞지. 직화 제육볶음. 고기에는 모름지기 불맛이 나야지. 암!”
손님이 올 때마다 매번 제육을 볶아야 해서 귀찮긴 하겠지만, 대용량으로 해서 데워 나가는 제육볶음과 그때그때 불맛까지 입혀 나가는 제육볶음은 차원이 다르다.
말해 뭐 해.
완전히 다른 음식이지.
“그럼…… 테스트로 한번 볶아 볼까? 아, 어묵탕부터 끓여 놓아야지.”
미리 썰어 놓은 어묵과 무 등 재료들을 넣고 가스불을 지핀다.
어묵탕은 너무 오래 끓이면 어묵이 너무 흐물거려 맛이 없으니, 살짝 끓여 놓고, 보온 상태를 유지하면서 손님이 올 때마다 덜어서 내면 된다.
어묵탕 준비를 마친 후, 숙성이 된 제육을 꺼내 놓는다.
팬에 식용유와 대파를 넣고 파기름을 내고, 양념한 고기를 넣어 볶아 준다.
중간중간에 팬을 움직여 불맛을 입힌다.
화력 넘치는 가스불에 고기가 닿으면서 단백질과 지방, 양념이 불에 그을리는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고기가 다 익으면 양파와 청양고추를 넣어 2분 정도 더 볶아 준다.
접시에 담고 마지막으로 통깨를 뿌려 주면 직화 제육볶음 완성이다.
요리를 마친 후, 아까 미리 눌러 놓은 타이머의 시간을 확인한다.
“6분 57초. 약 7분.”
이 정도 시간이면 나쁘지 않다.
손님이 앉고 나서 바로 밥과 어묵탕 및 반찬을 내어놓고, 서너 숟갈 정도 먹었을 무렵 제육볶음이 나올 테니까.
제육볶음이 나올 때까지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는 손님에게도 7분은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다.
* * *
눈을 뜬 고종숙은 시계를 보고 기겁했다.
6시.
평소에는 네 시 정도에 일어나 식당에 나가니, 6시면 두 시간이나 늦은 것이다.
물론, 어제저녁 선우가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안방을 나와 선우 방문을 열어본다.
“이불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갔네.”
자연스레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건 분명히 다르니까.
어제 본 깍두기 써는 실력 하나로 모든 걸 잘한다고 믿을 수는 없다.
하루 만에 확 바뀐 녀석의 진심까지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식당 일이라는 게 진심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그게 되면, 이미 선우네 백반은 떼돈을 벌었을 거다.
저기 누워 있는 선우 아빠, 이철민 씨와 본인은 지금까지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가게를 운영해 왔으니까.
헐레벌떡 일어나 준비를 마친 고종숙이 방문을 나서려 할 때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 엄마, 미안해.”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이철민의 말.
저리 누워만 있으니 속은 터지지만 어찌 그 마음을 모를까.
애써 밝게 웃으며 이철민의 말에 화답한다.
“미안하긴…… 일어나기 힘들어도 억지로라도 힘내서 밥 챙겨 먹어. 잘 먹어야 몸도 얼른 낫지.”
“……그래. 고마워.”
가게에 도착한 고종숙은 가게 앞 메뉴 칠판에 적혀 있는 글씨를 확인했다.
특별 디저트 옆에 붙어 있는 별표를 본 고종숙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귀엽게 적어 놓았네.”
그래.
저거라도 해 놓은 게 어디냐.
평소 때는 아침 장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기어 나오던 아들 선우였다.
어제 하루 완전히 달라진 아들의 모습에 너무 행복했고, 오늘까지도 이렇게 미리 나와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아무것도 못 했으면 어때.
선우가 이렇게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하는 이상 앞으로 잘 가르치면 된다.
아예 머리가 없는 애는 아니니, 빠르면 1년 늦어도 2년이면 선우 아빠만큼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다.
고종숙은 두꺼운 유리문을 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선우야, 엄마 왔…… 어라?”
이 고소하면서도 군침이 도는 냄새는 뭐지?
제육볶음 냄새 같은데?
“어머니 오셨어요? 마침 잘 오셨네. 안 그래도 오늘 메뉴 시식 한번 해 보려고 하던 참이에요. 미리 밥도 먹을 겸. 어머니도 이리로 오세요.”
“어? 어, 그래. 가야지.”
선우가 이끈 테이블 위에는 백반 한 상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매콤하고도 짭짤한 냄새를 풍기는 어묵탕.
막 뜸을 들여 내 온 듯한 고슬고슬한 흑미밥.
어제 미리 만들어 둔 콩나물 무침과 애호박 볶음도 깔끔하게 접시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화룡점정.
고종숙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맡았던 냄새의 주인공, 제육볶음.
이미 냄새에 사로잡혔던 음식을 직접 마주하자 고종숙의 머리는 오로지 제육볶음 하나로 꽉 채워졌다.
