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행복 식당-1화 (1/110)

#1화 다 이뤘는데…… 그런데 왜?

이선우.

착할 선(善), 벗 우(友).

누구에게나 좋은 친구가 되어 주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

그 이름 앞에 붙여진 ‘회장’이라는 타이틀.

회장 이선우.

외식업 브랜드 30여 개와 그 밖에 다양한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선우 푸드’의 창립자이자 대표이사.

지금 이선우가 앉아 있는 곳은 서울 강남 한복판의 선우 푸드 건물 회장실.

20층 건물의 맨 꼭대기는 조용하다.

강남역 근처 뒷골목을 꽉 채우고 있을 젊은이들의 아우성도 들려오지 않는다.

서울의 밤하늘이 고요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런데…… 말이다.

아름다운 밤하늘과 달리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이 허하다.

오늘은 기뻐해야 맞는 날인데.

국내 1위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업체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인수로 선우 푸드는 외식업계 전체 매출액 순위 1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서울 변두리의 한 대학가 골목에서 시작한 작은 식당이, 대한민국 외식업계 매출 1위를 찍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다.

“다 이루었는데…….”

외식업계에 있으면서 언젠가부터 마음에 품었던 목표는 오직 하나.

대한민국 외식 시장을 씹어 먹는 것.

그거 하나 보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앞만 보며.

악착같이.

수많은 경쟁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가면서.

“뭐……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

처음 식당을 개업할 때는 내 이름, ‘좋은 친구’처럼 따뜻한 정이 있는 식당 사장이 되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식당을 하셨던 부모님의 말처럼, 식당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곳이라는 신념을 마음에 새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좋은 친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아버지 때부터 식당에 드나들던 단골손님은 어렵게 개발한 메뉴를 도둑질해 가서 상표 등록을 하고 장사를 했다.

그놈과의 특허 소송으로 몸과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나는, 오랜 시간 방황했고 겨우 재기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건물주 놈의 횡포가 시작됐다.

장사가 잘되자 갑자기 임대료를 세 배나 올린 건물주 때문에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그 건물주 놈은 그 자리에서 내가 팔던 메뉴를 그대로 팔았다.

물론, 그놈도 망하긴 했지만…….

그 밖에도 차고 넘쳤다.

내가 이를 악물고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이왕 성공하기로 마음먹은 김에 1등을 목표로 잡았다.

밤새 가며 레시피를 연구하고, 맛있다는 집은 다 찾아다녔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그렇게 몇 년을 미친 듯이 굴렀다.

그러자, 조금씩 손님들에게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자 유명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백반집이 유명세를 얻자 자신 있는 메뉴들을 따로 빼내어 분점을 만들었다.

‘선우네 닭볶음탕’.

‘선우네 찌개’.

‘선우네 삼겹살’ 등등.

백반으로 시작했기에 대부분의 한식 메뉴에는 자신 있었다.

장사가 잘되자 자연히 프랜차이즈 문의도 늘어갔다.

이때 선우 푸드를 창립하고, 프랜차이즈 점주 사장들을 모았다.

워낙에 맛있다는 소문이 나 있었기에 하려는 사람들은 이미 줄을 서 있었고.

일정 수준의 테스트를 통과한 점주에게만 가맹을 내주는 형태로 선우 푸드의 인지도를 키워 갔다.

돈이 있어도 가게를 내기 힘들다는 소문이 퍼지자, 선우 푸드의 가맹점들의 가치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가맹점주들에 대해서는 혹독하다 싶을 정도로 관리했다.

레시피를 어기고, 꼼수를 부리는 업체들에게는 즉각 계약 취소를 통보했다.

점주들은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고객들의 신뢰는 점점 더 높아져 갔다.

그렇게 선우 푸드는 성장을 거듭했다.

선우 푸드가 커지자 방송가에서도 나를 찾기 시작했다.

특유의 입담과 누구나 따라 하기 쉬운 간편한 레시피, 성공하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한 음식에 대한 백과사전 수준의 지식으로 이선우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방송에 같이 출연한 연예인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다.

