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아미파의 보물들 (3)
태상장로 명화사태.
성질이 불같은 그녀는 아미파에서 배분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무려 백 년을 살아온 노파답게 피부에는 검버섯과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관절에 무리가 있을 법도 하건만, 지금 그녀의 움직임은 젊은 제자들보다 날렵했다. 급류처럼 빠르고 유연한 경공술을 펼칠 정도로.
‘참담하구나. 이러니 내가 마음 놓고 은퇴를 할 수가 없지.’
아미산을 헤집고 다니던 그녀가 드디어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음양쌍괴를 쫓다가 포기한 아미파의 정예들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명화사태는 한달음에 달려가 고함부터 질렀다.
“네 이년들! 문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뭣들 하는 게냐!”
화들짝 놀란 네 명의 장로와 아미사검이 양손을 모으며 포권했다.
“방, 방향을 놓쳐서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무공이 워낙 고강하여 저희만으로는…….”
명화사태는 변명을 늘어놓는 그녀들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돌연 목청이 찢어질 듯 고함을 질렀다.
“그럼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니야! 방법을!!”
“죄, 죄송합니다.”
태상장로는 눈앞의 장로 중 배분이 가장 높은 금희사태를 지목해 물었다.
“장문인이 이 사실을 알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텐데?”
“이제 나도 더는 그 아이의 패륜을 말릴 자신이 없구나.”
태상장로는 아미파에서 유일하게 장문인을 아이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를 제외한 다른 장로들은 장문인을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배분을 중시하는 정상적인 문파에서는 보기가 힘든 경우였다.
“……사저.”
“되었으니, 너희들은 그만 올라가거라. 내가 나서서 해결해 볼 테니.”
문파의 큰어른답게 그녀는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사건을 수습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장로들의 얼굴엔 의문만 가득했다.
아무리 태상장로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한들, 음양쌍괴를 홀로 상대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금희사태가 무엇인가를 눈치챈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두꺼비 영감을 찾아가시려는 겁니까?”
“그놈이 아니라 악마라도 찾아가야 해. 그 미친것들을 잡고, 도둑맞은 물건을 찾아올 수 있다면.”
“하지만 그분께 도움을 받으려면…….”
금희사태가 걱정하는 말투로 말끝을 흐렸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사문을 위해 늙은 몸뚱이 하나쯤 희생하는 것이 뭣이 중하더냐. 쫓아오지 말고, 다들 올라가거라.”
말을 마친 태상장로는 그대로 등을 돌린 채 어딘가로 나아갔다.
아미산 난화봉.
경치가 수려한 봉우리이지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주변을 까마득한 절벽이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가파른 절벽을 맨몸으로 타고 오르는 노파가 있었다.
그것도 마치 호랑이가 절벽을 타듯 엄청난 속도로.
‘빌어먹을. 내가 이 나이에 절벽이나 타고 있다니.’
태상장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어느새 정상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면을 밟게 된 순간이었다.
“별일이 다 있군. 할멈이 여긴 어쩐 일이야?”
나무 아래에 한 노인이 기대앉아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정상인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얼굴에 가득한 오돌토돌한 종기들.
거기에 더해 누런 눈동자는 무척이나 흉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잠시 나랑 얘기 좀 하지.”
명화사태의 말에 노인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드디어 내 마음을 받아주는 건가?”
“아가리 닥쳐. 입을 찢어 놓기 전에.”
“어여쁜 비구니가 그리 입이 험하면 쓰나. 반백 년이 넘도록 사모한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말이야.”
명화사태는 그의 농담을 무시한 채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근처에 인위적으로 파놓은 구덩이였다.
한데 모여 사육되고 있는 무수한 뱀들과 독두꺼비들.
보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아직도 저것들을 먹고 사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폭살맹격공(爆殺猛擊攻)을 익히는 자의 숙명인데.”
“죽을 날도 머지않았는데, 지금까지도 수련을 멈추지 않은 모양이군.”
“뭐 그런 것도 있지만, 먹다 보니 맛이 꽤 괜찮아. 할멈도 원한다면 한번 먹…….”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다급히 상체를 비틀었다.
동시에 그가 기대어 있던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고 있었다.
명화사태가 기습을 가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검을 뽑아 초식까지 펼칠 정도로 엄청난 쾌검이었다.
“아직 실력은 녹슬지 않았네. 일수독황(一手毒皇) 광천일.”
조금 전의 기습은 광천일이라 불린 노인을 시험해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분이 불쾌한지 인상을 찡그린 채 투덜거렸다.
“두 번 다시 나한테 그런 장난은 치지 마. 할멈이 아니었다면, 목을 꺾었을 테니까.”
명화사태는 신경 안 쓴다는 듯 용건부터 말했다.
“사문에 문제가 생겼어. 날 좀 도와줘.”
“천하의 명화사태가 나한테 도움을 요청해? 그것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우선 용건부터 들어볼까.”
“음양쌍괴라는 정신 나간 애송이들이 아미파의 물건들을 훔쳐갔어.”
광천일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음양쌍괴? 도대체 어떤 간 큰 놈들이지?”
“우리 시대에 활동하던 녀석들이 아니야.”
“음. 그렇게까지 얘기할 정도면 엄청난 고수들이겠군. 그런데 왜 하필 나한테 왔지? 그 위아래도 모르는 미친 비구니는 어쩌고.”
“그 아이는 지금 사천에 없어. 맹주가 되어 총타에 있으니까.”
갑자기 광천일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헐헐. 내 일평생 가장 웃기는 일이로군. 천살성의 기운을 타고 난 비구니가 장문인이 된 것도 모자라 무림맹주가 되었다고?”
