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4화 (4/110)

#4화 선우가 정말 그랬다고?

“엥? 당신 오늘 왜 이래? 진짜 뭐 잘못 먹기라도 했어? 얌전히 취직 준비해야 하는 놈 장사에 동원한 게 우리 잘못이긴 하지. 안 그래?”

고종숙은 빠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만면에 웃음을 띤 채로.

“아니. 우리가 선우를 장사에 동원한 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어.”

“뭐라고?”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엊그제까지만 해도 선우 얘기만 나오면 한숨만 쉬던 여자가.

본인이 나서서 선우는 다시 취직 준비시키고 사람 하나 구해야겠다고 하던 여자가.

누워 있는 나를 보는 시선에 심히 원망이 가득해서 내 죄책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하던 여자가 말이다.

“글쎄. 오늘 선우가…….”

고종숙은 오늘 있었던 일을 이철민에게 털어놓았다.

깍두기를 담글 때의 일부터 메뉴를 정하는 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소상하게.

마치 소녀처럼 상기된 목소리로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그랬다니까. 우리 선우가!”

“이제 이야기 다 끝났어?”

이철민은 팔을 들어 쓰윽 얼굴을 닦아 냈다.

고종숙의 침을.

그만큼 고종숙은 잔뜩 흥분한 상태에서 말을 쏟아 냈다.

고종숙이 미안하다며, 제 옷소매를 끌어당겨 이철민의 얼굴을 닦아 준다.

“선우가 정말 그랬다고?”

눈앞에 고종숙의 손이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에서도 이철민은 방금 고종숙이 한 말을 쉽게 믿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엊그제까지만 해도 잔뜩 울상을 지으며 가게에 나가던 녀석이 말이다.

그래도 되바라진 놈은 아니라 표현은 안 했지만, 아버지인 이철민은 알고 있었다.

본인 대신 가게에 나가 장사를 해야 하는 이선우의 마음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그때, 방문을 연 선우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아버지!”

아, 아버지?

아빠, 아빠하면서 반말을 하던 녀석이 갑자기 아버지?

“어, 그, 그래. 선우 왔니?”

“네. 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말 끝에 내미는 선우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빵이 들려 있었다.

“식사 못 하셨을까 봐 아버지 좋아하시는 계란빵 사 왔어요. 요 앞에서 팔더라고요. 여기 두유도 사 왔으니까 목 막히지 않게 같이 드세요.”

“어? 어, 그, 그래야지. 목 막히면 안 되니까. 목 막히지 않게 계란빵이랑 두유를 같이 먹어야지. 암, 그럼.”

“당신 왜 그래?”

“내가 뭘?”

“아니 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해서는 선우가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어?”

“아,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아버지의 당황해하는 모습.

그럴 만도 했다.

이 당시의 나는 쓰러진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무거운 중압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이 모든 게 아버지가 쓰러져서 그런 거라 생각하니 누워 있는 아버지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안 그러려고 해도 비뚤어지게 말이 나왔고, 애당초 안방 문은 잘 열어 보지도 않았다.

아버지랑 얼굴을 마주치기도 싫었던 것이다.

‘돌아가시고서야 깨달았지.’

이때의 아버지도 절대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는 걸.

세상에 허리 디스크 걸려서 몇 달 동안 누워 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된 본인은 또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런 마음을 뒤늦게야 알게 되면서 남몰래 눈물방울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 이선우는 없습니다. 돌아온 이선우는 완전히 다르게 살 거니까요.’

멍해 있는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어머니. 내일은 천천히 나오세요. 내가 새벽에 먼저 나가서 아침 장사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너 혼자서? 그래도 되겠어?”

고종숙의 얼굴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오늘 하루 선우의 모습은 분명 이전과는 백팔십도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아침 장사를 혼자서 준비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이다.

“오늘 깍두기 담그느라 많이 힘드셨잖아요. 저 믿고 내일은 좀 천천히 나오세요.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서 잡니다. 새벽에 일찍 나가야 하니.”

두 사람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선우가 나간 방 안.

“내 말이 맞지?”

고종숙은 그거 보라는 듯한 얼굴로 이철민을 바라봤다.

“오늘은 확실히 다른 것 같긴 하네…….”

이철민은 선우가 놓고 간 계란빵을 멍하니 쳐다봤다.

계란빵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어서 드셔. 식기 전에.”

“그, 그래. 그래야지.”

“여기 두유도 같이 마시고.”

고종숙이 두유의 뚜껑을 열어 이철민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철민은 양손에 쥔 계란빵과 두유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소름이 돋냐…….’

사람은 너무 좋을 때도 소름 돋는 경험을 한다.

미쳐 버리게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나, 영화를 보다가 감독이 만들어 낸 최고의 장면에 몸을 떠는 것처럼.

이철민은 지금 눈앞에서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순간을 맞이한 직후였다.

* * *

새벽 네 시의 골목길.

어스름한 새벽의 공기에서도 눅진한 습기가 느껴졌다.

일기예보대로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

어제 무리했던 만큼 조금 피곤한 감은 있었지만, 이 정도 피곤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15년 후와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진 몸 덕분에 약간의 피곤함이 오히려 더 반갑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이때는 만성 피로도 없었나 보구나.’

지난 삶을 돌아보면 늘 피곤하게만 살았던 것 같은데 그건 또 아니었나 보다.

스물다섯 살의 몸에서는 어깨 위에 늘 매달려 있던 어두운 곰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가게에 도착해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불을 밝혔다.

먼저, 석유 난로에 불을 지피고 주전자에 물을 담아 올렸다.