“이제야 꿈에 그리던 성공을 이룬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왜 기쁘지 않지?

손안에 든 크리스탈 잔.

그 속에서 얼음과 함께 찰랑찰랑 흔들리는 갈색 꼬냑.

CAMUS XO.

최고로 비싼 술은 아니지만, 내 입맛에는 딱 맞는 술.

평소라면 입에 착착 감기던 이 녀석이 오늘따라 유난히 쓰기만 하다.

괜히 스마트폰을 켜 연락처를 뒤적인다.

수천 명에 달하는 리스트.

전 부인.

전 여친.

한때 친구였으나, 빌려 준 돈을 먹고 튄 고등학교 동창.

한때 동료였으나, 따로 가게를 차려 나간 후 앙숙이 되어 버린 녀석.

등등…….

죄다 이런 것들뿐이다.

오늘 같은 날 왜 꼬냑 한 병을 나눠 마실 친구가 없는가?

마지막으로 최근에 소개팅에서 만난 변호사 썸녀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만다.

“오늘은 그런 기분이 아니야.”

누군가를 위해 웃어 주고, 누군가의 환심을 사고, 새로 사랑을 나누고픈 그런 날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어울려 정이 쌓인, 그래서 아무 말을 해도 거리낄 것이 없는, 너무나 편하고, 포근한 그런 사람을…… 그러니까 내 이름처럼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다.

그리고, 그런 친구 하나가 없다는 게 못내 아쉬운 오늘이다.

갑자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그야말로 오늘은 다 이룬 날인데…….

“에이, 배가 불러서 그래. 배가.”

가진 자의 여유 같은 것일 테다.

하지만, 지금이 여유를 부릴 때인가?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떨어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아직 세상에는 나 이선우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일이 남아 있었다.

단지 한순간 매출액 1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제 밑에서 치고 오는 놈들을 이겨 내야 한다.

그래서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이 높은 곳으로.

밑에서 바라보는 놈들이 아스라이 선우 푸드의 뒤꽁무니만 겨우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이.

더 높이.

* * *

아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제 먹은 혼술이 꽤 지독했나 보다.

술보다는 내 마음이 더 지독했지만.

어쨌든 불쌍한 자기 연민 같은 감정은 어제를 마지막으로 다 떨쳐 내기로 했다.

“한 실장. 오늘 스케줄 어떻게 돼?”

내 책상 옆에 태블릿 PC를 들고 꼿꼿이 서 있는 여자.

한미주 비서실장.

도대체 감정이라고는 느끼기 힘들 정도로 매사 냉철한 사람이다.

내가 이런 사람을 원했다.

일에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그 일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게 내 지론.

로봇 같은 한미주 실장의 얼굴을 보니, 어제 잠시 흔들렸던 내 감정이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걸 느낀다.

그래.

이게 이선우야.

앞만 보고 가기에도 짧은 게 인생이고.

한미주 실장의 칼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8시에 임원회의가 있으십니다. 임원회의가 끝나는 10시에 어제 도착한 일본 바이어와의 미팅이 있으시고, 식사까지 같이하시기로 되어 있습니다. 오후 4시에는 충청남도 소재의 장민대학교에서 외식경영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이 있으십니다. 이상입니다.”

말을 마친 한미주는 다시 태블릿을 든 채로 꼿꼿이 서서 내 지시를 기다렸다.

“충청남도?”

“네. 장민대학교는 충청남도 당진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당진시라…….

10년 전, 사고로 돌아가셨던 부모님의 산소가 당진시에 있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못 찾아뵌 지 꽤 되었다.

“강연 말고 다음 스케줄은 없는 거지?”

“네.”

“오 기사한테 전해. 당진시는 내가 직접 차를 몰고 내려갈 테니, 일본 바이어와의 일정이 끝나면 차 키 나한테 주고 퇴근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한미주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 같은 것도 묻지 않는다.

오늘따라 그런 한미주의 태도가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까 다짐했잖아.

쓸데없는 감정으로 내 인생을 허비하지 말자고.

