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아미파의 보물들 (1)
비구니 중 배분이 가장 높은 듯한 인물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두 명이 쓰러지고 있었다.
콰직-! 퍼억-!
경쾌한 타격음이 한 번씩 들려올 때마다 어김없이 동료들이 나가떨어졌다.
어찌나 빠른지 시선이 움직임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도무지 저항할 엄두조차 나질 않았다.
‘……어디서 이런 황당한 놈들이.’
당황한 그녀는 다급히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상대가 너무 빨라서 눈으로 보고 대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몸부림임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기를 감지했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느새 관우 가면을 쓴 꼬마의 발등이 복부에 쑤셔박히고 있었으니까.
숨이 턱 막혀왔기에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삼 장을 날아간 그녀는 나무에 등을 ‘쾅’ 부딪히고는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기절한 것이다.
유설이 높이 치켜세운 발을 스르륵 내리며 물었다.
“할배, 아직 멀었어?”
때마침 유진산도 마지막 상대를 쓰러트리고 있었다.
마지막 비구니마저 정신을 잃고 주저앉았다.
여덟 명 중 셋을 맡았음에도 그가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 끝났다. 수고했어.”
“응, 할배도.”
유진산이 손을 털면서 손녀에게 당한 비구니들을 쓱 훑어보았다.
“죽은 거 아냐? 거참 찰지게 때리더구나.”
“아니야, 급소는 피해서 때렸다구.”
“잘했다. 이런 조무래기들은 적당히 손만 봐주면 돼.”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대제자였다.
그렇기에 유진산도 치명상은 가하지 않고, 기절시키는 선에서 끝냈다.
“응. 어서 올라가자, 할배. 보물 챙기러.”
관문을 손쉽게 돌파한 조손은 아미산의 정상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굳이 숨어서 다닐 생각은 없었다.
“우리가 음양쌍괴인 사실을 숨겨도, 일이 끝나면 아미파에서는 우리를 흉수로 지목할 게다.”
“응? 그래도 괜찮아?”
“증거가 없는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 게다가 어느 정도는 심증을 갖게 해줄 생각이다. 그래야 맹주한테 복수가 되지 않겠느냐.”
유설은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까르륵 웃었다.
“히히. 알았어. 근데 맹주가 우리 엄청 싫어하겠다.”
“음. 어디 싫어하다뿐이겠느냐. 아마도 죽이고 싶을 게다.”
유설이 어깨를 오므리며 떠는 시늉을 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섭다는 사람이 왜 웃고 있어?”
가면 속에 보이는 눈은 분명 웃음 짓고 있었다. 말과는 달리 설레는 모양이었다.
잠시 잡담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고 있었다.
어깨를 나란히 한 둘은 아미파의 정문으로 당당하고 거침없이 진입했다.
입구를 지키던 비구니 두 명이 어리둥절하며 앞을 가로막았다.
굳이 애송이들과 일일이 잡담을 나눌 이유는 없었다.
유진산과 유설은 대답 대신 동시에 앞발을 내질렀다.
콰직-! 퍽-!
입구를 지키던 둘은 영문도 모른 채 볼품없이 나가떨어졌다.
소란이 점차 커지자, 근처를 서성이던 비구니들이 이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눈만 끔뻑여댈 뿐.
유진산은 그녀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먼 곳에 가장 높이 솟아있는 전각이었다.
현판에는 태상각(泰上閣)이란 문구가 보였다.
“아무래도 저곳에 돈이 되는 물품이 있을 듯하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가자!”
머뭇거릴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유진산과 손녀의 신형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구니들은 마치 머릿속이 정지한 듯 어쩔 줄을 몰랐다.
난데없이 등장한 괴인들이 허공을 밟으며, 문파의 깊숙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헛것처럼 눈앞의 상황이 인지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멍한 얼굴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이 든 비구니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침입자다! 경종을 울려라!”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든 그녀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챙-! 채채챙-!
뒤늦게 침입자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렸지만, 이미 그들은 태상각의 내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태상각은 아미파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원로들이 문파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전각이다.
지금 이곳에 작은 탁상을 끼고 장로 둘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금희 사저도 그 얘기 들었지요?”
“오늘 은정 사질이 성도 시장에서 음양쌍괴를 봤다고 합니다.”
“음양쌍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섬서에 있어야 할 개망나니들이 여긴 왜……?”
“저도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지만, 사실인 듯합니다. 그들을 목격하자마자 은정 사질이 숨도 안 쉬고 달려왔다고 합니다.”
금희 사저라 불린 늙은 비구니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놈들에게 당했던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뼈가 시리구나. 우리 쪽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말 걱정입니다. 장문인도 없는데,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갑자기 굉음과 함께 전각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둘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벽면을 향했다.
벽면에 생긴 커다란 구멍으로 주먹 하나가 뚫고 들어와 있었다.
잠시 후 팔이 빠지더니, 구멍 안으로 머리 하나가 쓱 들어왔다.
곧이어 가면을 쓴 얼굴이 실내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누, 누구냐?”
가면 속에서 빛나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자신들을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았다.
괴인은 내부를 쓱 둘러보더니 한마디를 남겼다.
“나? 나는 관우야.”
해맑고 청량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장로들은 당황해하면서도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이렇게 태연히 장난을 칠 수 있는 비구니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외부의 침입을 알리는 경종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장로들이 동시에 무기를 집어들 무렵.
유설은 일단 벽의 구멍에서 다시 머리를 빼내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진산이 손녀에게 물었다.
“어때? 안에 뭐 좀 있어?”
“아니. 보물상자 같은 건 없는데, 뒤쪽에 푸른빛이 나는 불상이 한 개 있어.”