“그건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야. 도와줄 건지만 말해.”
광천일은 팔짱을 끼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나이에 무림에 나가 애송이들과 싸워달란 말인가? 다신 세상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텐데?”
명화사태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일수독황이라 불리던 그는 무림에 광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했다.
그가 펼치는 폭살맹격공이란 무공은 무적이었으며, 그 누구도 일 합을 받아낸 자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흉악한 무공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망가진 지 얼마 후. 세상을 비관하던 그는 강호를 떠나 이곳에 은거해버렸다.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정말 도와주지 않을 건가?”
광천일이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우며 답했다.
“음. 그냥은 안 되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명화사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나도 보답해줄 게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구체적으로 말해봐, 할멈. 내게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다는 건지.”
“우리가…… 좀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
시큰둥하던 광천일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그러나 농담이라 판단하고는 이내 껄껄 웃으며 물었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지?”
사문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것이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수치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며, 억지로 입을 열었다.
“아미파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아미파의 정예를 손쉽게 따돌린 조손은 다시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때? 안 열려?”
유설이 맨손으로 상자를 붙잡고 낑낑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재질로 만들었는지 그 강도가 경이로울 정도였다.
“가만있어 봐, 할배. 금방 열 수 있어.”
“강기로 자르라니까, 왜 미련하게 그러고 있어?”
“안 돼. 그럼 안에 있는 보물이 상할 수도 있다구.”
지켜보던 유진산이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건 힘으로 열 수 있는 게 아니다. 열쇠가 없으면…….”
갑자기 손녀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꺄아아악!!”
그 순간 꿈쩍도 하지 않던 상자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두둑-!
“……이, 이럴 수가! 조금만 더 힘을 내봐!”
손녀의 팔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틈새가 계속해서 벌어졌다.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단단하던 상자를 맨손으로 찢어버리고 있다니.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였다.
쩌적-!
상자의 뚜껑이 날아가는 소리였다.
유설의 입에서 기쁨의 외침이 뿜어져 나왔다.
“열렸다!”
유진산도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물이기에 이런 상자에 보관해놓았단 말인가.
“어서 보자꾸나. 뭐가 들어있는지.”
손녀가 상자에서 꺼낸 것은 뜻밖에도 투박한 모양의 목걸이였다.
중심에는 보석이 아닌 커다란 염주알 하나만이 덩그러니 박혀 있는 모습이었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엽전 몇 개면 살 수 있는 그런 수준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미소 짓던 유설의 얼굴이 금세 울상으로 바뀌었다.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보물이야!”
분명 겉으로 보기엔 볼품이 없었으나, 유진산의 생각은 달랐다.
고작 이런 목걸이 때문에 용살창이 반응을 보였을 리는 없었으니까.
“할애비 생각에는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구나. 그렇지 않으면 뭐하러 이런 곳에 보관했겠느냐.”
그 순간 실망이 가득했던 손녀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할배 말이 맞는 것 같아. 분명히 뭔가가 있어.”
유설은 목걸이에 달린 염주알을 탐색해보았다.
비벼도 보고, 흔들어 보기도 하고, 기(氣)도 불어넣어 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산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염주알 속에 뭐가 들어있는 것 같아?”
“응, 안에 뭐가 들어있는 것 같네. 한번 부숴볼까?”
괜히 힘으로 부쉈다가 내용물이 상하기라도 하면 낭패일 터.
어차피 급할 것도 없었다.
“으음. 혹시 모르니 식견이 있는 전문가에게 한번 알아보자꾸나.”
고개를 끄덕인 손녀가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걸었다.
그러고는 옷 속에 집어넣으며 투덜거렸다.
“아, 또 왔어.”
“비구니들이 또 쫓아왔단 말이냐? 그렇게 경고를 해줬는데도.”
“이번엔 두 명인데. 아까 게네들보다 훨씬 강해.”
잠시 후 유진산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곳을 향해 돌풍처럼 들이닥치는 강렬한 두 개의 기운을.
아마도 유설의 고함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성가신 녀석들이구나.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으니, 이번엔 혼 좀 내주거라.”
“……내가?”
유진산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기뻐할 줄 알았던 손녀가 시큰둥한 반응이라니.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원인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음양쌍괴!!”
나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는 두 명의 쭈그렁 노인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 내일 자연사를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노화가 느린 무림고수의 신체란 점을 감안하면, 어림잡아도 족히 백 살은 넘었을 터.
‘나보다도 이전 시대에 활동했던 자들 같구나.’
노인을 공경하려는 손녀의 마음을 유진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홀로 한 걸음을 앞으로 나섰다.
“이빨도 몇 개 안 남은 노인네들이 노망이 들었나.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봐주지 않아.”
명화사태가 흉측한 얼굴을 가진 노인에게 신호를 보냈다.
일수독황(一手毒皇) 광천일.
그가 유진산을 향해 한 걸음을 마주 다가갔다.
“오면서 얘기는 들었다. 네가 양괴인 모양이로군.”
“내가 양괴가 맞다면, 너희들은 여기서 죽어야 할 텐데?”
광천일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재밌구나. 그동안 무림이 재밌게 변했어.”
그 순간 그의 옷자락이 부풀어 올랐다.
돌풍처럼 몰아치는 강력한 기(氣)의 소용돌이로 보아 무시무시한 내공의 소유자인 듯했다. 앞서서 보았던 당문의 당소천을 넘어설 정도로.
하지만 내공의 깊이가 반드시 강함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에 겁을 먹을 유진산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투지가 불타올랐다.
머뭇거리는 손녀를 뒤로한 채, 그가 용살창을 꼬나쥐며 앞으로 나섰다.
“잠시 뒤에도 재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