주방에 들어가 쌀을 씻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을 열고 나와보니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최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이쿠, 깜짝이야! 아니, 선우 아니냐? 네가 웬일이냐, 이 시간에?”

최 사장님…… 이름은 최덕호.

가게에 식재료를 납품해 주는 식자재 업체 사장이다.

그는 눈이 동그래져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 시간에 나와 내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저런 반응도 당연했다.

“장사하는 사람이 당연히 일찍 나와서 일해야죠. 돼지고기 뒷다리살 가져오신 거 맞죠?”

“으, 응. 대파랑 양파도 가져왔지.”

최덕호가 화물칸에서 식재료를 꺼내기도 전에 먼저 가서 물건을 꺼내왔다.

대파나 양파는 그렇다 쳐도 돼지고기 상태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테이블 위에 뒷다리살을 올려놓고 밝은 불빛 아래서 상태를 확인한다.

‘엷은 선홍색…… 색깔 좋고.’

색깔을 확인한 다음에 엄지손가락으로 살을 꾹 눌러본다.

‘탄력도 이 정도면 괜찮고…….’

마지막으로 뒷다리살 가장 바깥 부위에 붙어 있는 지방의 색과 탄력을 확인한다.

‘지방색도 희고, 탄탄하네. 이 정도면 제육볶음용으로는 최상이긴 한데…….’

한편, 고기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선우의 모습을 보는 최덕호는 아까 선우를 마주쳤을 때보다 더 놀라고 있었다.

고종숙도 이렇게까지 꼼꼼히 고기 상태를 확인한 적은 없었다.

아니, 자신과 거래하고 있는 어떤 업체의 사장도 이 정도로 집요하게 고기를 들춰 보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자신이 식재료를 배달하는 새벽에는 가게에 나와 있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게 문 비밀번호를 미리 알아서 가게 안에 식재료를 넣어 놓고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이 작은 백반집 사장이 저렇게 꼼꼼히 식재료를 확인하고 있다.

그것도 지금껏 한 번도 새벽에 나와 일하는 걸 본 적 없는 선우네 백반집 아들 녀석이…….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네? 사장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고기 상태는 나쁘지 않네요. 근데, 다음부터는 제육볶음용에는 이것보다는 좀 더 아랫등급의 고기를 주셔도 될 것 같아요.”

“에잉? 좀 더 아랫등급으로? 선우야. 내가 오랫동안 너희 부모님이랑 거래를 해와서 하는 얘기지만, 재료에 돈 아끼다가는…….”

“아끼려는 게 아니에요. 등급을 낮추고 양을 많이 드리려고 합니다. 어차피 제육볶음에 들어가는 고기는 그렇게 최상급일 필요가 없거든요. 오늘 주신 1+ 등급 말고, 1등급으로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오잉? 너 이게 1+ 등급인 줄은 어떻게 알았냐? 봉지에 써 붙이지도 않았는데…….”

“참 아저씨도. 딱 보면 알죠. 요기 지방 두께 보세요. 1+ 등급이면 등 지방 두께가 대략 17에서 25밀리미터 사이인데, 여기는 뒷다리살이긴 하지만, 대략적인 비율은 같거든요. 지방 두께만 봐도 요놈은 몸무게 83에서 93킬로 사이에 있는 1+ 등급인 거죠.”

내 말을 듣고 있는 최 사장 아저씨의 입이 다물어질 줄 몰랐다.

하긴, 전문가들이나 아는 내용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아저씨, 제 얘기 듣고 계신 거죠?”

“어, 아, 그럼. 다 듣고 있었지. 그럼 다음부터는 1등급으로 공급하면 되지?”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참, 아저씨. 여기 찐빵 하나 드세요.”

“찐빵?”

“네. 오늘 손님들 줄 디저트 서비스인데 여기 앉아서 따끈하게 하나 드시고 가세요.”

“고맙다.”

“고맙긴요. 목 마르시면 주전자에서 따뜻한 물 따라다가 드시고요. 커피 드시고 싶으시면 타 드세요. 저는 이제 장사 준비해야 해서요.”

“그, 그래. 그럴게.”

최덕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선우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도대체 하루아침에 저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참 잘된 일이다.

“이제 선우 엄마 얼굴의 주름살도 쫙 펴지겠구먼. 허허.”

선우 아빠가 쓰러진 후, 많이 힘들어 보였던 선우 엄마였다.

그런데, 아들이 저렇게 든든하게 지원을 해 주니…… 이제 뭘 더 걱정할 것인가.

최덕호는 흐뭇하게 웃으며 따뜻한 찐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왠지 모르게 흐뭇한 마음만큼이나 참 달콤한 찐빵이었다.

* * *

<오늘의 백반 메뉴>

- 어묵탕

- 제육볶음

- 콩나물 무침

- 애호박 볶음

- 깍두기

- 흑미밥

- 특별 디저트★

바깥에 내놓을 칠판에 오늘의 메뉴를 적었다.

쓴 것 외에도 김이나 계란말이 등 매번 나오는 반찬이 있지만, 딱히 그런 것까지 적어 두지는 않았다.

특별 디저트에는 괜히 별표 하나를 그려 줬다.

별것도 아닌데 유난 떠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 평소에 안 주는 특별 디저트인 게 맞으니까.

“콩나물 무침하고 애호박 볶음은 어제 미리 만들어 놓았고…… 흑미밥은 지금 하고 있으니까 됐고…… 어묵탕이랑 제육볶음만 하면 되겠구나.”

메뉴를 적은 칠판을 다시 밖에 내놓으려다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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