“뭔지 모르겠다만 불도 공부도 안 하는 못된 비구니들에겐 사치인 물품이다. 아마도 다른 사찰에다가 비싸게 팔 수 있을 게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안에 있던 두 명의 장로가 뛰쳐 나왔다.
전각을 빙 돌아서 달려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작은 체구와 경지를 알 수 없는 무공. 그리고 앞뒤 안 가리는 대범함까지.
비록 가면을 쓰고 있었음에도, 노련한 장로들은 둘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조손은 동시에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아닌데요? 증거 있어요?”
유설이 시치미를 떼자, 장로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증거는 무슨 증…….”
대답을 끝까지 듣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노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손이 둘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화경에 도달하지 못한 장로들이 음양쌍괴의 기습을 막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경쾌한 타격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콰직-! 빠각-!
“크허억!”
일 장을 날아 철퍼덕 넘어진 장로들은 분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서 관우 가면을 쓴 꼬마가 소리쳤다.
“금방 가져 나올게!”
그동안 유진산은 미리 챙겨온 보따리를 꺼내 입구를 열었다.
순식간에 다시 나타난 손녀의 손에는 푸른 빛이 감도는 불상이 들려 있었다.
“자, 어서 넣거라.”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태상각의 불상을 훔치고 있다니. 쓰러진 장로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발작을 일으켰다.
“안, 안 된다!”
“그, 그건 절대 안 돼…….”
그녀들의 절규는 유진산의 귀에 들려오지도 않았다.
“쯧쯧. 너희들이 그동안 공덕을 쌓았으면, 어찌 이런 꼴을 당하겠느냐. 그간 아미파가 일삼은 더러운 짓들에 대한 업보이니라.”
“음, 음양쌍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더는 듣기도 싫다는 듯, 유진산이 발등으로 그녀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렇지 않아도 아미파에게는 좋은 감정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가문의 원수와도 관련이 있었으며, 아미산의 훈련소에서 겪은 악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거라.’
옆을 돌아보자 수백 명의 비구니들이 검을 움켜쥔 채 몰려오고 있었다.
이 장소에서 더는 머무를 수가 없었다.
“어서 다른 보물을 찾으러 가자꾸나.”
유진산이 앞장서서 달리자, 유설이 보따리를 들쳐메고 옆으로 다가왔다.
“이거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그런 빛깔의 불상은 할애비도 처음 보는구나. 잘은 모르겠다만, 아마도 은자 오십 냥은 받을 수 있을 게다.”
“우와~ 우리 횡재했어.”
“이것으론 부족하지. 불타버린 우리 집도 은자로 삼백 냥인데 말이다.”
조손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보따리에 챙겨 넣은 불상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둘은 전각을 넘나들며 다음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주변으로는 둘을 잡겠다고 몰려드는 비구니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잡아라!”
“저놈들이 반야존불상을 훔쳐갔다!”
“반드시 잡아야 해!!”
이것이 무엇이든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곳에 와서 다시 본 아미파의 모습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무늬만 사찰일 뿐, 선승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무승들만이 가득했다.
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유진산이 검지로 한곳을 가리켰다.
“아가, 저쪽으로 가보자꾸나.”
이곳에서 가장 경계가 삼엄한 전각이 하나 보였다.
무공이 고강해 보이는 네 명의 비구니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기운들. 마치 소림사의 사대금강을 보는 듯했다.
어쨌거나 조손은 그곳을 향해 허공을 밟으며 나아갔다.
옆에서 유설이 기대 서린 얼굴로 물었다.
“저 안에는 뭐가 있을까?”
“할애비 생각대로라면 아마도 무공비급이 있을 게다.”
구파일방에 속한 아미파의 무공비급이라면 아주 비싼 값에 팔릴 게 분명했다.
몇 권만 챙겨오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터.
그곳을 향해 접근하자 비구니들의 고함이 더욱 거세졌다.
“저, 저놈들이 장경각으로 향하고 있다!!”
“반드시 막아야 해!”
사찰에서는 서적을 보관하는 곳을 장경각으로 호칭한다.
역시나 유진산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거리가 좁혀지자 그곳을 지키던 네 명의 비구니들이 반응을 보였다.
둘이 나아가는 방향을 향해 네 자루의 창이 쏜살같이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투창에는 무시할 수 없는 내력이 담겨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유진산과 유설의 신형이 허공에서 사선으로 회전했다.
날아오는 죽창을 피해낸 조손은 다시 새처럼 하강하며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장경각을 지키던 비구니들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어딜 감히!”
다른 비구니들과는 차원이 다른 절제된 움직임.
놀랍게도 네 명 모두 초절정의 수준이었다.
게다가 진법을 펼친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얘네들은 좀 성가시겠구나.’
만약 혼자서 상대한다면 꽤 애를 먹어야 할 전력이었다.
유진산은 등에 메고 있던 창을 뽑아 들까 생각하다가 이내 멈추었다.
“아가. 할애비 혼자 들어가서 가져올 테니, 시간 좀 벌어줘.”
“응. 많이 담아와야 해!”
둘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유설은 무공이 고강한 비구니들이 지키는 입구 쪽으로.
그리고 유진산은 장경각의 지붕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최대한 신속하게 털고 나와야 한다.’
곧이어 강기에 휩싸인 그의 손바닥이 지붕을 강타했다.
뻥 뚫린 천장을 통해 내부 모습을 보니 역시나 수많은 책장이 줄지어 있었다.
유진산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내부로 뛰어내렸다.
때맞춰 밖에서 소란스러움이 거세졌다. 싸움이 시작된 것이리라.
소리로 보아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유진산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 참. 도대체 뭘 담아야 한단 말인가.”
족히 서책이 수천 권은 되어 보였다.
이 중에서 무엇이 무공비급이고, 그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거나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길 잠시 후.
돌연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뭐지?’