그저 몸이 시키는 대로 고종숙의 손은 젓가락을 집었고, 젓가락은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접시에 예쁘게 담긴 제육볶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돼지고기에 양파와 청양고추, 대파까지 얹어서 입으로 가져간 고종숙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 이게 왜 이렇게 맛있지?”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을 못 믿겠다는 듯 고종숙은 고기 한 점을 더 집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천천히 고기를 씹던 고종숙의 얼굴에 다시 한번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맛있어…… 정말 맛있어. 선우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는 거니?”
“왜 맛있냐고요? 맛있는 데에 이유 있나요? 맛있게 만들었으니까 맛있지.”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이건 됐다 싶었다.
선우네 백반이 비록 크게 이름을 날리는 맛집은 아니었지만, 어머니 요리 솜씨는 근처에서는 꽤 좋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 세간의 평가에 나름대로의 자부심도 갖고 있는 어머니였다.
그냥 아들이 한 음식이라고 무조건 맛있다고 할 분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어머니의 입맛에 합격할 정도면 메뉴로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거다.
좋은 돼지고기에 양념을 잘하고, 불맛까지 입혔으니 맛이 없을 리가 없긴 했지만…….
“어디 나도 한 번 맛을 볼까?”
고기 한 점에 채소들을 얹어 입에 넣었다.
씹는 맛을 위해 살짝 두툼하게 썬 고기에는 양념이 잘 배어 있었다.
양파는 너무 덜 익지도, 너무 많이 익지도 않아서 적당한 식감을 더해 주었고, 청양고추에서 나는 매콤한 맛이 두툼한 고기에서 날 수 있는 느끼함을 완전히 잡아 줬다.
“음…… 괜찮네. 이 정도면 오늘 장사 준비는 다 된 것 같은데요?”
어머니의 동의를 구하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고종숙 여사는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어묵탕도 죽이는데? 어제 만든 애호박 볶음이랑 콩나물 무침도 맛있고. 무엇보다 이 제육…… 이 제육볶음은 진짜 요즘 말로 인생 제육볶음이다. 와…… 이거 불맛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근데 이게 진짜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이해가 안 가네 진짜.”
이해가…… 안 가신다고요?
그런 사람이 벌써 밥 한 공기를 다 비워 가는 거예요?
저러시다가 내가 먹으려고 떠 놓은 밥까지 다 드실 기세다.
물론, 다 드셔도 상관은 없지만.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가 내가 만든 음식을 저렇게 맛있게 드시고 있으니 마음이 참 뿌듯했다.
“그래, 이거지.”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의 보람이 따로 있겠는가?
내가 내놓은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된 거지.
* * *
어느새 시간은 일곱 시.
아침 장사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다.
석유 난로 때문에 탁해진 공기를 환기도 시킬 겸 문을 활짝 열었다.
“어라, 벌써 눈이 내리네?”
예보에는 오전 중에 소낙눈이라고 했는데, 벌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눈이 아니라 눈발이 날리는 정도인 듯하지만…….
어쨌든 눈이 오면 오늘 메뉴는 무조건 성공이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제육볶음과 오늘의 날씨를 위해 준비한 메뉴 어묵탕, 거기에다가 특별 디저트 찐빵까지.
실패하려야 실패할 리가 없는 메뉴 구성이다.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는데, 열린 문으로 누군가가 등장했다.
머리에 묻는 눈을 살짝 털고 들어오는 중년의 남자.
감색 롱코트에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목도리.
자연스럽게 넘긴 머리와 검은 뿔테 안경이 한눈에 보기에도 중후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만, 안경알에 잔뜩 끼어 있는 서리가 남자의 모습을 조금은 코믹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돌아온 후 선우네 백반에서 첫 손님을 맞이하는 내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옆에 서 있던 고종숙 여사도 화들짝 놀랄 정도였으니까.
“얘, 아침부터 무슨 목소리가 그렇게 커? 손님 놀라셨죠? 죄송해요.”
어머니가 손님에게 물을 내어주며 은근한 사과의 표시를 했다.
하지만, 내 활기찬 인사가 중후한 신사에게는 꽤 마음에 들었나 보다.
“허허. 환영해 주시니 좋은데요, 뭐. 좋은 아침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아침에는 백반만 하는데, 백반으로 드리면 될까요?”
“네, 그걸로 하겠습니다.”
“네, 금방 해서 가져다 드릴게요. 추우시면 찬물 말고 저쪽 주전자에서 따뜻한 물 받아 드셔도 됩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아까 손님에게 인사를 건넨 후 바로 주방으로 들어와 제육볶음을 준비했다.
살짝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던 어머니는 이내 눈빛을 바꿔 내게 말했다.
“선우야. 아침에 나한테 해 줬던 것만큼만 하면 된다. 정말 너무 맛있었거든.”
“예, 예. 말씀 안 하셔도 압니다. 테스트용으로 만든 3인분을 싹싹 긁어서 다 드셨으니까요.”
“이놈아, 민망하게 왜 그래? 맛있어서 그랬다니까…….”
“헤헤. 농담이에요, 농담. 자, 그럼 시작합니다.”
팬을 잡은 선우의 손길이 불길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