* * *

임원회의도, 일본 바이어와의 만남도, 장민대 학생들을 위한 강연까지도 모두 정신없이 흘러갔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왠지 제대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이 들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하루 24시간을 일정으로 꽉꽉 채웠다.

잠자는 시간마저도 지켜야 하는 일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학과장의 식사 제안을 물리치고 부모님 묘소로 차를 몰아 갔다.

서두른 덕에 해가 다 지기 전에 묘소에 도착했다.

어느 누구의 묘소가 부럽지 않게 잘 정리된 산소.

대리석으로 만든 비석은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네모진 돌을 사방으로 대어 만든 두 개의 봉분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주변의 잔디는 천연 잔디 축구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물론, 다 돈으로 해결한 거다.

묘소를 관리해 주는 지역의 먼 친척은 내가 내려오기만 하면, 버선발로 뛰쳐나온다.

VIP라나, 뭐라나…….

나를 무슨 돈줄로 안다.

하긴, 그것도 내가 자초한 거다.

시간이 없는 나는 돈으로 이 모든 걸 해결했으니까.

준비해 온 술을 들고 묘 주변을 돌며 뿌린다.

생전에 아버지가 즐기시던 담배에 불을 붙여 아버지 묘소 앞 대리석 위에 올려놓는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왔습니다.”

돗자리도 없이 잔디밭 위에서 절을 하고, 내친김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이때 띠링- 문자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 회장님.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로 베트남 출장 예정되어 있습니다. 5시 30분까지 오 기사가 회장님 댁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젠장.

부모님한테 인사 한 번 제대로 못 하네.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아무리 해가 긴 여름이라지만, 이미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알았어. 갈게. 가야지. 아버지, 어머니. 금방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대리석에 피워 둔 담배의 불을 끄고, 차에 올랐다.

* * *

성공해서 뭐가 제일 좋으냐고 물어보면, 난 1도 고민 없이 말할 수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돈 걱정 없이 탈 수 있다는 거라고.

인천공항에서 베트남까지는 대략 여섯 시간.

그 긴 시간을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옆 사람 눈치 봐 가며 왔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스튜어디스가 건네는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받아들며 생각했다.

‘그래. 그래도 그렇게 돈을 번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잖아. 이제 진짜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자.’

요 며칠 미친놈처럼 마음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했다.

헛헛하고 허망한 마음 때문에 지난 삶이 후회되다가도, 그래도 돈을 벌었고 원하는 걸 이뤘으니 된 거 아니냐고 마음을 달랬다.

물론, 한번 공허함을 느낀 마음이 쉽사리 달래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을 다시 살 수도 없고 말이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와인을 한 모금 넘기는데, 덜컹- 하고 비행기가 흔들렸다.

오우.

사람들의 놀란 소리가 들리고, 이내 그런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기류의 변화로 인해 잠시 기체가 흔들렸습니다. 탑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고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체가 흔들리는 일 정도는 늘상 있는 일이다.

나는 기장의 말에도 승객들의 동요에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다시 한번 와인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다시 덜컹- 하고 비행기가 흔들렸다.

이번에는 손에 쥐고 있던 와인잔에서 와인이 쏟아져 내릴 만큼 큰 흔들림이었다.

사람들의 동요는 더 커져 갔다.

“다시 한번 탑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 어어. 이거 왜 이래! 어어어!”

당황한 기장의 목소리를 끝으로 안내 방송도 뚝 끊겼다.

그리고, 기체 뒤에서 뭔가가 터지는 펑- 소리와 함께 산소 마스크가 내려왔다.

“어서 산소 마스크를…….”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내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울부짖음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헐…… 설마 지금 추락하는 거야?”

비행기 사고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기 직전에 그런다더니…… 정말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선우네 백반 시절부터 선우 푸드의 회장이 된 지금까지.

이렇게 빠르게 보니 참 별것 아닌 것에 죽자 살자 매달려 왔다 싶었다.

어차피 이렇게 죽으면 끝인 것을…….

‘그래도 죽기 전에 인사는 드렸으니 위에서 뵈어도 뭐라고 안 하시겠지?’

생전 부모님의 환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비행기는 빠르게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추락과 함께 내 의식도 완전히 끊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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